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능력(3)
정신이 없었지만 라스푸틴은 서둘러 까마귀의 흉조를 해석해야 했다.
“까아아악! 서쪽 하늘에서 불길한 한 쌍의 날갯짓이 들린다!”
그리핀 1마리.
기껏해야 석궁병 2명이 타고 있을 테니 천천히 정리해도 된다.
“까아악! 동쪽 하늘에서 적이 내려올 것이다! 까악!”
이것은 열기구로 병력을 실어 나를 의도였다.
“까악! 큰 파도가 남쪽에서 똑바로 올라온다! 까아악!”
큰 파도라면 다수의 지상군 병력을 뜻했다.
남쪽에서 똑바로 올라온다면 12시에 있는 마력석 채집장을 노린다는 뜻.
“앞뜰에 떨어질 한 가지 불운을 걱정하라! 까아악!”
떨어진다는 불운은 대개 투석기가 쏘는 바위를 뜻했다.
앞뜰은 앞마당.
열기구 1대가 언덕 위에 투석기를 내려서 앞마당을 타격할 모양이었다.
‘정말 까다롭게 만드는군!’
라스푸틴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일단은 일단 서쪽에서 오는 그리핀 1마리 따위는 그냥 놔두기로 했다. 석궁병 2명이 화살을 쏘며 주의를 분산시키는 뻔한 술수였다.
12시로 진군하는 지상군 병력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병력 규모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사방에서 기습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정면으로도 진격해서 12시를 칠 병력상의 여유가 있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문제는 동쪽에서 오는 열기구의 병력 수송과 언덕 위에 배치할 투석기의 포격이었다.
자칫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 두 가지만 잘 막고 12시로 진군하는 군대를 상대해도 늦지 않는다.’
그렇게 가닥을 잡고서 라스푸틴은 침착하게 디펜스를 완료했다.
예상대로 동쪽 하늘에서 열기구 2대가 나타났다.
열기구들은 그쪽에 독포자꽃들이 잔뜩 배치된 것을 보고 즉각 물러섰다.
앞마당을 타격하기 위해 언덕 위에서 투석기를 조립하던 공병도 독포자 세례를 맞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다수의 지상군이 진격하던 12시에도 엔트 2마리를 배치해서 시간을 벌게 했다.
마물은 병력 하나하나의 이동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언제든 달려가 적을 걷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쪽 하늘에서 나타난 그리핀 1마리였다.
“이때다! 가자!”
이존효가 버럭 소리쳤다.
그리핀에서 내린 장창병 2명이 클로들을 공격했다.
그랬다.
석궁병이 아니라 장창병이었다.
과감하게 돌입한 장창병 2명이 마력석을 채취하던 클로들을 무더기로 공격했다.
장창을 내질러 클로 2, 3마리를 꼬치처럼 꿰어버리는 장창병들.
심지어 그리핀도 싸움에 합류해 클로들을 덮쳤다.
‘아차!’
라스푸틴은 심장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석궁병이 아닌 장창병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근접 공격력이 강력한 장창병은 클로들을 두세 마리씩 공격하기 때문에 절대로 가만 놔둬서는 안 되었다.
독포자꽃 일부를 돌려서 급히 장창병들을 물리치게 했다.
“하하하! 어디 잡아봐라!”
장창병 하나를 잡았으나, 얄밉게도 이존효는 그리핀을 타고 내빼버렸다. 클로를 6마리나 사살한 뒤였다.
“앞뜰에 내려올 적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까아악!”
“앞뜰에 떨어질 불운을 걱정해야 한다!”
까마귀가 시끄럽게 우짖었다.
동쪽 하늘에 출현했다가 내빼 버린 열기구 2대가 앞마당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심지어 열기구에 타고 있던 공병이 언덕 위에 내려서 앞서 죽은 공병이 조립하다 만 투석기를 이어서 완성시키고 있었다.
라스푸틴은 진땀을 흘렸다.
상대가 계속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까지의 방어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핀 1마리에서 내린 장창병 2명에게 허를 찔렸지만, 거기에 당한 클로 6마리는 그리 심각한 타격이 아니었다.
12시는 방어가 잘 되고 있었다.
12시 마력석 채집장으로 들어서는 좁은 출입구를 엔트 2마리가 잘 틀어막고 있어서 적 군대가 진입을 못하고 있었다.
‘독침충들은 앞마당을 막아라!’
‘일부는 본진을 지켜서 그리핀을 활용한 교란 작전에 대비해라.’
라스푸틴의 침착한 대응.
앞마당에 병력을 내리려던 열기구 2대가 다시금 도망쳐 버렸다.
그런데…….
“까아아악! 큰 파도가 네 앞뜰을 덮칠 것이다!”
“까아악! 까악! 북쪽에서 적이 내려오겠구나!”
또다시 소리를 지르는 까마귀.
그런데 뒤바뀌었다.
12시를 치던 지상군 병력이 앞마당에 오고, 열기구 2척이 12시로 가고 있었다.
엔트가 출입구를 틀어막으니 열기구로 드롭을 시도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안 돼!’
라스푸틴은 황급히 발 빠른 헬하운드 한 무리를 12시로 보냈다.
12시로부터 오는 적 지상군과 마주치면 안 되므로, 반시계방향으로 우회해서 이동하게 했다.
하지만,
“나타났다, 돌격!”
“하하! 딱 나타났구나!”
우회하던 헬하운드 무리 앞에 나타난 기사 4기.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도 질 드 레!
일렬로 선 기사 4명이 그대로 돌격을 감행했다.
단박에 돌격 선상에 있는 헬하운드 무리의 3할 가량을 짓밟아 살육해 버렸다.
말을 타고 달리며 발 빠른 헬하운드들을 남김없이 추격해 분쇄한 질 드 레는 함께 있는 서영에게 지시를 내렸다.
“서영, 너는 계속 소수의 기사들을 끌고 다니며 12시로 지원 가는 적을 차단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본대와 합류하겠다.”
이신 진영의 현장사령관 질 드 레가 앞마당으로 진격하는 지상군과 합류했다.
이윽고 질 드 레의 탁월한 지휘하에 석궁병·방패병·장창병으로 구성된 병력이 학익진을 펼쳐 앞마당을 봉쇄했다.
라스푸틴의 병력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틀어 막아버린 것이다.
심지어 뒤편에서 공병 2명이 투석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투석기 조립이 완료되면 원거리에서 바위를 날려서 앞마당까지 타격하게 된다.
‘뭐 이런……!’
라스푸틴은 당황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궁지에 몰려 버렸다.
고립된 12시가 열기구 2척에서 내린 적의 공습을 받았다.
라스푸틴은 12시를 구원하고 싶어도 앞마당이 봉쇄당하는 바람에 구할 수가 없었다.
12시가 공격받고 있었다.
엔트 2마리와 12시에서 새로 소환된 헬하운드들이 맞서 싸우지만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12시를 구하자니, 넓게 포진하고 앞마당을 봉쇄한 적을 돌파해야 했다.
상대는 넓게 포진한 채 라스푸틴이 돌파를 시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스푸틴에게 결단이 강요되고 있다.
‘빤히 입 벌리고 기다리는 범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밀어야 한다니.’
라스푸틴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과연 상대는 걸물이었다.
이토록 상대가 강하다고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길이 없구나.’
12시의 마력석 채집장을 잃으면 가망이 없어진다.
어차피 저 봉쇄선을 언젠가는 돌파해야만 했다.
이신은 이제 기사를 계속 소환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더 끌어봐야 이후부터는 더 강력한 기사 전력과 싸워야 하는 것.
마력석 채집장을 잃은 상태에서는 더 강력한 병력과 싸워 이길 역량이 되지 않는다.
“하하하! 대단하다, 정말!”
라스푸틴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강하다! 까아악! 아주 강하다! 무섭다! 까아아악!”
서열전 전에 들었던 까마귀의 흉조가 옳았다.
정말 강하고 무서운 상대다.
“돌격!”
헬하운드, 독포자꽃, 엔트로 구성된 대규모 병력이 돌격을 감행했다.
좁은 앞마당 통로에서, 밖에 넓게 포진된 적을 향해 시도하는 다소 불리한 형세의 돌격이었다.
만약 돌파만 성공한다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12시를 구원해도 되고, 허술한 상대의 진영을 역습해도 된다.
실낱같은 승률을 손에 쥐고자 라스푸틴이 움직인 것이었다.
전략 레벨에서 라스푸틴은 이신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전술적인 차원에서는 어떨까?
살아있는 인간의 일은 결코 수학 공식이 아니라서, 전략 차원의 국면이 전술 차원에서 뒤집힌 경우가 얼마든지 있었다.
항우는 팽성대전에서 유방과 다섯 제후의 56만 연합군을 단 3만 군세로 휘몰아쳐 짓밟아 버렸다.
알렉산더는 이소스 전투에서 훨씬 다수였던 페르시아의 군대를 격파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홍건적, 흉노족, 원나라 군벌, 고려 내부 반란군, 그리고 임진왜란 수준으로 한반도를 유린한 왜구 등 동아시아에서 싸울 수 있는 모든 적을 박살 냈다.
그렇다면 라스푸틴은 어떨까?
이변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투석기와 석궁병들은 독포자꽃만 노려라. 달라붙는 헬하운드는 방패병과 장창병이 처리한다.’
이신이 명령을 내렸다.
독포자꽃은 모이면 모일수록 무서운 병력이었다.
독포자가 전장을 가득 채워 버리면 모든 병력에게 피해가 발생한다.
때문에 강하지만 느리고 맷집이 센 엔트나 발 빠른 헬하운드보다 독포자꽃부터 집중 공격한 것이다.
실로 날카로운 순간 판단이었다.
독포자꽃들이 바위나 볼트에 맞아 죽어나갔다.
빠르게 앞장서서 치고 나가는 헬하운드와 느린 엔트는 잘 상충되지 않았다.
그 중간을 뒷받침해줘야 할 독포자꽃 전력을 이신은 놀라운 전술적 판단으로 격파한 것이었다.
‘이존효와 창병 6명은 그리핀 1마리로 2명씩 타고 들어가 본진 기습.’
‘서영은 기사들을 이끌고 앞마당에 돌입하라.’
‘전군 진격 개시.’
계속되는 이신 특유의 질풍 같은 지휘.
그리고 질 드 레, 이존효, 서영 등 그 지시들을 유려하게 실현시키는 사도들이 있었다.
사도 오귀스트 마르몽도 자신의 재능을 뽐냈다.
이신의 명령이 없었지만, 자의적인 판단 하에 투석기 1기를 이존효가 투입된 방면에 배치시켰다.
이존효를 포함한 창병 6명의 특공대가 1마리의 그리핀을 타고 2명씩 본진 드롭을 시도할 때, 언덕 너머에서 투석기가 바위를 쏴서 지원한 것이다.
때문에 이존효의 돌입을 저지하려던 헬하운드들이 날아오는 바위에 지리멸렬했다.
“허허…….”
라스푸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큰 줄기의 전술에서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다방면에서 천재들이 펼치는 예술적인 전투의 향연이었다.
너무나도 대단해서, 자신의 진영이 무참히 유린당하는 모습조차도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다.
이제 패색은 완전히 짙어져 있었다.
더 이상 승기가 없음에도, 라스푸틴은 계속 싸움을 지켜보았다.
승리에 대한 집착이 아니었다.
이신과 사도들의 활약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다.
이왕 졌으니 그들의 싸움을 보며 배울 참이었다.
“정말 잘 싸우는구나.”
5만 마력이나 배팅된 한 판 승부였다.
상대가 강하지만, 라스푸틴은 사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흉조를 알려주는 까마귀.
이신과 같은 탁월한 전략가형 타입을 이기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날카로운 재치를 가진 기습이 있어도, 미리 알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걸 믿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참히 질 줄은 몰랐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수준 차이구나.’
라스푸틴은 차라리 다행으로 여겼다. 이신과는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저렇게 대단한 자는 필시 최상위 서열로 올라갈 테니 말이다.
기껏해야 50위권이 한계인 라스푸틴으로서는 이신과 다시 볼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악마군주 안드라스 님의 계약자 그리고리 라스푸틴 님께서 패배를 선언하셨습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의 승리입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께서 마력 5만을 획득하셨습니다.]그렇게 승부가 났다.
이신의 압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