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68
267화 장린(1)
주디가 쪼르르 달려 나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그동안 이신은 또 게임을 실행하려는 장양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리쟈와 함께 손님이 나타났다.
“말씀드렸었죠? 장린 회장님 부부이십니다.”
리쟈가 소개해 주었다.
그때, 문득 이신은 나폴레옹에게 선물 받은 반지가 생각났다.
오른손 중지에 꽂은 반지에 마력을 살짝 주입했다.
그러자,
“많이 좋아 보이는구나, 양아.”
장양에게 건네는 중년 사내의 따듯한 말이 생생하게 들렸다.
생전 중국어를 공부한 적이 없던 이신은 말의 의미가 또렷하게 들리자 놀랐다.
장양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눈앞에 두고도 별반 반응을 하지 않고 어물거렸다.
“양아?”
이번에는 어머니가 부른다.
결국 보다 못한 이신이 장양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장양은 머뭇머뭇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중년 사내가 와락 장양을 끌어안았다. 어머니도 함께 포옹을 하며 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장린 회장은 이신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장린이라고 하오.”
“이신입니다.”
이신은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장린 회장은 약간 마른 체격에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대체로 조용하고 날카로운 인상이 더 강한 사내였다.
“우리 양이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하오.”
리쟈가 그 말을 통역해 주었다.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그럴 리가. 저렇게 좋아진 양이를 보니 감격스럽소. 내게로 와서 포옹에 응해줬잖소. 이제야 비로소 내 자식이 된 것 같소.”
장린 회장은 씁쓸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이전까지는 내 자식이어도 만질 수도 없고 말을 건넬 수도 없었소. 심지어 한 공간에서 같이 있는 것조차 질색하니 내 피붙이인데도 이게 아비와 자식이 맞긴 한 건지 우울했소.”
장린 회장의 부인을 보니 장양을 끌어안은 채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울먹거리는 기색까지 보이는 걸 보면, 일에 몰두해서 자식에게는 무관심한 맞벌이 부부 같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양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건데 모를 리가 있겠소? 양이 때문에 e스포츠 시장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해봤소. 프로 팀 몇 개를 후원해서 양이의 장래 진로를 탐색해 보기도 했소. 어떻게든 양이가 그 방에서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었소.”
“아니.”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의아해하는 장린 회장에게 이신이 다시 물었다.
“스페이스 크래프트를 할 줄 아냐고 물었습니다.”
“그야 모르오. 이 나이에 바쁘기도 하고, 게임을 직접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소.”
“그럼 게임을 볼 줄은 압니까?”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소. 그래도 e스포츠 시장에 대해서는 조사를 많이 했소.”
“결국 그게 문제입니다.”
“……?”
“왜 그쪽 가족은 다들 내게 고마워하는 부분이 게임이 아닌 다른 쪽입니까? 난 프로게이머지 정신과 의사가 아닙니다.”
“…….”
“왜 장양이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할 때도 어떤 게임인지 해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거기서 빼낼까 궁리만 했습니까?”
리쟈는 머뭇거리다가 그 말을 장린 회장에게 통역해줬다.
굳은 장린 회장의 얼굴.
“왜 장양이 노력해서 얻어낸 2라운드 MVP에 대해서는 축하하고 기뻐해 주지 않는 겁니까?”
이신은 장린 회장의 굳은 표정 같은 건 개의치 않고 계속 할 말을 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척, 아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꿈을 응원해 주는 척. 당신 아들 경기는 본 적이 있습니까?”
리쟈는 통역을 그대로 해야 할지 안절부절 했다.
장린 회장이 가벼운 손짓으로 지시하자 그제야 통역을 해주는 그녀였다.
“왜 장양을 아직 인격 형성이 덜 된, 보호해 줘야 하는 약자로 보십니까? 살얼음판 같은 단두대 위에서 장양이 얼마나 많은 적과 싸워 격파했는지 아십니까? 얼마나 탁월한 판단과 전술로 상대의 의도를 깨부수고 승리를 얻어냈는지, 그 드라마틱한 승부를 보고 진심으로 감탄해 주지 않습니까?”
“…….”
“난 당신 아들이 무섭습니다. 조만간 날 꺾을 실력자가 될 것 같아서 두렵고, 또 그게 기대됩니다.”
그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이신의 이름은 안다.
e스포츠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이신이 그렇게 인정할 정도라니 놀랄 만도 했다.
“흔히 저를 국민적인 스타라고 합니다. 제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인기가 많고, 그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얼마며, 돈을 얼마나 벌었다는 등등 그런 이야기가 언론에 주로 나옵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깟 얘기들은 아무리 들어도 별로 감흥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으며, 얼마나 멋진 플레이를 했는지 진심으로 공감하는 팬은 그중 몇 퍼센트나 될까요? 내게 소중한 건 그런 팬들뿐입니다.”
이신은 장양을 가리켰다.
장양은 부모님을 만나서도 멀뚱할 뿐이었다.
“장양으로 하여금 만나도 별 감흥 없는 부모가 되지 마십시오.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충고입니다.”
장린 회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신을 보다가 장양을 보고는 다시 무언가 곰곰이 생각했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장린 회장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가…….”
뒤늦게 이어지는 말을 리쟈가 통역해 준다. 물론 통역해 주지 않아도 이신은 반지를 통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심이 담겨 있는 어조까지도.
“많이 부끄럽소.”
장린 회장은 이신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이신도 그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이번 악수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중요한 걸 깨닫게 해줘서 고맙소. 부모로서 장양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었는데, 실상은 장양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그냥 자폐증 치료와 사회화 과정의 수단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오. 그리고 무엇보다…….”
장린 회장이 이어 말했다.
“아버님은 내 일을 좋아하지 않으셨소. 돈으로 돈을 번다는 건 실체가 없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뿐만 아니라 내가 얼마나 노력했든 얼마나 성취를 얻었든 늘 장첸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로 결론지어지는 게 괴로웠소. 이제는 그것에 무감각해져서 잊고 있었는데… 내가 내 아들에게 같은 일을 할 뻔했구려.”
장린 회장도 나름대로 삶의 고뇌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를 둔다는 게 때로는 저렇게 부담스러운 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말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셔서 다행입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스승 같소.”
“제가요?”
“그렇소. 당신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말이오.”
“…과찬이십니다.”
“하하하, 아무튼 피차 휴일은 오늘뿐이니 시간이 많지 않구려. 조금이라도 이 시간을 뜻깊게 쓰고 싶은데 협조해 주시오.”
“……?”
이번에는 이신이 의아해한다.
장린 회장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게임을 가르쳐 주시오. 직접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지만, 적어도 내 아들 경기는 볼 줄을 알아야 하지 않겠소?”
“아…….”
이신은 살짝 당혹했다.
차차 배워 나가며 아들과 친해져 보라는 의미였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결론이 날 줄은 몰랐다.
그때, 다행히도 주디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좋지만 일단은 식사를 하셔야 하지 않아요?”
그제야 장린 회장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이런 시간이군. 내가 워낙에 입이 짧아서 깜빡했군.”
그렇게 가족 상봉이 끝나고 모두들 부엌의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거실은 소파 하나 없이 컴퓨터 5대로 꽉 차 있어서, 손님을 부엌 식탁에 앉힐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려고 다들 옹기종기 앉게 되자, 그제야 이신은 자신이 손님을 맞이하는 경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양의 어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지만, 장린 회장은 집안을 슥 둘러보고는 피식 웃는 것이었다.
“집이 생각보다 아담하구려.”
직설적이지만 비웃으려는 의도의 어조는 아니었다.
“우리 양이가 신세를 지는 바람에 집이 많이 좁아진 듯한데 불편한 점은 없으시오?”
“지금은 불편하군요.”
이신도 직설적이기는 마찬가지.
장린 회장은 껄껄 웃었다.
“장양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리쟈를 통해 소상히 들었소. 게임에 관심을 못 기울였을 뿐이지 나름대로는 아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기울였지.”
“전에 살던 곳에 비하면 양이가 좀 불편한 환경에서 사는 건 사실입니다.”
“아아, 책잡자고 한 소리가 아니었소.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고. 다만 내가 준비한 선물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쁠 뿐이오.”
“선물?”
그때, 리쟈가 잽싸게 태블릿PC를 꺼냈다.
그리고 웬 사진을 이신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집을 봐주십시오.”
산을 끼고 있는 호화로운 전원주택이었다. 무슨 결혼한 유명 연예인이 살고 있을 법했다.
2층 구조의 ㄱ자 형태의 건물은 물론 담장에 둘러싸인 정원도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용인 광교산에 위치한 전원주택입니다. 2층 구조라 1층 거실은 응접에, 2층은 여기처럼 연습실로 꾸밀 수 있고, 방도 많아서 각자 침실 외에도 서재, 드레스 룸 등을 마련하기 충분합니다. 위치도 팀 연습실로 출근하기 괜찮은 교통 여건이고, 등산 등 산책을 할 수도 있어 건강에 더 좋을 겁니다.”
폭풍 같이 설명하며 쭉 보여주는 사진을 본 이신이 말했다.
“선물이란 게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여러 가지로 신경 써서 구해준 만큼…….”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게 거절의 의미임을 아는 리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좋은 집으로 보이는데, 이런 선물을 제가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건데요. 이유는 충분합니다. 어떤 조건도 대가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이야기를 통역을 통해 들은 장린 회장이 입을 열었다.
“받을 이유가 없다면 받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뜻인데.”
“…….”
“내가 없는 돈으로 무리해서 마련한 선물이 아니라는 건 당신도 잘 알 테고.”
상대는 세계 금융계의 큰손.
이런 집쯤이야 100채 더 선물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이었다.
장린 회장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이신을 도발한다.
“그럼 내게는 손톱만큼의 부담도 안 되는 이 선물에 당신이 압도당했다는 뜻인데, 내가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겠소?”
“그다지 부담스러운 건 아닙니다만.”
이신은 즉시 반박했다.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을 자극받았기 때문이었다.
리쟈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서류 중에는 부동산 양도계약서도 보였다.
장린 회장이 씨익 웃으며 손짓한다. 이신은 결국 그 선물을 받아버렸다.
“아까 당신이 한 말 중에 단두대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소. 당신은 그런 단두대를 끝없이 해쳐 나가 정상에 선 인물이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이신으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장린 회장의 솜씨는 범상치가 않았다.
“e스포츠에 대해 조사를 해봤다는 내 말을 들었을 거요. 내 생각하건대, 중국에 온다면 당신은 정말로 신이 될 거요. 훨씬 더 큰 시장에서 훨씬 더 많은 군중의 열광을 받으며 훨씬 더 좋은 여건 속에서.”
“…….”
“그걸 굳이 피해야 할 이유가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