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책사(3)
이신 특유의 철저함으로 준비가 완료됐다.
덕분에 연습 상대가 되어준 조아생 뮈라도 로베스피에르와의 서열전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다.
“이야, 역시 똑똑한 것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이야. 덕분에 이번처럼 준비가 철저히 된 경우도 없었어.”
“피차 득을 보았으니 다행이군.”
“그런데 말이야, 그쪽.”
조아생 뮈라는 뜬금없이 질 드 레를 가리켰다.
“댁도 꽤 실력자던데, 다음 상대가 마물일 때도 연습 상대로 부탁해도 되겠나?”
연습을 하다가 가끔씩 질 드 레가 상대가 되어주고, 이신은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며 양측의 문제점을 짚어주는 일도 했었다.
그때 선보였던 질 드 레의 실력은 조아생 뮈라가 지금껏 봐왔던 수많은 마물 계약자들과 비교해도 결코 하수가 아니었던 것.
이신에게 단련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주군의 의사에 달린 일이오.”
조아생 뮈라는 이신을 바라보았다.
이신이 말했다.
“그때도 네가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면.”
“짜게 굴기는.”
“애당초 잠재적 경쟁자이니까.”
“좋아, 다음에 또 도움이 필요할 땐 괜찮은 선물을 가져다주지. 그럼 잘해보라고!”
그렇게 조아생 뮈라는 떠나갔다.
“제멋대로인 인간이지만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질 드 레가 내린 평이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큼 좋은 연습 상대도 없지.”
저 정도로 항우와 비슷한 타입의 계약자도 드물 터였다.
어쨌거나 이제는 이신도 슬슬 서열전 준비를 마무리 지어야 할 때였다.
항우든 뭐든 빨리 마계 쪽 상황을 정리하고 현실로 돌아가 개인리그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음 상대가 진철환이라 다행이군.’
사실 박영호의 생각이 옳았다.
이신은 JKT의 신진 에이스 진철환을 별달리 위협적인 적수로 여기지 않았다.
따지자면 그럭저럭 잘하는 괴물 플레이어?
얼마나 잘하든 박영호나 장양 같은 최고 수준이 아닌 한, 괴물은 이신에게 그저 한 끼 식사거리였다. 종족 상성과 그동안 몸에 배인 노하우는 그렇게 컸다.
‘다음 상대가 박영호가 아니라서 다행이군.’
아무튼 준비를 마친 이신은 그레모리를 찾아갔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고요?”
“예, 이제 충분합니다.”
“하긴, 카이저는 준비가 과하면 과했지 소홀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활짝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왕 오신 김에 가끔은 하루라도 여유를 즐기세요. 마계에 머무는 게 싫으신 건가요?”
“아뇨,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그렇습니다. 여유는 일단 서열전이 끝나고 즐기든 하겠습니다.”
“좋아요. 이번에 승리하면 축하 연회라도 열어야겠네요.”
“번잡한 건 싫습니다.”
기호가 매우 뚜렷한 이신.
그러자 그레모리는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어머, 그래요? 역시 저와 오붓하게 즐기는 편이 더 좋죠?”
그렇게 이신을 당황시키고는 이를 즐기는 그녀였다.
다음 날, 그레모리는 이신 및 사도들과 함께 악마군주 아미를 찾아갔다.
화르르르―
사방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신과 함께 온 사도들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두려움에 떨었다.
“왜들 그러지?”
이신이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러자 이존효가 치를 떨며 답한다.
“지옥과 비슷한 풍경입니다, 주군.”
“이곳이?”
“예, 저 시커먼 불꽃은 잊을 수가 없지요. 정말 끔찍한 곳이군요.”
악마군주 아미의 영지는 그야말로 지옥의 확장판과 같았다.
불길 속에서 고통 받는 죄수만 없을 뿐이었다.
사방에 불길이 가득한데 밝지는 않고 도리어 어두컴컴한 것이 더욱 음산했다.
‘악취미군.’
악마군주들의 기호를 인간의 관점으로 평가 내릴 수는 없지만, 새삼 그레모리의 취향이 얼마나 고상하고 우아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레모리와 계약해서 다행이군.’
불타는 대지에 수많은 악마가 득시글거렸다.
그들은 마치 부랑자 떼처럼 지옥과 같은 이곳을 배회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왔나…….”
음울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직하지만 묘하게 귀를 자극해서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는 그런 목소리였다.
척 들어도 목소리의 주인이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타난 존재는 악마군주 아미.
온몸이 불꽃에 휩싸인 사내의 형상을 한 악마군주 아미는 한 손은 창을 다른 손은 사람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었다.
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도들은 더 끔찍한 광경을 많이 봤던 터라 별반 반응이 없었다. 그보다는 지옥을 연상케 하는 이곳이 더 싫은 눈치였다.
“용건은 도전일 테고… 그쪽이 그 소문의 계약자인가…….”
목소리만큼이나 음울한 눈동자가 이신을 응시한다.
눈이 마주친 순간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른 악마군주를 봤을 때처럼 압박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 긴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내 계약자도 오는군.”
악마군주 아미의 시선을 따라, 이신도 절로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두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은 고대 중국 시절의 문사 복장을 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반대로 갑옷으로 무장한 채 당당히 걷고 있었는데, 이신이 본 누구보다도 체격이 컸다.
“저자가 그 항우로군요.”
“역발산기개세라는!”
이존효와 서영이 항우의 등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무장인 데다가 살아생전에 귀 따갑게 항우의 명성을 들었던 두 사람은 호승심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옛날부터 용맹이 뛰어난 무장을 묘사할 때는 늘 항우와 같다고 표현하지 않던가.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다고 평가하기를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 사상 최고의 맹장, 항우는 그렇게 이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네가 이신이냐?”
항우는 대뜸 이신에게 다가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그렇다.”
이신은 유명한 역사상의 인물과 마주하자 유심히 관찰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글로만 본 역사상의 영웅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기분은 계약자가 되고서 역사에 관심을 두면서 더욱 강해졌다.
역사상의 인물을 직접 만나 인터뷰라도 하고 싶은 역사학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특히나 여러 가지로 흥미를 많이 받는 항우 같은 유명인사는 마니아가 한두 명이 아닐 터였다.
“너도 군인이었다고?”
“그렇다.”
군복무를 할 때 총보다 마우스를 더 많이 잡았지만, 마계에서는 늘 군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신이었다.
프로게이머라고 소개하면 설명이 길어지기 때문.
항우는 이신을 유심히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이렇게 비리비리한 놈이 군인일 수가 있는 거지?”
“힘자랑으로 전쟁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니까.”
그 말에 항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그때, 이존효가 항우의 앞을 가로막고 눈빛을 번뜩였다.
“우리 주군께 무례를 끼치지 마라.”
“이건 또 뭐 하는 버러지야?”
“그 말은 전장에서 그대로 돌려주마.”
“네놈, 날 만나거든 반드시 달아나지 말고 한판 붙자. 주둥이만 살았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 주마.”
“명성만큼 하는지 허풍이었는지 확인해 주마.”
당대에 적수가 없기로는 마찬가지였던 이존효는 항우에게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렇게 무장들이 유치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이신의 관심은 어느새 항우가 함께 데려온 문사 사내를 향해 있었다.
마른 체격에 날카로운 눈매.
차가운 인상을 가진 젊은 사내는 이신과 마주하자 잠시 보더니 스윽 눈길을 돌린다.
생김새에 그런 무심한 태도까지 더해지니 척 보기에도 성격이 까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신 자신도 보통 타인에게 그러하니 말이다.
‘누구지?’
정황상 저 사내가 항우의 참모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옷차림으로 보아서는 오자서의 추측이 상당 부분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내가 입고 있는 하얀 옷은 오자서도 가끔씩 입는 복장이었다.
심의(深衣)라는 중국 전통 복식인데, 주로 춘추전국시대 때의 대표적인 복식이며, 진한(秦漢) 시대까지 두루 입었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내게 볼일이라도 있나?”
사내가 물었다.
“당신이 항우의 참모로군.”
“그렇다면?”
“누군지 궁금해서. 오자서의 예측이 얼마나 맞았는지도 확인해보고 싶고.”
이신은 일부러 오자서의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오자서의 이름을 아는지 모르는지부터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따라 오자서보다 이전의 사람인지 이후의 사람인지가 판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내의 관심을 끌어서 입을 열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예상대로 사내가 흥미를 보였다.
“오자서가? 그가 뭐라고 추측하든가?”
“이름을 알려준다면 나도 말해주지.”
그러자 사내는 피식 웃었다.
“그게 무에 어려운 일이라고. 특별히 비밀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가르쳐 주지.”
그리고 사내의 정체가 밝혀졌다.
“나는 진나라 사람으로 이사라고 한다.”
“이사? 진시황의?”
“그래, 시황제 전하의 책사였다.”
이신은 신기한 눈길로 이사를 바라보았다.
이사(李斯).
본래 초나라 사람으로, 야망을 위해 대국인 진나라로 와 벼슬길에 올랐다.
진시황의 눈에 들어 요직에 오르고서는 법가사상에 입각한 통치로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우며 나라의 부국강병에 힘썼고, 무엇보다도 원교근공 정책과 회유·뇌물·이간질·암살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책략을 내어 진나라의 통일에 크게 이바지했다.
‘확실히 항우도 이름을 듣지 않았을 리가 없는 책사로군.’
전쟁뿐만이 아니라 외교와 행정 등 다방면에서 두루 활약한 이사는 확실히 항우가 고를 수 있는 최고의 참모였다.
‘일단 어느 정도 이사가 성과를 보였기 때문에 항우가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이겠지?’
아량이 없고 아랫사람을 부림에 있어 속이 좁고 의심이 많았다는 항우였다.
그런 그가 자신과 전혀 다른 문사 타입의 인재를 계속 곁에 두고 있다면, 분명 이사가 서열전에 있어서도 항우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빌드 오더 최적화.
수학적인 계산으로 최단시간에 목적 달성에 필요한 병력을 소환할 수 있는 빌드 오더를 짜는 일을 이사가 맡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둔한 항우의 머리로는 그런 섬세한 계산이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조아생 뮈라보다는 체계적인 빌드 오더를 펼치겠군.’
전략도 항우가 그때그때 제멋대로 판단하기보다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참모를 장식으로 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여러 차례 겨뤄야 할 테니 일단 첫 싸움을 승리로 가져오면서 저쪽의 스타일을 최대한 많이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악마군주 아미가 말했다.
“전장은 제12 전장 레틴으로 하면 되고… 마력은 5만씩 걸기로 하지…….”
“5만?”
그레모리가 놀라 되물었다.
놀라기는 이신도 마찬가지였다.
흘깃 옆을 보니 이사가 항우와 함께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문제 될 것 있나?”
악마군주 아미가 대답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