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97
296화 수학(2)
16세기 유럽의 수학자는 승부사였다.
수학 문제로 결투를 벌였다.
치열한 나머지 진짜 몸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니콜라 폰타나, 일명 타르탈리아는 그런 승부를 통해 영광과 굴욕을 모두 겪은 수학자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프랑스 군대가 침입해 아버지를 잃었고, 자신도 턱이 쪼개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 바람에 그는 평생을 말더듬이로 살아야 하는 장애를 입었다.
종이를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르탈리아의 수학적 재능과 학구열을 꺾지는 못했다.
종이가 없어 아버지의 묘비를 노트 삼아 분필로 써가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독학으로 익힌 수학 실력은 고대 그리스 수학책의 오류를 잡아내고, 최고 수준의 산술서를 쓸 정도였다.
1535년, 타르탈리아는 어느 수학자의 도전을 받았다.
그 수학자의 이름은 안토니오 피오르.
안토니오 피오르는 스승 델 페로에게서 2차 항이 없는 3차 방정식을 푸는 근의 공식을 배웠다.
델 페로는 이를 1500년대 초에 알아냈지만, 결투를 위한 비장의 무기였기 때문에 평생 숨기고 있다가 죽기 직전에야 제자에게 전수해준 것이다.
그렇게 스승의 비법을 전수받은 안토니오 피오르는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수학자 타르탈리아가 3차 방정식을 풀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때문에 화가 난 피오르는 타르탈리아를 찾아가 결투를 신청했다.
“네가 정말로 3차 방정식을 풀 수 있다면 내가 낸 문제를 풀어봐라.”
피오르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30문제로 승부를 걸었다.
문제를 슥 본 타르탈리아는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엄청난 속도로 모든 문제를 전부 풀어버렸다.
아무도 풀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문제들이 속속히 해체되어 답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피오르는 망연자실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타르탈리아는 이미 2차 항은 물론 1차 항이 없는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까지 밝혀낸 상황이었던 것이다.
타르탈리아의 명예는 하늘을 찌를 듯이 커졌다.
타르탈리아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절대 반지와도 같은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비밀로 간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을 꼭 배우고 싶습니다.”
1539년, 명성을 듣고 찾아온 한 인물이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는 의사이자 수학자였던 지롤라모 카르다노였다.
당연히 타르탈리아는 거절했다.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비법을 결단코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카르다노는 끈질겼다.
달콤한 말로 설득하며, 비밀을 엄수하겠다고 신께 맹세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끈기에 못 이겨서 타르탈리아는 ‘절대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근의 공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1545년, 카르다노의 저서 ‘아르스 마그나’가 발표되었다. 위대한 계산법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저서는 3차 방정식의 풀이를 담고 있었다.
“이 사기꾼!”
타르탈리아는 대노했다.
맹세를 어긴 카르다노를 즉시 표절 혐의로 고소하고 나섰다.
카르다노는 자신의 제자를 대신 앞세웠다.
카르다노의 아들은 형편없는 여자와 결혼하여 불행히 살다가 그 여자를 독살한 죄로 사형을 당했다.
그렇게 아들을 잃은 카르다노는 제자를 두어 아들 대신 아껴서 키웠는데, 그 제자의 이름은 로도비코 페라리였다.
제자 페라리는 도리어 타르탈리아가 델 페로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1548년, 타르탈리아와 페라리가 결투를 벌였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페라리는 스승 카르다노까지 뛰어넘어, 이미 4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까지 밝혀낸 젊은 천재였기 때문이다.
결국 결투에서 패배한 타르탈리아는 갖은 수모를 겪었고 학교에서도 쫓겨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이 죽일 놈……! 시, 신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카르다노!”
더듬거리며 울분을 토하는 타르탈리아.
하지만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넋두리 같은 저주의 말을 허공에 퍼붓는 것뿐이었다.
프랑스 군대의 만행으로 아버지를 잃고 말더듬 장애까지 얻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그 어린 시절에 온갖 역경을 딛고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 타르탈리아였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던가.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의 일생 최대의 업적은 카르다노의 것이 되어서 공표되었다.
“도, 도박 중독자에… 점성술에 미친 그따위 놈에게……!”
하지만 타르탈리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카르다노는 그냥 사기꾼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절친했던 변호사였고, 그 아들로 태어나 재능을 만개한 카르다노는 의사로서도 수학자로서도 업적을 쌓았다.
의사로서는 장티푸스와 알레르기성 질환 등을 발견했고, 천식 치료법과 탈장 치료법을 고안했다.
수학자로서는 도박을 좋아하는 작자답게 확률론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3차 방정식 또한 자신이 알던 것을 더 완전하게 보완했다.
그가 정리한 3차 방정식에는 허수(虛數)라는 개념까지 들어가 있었다.
타고난 재능부터 이룩한 업적까지, 카르다노는 대단한 자였다.
그렇기에 더욱 울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타르탈리아였다.
[흐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참 알기 쉬운 인물이로다.]갑자기 웬 노인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누, 누, 누구시오?”
화들짝 놀란 타르탈리아가 물었다.
[그대의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이지.]아니, 노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디서 들리는지도 알 수 없고, 사람의 성대(聲帶)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누, 누, 누구냐고 무, 물었다!”
[쯧쯧, 듣기 거북하니까 일단 그 말더듬는 것부터 좀 해결해 줘야겠군.]딱―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무슨… 엇?!”
타르탈리아는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듬거리지 않고 또렷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생을 안고 살아야 했던 말더듬이가 이렇게 쉽게 고쳐지다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신이십니까?”
[신이라… 오히려 그 반대지.]“신의 반대… 악마?!”
타르탈리아의 안색이 변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질색하지는 마시게나.]“악마야! 내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 썩 물러가라!”
공포에 질린 타르탈리아.
그런 그에게 악마가 말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 나는 그대에게 바라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니콜라 폰타나. 선물해 줄 수 있는 것 또한 있지.]“네놈은 대체 누구냐! 사탄이냐?!”
[나는 72악마군주의 하나인 푸르카스다. 철학·수사학·논리학·천문학·화점술의 달인이며, 그대의 소원을 들어줄 강대한 권능을 가지고 있지. 이를 테면 방금 네 말더듬이를 고쳤듯이 말이다.]타르탈리아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악마든 뭐든 일단은 무조건 적대해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자신의 말더듬이를 손가락 한 번 튕겨서 고친 엄청난 존재였으니까.
“일단은 나와 주시오.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시오. 대화는 그러고 나서 합시다.”
[좋은 태도다.]스르륵―
순간 타르탈리아의 눈앞에 안개가 뭉게뭉게 생성되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마침내 악마군주 푸르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카스는 창백한 말을 탄 노인의 모습이었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냉혹한 얼굴에, 한 손에는 거대한 낫을 들고 있었다.
저 낫으로 자신의 목을 베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타르탈리아는 두려워졌다.
[마주보고 대화를 할 생각이 들었다니 다행이군. 경기를 일으키거나 고래고래 화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말이야.]“당신이 푸르카스입니까?”
[그렇다.]“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습니까?”
[복수.]그 단어가 이렇게 오싹한 것이었던가.
푸르카스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카르다노와 페라리, 네 업적을 가로챈 그 두 놈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 않나? 내가 이루어줄 수 있다. 방금 고쳐준 네 말더듬이는 서비스라고 쳐주지.]“…그럼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영혼이나 그런 거면 저는 절대로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크흐흐, 그런 말도 안 되는 거래는 어리숙한 인간하고나 하는 것이지. 걱정하지 마시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대의 재능이니까.]“……?”
[나의 계약자가 되어서 다른 72악마군주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네 수학적 재능을 발휘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그 대가로 너는 복수뿐만이 아니라,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당신들의 싸움을 위해 내 재능을……?”
순간 타르탈리아는 옛 일이 떠올랐다.
전쟁을 위해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썼던 기억.
바로 포탄의 탄도를 계산하여서 가장 사거리가 긴 발사각을 증명했더랬다.
그때 타르탈리아는 살상을 위한 일에 자신의 재능을 쓴 일을 부끄러워했다.
타르탈리아는 눈물을 흘렸다.
“복수를 하고 싶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죄인이고 싶지 않습니다.”
[호오, 그게 죄인이라고 누가 그러지?]“네?”
[아무래도 한 번 서열전이 어떤 것인지 보여줘야겠군.]푸르카스는 타르탈리아를 데리고 전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부하 상급 악마들로 하여금 모의전을 펼치게 하였다.
[어떠한가? 자네가 생각한 그런 전쟁과는 다르지?]“병사를 부르기 위해서는 지어야 하는 건물이 있고… 건물을 짓거나 병사를 불러내는 데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군요.”
타르탈리아는 한눈에 서열전이라는 전쟁의 본질을 깨달았다.
마력과 병력과 시간…….
세 가지 요소가 균형점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전쟁이라고?
아니다.
이것은 정말로 훌륭한 ‘놀이’다.
수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발휘되었다.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타르탈리아가 눈에 불을 켜며 말했다.
푸르카스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지만 그대가 나의 계약자가 되지 않는다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네.]실망한 타르탈리아에게 푸르카스는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했다.
[자, 실망 말고 일단은 나의 궁전에도 가보세. 이곳까지 온 김에 손님 대접을 확실하게 해줘야지.]그리고 푸르카스는 타르탈리아에게 그동안 구경도 못 해보았던 엄청난 사치향락을 즐기게 해주었다.
[그동안 자네가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살았던가? 이제 그렇게 피땀 흘려가며 이룬 재능으로 덕을 봐야지.]타르탈리아의 마음은 이미 푸르카스의 제안에게도 기울어져 있었다.
그렇게 타르탈리아는 푸르카스의 계약자가 되었다.
그리고 푸르카스는 약속대로 복수를 해주었다.
카르다노는 일흔이라는 나이에 이단으로 몰려 투옥을 당했다. 그 뒤에 풀려났지만 자신의 모든 저서에 대한 권리를 상실했다.
또한 타르탈리아에게 했던 사기 행각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자신의 많은 업적보다도 수학계 최대의 사기꾼으로 더 많이 후세에 기억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악마군주 푸르카스는 카르다노가 점성술에 빠져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카르다노는 점성술로 자신의 수명을 점쳤는데, 그 결과에 따라 예언된 날짜에 맞추기 위하여 자살을 했다.
자신의 점성술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선택이었다.
그의 제자 페라리도 복수를 피해가지 못했다.
로도비코 페라리는 술과 도박·싸움질에 절어 살다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독살당했다.
그들의 천재적인 재능과 업적을 생각하면 참으로 비참한 말로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