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
1화 그레모리의 부름(1)
e스포츠의 신.
게임의 신.
이신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20세에 프로로 데뷔, 첫 출전한 개인리그에서 무패 우승해 e스포츠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로도 프로리그와 개인리그를 가리지 않고 무패행진!
큰 키에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져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끝을 모르고 날아오르던 그의 행보도 24세까지였다.
군복무를 위해 입대, 공군 프로팀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개인리그 4강에서 가뿐히 승리해 결승 진출을 확정짓고 난 뒤였다.
화장실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쓴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괴한은 손을 씻고 있던 이신의 손목을 정확하게 쇠파이프로 가격했다.
손목뼈가 산산조각 난 끔찍한 고통!
괴로워 비명을 지르는 이신을 뒤로 하고 괴한은 도망쳤다. 마치 자기 할 일을 완수했다는 듯이.
경찰은 끝내 괴한을 잡지 못했다.
손목은 완치되지 않았다. 마우스로 미세한 조작을 할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이신의 프로게이머 인생은 거기까지였다.
그동안 이신에게 러브콜을 보내던 프로팀들이 등을 돌렸다.
의가사 제대 후 집에 돌아온 이신은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냈다.
잠에서 깨어나면 자신의 손목을 확인했다. 그리고 뼈가 깎이는 듯한 지긋지긋한 통증을 확인하고는 좌절한다.
폐인처럼 넋을 잃고 세월을 보냈다.
처음에는 위로를 해주던 가족들 또한 서서히 이신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그러니까 엄마가 게임 같은 거 하지 말랬지!”
이신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렸다.
인터넷 뉴스 e스포츠란은 자신의 라이벌이자 만년 2인자였던 황병철이 우승컵을 안고 울먹이는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2인자의 설움 벗은 황병철 “이신 안타까워”] [우승 황병철 “진정한 우승 아냐” 겸손 잃지 않아] [황병철 우승, 이신 부재 탓?] [희비 교차한 두 명의 라이벌]이신은 쓸쓸하게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4년간 누린 영광들이 차례로 스쳤다.
탁월한 전략, 센스 있는 컨트롤, 괴물 같은 멀티태스킹. 그는 한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유서 깊은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공부 대신 선택한 게임은 그의 전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치도록 재미있었으니까.
게임하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었으니까.
‘그래, 그게 소원이었지.’
이신은 쓰게 웃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죽으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즈음이었다.
천장에 문득 검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작고 동그란 점은 점점 커져갔다.
‘엇?!’
이윽고 검은 블랙홀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와 이신을 집어삼켜버렸다.
그리고…….
***
“지금 저더러 전쟁을 치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신의 물음에 그레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72악마군주의 하나인 그레모리.
금관을 쓴 붉은 머리칼은 보기 좋게 찰랑거린다. 검은 벨벳과 하얀 레이스로 치장된 옷차림은 가냘픈 허리를 강조하며 맵시 있게 떨어진다.
본래 서열 56위의 군주였던 그녀는 현재 최하위까지 떨어진 처지라고 했다.
“저는 인간에게 자비롭고 거짓말을 못하는 몇 안 되는 악마랍니다. 그런 제 성격이 서열전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요.”
그레모리는 슬픈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제 한 번이라도 더 서열전에서 패하면 전 군주의 지위조차 잃게 됩니다. 그래서 저를 대신하여 전쟁을 치러 승리해 줄 사람을 소환했죠. 바로 당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해요. 악마군주들의 다툼에 관여하고 싶지 않겠죠. 하지만 제 부탁을 들어준다면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아니, 근데…….”
그레모리는 이신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 말한다.
“저는 의술과 사랑을 관장합니다. 어떤 병이든 치유해 줄 수 있고, 어떤 여인의 사랑이든 가져다줄 수 있죠. 제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 많을 거예요.”
뭐라고 말하려 했던 이신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떤 병이든 치유할 수 있다고?’
이신의 시선이 자연히 자신의 오른손을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그레모리도 이신의 손목에 관심을 보였다.
“저런, 손목을 크게 다쳤군요?”
“그, 그렇습니다.”
“조금만 힘을 줘도 아프지요?”
“맞습니다.”
이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치료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게는 아주 쉬운 일이죠.”
“……!”
이신은 눈을 부릅떴다.
그 반응에 그레모리는 눈을 빛냈다. 그를 설득할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저와 계약을 한다면 즉석에서 손목부터 낫게 해주겠어요. 또한 승리할 때마다 당신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죠.”
“지면 어떻게 됩니까?”
“전 악마군주의 지위를 잃겠죠.”
“저는 어떻게 됩니까?”
“차원의 게이트를 열 수 있는 권한은 군주만이 지니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군주가 아니게 된 저는 당신을 돌려보내 주지 못해요.”
“전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하는군요?”
“다시 군주의 지위를 되찾기 전까지는.”
“여기는 지옥입니까?”
“마계입니다. 악마와 마물이 사는 세상이죠. 지옥도 우리가 관리하긴 하지만요.”
“이기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실 겁니까?”
“다음 전쟁이 있기 전까지는 원래 세계에서 지내실 수 있죠.”
“전쟁이 한두 번이 아닙니까?”
“네, 72악마군주의 서열전은 끝이 없죠.”
“그중 한 번이라도 지면 안 되는 겁니까?”
“아뇨,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죠. 다만 다음 서열전은 제 군주 지위가 걸린 만큼 아주 중요하죠.”
그레모리는 미소를 지었다.
많은 질문은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뜻하니까.
“제가 직접 전쟁터에서 싸워야 합니까?”
“후훗, 서열전에서 당신이 위험에 처할 일은 없어요. 안심하고 지휘만 하면 돼요.”
“…….”
이신의 눈빛이 흔들렸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와 계약하면 손목이 낫는다.
승리하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
패배하면 다시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어차피 난 죽으려고 했지.’
처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이신에게는 그다지 큰 리스크가 아니었다.
침착하게 생각한 뒤에 그가 물었다.
“구체적으로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계속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최고 서열로 올려주기를 원하십니까?”
“군주의 지위를 보전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답니다.”
그 말에 이신은 마음을 굳혔다.
‘나에게 기회를 주고, 기대치도 높지 않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해.’
이신이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한때 56위, 현재 72위의 악마군주 그레모리에게 계약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