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47
246화 분투(2)
“지형이야.”
문득 존에게 다가온 차이가 말했다.
“지형?”
“응. 지형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거야.”
“어떤 식으로?”
“장양이 덮치기 좋은 곳은 넓고 탁 트인 지형이잖아.”
고개를 끄덕이는 존에게 차이가 계속 설명했다.
“장양이 덮치기 좋은 탁 트인 지형이 있고, 선생님이 싸우기 좋은 장애물이 있는 막힌 지형이 있지.”
“아…….”
그제야 존은 무언가 느끼는 게 있었다.
이신은 지형의 특성을 통해 장양의 병력 운용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끌던 중, 마침내 이신 진영에서 기동포탑 2기가 생산되었다.
이제 장양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기동포탑들이 장양의 앞마당이나 확장 기지에 도착해 원거리에서 포격을 시작하면 수세에 몰리는 것이었다.
4개로 나뉜 장양의 병력.
2개로 나뉜 이신의 병력.
두 무리가 마침내 충돌까지 초읽기에 들어갔다.
-투타타타!
-키엑!
이신이 먼저 각성제를 흡입하고 달려들어 장양의 병력 한 무리를 쳤다.
장양은 재빨리 후퇴시키며 다른 3개의 병력을 접근시켰다. 이신의 병력 두 무리가 합류하기 전에 하나를 쳐서 잡아먹어야 했다.
마침내 장양이 4방향에서 자리 잡고 이신을 덮쳤다.
그 순간,
“오!”
“우와!”
이신 역시 북쪽에서 덮치는 장양의 병력을 양방향에서 덮쳤다.
-투타타타타타타!
-키에엑!
-으악!
총탄과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장양의 병력 한 무리가 전멸했다.
포위되었던 이신의 병력이 뚫린 북쪽으로 탈출!
2개의 병력이 합류되어 큰 덩어리가 되자, 이신은 삽시간에 부채꼴로 진형을 펼치며 돌격했다.
-키에엑!
-끼엑!
장양은 급히 후퇴했지만 병력의 피해를 면치 못했다.
장양은 후퇴하면서 촉수충이 숨어 있는 지점으로 이신을 유인했다.
“당한다!”
“긁히겠어!”
하지만 이신은 귀신같이 방향을 전환, 목표를 장양의 7시 확장 기지로 돌렸다.
유인이 통하지 않자, 장양은 하는 수 없이 촉수충을 모두 꺼내 일제히 덮쳐들었다.
이신은 각성제를 한 번 더 흡입하며 맞붙었다.
-띠리링!
레이더가 땅속에 숨은 촉수충의 존재를 모두 밝혔다.
-꾸엉!
-꾸어엉!
부채꼴로 넓게 펼쳐진 보병들의 일점사에 의하여 촉수충들이 전멸!
독침충과 바퀴들마저 크게 당했다.
하지만 이신의 병력도 다수 손상된 상태.
장양은 새로 생산된 병력을 모아서 다시 한 번 역공을 펼쳤다.
괴물 주술사가 나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막을 수 있다는 마인드였다.
하지만…….
항공수송선이 나타나 장양의 본진에 병력을 드롭했다.
동시에 이신의 병력은 두 갈래로 나뉘어서 앞마당과 7시 확장 기지를 동시 타격했다.
3방향 동시 타격!
“좋다!”
“끝나겠다.”
역시나 명품 플레이였다.
깔끔하게 들어간 3방향 동시 타격에 장양조차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양은 GG를 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어폰을 뺀 이신이 지시를 내렸다.
“박진수, 이 맵 좀 프린팅 해줘.”
“알았어.”
이윽고 A4용지에 프린팅 된 맵을 존에게 보여주며 이신이 설명했다.
“실력이 좋은 괴물일수록 병력을 가만 놔두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일 거야. 게다가 곳곳에 땅굴을 뚫어놓으면 어디서 나타날 지도 예측이 안 되고. 그걸 육안과 정찰로 식별하기란 한계가 있는 거야.”
“네.”
“그래서 네가 기억해야 할 건 포인트야. 여기, 여기, 여기는 괴물이 인류 병력 싸먹기 좋은 포인트. 그리고 여기, 여기는 인류가 괴물의 다수 병력과 싸우기 좋은 포인트. 그리고 여기랑 여기는 괴물 폭탄충이 전술위성 격추시키기 좋은 곳. 여기, 여기, 여기는 쐐기충 견제 쓰기 좋은 곳…….”
이신은 계속 포인트를 짚어 주었다.
엄청나게 많은 포인트들.
존은 그것을 전부 다 외워야 했다.
“상대의 체제만 확인하고 어떤 병력 구성을 하는지만 알면, 어떤 포인트를 피하고 어떤 포인트에서 싸워야 하는지가 보이지?”
“네!”
존의 표정이 밝아졌다.
무언가 해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기갑 체제도 요지는 그거야. 상대의 병력 구성과 규모를 알고, 어디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알면, 인류가 괴물에게 질 이유가 없어. 이젠 좀 이해 돼?”
“네!”
이신이 보여준 포인트 이론은 전략팀장인 박영호도 따로 필기를 해둘 정도로 탁월했다.
“난 장양이 원하는 포인트로 일부러 가줬어. 그렇게 장양을 유인하고서는 역으로 위아래로 협공해서 병력을 잡아먹었지.”
“그, 그렇구나.”
“너랑 박영호의 싸움도 이런 식이야. 박영호는 네가 원하는 포인트에서 싸워주는 대신 허를 찌르는 전술을 구사하거나, 원하지 않는 포인트에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거야.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포인트를 찾아내서 공략하거나. 그게 철벽괴물 박영호야.”
그 뒤로 존은 다시 그 맵에서 장양과 붙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까보다 높은 승률을 보이기 시작했다.
“와, 진짜 쩐다.”
“한 번 가르치니까 승률이 올라가.”
“정말 게임에 관한 한 신이야, 저 사람은.”
올도어SCC 선수들은 이신을 우러러보았다.
이신의 강좌 내용은 박진수가 이끄는 전략팀을 통해 교재가 되어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존의 개인 훈련을 통해 올도어SCC 전체의 전력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
16강 7경기 당일.
존은 전략팀장인 박진수와 함께 경기장으로 떠났다.
이신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훈련을 위해 연습실에 남았지만, 경기는 인터넷 중계로 보기로 했다.
“잘해야 할 텐데.”
주디의 걱정이 유독 컸다. 하나뿐인 동생의 주요 경기라 더욱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존은 만반의 태세가 끝났다.
다만 문제는 상대가 박영호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어렵겠는데.’
이신의 솔직한 평가였다.
일전에 박영호와 연습하면서 수없이 붙어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박영호는 이신을 상대로 자신이 준비한 비밀 전략을 노출하지 않았다.
그냥 기본기만 가지고 싸웠다.
그럼에도 승률은 팽팽했다.
이신은 이토록 강한 연습 상대는 차이 이후로 처음이었다.
인류의 병영 체제를 막아내는 박영호의 방어력이 거의 절정에 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딱―
이신이 손가락을 튕기자,
“네, 선생님.”
어김없이 차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박영호랑 존의 경기 잘 봐.”
“네,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네가 아무리 잘해도 괴물 상대로 하는 병영 체제를 존보다 잘하지는 않아.”
“인정해요.”
존의 무서운 보병 컨트롤은 차이도 십분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도 난 존이 박영호의 철벽을 돌파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
“그 정도인가요?”
“저번에 연습해 보니까 병영 체제에 대한 박영호의 대응력이 절정에 달해 있었어.”
“…….”
“잘 봐야 해. 괴물을 상대로 인류가 병영 체제를 못 쓰면 차포 떼고 장기 두는 것과 같지. 저 박영호를 어떻게 이겨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봐.”
“네, 그렇게 할게요.”
이신은 잘도 대답하는 차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적수니 뭐니 해도 고작 15살짜리 소년일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1세트.
첫 판부터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여왕괴물?!
-지금 타이밍에 여왕괴물?! 박영호 선수가 여왕괴물을 괴물주술사보다 먼저 뽑았습니다!
보통은 괴물주술사를 뽑아야 비로소 안정적인 방어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박영호는 여왕괴물을 택한 것이다.
장점도 있었다.
괴물 주술사보다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푸하악!
여왕괴물이 존의 병력을 향해 점액을 끼얹었다.
점액에 얻어맞은 보병·의무병 병력은 일제히 이동 속도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그리고 바퀴와 촉수충 떼가 덮쳐들었다.
-으악!
-으아악!
존의 병력이 깡그리 잡아 먹혀 버렸다.
이신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그 장면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화면에 비치는 박영호는 살벌하게 웃고 있었다.
-아! 박영호 선수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정말 멋집니다!
-여왕괴물의 점액이라니! 정말 존 선수에게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점액을 끼얹으면 컨트롤이고 뭐고 소용이 없죠!
-예, 존 선수에게 난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컨트롤을 그렇게 잘한다며? 어디 한 번 해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박영호는 계속해서 존의 본진까지 휘몰아쳤다.
다시 한 번, 여왕괴물이 점액을 뿌렸다.
이번에는 앞마당에서 일하다가 방어에 동원된 건설로봇들을 향해서였다.
-퍼엉! 펑!
-펑! 펑! 퍼엉!
건설로봇이 폭죽처럼 펑펑 터져 나갔다. 존은 참담한 얼굴로 GG를 쳤다.
“와, 저게 뭐야…….”
“개소름이다.”
“한순간에 다 싸먹고 끝내 버렸어.”
함께 지켜보았던 올도어SCC의 선수들이 멍해져서 중얼거렸다.
이신도 전율을 느꼈다.
소름끼쳤다.
존의 병영 체제에 대한 박영호의 답.
이는 4강에서 붙게 될지도 모르는 차이와 결승전에서 붙게 될지도 모르는 이신에게 건네는 경고이기도 했다.
완벽하게 기선 제압을 한 박영호.
이어지는 2세트에서도 역시 여왕괴물을 생산하여 존의 병영 체제에 맞섰다.
여왕괴물과 폭탄충 편대를 자기 수족처럼 컨트롤하며 존을 위협하는 박영호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일품.
게다가 괴물주술사까지 나오자 완벽한 괴물의 병력 구성이 조합되었다.
-푸하악!
여왕괴물이 보병들에게 점액을 끼얹었다.
-퍼엉! 퍼어엉!
폭탄충들이 전술위성을 격추시켰다.
-파아앗!
기동포탑이 자리 잡은 곳에, 괴물주술사가 흑안개를 뿌리고는 바퀴 떼와 촉수충이 덮쳐들었다.
점액에 맞지 않은 병력들이 일제히 후퇴했지만,
-촤좌좍! 촤좌좌좍!
퇴로에 심어놓은 촉수충들의 촉수에 긁혀 몰살당했다.
-존 선수의 병력들이 힘 한 번 못 써보고 맥없이 당합니다!
-퍼펙트! 너무나 완벽합니다, 박영호 선수!
화면에 비친 존의 표정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괴물 플레이어!
박영호에게 삽시간에 궁지로 몰린 존의 상황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존…….”
주디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신은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문득 차이에게 물었다.
“봤어?”
“네.”
“너라면 어떻게 상대할 거야?”
“…잘 모르겠어요.”
차이로서도 박영호의 경기력은 충격적이었다.
여왕괴물을 빨리 뽑는 발상도 좋았지만, 그걸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박영호의 컨트롤과 멀티태스킹이 만났기에 더 빛났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이신은 이미 박영호가 선보인 저 전략에 대한 해답이 여러 가지 떠올랐다.
하지만 굳이 차이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아내어 난관을 돌파하는 것 역시 선수의 역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3세트가 시작되려 했다.
선수들이 부스에 돌아와 이어폰과 차음 헤드셋을 꼈다.
박영호는 변함없이 진중한 모습.
들떠 의기양양한 기색도, 방심한 기색도 없이 날카롭게 벼려진 눈빛 그대로였다.
승부사 박영호는 평소에 늘 보이는 개그 콘셉트와 거리가 멀었다.
존은 그보다 한층 더 비장한 표정이었다.
아직 눈빛에 투지와 의욕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이신은 생각했다.
첫 대회에서 16강, 그만하면 훌륭하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박영호라는 강자 앞에서, 무언가를 더 보여줘야 한다.
쉽게 굴복하지 않았노라고 증명해야 한다.
3세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