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83
282화 패배(2)
부스에 들어선 차이는 올도어SCC의 팀 로고가 새겨진 게이밍 백팩에서 장비를 꺼냈다.
세팅을 마치고 컴퓨터 인공지능을 상대로 테스트 게임을 한 뒤에야 준비가 끝났다.
“다 되셨나요?”
준비를 도와주는 부스걸이 물었다.
“네.”
차이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괴물이 가장 싫어하는 인류는 어떤 스타일이에요?”
며칠 전, 박영호와의 일전에 대비하여 연습 상대가 되어준 유진영에게 건넨 질문이었다.
그때, 유진영은 금방 답했다.
“인류는 그냥 다 싫어.”
인류에 대한 괴물 플레이어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한마디였다.
그 말에 차이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엄밀히 고르라면 이신 스타일이 가장 싫지. 치즈 러시 잘하고, 정신없이 견제하고, 괴물이 치즈 러시를 걸면 건설로봇 컨트롤로 다 막아버리고, 마법 잘 쓰고, 성격까지 나쁘고… 그냥 가지가지로 다 싫어.”
“선생님 상대하길 좋아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잖아요.”
“있잖아, 너.”
“저야 뭐, 워낙 많이 상대하다 보니 선생님 스타일에 익숙해진 것뿐이죠.”
“어쩌면 박영호도 비슷할지도 몰라.”
“……?”
“이신의 공격력을 막기 위해서 디펜스가 발전된 형태가 박영호의 철벽괴물 스타일이지. 아마 이신을 상대로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괴물 플레이어는 박영호가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마 현존하는 괴물 중에서는 가장 강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차이는 유진영에게 씨익 웃으며 애교 있게 덧붙였다.
“물론 진영이 형도 잘하지만요.”
“됐다, 자식아.”
유진영은 피식 웃었다.
“아무튼 너나 박영호나 똑같이 방어적이고 장기전에 강해. 그럼 변수는 딱 하나야.”
“어떤 거요?”
“맵 자원.”
유진영의 설명은 간단했다.
자원이 많은 맵에서는 박영호가 우세하다.
괴물은 병력 생산량이 굉장히 좋은 만큼, 자원도 많이 소모한다. 때문에 자원이 많은 맵에서 강세를 보인다.
같은 이유로, 자원이 비교적 적은 맵에서는 차이가 우세하다.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필히 박영호의 자원이 먼저 고갈될 테니까.
차이와 박영호의 4강전.
1세트부터 5세트까지 쓰이는 맵 중, 2개는 자원이 많은 맵이고 3개는 자원이 적은 맵이었다.
단순하게 따지면 차이가 3 대 2로 박영호를 이길 수 있는 여건인 셈이었다.
“자원이 적은 맵에서는 그만큼 박영호가 더 공격적으로 나오겠지. 박영호는 컨트롤도 순간 판단 센스도 지금 역대 최고라고 생각될 정도로 물이 올라 있으니까 주의해야 할 거야.”
“네.”
그렇게 유진영과 연습하면서 차이가 준비한 전략은 인류의 정석 중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탄탄한 수비 위주의 플레이였다.
빈틈을 최대한 주지 않으면서 끈질기게 버틴다!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인류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었다.
‘반드시 이기겠어.’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럼 그토록 꿈꿔왔던 무대에 서게 된다.
결승전.
상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게이머.
그리고 거기서 이신을 꺾는다면, 차이는 이번 생에서의 자신의 삶의 이유를 다 이뤘다고 말할 것이다.
[저를 이겨보십시오. 저보다 더 강한 선수라고 역사에 새겨보십시오. 이제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기회가 많지 않아!’
차이는 조급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신의 역량이 언제까지고 지금 수준 그대로일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다는 것은 정말 슬플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꺾을 거야! 선생님이 가장 화려할 때!’
뜨겁게 불타오르는 야망을 속에 품은 채, 차이는 게임에 임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올도어SCC의 인류와 JKT 괴물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마침내 시작됩니다!
-각자 자기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두 선수입니다. 지난번에 프로리그에서 붙었을 때는 박영호 선수가 이겼었죠? 차이 선수로서는 그때의 설욕을 할 수 있는 찬스입니다.
마침내 1세트가 시작되었다.
맵은 투지.
종족 간 밸런스가 가장 좋은 맵이라 불리지만, 엄밀히 따지면 자원이 적어 괴물에게 약간 불리했다.
***
경기장에 쩌렁쩌렁한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박영호! 박영호!”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박영호의 파워풀한 플레이에 열광했다.
-끼에엑!
-퍼엉!
-끼엑!
-퍼어엉!
쐐기충들이 하늘을 날며 쐐기를 쏠 때마다, 건설로봇들이 터져 나갔다.
기동포탑을 연달아 끊어주면서 승기는 박영호에게도 크게 기울어진 뒤였다.
-정말 대단합니다, 박영호 선수! 차이 선수에게 전술위성이 나오고, 보병들도 공격력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더 이상 쐐기충들을 활용하기 어려워진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한 번 더 쐐기충을 생산하면서 허를 찔렀어요!
허를 찌른 박영호의 쐐기충 플레이!
차이의 전술위성이 쐐기충 무리를 향해 방사능을 살포했다.
하지만 그 순간,
“와아아아!”
“우와아!”
함성이 다시금 울려 퍼졌다.
방사능은 뭉쳐 다니는 쐐기충에게 쥐약이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어서 뭉쳐 있던 다른 쐐기충까지 죄다 녹아버리기 때문.
그런데 그 짧은 순간, 박영호는 방사능에 맞은 쐐기충만 정확하게 클릭해서 따로 빼내는 데 성공했다.
재빠른 컨트롤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추가 피해를 차단한 것이다.
-컨트롤 정말 예술입니다!
-오히려 쐐기충들이 전술위성을 공격합니다!
-퍼어어엉!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전술위성이 격추되어 버렸다.
쐐기충들은 그대로 차이의 본진으로 다시 돌입했다.
그 바람에 본진 방어를 위해 차이의 병력들이 회군.
공격 타이밍을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
-끼에엑!
-으아악! 으악!
-키엑!
-퍼어어엉!
쐐기충들이 무빙을 하며 쐐기를 쏠 때마다 보병들이 무더기로 죽고, 심지어 기동포탑까지 1기 터졌다.
경기장의 대형 화면에 두 선수의 모습이 잇달아 비춰졌다.
진땀을 흘리는 차이.
그리고 살기등등한 눈빛의 박영호.
-와아아! 정말 컨트롤에 혼이 실려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번 1세트에서 쐐기충으로 끝내겠다고 작정을 하고 준비했거든요! 쐐기충 컨트롤에 모든 걸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괴물주술사가 나왔어요!
박영호의 진영에서 괴물주술사가 생산되었다.
인류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순간은 끝났고, 이제부터는 괴물이 칼자루를 뽑아 들 때였다.
쐐기충들이 계속 활약하며 괴롭히는 가운데, 다량의 바퀴들과 촉수충들이 괴물주술사와 함께 뛰쳐나왔다.
-퍼엉!
-펑!
인류의 병력을 만날 때마다 괴물주술사가 흑안개를 펼쳤다.
원거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흑안개 속에서 보병들의 소총 사격은 무용지물.
바퀴와 촉수충이 흑안개 속에 들어가 보병들을 공격했다.
-으악!
-아악!
차이는 흑안개 속에서 싸우지 못하고 병력을 뺐다.
그리고는 항공수송선으로 드롭을 시도해 난전을 유도하고자 했다.
난전으로 괴물의 확장을 억제하고 시간을 벌어서 기갑 체제로 전환하고자 했던 것.
하지만,
-퍼어엉!
병력을 태우고 괴물의 확장 기지로 은밀히 날아들던 항공수송선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폭탄충 2마리의 자폭으로 격추당했다.
-철벽!!
-완벽한 디펜스입니다! 철벽괴물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촉수충들이 길목마다 매복하여서 땅위를 지나가는 인류의 병력을 향해 촉수를 뻗는다.
폭탄충들이 쐐기충들과 함께 하늘을 누비며 전술위성이든 항공수송선이든 닥치는 대로 격추시킨다.
“저 정도였나, 박영호가.”
선수대기실.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박진수가 혀를 내둘렀다.
이신이 말했다.
“힘들겠는데.”
“당연히 힘들지. 저 상황에서 어떻게 역전을 해? 1세트는 내주고…….”
“아니.”
이신은 고개를 저으며 박진수의 말을 끊었다.
“오늘 경기.”
“뭐?”
“지금까지 본 괴물들 중 최고 수준이야.”
이신은 차이의 진영을 유린하는 박영호의 플레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의 박영호는 장양보다 손이 빨라.”
오싹.
박진수는 그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피지컬에 관한 한 최고의 수준인 장양.
게임하는 기계처럼 손이 전광석화인 장양보다 빠르다면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아마 저 정도겠지…….’
괴물주술사가 적을 발견할 때마다 흑안개를 펼쳤다.
흑안개를 잇달아 펼치며 구름다리를 만든다.
구름다리 안으로 바퀴 떼가 질주하며 차이의 진영으로 돌입!
그 와중에 반대편 하늘에서 나타난 폭탄충들은 차이의 전술위성을 위협한다.
손이 많이 가는 플레이를 저렇게 다각도로 펼칠 수 있다니.
너무나 대단한 수준의 괴물 플레이였다.
이신의 말대로 역대 최강의 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의 박영호는 그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다음 판에 기갑체제로 장기전 할 생각이지?”
이신의 물음에 박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신이 말했다.
“하지 마.”
“뭐?”
“초반에 끝내야 해. 3병영 타이밍 러시든 치즈 러시든 심리전 걸어서 빨리 승부하라고.”
“어째서?”
“박영호가 저 스피드로 괴물주술사와 여왕괴물을 쓸 텐데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준비된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차이답게 싸우지도 못할 거야.”
이신도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면에 보이는 박영호의 플레이는 모두에게 충격과 파란을 던지고 있었다.
전술위성이 방사능을 살포할 때마다, 방사능에 맞은 쐐기충만 잽싸게 빼버리는 박영호의 컨트롤은 거의 미친 수준이었다.
잠시 후, 꽤 끈질기게 버틴 차이는 GG를 치고 돌아왔다.
“죄송해요.”
“아냐, 지금은 박영호가 워낙 잘했어. 다음 2세트 집중하자.”
박진수는 차이를 다독이며 2세트 전략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이신은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1세트가 끝났음에도 선수대기실에 돌아가지 않고 부스 안에서 휴식시간을 보내는 박영호가 비춰지고 있었다.
입김을 불어 두 손을 녹이는 박영호.
시퍼런 광기가 흐르는 두 눈빛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 눈빛을 화면을 통해 마주하며, 이신은 박영호의 마음을 느꼈다.
간절하게 이기고 싶은 거다.
승리를 향한 강렬한 집착이었다.
눈빛은 차이를 넘어, 결승에서 기다리는 이신을 바라보는 채…….
어쩌면 오늘, 차이는 패배를 배울지도 몰랐다.
모두가 지켜보는 단두대 위에서,
5판 3선 다전제라는 진검승부에서,
패배하는 고통을 말이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차이는 2세트를 치르러 무대에 올랐다.
2세트는 자원이 상당히 많이 매장된 맵으로 장기전 양상이 곧잘 나타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는 1시간이 넘어갔다.
차이는 매우 공격적인 기갑 체제 운영으로 끊임없이 압박했지만, 박영호의 철벽은 깨질 줄을 몰랐다.
괴물주술사의 흑안개를 활용해 최소한의 병력만으로 잇달아 막아내면서, 계속 확장을 거듭해 몸집을 불려나가는 박영호.
그리고 끝내 괴물의 최종 병기인 공성벌레가 무더기로 나오며, 차이가 감당할 수 없는 병력의 물결이 몰아쳤다.
스코어는 2-0.
차이는 궁지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