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
17화 경기장의 신(4)
박진수의 3킬에 힘입어 CT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된 경기.
가장 많은 팬의 관심을 받고 있던 MBS 에이스 신지호의 1세트 패배 탓에 흥행마저 물 건너갔다고 생각되던 상황.
하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크게 즐거워했다.
모두의 관심사는 경기가 아닌 다른 부분이었다.
-저거 싸우면 집니다. 싸우네요. 봐요, 졌죠. 저걸 왜 싸웁니까?
-2시 언덕으로 가겠죠. 거기 기동포탑 드롭해서 포격모드로 전환하면 아슬아슬하게 사거리가 닿습니다.
-그냥 위협입니다. 공격하는 척 하면서 확장기지를 추가로 가져가겠죠.
이신의 돌직구 족집게 해설!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못 보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지적하는 이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팬들을 즐겁게 했다.
급기야,
-이신 선수, 여긴 중계석이지 점집이 아니거든요. 예언 말고 해설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자꾸 스포일러를 당하는 기분이라서요.
캐스터 이병철의 말에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시시하게 흘러갈 것 같았던 3라운드 플레이오프 결승전은 깜짝 게스트 덕에 크게 흥행하였다.
심지어 이신은 퇴장도 남달랐다.
CT 중견과 MBS 대장의 경기가 시작된 지 3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빌드가 갈렸네요. CT가 이겼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빌드란 ‘빌드 오더(Build order)’의 줄임말로 전술 구사를 위한 건물 짓는 순서를 뜻한다.
각 프로팀의 노력으로 다양한 빌드가 존재하고, 각 빌드마다 가위바위보처럼 상성이 존재한다.
결국 스페이스 크래프트는 포커처럼 자신의 빌드를 감추고 상대의 빌드를 알아내는 싸움이었다.
아무튼 이신의 갑작스런 말에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화들짝 놀랐다.
-가, 가신다고요?
-지금 나가야 혼잡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럼 마지막까지 좋은 관람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이신은 훌쩍 중계부스를 떠나버렸다.
남은 두 사람은 당황했으나 프로답게 다시 해설로 돌아왔다.
-아, 또 스포일러를 해놓고서 떠나버린 이신 선수였습니다.
또다시 터지는 웃음.
-하지만 덕분에 경기가 흥미진진해졌죠?
-예,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참 흥미로웠죠. 아무튼 이신 선수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고, 이제 해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빌드가 갈렸다지만 그걸 뒤집을 수 있는 변수가 또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결국 끝나기 전까지 승부를 알 수 없죠.
***
그날 이신은 경기장 뒷문으로 달려 빠져나와 택시를 탔다.
그리고 다음 날, 인터넷 뉴스 포털 e스포츠 코너가 온통 이신의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잠적했던 이신, 강남 e스포츠 경기장에 모습 드러내] [‘게임의 신’ 이신 깜짝 등장, 깜짝 해설] [이신의 ‘예언 해설’ 화제] [이신 등장에 강남 경기장 ‘발칵’] [MBS 대 CT, 3R PO 결승에서 무슨 일이?]인터넷 언론은 하나같이 이신의 등장을 반기는 듯하면서도 그의 비극에 대해 떠들어댔다.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신이 중계석에 초대되어 깜짝 해설을 한 것이 사전에 짜놓은 각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신이 선수 생활 청산하고 해설로 전향하는 포석이라는 추측이었다.
경기장에서 예고 없이 재등장한 이신은 그만큼 인상이 깊었다.
그 문제가 네티즌들끼리 논쟁까지 붙어 치고받는 와중이건만, 정작 본인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게임에 집중해 있을 때의 이신은 인터넷도 SNS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온라인에 옛날보다 고수가 많아졌군.’
스페이스 크래프트 온라인의 아마추어 강자들과 겨루며, 이신은 선수 시절의 감각을 회복해 나갔다.
새로 만든 아이디 Player_SIN은 F등급으로 시작해서 어느새 A등급에 올랐다.
1년 가까이의 공백이 있었지만 이신은 새로 아이디를 만들고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좀 시시한데. 프로 애들하고 붙었으면 좋겠군.’
프로팀의 선수들이나 연습생들은 대부분 S등급이었다.
이신은 S등급 유저들에게 대전 신청을 걸기 시작했다.
***
“2년간 5억입니다.”
박상혁 단장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선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바로 MBS의 에이스 신지호였다.
불쾌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신지호에게 박상혁 단장이 타일렀다.
“신지호 선수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저희가 낼 수 있는 최대치를 부른 겁니다. 그 이상은 상부에서도 허락을 하지 않아요.”
“그 상부에 있다는 사람들이 제 가치를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럴 리가요. 사정상 그게 한계라는 거지요.”
“좀 불쾌한데요. MBS 경기를 누구 때문에 보러 오는 것 같으세요?”
신지호가 까칠하게 찔러 들어오자 박상혁 단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신지호 선수의 값어치야 당연히 인정하지요. 그래서 2년에 5억까지 허가를 받았고요. 그런데 신지호 선수, 이신 선수가 공군 입대 전까지 받은 연봉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4억 7천. 그걸 누가 몰라요?”
“프로리그 승률 90%에 참가했던 개인리그에서 딱 한 번 빼고 전부 우승한 사람의 연봉이 그 정도였습니다.”
“그게 언젯적 얘긴데 아직도 써먹어요?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요? 온라인 관람권 판매가 활성화되면서 커진 시장 파이가 얼마인데요. 그 양반 아직 멀쩡했으면 연봉 10억은 받을 겁니다.”
“이신 선수는 온라인 관람권 없을 때도 관객을 4, 5천씩 동원하던 사람이었어요. 아무튼 중요한 건 상부에서 생각하는 최고 기준점이 그때의 이신 선수라는 사실입니다.”
“…….”
“신지호 선수는 프로리그 승률 60%대를 꾸준히 찍어주셨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점을 감안해서 2년간 5억을 부른 겁니다. 다른 팀 에이스 선수들 연봉과 비교해 보죠. 이게 낮은 금액일까요?”
신지호는 눈치가 없지 않았다.
일부러 승률 얘길 꺼낸 건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신의 4년 연속 프로리그 승률 90%의 금자탑!
네가 거기에 비교될 레벨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때, 듣고 있던 방진호 감독이 말했다.
“지호야.”
“……예, 감독님.”
“너도 알다시피 우리 팀이 올해 성적도 좋지 않고 전력 보강이 시급한 처지야. 네 말마따나 앞으로 점점 시장 파이도 커지고 스타 선수에 대한 대우가 좋아질 거다. 하지만 다른 팀을 봐도 알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앞으로라고요?”
신지호의 눈에서 불이 켜졌다.
“프로게이머가 언제인지 모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20대 초반 지나면 퇴물될 텐데?!”
아직 한창 어린 21세의 신지호.
하지만 프로게이머의 전성기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다. 혹독한 e스포츠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