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06
305화 대결(1)
밴쿠버에서의 휴가는 그렇게 지나가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신으로서는 퍽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가한 나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니.
늘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했던 이신은 이 시간낭비가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이신을 여기저기 데리고 놀러 다니는 주디는 좀 여유를 가지라고 핀잔을 했다.
한편 게임 중독 소년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폭스 게이밍과의 3대 3 대결은 가까스로 승리했다고 했다.
“아마드 부티아가 꽤 강적이긴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겼으니 저도 월드 클래스라는 뜻이죠?”
“마음대로 생각해.”
전미 프로리그를 주름잡는 아마드 부티아는 존과 장양을 상대로 2킬을 했지만, 차이를 상대로는 장기전 끝에 패배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차이가 3킬을 달성하여 역전승.
그쪽도 꽤나 분해 하는 눈치라고 한다.
그렇게 휴가를 보내다가 마침내 밴쿠버SCC와 약속했던 스크림이 다가왔다.
“복귀하기 전에 감각을 다시 끌어 올리는 계기로 갖는 연습시합이니 다들 적당히 긴장감을 가지고 임하도록 해.”
“네!”
의욕이 충만한 제자들.
이신 일행은 함께 밴쿠버SCC의 연습실을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카이저, 오랜만에 뵙는군요.”
“우승 축하드립니다. 조만간 월드 SC 그랑프리에서도 뵙겠군요.”
밴쿠버SCC의 관계자들이 우르르 나와 이신 일행을 반겨주었다.
단장, 감독, 수석코치 등등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인 이신은 계속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아야 했다.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다가 마지막에 이신이 만난 사람은 존 패트릭 코치였다.
“저희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휴가 중이시라 저희가 실례를 한 게 아닌가 싶군요.”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사실 세계 e스포츠의 절대자인 이신만 아니면, 캐나다 최고 명문팀인 밴쿠버SCC가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은 없었다.
“하하, 그럼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영어를 굉장히 잘하시는데요? 전에는 레벨린 양이 통역을 해주셔야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다들 깜짝 놀란 시선으로 이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나 주디는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늘 한 집에 붙어 지냈는데 언제 이신이 저런 영어회화 실력을 터득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만 나폴레옹에게 선물 받은 통역 반지의 힘이었다.
갑자기 영어를 잘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신은 그딴 건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게 편리한 물건이 있는데 안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발음도 좋고 훌륭합니다. 이거 우리에게는 희소식인데요.”
“희소식?”
“우리 팀에 오려고 열심히 영어를 한 거 아닙니까? 하하하.”
이신도 따라 웃었다.
‘밴쿠버도 나를 노리는 모양이군.’
온갖 관계자가 전부 나와 환대하는 모습이나 여러 가지로 느낌이 왔다.
“잠깐 따로 얘기 좀 하시겠습니까?”
문득 존 패트릭이 물었다. 이신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건네며, 존 패트릭이 말했다.
“3세트에 나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번 스크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우리 팀의 맥 존스와 겨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맥 존스?”
이신은 맥 존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2년 전에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에서 만났었다. 플레이가 인상 깊어서 이름을 기억해 두었었다.
“손목 부상도 완쾌되어서 재활 후에 복귀했습니다. 승률도 그럭저럭 괜찮고,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지요.”
“딱히 상관은 없지만 제가 그 사람과 겨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에 존 패트릭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맥에게 카이저의 실력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맥에게 큰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좋습니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존 패트릭과 이야기를 끝낸 이신은 연습실로 돌아와 밴쿠버SCC의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다.
다들 이신의 영어 실력에 깜짝 놀란 눈치였다.
“카이저.”
등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돌아보니 어딘가 낯이 익은 백인 사내였다.
“이런, 날 기억 못하나 보네. 역시 가해자는 금방 잊어버린다니까.”
“맥 존스?”
“오, 이름은 기억하는군.”
맥 존스는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신은 기꺼이 악수를 해주었다.
큰 체격에 짙은 갈색 머리칼, 전체적으로 밝은 인상의 백인 청년.
이신은 맥 존스의 얼굴 같은 건 기억나지 않았다.
인상 깊었던 플레이만 기억할 뿐이었다.
“다시 복귀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쪽도 손목 부상이 있었다고 들었다.”
“너만큼은 아니지. 그냥 가벼운 관절염이었어. 와, 이렇게 다시 붙을 수 있게 되다니 꿈만 같은데. 제발 오늘 너랑 붙게 되었으면 좋겠어.”
맥 존스는 들떠 있었다.
이신을 다시 보니 과거의 추억이라도 떠오른 모양이었다.
친근한 말투로 보아, 비슷한 나이의 선수라는 데에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돌아선 이신은 주디에게 다가갔다.
“스마트폰 있지?”
“그게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선생님뿐이에요.”
“VOD를 하나 봤으면 좋겠어.”
“어떤?”
“맥 존스의 가장 최근 경기.”
“알았어요.”
주디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캐나다 프로리그의 지난 경기 영상을 검색했다.
맥 존스의 최근 경기들이 보였는데, 그중 상대 종족이 인류였던 경기 VOD를 재생했다.
“여기요.”
“고마워.”
“헤헤, 뭘요.”
스크럼이 시작되었다.
존 패트릭 코치가 맵의 순서를 알려주었고, 이신은 맵에 따라 출전 순서를 배당했다.
1세트는 주디, 2세트는 존, 4세트는 차이, 5세트는 장양으로 정했다. 3세트는 존 패트릭 코치의 부탁대로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1세트, 주디는 같은 인류 플레이어와 대전했다.
인류 대 인류전은 주디의 특기였다.
하지만 상대는 2항공 빌드를 통해 기습적으로 스텔스 전투기를 뽑았다.
덕분에 계속해서 상대의 스텔스 전투기 폭격에 휘둘린 주디는 계속해서 한 박자씩 상대보다 움직임이 늦었다.
‘주디가 굼뜨다기보다는 상대가 판단이 빠르군.’
상대는 능숙하게 계속 형세를 바꾸면서 그 흐름을 쫓아오는 주디를 숨 가쁘게 만들었다.
‘졌어.’
대략 판정을 내버린 이신은 보고 있던 VOD를 다시 재생시켰다.
‘응?’
영상 속의 맥 존스의 플레이를 보며 이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고 있던 맥 존스가 아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무난한 신족 플레이어였다.
부분적으로 좋은 컨트롤이 눈에 띤다.
형세 판단을 잘 하면서 무난하게 지지 않는 플레이를 한다.
병력을 잘 모으고 잘 소비하고 잘 보충한다.
하지만 어딜 봐도 이신이 인상 깊게 보아서 이름까지 기억했던 그 선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기억 속의 맥 존스의 플레이는 황병철을 연상케 했다.
뚫을 수 있는 빈틈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어서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무모하다 싶은데 꽤나 높은 확률로 공격을 성공시킨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빈틈을 날카롭게 잘 포착하기 때문이었다.
영상 속의 맥 존스에게서는 그때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랬군.’
이신은 존 패트릭 코치가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맥 존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도록 충격을 선사하라는 부탁인 것이었다.
이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 주디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나이가 든 모습이, 어쩌면 맥 존스에게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보여줘야지.’
아주 공격적이고 화려하게 맥 존스를 깨부숴 주겠노라고 이신은 결심했다.
상대가 원하는데 못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
1세트는 주디의 패배였다.
이어서 2세트에 출전한 존도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상대는 괴물 플레이어.
존이 가장 잘하는 괴물전이었다.
존은 자신의 장기인 병영 체제를 유감없이 펼쳤다.
여기저기서 화려한 보병 컨트롤이 발산됐다.
하지만 상대는 방어에 자원 투자를 하며 충분히 안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방어에 쓰는 자원만큼 손해인 셈이지만, 상대는 어떻게든 안전하게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어내기만 하면 자신 있다는 태도였다.
‘존의 약점을 노리는 건가.’
싸움이 후반에 접어들면서, 존은 병영 체제에서 기갑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체제가 전환하고서 존은 아까처럼 적극적이지 못했다.
“기갑 체제만 되면 방어 일변도로 바뀌어 버리네요.”
차이가 말했다.
주디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압박을 넣어서 숨도 못 쉬게 만들어야 하는데.”
주디도 동생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형세는 이제 거꾸로 괴물이 존을 공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존은 초반에 압박을 가하여 얻은 이득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자꾸만 질질 끌려 다녔다.
결국 존은 방어선을 돌파당해 GG를 선언했다.
“죄송해요.”
존은 고개를 숙인 채 사과했다.
“잘하고 못하는 게 지나치게 뚜렷한 네 약점은 너무 커서 보완할 방법도 없어. 근본적으로 그 문제를 고치지 못하면 프로게이머로서도 오래 가지 못할 거야.”
“네…….”
스코어는 2-0.
레벨린 남매가 줄줄이 패배하는 바람에 단숨에 패배 직전에 몰렸다.
이신은 자신의 전용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상대측에서는 맥 존스가 준비하고 있었다.
맵은 비상(飛上).
2인용 맵으로 스타팅 포인트가 5시와 7시인 특이한 구조였다.
맵의 중앙은 층층이 계단처럼 이루어진 높은 구릉 지형이 있으며, 6시는 강물로 둘러싸인 섬인데, 섬 안에 식량자원과 광물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점이 또한 독특했다.
맵 전체를 보면 데칼코마니처럼 좌우가 균등하게 자원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결정적인 자원 다툼은 동서진영의 중간에 있는 이 6시 섬을 누가 차지하느냐로 갈렸다.
‘요즘은 신족이 6시를 먼저 가져가는 편이었지.’
예전에는 6시 섬을 놓고 쟁탈전이 벌어졌지만, 최근에는 신족이 먼저 가져가는 편이었다.
앞마당 다음에 2번째 확장 기지를 이 섬에 짓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오랫동안 쓰였던 맵인 만큼, 이신은 이 비상의 지리를 구석구석 꿰뚫고 있었다.
이 맵의 최고 승률과 최다승 세계 기록을 보유한 사람도 바로 이신이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신은 병영을 짓고서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빠르게 구축했다.
이를 정찰로 확인한 맥 존스는 광신도 1명을 찔러서 견제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신은 통제사령부·병영·군량고를 연결시켜 지으면서 완벽한 심시티를 구축했다.
광신도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노려보았지만 빈틈이 없어서 소득 없이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맥 존스는 조금 후에 거신병기 4기를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