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니노(1)
가뿐하게 2연승을 거둔 이신.
마지막 한 명만 꺾으면 32강 진출 확정이었다.
이것만 통과하고 나면 당분간은 마계에서 72악마군주의 축제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 마지막 한 명이 고비인가? 아니, 고비라고 할 것까지도 없지만.’
B조의 마지막 상대는 니노 테르파.
B조의 선수들 중 가장 강한 상대였다.
하지만 이신은 니노가 자신보다 실력이 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기본기 측면에서 본다면 차이가 더 우위지.’
사실 인도는 e스포츠계에서 그다지 실력이 뛰어난 곳은 아니었다.
인도는 이제 막 e스포츠에 눈을 뜨고 태동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e스포츠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도, 아마드 부티아가 미국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였다.
그 영향을 받아 인도의 프로게이머들은 실력을 쌓아 미국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고 있었다.
때문에 급성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인도는 실력 수준에서 한국보다도 아래였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프로게이머의 숫자가 많은 인도에서 무패 우승을 한 니노의 대단함이 폄하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았을 때, 이신은 니노의 실력을 차이보다 아래로 보고 있었다.
다만…….
‘가끔 상식을 벗어난 플레이를 한다.’
큰 틀에서의 전략과 빌드 오더는 널리 알려진 정석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투 등 전술 레벨의 상황에서 니노는 가끔 돌발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희한한 전술과 궤를 달리하는 컨트롤로 상대의 허를 찌른다.
차이 같은 판단력도 없고, 장양처럼 전율스러운 피지컬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언뜻 보기에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니노가 무패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해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비결이 바로 그런 의외성이었다.
상상력!
해외 프로팀들이 높이 사는 니노의 재능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곧 시작될 B조 3경기.
설사 여기서 지고 니노가 먼저 32강에 올라간다 해도, 이신은 큰 문제가 없었다.
남은 둘을 꺾고 32강행 티켓 한 장을 따면 그만이니까.
니노로서도 좋은 기회였다.
이신만 꺾으면 남은 둘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상대.
또한 상대가 이신이면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어필할 좋은 기회였다.
지면 또 어떤가?
상대가 카이저인데.
지더라도 좋은 모습만 확실히 보여주면 이제 막 프로게이머를 시작한 니노에게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오히려 패배에 대한 리스크는 이신이 컸다.
엄밀히 따지면 니노 테르파 측이 제 2의 카이저랍시고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멋대로 견주려 드는 상황.
괜히 지기라도 하면 체면을 구김과 동시에 니노의 명성만 높여주는 꼴이 아닌가.
물론 이신은 별로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지면 똑같이 기분 더럽거든.’
휴식 시간이 끝나자 이신은 무대로 나아갔다.
인도의 어린 천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전 세계 e스포츠 팬 여러분, 대망의 3경기가 시작됩니다.
-먼저 한국의 카이저! 예,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e스포츠의 신화가 32강 티켓을 따낼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 부스는 인도에서 온 천재 소년 니노입니다!
-무패 우승을 달성하고 월드 SC 그랑프리에 홀연히 나타난 신인이라는 점에서 예전 카이저의 첫 출전을 연상케 하고 있죠? 알면 알수록 정말 심상치 않은 선수입니다.
-현재의 전설과 미래의 전설의 대결이라고 해도 될까요? 어찌됐건 끝내주는 경기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3경기 맵은 나락. 신족이 대체로 강세를 보이는 맵입니다.
-이거 설마 카이저가 신족을 고르는 건 아닐까요?
-하하, 그러면 니노의 머릿속이 꽤나 복잡해지겠죠. 카이저의 신족 플레이는 마이클 조셉조차도 애를 먹잖습니까.
-팬들은 카이저가 어떤 종족을 고르기를 원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역시 카이저의 명품 인류 플레이를 보고 싶은데요.
-카이저의 신족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카이저가 메인이 아닌 다른 종족을 고를 때마다 굉장히 재미있어 해요. 카이저가 이제 인류는 너무 쉬우니까 다른 종족도 하는구나, 하고요.
-하하하! 카이저는 정말 이 게임을 완전히 마스터한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해설진들의 우스갯소리가 나온 직후였다.
문득 채팅창에서 이신이 니노에게 말을 걸었다.
-Kaiser: random?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지 카메라 감독은 선수 간의 채팅 내용을 화면에 잡았다.
“하하하!”
“랜덤해도 되냐고 묻는 거지?”
“생각해보니 카이저는 랜덤을 해도 되잖아?”
이신의 기이한 행각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니노는 곧장 대답했다.
-Nino: No!
이에 가볍게 웃는 이신의 모습이 대형 화면에 나왔다.
관객들은 더욱 즐거워했다.
별것 아닌 이 농담에 인터넷 생중계의 시청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맙소사! 시작됐어! 카이저의 안 좋은 성격이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카이저가 작심했으니 저 가여운 인도 소년은 잔인하게 짓밟힐 거야.
-그냥 농담한 게 아닐까?
-그럼 종족을 왜 아직도 랜덤으로 놔두는 건데?
-드디어 월드 SC 그랑프리에서 랜덤을 볼 수 있겠군.
-근데 솔직히 카이저가 랜덤 고르면 재미있을 것 같아 😀
-나도 랜덤 보고 싶어.
-상대 종족도 몰라서 당황하는 니노를 보고 싶긴 해. 흥미로울 거야.
-농담이 아니라 정말 카이저는 랜덤을 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유리해져. 니노는 상대 종족을 모르니 모든 종족을 상대로 통용 가능한 빌드 오더를 쓸 텐데, 카이저는 거기에 맞춰서 카운터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고.
-시작부터 핀치에 몰린 셈이네. 카이저, 완전히 괴물이 되었어.
-이게 다 우리들 인간 탓이야. 신께서 적수가 없어서 심심하다고 다른 종족을 하신 거 아냐? 우리들 인간이 더 노력해야 했어.
-에이, 설마. 어린애를 상대로 카이저가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지는 않아.
-못할 건 또 뭐야? 그 어린애를 일부러 제 2의 카이저로 띄워서 라이벌 구도처럼 연출한 건 그랑프리 측이야. 같잖은 상대랑 비교 당했으니 카이저가 열 받아서 본때를 보여줄 수도 있지.
-게임하는 카이저는 성격이 좋지 않지.
-어이, 친구. 카이저는 평소에도 성격이 안 좋아lol
상대를 약 올리는 데 특화된 이신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가장 무서운 카이저의 무기로 심리전을 꼽는 전문가도 많았다.
응원하는 자국 선수가 그렇게 무참히 당할 때는 분노하는 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신이 최강자로 군림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이제는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가 심리전에 박살이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덤덤히 넘어갈 정도.
하지만 아쉽게도(?) 이신은 곧장 인류를 골랐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 * *
‘왜 이렇게 떨리지?’
니노는 당혹했다.
가슴이 떨려서 손까지 덩달아 떨리고 있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서 이렇게 떨린 적은 없었다.
고아가 되고 떠돌이 생활을 했던 니노에게 프로게이머의 삶은 꿈만 같았다.
무엇을 해도 그때보다 힘들지 않으리라.
그런 마음가짐이었기에 지금껏 한 번도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적이 없었다.
그런 니노가 지금 새가슴처럼 떨고 있는 것이었다.
‘왜지?’
어린 니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게 바로 승부라는 것을.
정말 싸워보고 싶었던 꿈의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니노는 이렇게 진심을 다해 이기고 싶은 상대를 만난 적 없었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저 경기는 게임이라는 꿈만 같은 놀이일 뿐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놀이에서 승부가 되었다.
비로소 니노는 프로가 된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니노는 처음 주어진 건설로봇 4기를 나눠서 농토로 보냈다.
그런데 일꾼 나누기가 살짝 삐끗했다.
1기가 좀 늦게 자원에 붙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별것 아닌 사소한 실수였지만, 의미는 남달랐다.
-어, 생산유닛을 나누는 컨트롤에 살짝 미스가 났군요. 니노가 많이 긴장한 모양입니다.
-상대가 카이저니까요. 막 데뷔해서 그랑프리에 처음 출장한 어린 신인이 카이저를 만났으니 긴장 안 되면 사람이겠습니까?
-긴장을 빨리 떨쳐내고 자기 플레이를 펼쳐야 해요, 니노.
-여태껏 많이 있었죠. 카이저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에 눌려서 자기다운 플레이를 못 보여주고 맥없이 당한 선수들 말입니다.
-예, 카이저의 팬들도 니노를 응원할 겁니다. 제대로 실력 발휘해서 멋진 경기 보여 달라고 말이죠.
니노는 부끄러워졌다.
이 실수를 모두가 봤다고 생각하니 의식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어린 탓에 멘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니노는 동요하고 있었다.
빨리 떨쳐버리고 자기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대형화면에 니노의 모습이 비춰졌다.
니노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모두의 눈에는 보였다.
바짝 굳어 있는 긴장한 소년의 표정이 말이다.
-오, 이런. 니노가 너무 긴장한 얼굴인데요.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요? 아까 카이저가 ‘랜덤’ 얘기를 꺼내며 농담한 정도로 동요한 건 아니겠죠?
-하하, 그것보다는 상대가 카이저라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렇게 긴장하면 컨트롤이 뜻대로 안 될 텐데요.
설상가상.
하필 이신은 정찰 운도 좋았다.
1시에서 시작한 이신은 5시에 있는 니노의 진영을 한 번에 발견했다.
건설로봇은 병영을 건설 중인 니노의 건설로봇을 공격했다.
의례히 하는 가벼운 견제였다.
공격을 받고 있으니 가만 놔두면 병영을 건설하기 전에 건설로봇이 먼저 당할 듯했다.
니노는 자원을 채집하던 건설로봇 1기를 동원했다.
그리고 공격받는 건설로봇은 바로 빼버렸다.
일꾼 하나를 더 일 못 하게 만들었으니 이신의 견제는 효과를 본 것.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니노가 바짝 긴장한 영향이 또다시 나타났다.
공격 받던 건설로봇을 너무 일찍 빼버린 것.
새로 동원된 건설로봇과 자연스럽게 배턴 터치하여 병영 건설이 지연되지 않도록 했어야 했는데, 긴장한 나머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버벅거렸다.
‘아, 이런.’
니노는 또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전 세계가 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없이 부끄럽고 냉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이신의 건설로봇이 끈질기게 쫓아왔다.
그리고 기어코,
-퍼엉!
공격 받던 건설로봇을 터뜨려 사살해버렸다.
니노의 표정이 더 우울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저게 뭡니까?
-카이저의 건설로봇이 니노의 진영에서 이상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건설로봇 1기 잡아서 좋다고 저러는 건가요? 니노를 놀리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신의 건설로봇이 제자리에서 전후좌우로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었다.
세리머니였다.
그런데 니노는 이신의 그런 장난에 담긴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 뭐 하니, 꼬마야?
뭘 그렇게 겁먹었어?
침착하게 제대로 해봐.
‘아!’
비로소 니노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달았다.
‘이런 바보, 뭘 그렇게 겁먹어서! 제대로 하자. 침착하게.’
비로소 니노는 숨 막히던 긴장감을 내려놓고 편안해졌다.
세리머니를 하는 이신의 건설로봇을 보며 웃었다.
덩달아 미소 짓고 있는 이신의 모습까지 대형 화면에 함께 나가면서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대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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