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51
250화 크롬웰(3)
“악마군주 아미의 계약자는 항우라고 했어요.”
순간 이신은 멍해졌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항우 말입니까?”
“예, 생전에도 꽤나 명성을 떨쳤던 맹장이었다고 하던데, 들어보셨나요?”
듣다마다.
역사에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도 그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무식함에 안하무인의 성격에 온갖 단점을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용맹 하나로 천하를 잠깐이나마 제패했던 작자였다.
그의 용맹은 정사(正史)를 무협소설처럼 만들 정도였다.
‘조아생 뮈라 같은 타입이겠군.’
안 봐도 뻔했다.
판단력도 운영 능력도 바닥 수준인 항우인데 악마군주의 계약자로 선택을 받았다면 말이다.
현재 54위에 랭크된 서열만 봐도, 조아생 뮈라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일 게 분명했다.
‘곤란하군.’
이신이 지금껏 서열전을 치르면서 당한 유일한 패배가 바로 조아생 뮈라에게 당한 것.
이번에는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항우가 상대이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항우는 다음 문제였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올리버 크롬웰부터 해결하고 봐야 했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서 8강전 준비도 해야 했고 말이다.
“그건 나중의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일단은 눈앞에 있는 상대부터 생각하도록 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신은 준비를 마무리했다.
이신과 그레모리는 함께 악마군주 알로세스의 영지로 갔다.
“카이저, 이번에도 안대를 써야 해요.”
“알겠습니다.”
이신은 두말없이 안대를 썼다. 악마군주를 만날 때는 늘 조심하는 게 좋았다.
안대를 씌워주며 그레모리가 부연 설명을 했다.
“악마군주 알로세스는 불이 타오르는 눈동자를 지녔는데, 인간이 그 눈을 보면 죽은 자기 자신이 보이고 그 충격에 실명을 하고 말죠.”
실로 섬뜩한 설명이었다.
“카이저도 이제 중급 악마라 마주한 것만으로 그 정도로 피해를 입지는 않지만, 마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모르시니 위험한 건 여전해요. 이번 서열전이 끝나면 제게 마력을 다루는 법을 좀 배워보시겠어요?”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대를 쓰고 있어서 서운해하는 그레모리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눈이 마주쳐도 위험하다니 그런 악마군주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군요.”
“후훗, 이번에 이기고 나면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갈 테니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예요.”
여전히 이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그녀였다.
텔레포트로 악마군주 알로세스의 영지로 이동했다.
풍경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싸늘한 찬바람이 살을 에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분주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꽤 많은 사람이 야외에 모여 있는 듯했다.
“춥군요.”
“네, 알로세스의 영지는 언제나 겨울이에요.”
“주변에 사람, 아니 악마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알로세스 군단의 병사들이에요. 대군단의 병영을 생각하시면 돼요. 겨울에 막사를 치고 야영을 하는 수십만 군대, 그게 알로세스의 영지의 풍경이에요.”
그녀의 말을 들으니 비로소 주변에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리는 금속 부딪치는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왔군, 환영한다.”
크고 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에 깃든 묘한 장엄함은 그가 보통 존재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환영을 받을 줄은 몰랐구나, 알로세스.”
“그만큼 얼마 전까지의 네 처지가 가련했으니까.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싸움이 끝나면 가련한 게 어느 쪽이 될지 아무도 모를걸? 물론 나는 알 것 같지만.”
“못 본 사이에 많이 자신 만만해졌군. 그 계약자의 힘인가.”
그 순간 이질적인 감각이 이신의 피부를 자극했다.
이신은 안대를 써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악마군주 알로세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불타는 눈동자라고 했나? 그렇군, 온기가 느껴져.’
그의 시선이 닿는 피부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온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훑고 지나갈 땐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아마도 알로세스는 마음만 먹으면 눈빛만으로 상대를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이신이라…….”
쉰 목소리가 다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이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직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했던가. 얼마나 대단한 영웅이기에 내로라하는 영웅들이 모인 이곳에서 승승장구를 한단 말인가.”
말발굽 소리.
아마도 말을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점점 더 뜨거워진다.
알로세스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만.”
이신에게 접근하는 알로세스를 그레모리가 한마디로 제지했다.
“계약자를 많이 아끼는군.”
“너라면 아끼지 않겠느냐, 알로세스.”
“흐흐, 아끼겠지. 아끼고말고. 나에게 무수히 많은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뭐든지 선물할 수 있지.”
그때,
-위대하신 주인님, 제가 주인님께 승리를 안겨드리겠습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기이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순간 이신은 혼란을 느꼈다.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황상 알로세스에게 저런 말을 할 사람은 올리버 크롬웰밖에 없었다.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
절대왕정을 꿈꾸던 왕 찰스 1세에 대항하여 일어난 청교도 혁명을 통해 영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었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거꾸로 의회를 해산하고 꽃피우려던 민주주의의 씨앗을 밟아버린 인물.
영국인은 청교도 정신을 강요하던 올리버 크롬웰의 강압적인 통치를 몹시도 싫어하여, 그의 사후에 곧바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간 올리버 크롬웰이다.
그런데 마치 악마와도 같은 저 목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이제는 악마겠지만.’
그래도 음성이 저렇게 인간과 거리가 멀 정도로 변해 버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야지. 더 이상 패배하면 나도 더 이상 너를 용서할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겠으니까.”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제 그만 시작하지.”
“그러자. 마신께서 정하신 율법에 따라 너에게 도전한다, 알로세스.”
“자격을 갖춘 상대의 도전은 거부할 수가 없는 법. 도전을 받아들이겠다.”
“배팅할 마력과 전장을 선택하라.”
“전장은 제1 전장 아스테이아. 마력은 1만이다.”
“받아들이겠다.”
파앗!
알로세스와 크롬웰이 먼저 전장으로 떠났는지 기척이 사라졌다.
“우리도 가볼까요, 카이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크롬웰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굉장히 절박한 표정이었어요. 그 탓인지 카이저를 매우 적대적인 눈길로 노려보기도 했죠.”
“아뇨, 그건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요?”
“그의 목소리가 이상했습니다.”
“아, 그야 인간이 아니니까요.”
“악마가 되었다 해도 지금까지 만났던 계약자들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은 보기 드문 케이스이긴 하죠. 주 종족으로 마물을 택한 계약자들에게서 간혹 저런 현상이 나타나곤 해요.”
“선택하는 종족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맞아요.”
그레모리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카이저, 서열전에서 자신의 고유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사도에게 빙의를 해야…….”
이신은 대답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그레모리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었다.
“마물의 육체에 빙의된 느낌은 어떠할까요? 상상이 가시나요?”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엘프도 드워프도 오크도 마찬가지겠지만, 마물은 가장 인간과 동떨어진 종족이죠. 심지어 이족보행도 못하고 사고력도 없죠.”
“…….”
“하지만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체력을 갖게 되죠. 아마도 마물의 육체에 빙의한 순간 감옥에서 석방된 듯한 해방감을 느꼈을 거예요. 훨씬 우월한 육체, 넘치는 활력, 그리고 뜨거운 체온과 숨결.”
“빙의에서 풀려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잖습니까.”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 악마죠. 마력을 가진 존재요. 그리고 마력은 주인의 정신에 많은 영향을 받죠. 카이저가 손목을 심하게 다쳤을 때의 경험으로 치유 능력을 각성했듯이 말이죠.”
“그래서 올리버 크롬웰은 마물로 변한 겁니까?”
“맞아요. 마물을 주로 다루는 계약자들 중에서 몇몇 소수는 그 중독성에 잠식되어서 마물화가 되어버려요.”
“끔찍하군요.”
자신이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신으로서는 잔인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말했다.
“어째서요? 원하는 대로 육체가 마물화되어 강력해졌는데요.”
“…….”
이신은 입을 다물었다.
이곳은 마계였다.
이신이 드는 거부감은 인간으로일 뿐, 마계에서는 외양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고 예의 발랐던 악마군주 세에레처럼 말이다.
“…가죠.”
두 사람은 제 1 전장 아스테이아로 이동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과 악마군주 알로세스 님의 서열전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서열과 마력에 영향을 줍니다. 마력은 2만이 배팅됩니다.] [마력 2만이 마력석이 되어 전장에 유포됩니다.] [종족을 선택해 주십시오.]“휴먼.”
-마물.
이신과 크롬웰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안대를 써서 앞이 보이지 않지만, 이신은 어쩐지 크롬웰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알고 있나?
“언뜻 들어보긴 했지.”
-흥, 역사 공부를 형편없이 못한 놈이로군.
“내가 알아야 할 정도로 당신이 존재감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사실 충분히 존재감 있는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지만 이신은 일부러 도발하기 위해 폄하했다.
-난 네놈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왜인 줄 아나? 마계에는 의외로 너처럼 더러운 피부색을 가진 놈들이…….
“관심 없어.”
이신은 휙 뒤돌아 버렸다.
크롬웰이 뭐라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고함을 질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서열전이 시작됩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의 계약자 이신 님과 악마군주 알로세스 님의 계약자 올리버 크롬웰 님께서 참전합니다.]서열전이 시작되자 이신은 즉각 노예들에게 일을 시켰다.
‘마침 가장 무난한 전장이군.’
제1 전장 아스테이아는 아무래도 가장 많이 연습했던 곳 중 하나였다.
‘한 번 시도해 봐도 좋겠군.’
조금 더 과감한 빌드 오더를 선택했다.
물론 이신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시도해 보는 게 아니었다.
정찰을 통해 상대의 동태를 봐가며 맞춰가며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콜럼버스.”
“옛! 정찰하러 가겠습니다!”
마력석을 채집하던 콜럼버스가 냉큼 대답하고는 떠났다.
준비한 전략의 승패 여부는 콜럼버스에게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신이 시작한 위치는 7시.
콜럼버스는 11시를 먼저 들렀다가 1시 부근에서 올리버 크롬웰 측과 마주쳤다.
1시 앞마당 앞에 대기하고 있던 헬하운드 1마리가 보였다.
“크르릉!”
헬하운드는 콜럼버스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어떡할까요?”
‘마비침으로 따돌리고 들어가. 정찰은 해야 해.’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