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
2화 그레모리의 부름(2)
“그럼 계약서를 작성할까요?”
그레모리는 한 장의 양피지를 꺼냈다.
둘둘 말려 있던 양피지를 펼치니 글귀가 적혀 있었다.
1. 카이저는 72악마군주의 하나인 그레모리의 계약자가 된다.
2. 본 계약은 72악마군주의 서열전이 끝날 때까지 유지된다.
3. 카이저는 다음 서열전이 있기 전까지 본래 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다.
4. 본 계약의 성립과 동시에 카이저는 손목을 비롯한 신체의 모든 부상을 치유받는다.
5. 그레모리는 계약자 카이저가 마계에 있는 동안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고 보호한다.
6. 본 계약은 상호 합의하에 폐지될 수 있다.
7. 계약 종료 또는 폐지 시, 그레모리는 카이저를 본래 세계로 돌려보내 준다.
8. 그레모리는 본 계약을 위반할 시 군주의 지위를 잃는다.
9. 카이저는 본 계약 위반 시 영혼을 잃는다.
“어떤가요?”
“글쎄요. 좀 더 훑어보겠습니다.”
쭉 읽어봤지만 자신에게 해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설령 패배한다고 해서 어떤 벌칙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훑어보았을 때, 2번 조항에서 흠칫했다.
‘서열전이 끝날 때까지 계약이 유지된다?’
분명히 72악마군주의 서열전은 끝이 없다고 그녀가 말했었다.
이번에는 6번 조항을 보았다.
본 계약은 상호 합의하에 폐지될 수 있다.
즉, 한쪽의 합의 없이는 폐지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이 계약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겁니까?”
“서열전이 끝나거나 상호 합의하에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지요.”
“만약에 당신이 합의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레모리는 웃었다.
“당연히, 영원히죠.”
“그 영원히라는 말뜻은 제가 죽을 때까지입니까?”
“죽은 뒤에도 영원히죠.”
“예?”
충격을 받은 이신에게 그레모리가 말했다.
“악마의 계약자가 죽은 뒤에 악마의 곁에 영원히 머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이신은 섬뜩함을 느꼈다.
저렇게 착하고 선량한 어조로 당연하다는 듯이 무서운 말을 하다니.
그레모리는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당신에게 나쁜 이야기가 아니에요. 제 곁에 머무는 동안 당신은 극진한 대접을 받을 거예요. 누구도 당신을 해칠 수 없고, 원하는 모든 걸 즐길 수 있지요. 악마군주의 계약자란 그 정도로 높은 지위죠.”
“하지만 죽은 뒤에도 영원히라는 것은 조금 꺼려집니다.”
“어째서죠? 제 곁에 있으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는데요.”
“제가 인간이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계약에 조항을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어떻게요?”
“제가 승리할 때마다 계약 종료를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서열전이라는 것이 언제 끝날지도 기약이 없었다. 이신으로서는 이렇게라도 조건을 추가해야 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그레모리는 갑자기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하얀 얼굴이 수치심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악마군주로서 계약자에게 계약을 파기당하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에요. 저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예요!”
“그건 몰랐습니다.”
이신은 당혹스러웠다.
마치 고백했다가 차인 여자처럼 모욕감을 느끼다니.
“당신이 계약에서 해방된다고 해도, 그건 제 허락에 의해 일어난 일이어야 해요. 그 조항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요.”
“그럼 저도 계약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신은 강하게 나갔다.
손목을 치유받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지만 지금은 참고 강하게 나가야 했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레모리가 섭섭한 얼굴로 투정 부리자 이신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상대는 역시 악마였다. 그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죄송하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기약 없는 영원이란 인간인 제게는 너무 두렵습니다.”
“휴우, 어쩔 수 없네요.”
그레모리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조항을 더 추가하겠어요.”
“무엇입니까?”
“계약서를 다시 보세요.”
이신이 양피지를 바라보니 어느새 계약 조건이 다소 변경되어 있었다.
10. 카이저는 10승 달성 시 본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단, 승리가 패배보다 많아야 한다.
11. 카이저는 서열전에서 패배 시, 다음 서열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10승을 달성해야 한다고?’
이신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서열전은 한 번 싸울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 겁니까?”
“승패가 갈릴 때까지 보통 2시간이 넘지 않아요.”
‘그것밖에 안 된다고? 그럼 다행이군.’
한 번 서열전을 치를 때마다 몇 년씩 싸워야 할까 봐 걱정했던 이신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럼 10승이라는 조건은 받아들일 만했다.
‘승률 50%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납득할 만하지.’
하지만 11번 조항은 의미심장했다.
“제가 돌아가지 못한다는 내용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현재 당신은 영혼만 마계에 불려왔어요. 육체는 당신의 본래 세계에서 잠들어 있는 상태죠.”
“그럼 지금도 계속 잠들어 있는 겁니까?”
“지금은 제가 그쪽의 시간을 멈춰놓았어요. 하지만 당신이 패배한다면 다시 승리할 때까지 저는 시간을 붙잡아놓지 않을 거예요.”
그레모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짧으면 열흘, 길면 3개월. 연전연패를 하면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죠. 제게 그런 요구를 했으니 벌칙도 있어야 공평하겠죠?”
“…….”
이신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갈등은 길지 않았다.
“열흘에서 3개월이라는 건 이곳의 시간입니까, 제 세계의 시간입니까?”
“시간의 흐름은 동일해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계약하겠습니다.”
“페널티가 두렵다면 원래의 조건대로 계약할 수도 있어요.”
“아닙니다.”
이신이 말했다.
“승부는 패배가 쓰라릴 때 가치가 있습니다.”
“멋진 말씀이시네요. 그럼 이곳에 피를 찍어주세요.”
그레모리는 계약서의 하단을 가리켰다.
“피 말입니까?”
흠칫 놀란 이신에게 그레모리는 살포시 웃었다.
“악마와 인간의 계약은 피로써 맺어져요.”
“알겠습니다. 그럼 피를…….”
이신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려 했지만, 차마 깨물지 못하고 망설였다.
풋 하고 웃은 그레모리는 품에서 작은 바늘을 꺼냈다.
콕, 하고 이신의 엄지를 살짝 찔렀다. 따가워서 살짝 놀란 이신은 엄지에 피 한 방울이 맺혔음을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이신은 계약서에 피를 찍었다.
그레모리도 똑같이 피를 찍었다.
그런데 그때, 계약서에 적힌 글들이 꿈틀거리며 변하기 시작했다.
1. 이신은 72악마군주의 하나인 그레모리의 계약자가 된다.
2. 본 계약은 72악마군주의 서열전이 끝날 때까지 유지된다.
3. 이신은 다음 서열전이 있기 전까지 본래 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다.
4. 본 계약의 성립과 동시에 이신은 손목을 비롯한 신체의 모든 부상을 치유받는다.
5. 그레모리는 계약자 이신이 마계에 있는 동안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고 보호한다.
6. 본 계약은 상호 합의하에 폐지될 수 있다.
7. 계약 종료 또는 폐지 시, 그레모리는 이신을 본래 세계로 돌려보내 준다.
8. 그레모리는 본 계약을 위반할 시 군주의 지위를 잃는다.
9. 이신은 본 계약 위반 시 영혼을 잃는다.
10. 이신은 10승 달성 시 본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단, 승리가 패배보다 많아야 한다.
11. 이신은 서열전에서 패배 시, 다음 서열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카이저’가 전부 ‘이신’으로 수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