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신의 드롭(2)
예선을 통과한 이신에게 세계 SC 협회가 직접 인터뷰를 요청했다.
세계 최대의 e스포츠 축제인 그랑프리!
그 첫 주를 장식한 최고의 명경기로 니노와의 대결이 꼽혔기 때문이었다.
세계 SC 협회 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할 이 인터뷰에, 이신은 기꺼이 응했다.
“꽤 힘든 경기를 펼치셨는데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흑인 여성이 질문했다.
영어였지만 통역 반지가 있는 이신은 문제없이 응했다.
“예, 3경기는 꽤 고전했습니다.”
“직접 상대해본 니노는 어떤 선수였던가요?”
“인도에서 탄생한 천재라고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제 2의 카이저라고 불릴 만하던가요?”
흑인 여성은 그렇게 질문하며 미소 지었다.
이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간혹 이런 선수가 있습니다.”
“어떤 선수죠?”
“피지컬도 컨트롤도 전략성도 특별히 타고난 구석이 없는데, 이상하게 잘하는 선수죠.”
“니노가 그런 선수였나요?”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팬들 사이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혹시 니노를 제자로 삼을 수 있다면 삼고 싶으신가요?”
“아뇨.”
이신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의외네요, 어째서죠? 카이저는 지금가지 국적을 안 가리고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제자로 키워왔잖아요.”
이신은 쓴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일단 제게 제자가 벌써 넷이나 있지만, 전 딱히 제자를 거둬서 가르치는 취미가 없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제자가 벌써 4명이나 있는데도 말이에요?”
“그 애들을 받았을 땐 제가 코치나 감독이었을 때입니다. 지금은 아니죠.”
이신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미 인도에서 무패 우승까지 하고 그랑프리 개인전 출전권을 딴 선수에게 스승 노릇을 하겠다고 하면, 니노 본인이나 인도 팬들이나 불쾌해하겠지요.”
“어머, 그건 그렇지 않던데요.”
“예?”
“니노는 그때 경기에서 패한 뒤에 카이저를 두고 본받고 싶은 위대한 선수라고 말했어요. 인도 팬들도 카이저의 제자가 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고요.”
“…왜 그런 반응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니노는 이미 충분히 성공한 선수입니다.”
“호호, 그런 선수에게도 카이저는 숭배 대상이죠.”
이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딱히 제자를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 있는 제자들도 이제는 제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성장했고요.”
“의외네요. 후학을 키우는 일에 대단히 많은 애정을 쏟으시는 것 같던데요.”
“딱히 애정이랄 것은 없습니다. 가르치니 절 위협할 정도로 성장해서 개인적으로 자극은 되었습니다.”
흑인 여성은 미소를 지으며 짓궂게 말했다.
“한국의 개인리그 4강전에서 주디가 차이에게 졌을 때 위로하셨던 모습이나, 중국으로 떠나실 때 포옹하던 모습을 보면 애정이 대단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건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신의 대답에 흑인 여성은 눈빛을 빛냈다.
이신은 자신의 대답이 어떤 식으로 해석될지 알지 못했다.
* * *
박영호와 이신은 그렇게 나란히 예선을 통과했고, B조에서 이신의 뒤를 이어 니노 또한 2연승에 성공해 32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변은 E조에서 벌어졌다.
인도 출신으로 미국에 진출해 대성공을 거둔 아마드 부티아.
그리고 세계적인 강팀 밴쿠버SCC의 에이스 존 던.
이 두 사람은 세계적으로 막강한 인지도가 있는 톱스타들로, 거의 예선 통과가 유력시 되고 있었다.
그런데 E조에서 32강행 티켓을 가장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신지호였다.
신지호는 그랑프리에 대해 한이 많았다.
이신이 손목 부상을 당했던 재작년, 신지호는 결승전에서 황병철과 졸전을 치른 끝에 준우승을 했다.
이듬해 전반기 개인리그는 각각 박영호와 최영준이 우승과 준우승을 했는데, 그랑프리 개인전 출전 티켓은 3장뿐이었다.
준우승자인 신지호와 최영준이 겨뤄서 나머지 1장을 놓고 다퉈야 했는데, 그 대결에서 신지호는 아쉽게 패하고 만 것이었다.
그랑프리 무대를 밟고 싶었던 신지호로서는 그 일에 한이 맺혀 있었다.
그런 한풀이라도 하듯, 신지호는 E조 경기에서 아마드 부티아와 존 던을 연달아 격파하고 가장 먼저 3연승을 달성했다.
세계무대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없었던 신지호가 그런 활약을 벌이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신지호라는 이름이 세계 강팀의 관계자들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나머지 한 장을 놓고 아마드 부티아와 존 던은 치열한 혼전을 벌였다.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며 재경기가 계속된 끝에, 아마드 부티아가 간신히 티켓을 손에 넣었다.
E조 승자 인터뷰.
“제가 처음으로 결승 무대에 진출했을 때가 저로서는 가장 고통 받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거치고 나니까 한 가지 이 게임에 대해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신지호는 인상 깊은 발언을 남겼다.
“한 사람의 승자만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에서, 제 존재 자체가 상대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자원을 먹으면서도, 제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는 피해가 됩니다.”
신지호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 있어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 있다면 결국 승자가 됩니다. 방어야말로 최선의 공격입니다.”
그것은 비로소 안정적으로 정착된 신지호의 게임 철학을 의미했다.
그 말에 걸맞게 신지호는 아마드 부티아와 존 던의 맹렬한 공세를 끈질기게 버텨내며 자신의 주특기인 ‘108공포’를 펼친 것이었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유리해진 상황에서도 역습보다 확장 기지를 하나 더 짓는 판단은 상대를 질리게 만들었다.
해설진들로부터 ‘사상 최강의 철벽’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으며, 신지호는 성공적으로 그랑프리에 데뷔했다.
“와, 지호 걔 진짜 독하더라.”
호텔로 돌아와서 박영호가 말했다.
“진짜 인류가 그렇게 디펜스를 하면 괴물이 어떻게 이기냐? 진짜 아마드 부티아가 불쌍하더라. 나까지 감정 이입이 돼서 짜증 치미던데.”
“웅크리고 방어에만 매달린다고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신지호가 정말 잘한 거야.”
“그야 당연하지.”
“존 던은 아깝게 됐군.”
밴쿠버SCC와 여러 차례 교류를 가졌던 이신은 존 던과도 안면이 있었다.
탁월한 실력을 가진 선수였는데, 신지호라는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아무튼 대단하더라. 존나 명대사 아니었음? 캬, 살아 있으면 결국 승자가 된다니!”
박영호는 자기도 그런 멘트 하나 멋지게 날려줘야겠다며 명대사를 골몰하기 시작했고, 이신은 그런 주접을 보며 혀를 찼다.
아무튼 한국의 선수 3명은 모두 예선 통과.
한국은 현재 축제 분위기였다.
셋 다 한 판도 지지 않고 본선 진출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문득 이신의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스마트폰을 신중하게 조작하며, 이신은 통화를 터치했다.
“여보세요?”
-선생님!
밝고 경쾌한 반가운 목소리.
“주디?”
-네! 예선 통과 축하드려요.
“어.”
-3경기 정말 멋졌어요. 이신교 팬 카페도 난리에요.
“어.”
-히히, 그리고 인터뷰도 잘 봤어요.
이신은 주디가 왜 실실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제가 특별한 존재라고 하신 거 맞아요?
“…뭐?”
-그것 때문에 한국에서는 저더러 신의 여자래요.
몹시 즐거워 보이는 주디의 목소리.
이신은 즉시 인터넷에 접속해 세계 SC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인터뷰를 보니 마지막의 이신의 대답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내게 특별한 존재다.’
순간 황당함이 밀려왔다.
그 흑인 여성이 이신의 대답을 그런 식으로 멋대로 의역해서 써버린 것이다.
-정말 저를 특별하게 생각하세요?
“…마음대로 생각해.”
-네~!
‘어’나 ‘근데’ 등 무뚝뚝한 말밖에 하지 않는 이신.
그럼에도 주디는 즐거워하며 재잘재잘 수다를 잘도 떨어댔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주디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신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박영호는 그런 그를 심사가 뒤틀린 아니꼬운 눈길로 노려보더니,
“제기랄! 연습이나 해야지. 꼭 성공하고 말거야!”
무슨 이유인지 박영호는 악에 받쳐서 뛰쳐나가버렸다.
* * *
예선을 마무리 짓고서 이신은 마계로 돌아왔다.
급한 불을 껐으니 이제 게임은 전부 잊고 72악마군주의 축제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왔다 갔다 하며 큰 대회를 치르려니 보통 일이 아니군.’
다만 차이는 있었다.
현실에서는 이신 홀로 해쳐나가야 하지만, 마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주군.”
질 드 레를 필두로 사도들이 이신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연습은 잘하고 있었고?”
“예, 이걸 보십시오.”
질 드 레는 웬 지도 한 장을 펼쳐보였다.
그것은 제 13전장 그레이어스의 전체 지도였다.
“에헴, 제가 열심히 돌아다니며 그렸습죠.”
콜럼버스가 자랑스럽게 나섰다.
이신은 지도를 면밀히 훑어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군.”
“당연합죠! 명색이 신항로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제가.”
콜럼버스가 그린 지도는 게임의 미니 맵처럼 상당히 정확했다.
덕분에 작전을 구상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질 드 레가 말했다.
“그리고 부재중이신 동안 저희가 나폴레옹과 오운 측과 함께 모의전을 치렀는데, 생각보다 템포가 빨라서 많이 고전을 했습니다.”
“3대 3이니까 당연한 일이지.”
셋이서 조금씩만 병력을 모아도 상당한 전력이 된다.
때문에 초반부터 일찍 공세에 들어가기 십상이었다.
거기에 제 13전장 그레이어스는 길목이 불규칙하고 복잡하여서 전투가 단조롭게 일어나지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서로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도 힘들어서 크고 작은 전투가 수시로 벌어졌다.
‘결국 중요한 건 팀워크지.’
팀은 3인.
배를 움직이는 사공도 3인이었다.
서로 제각기 움직여서는 제대로 된 싸움이 되지 않는다.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여야 하고, 현재 팀에서 그 이정표를 제시하는 역할은 나폴레옹이 맡고 있었다.
사실 한 명쯤은 조아생 뮈라나 항우처럼 두뇌보다 싸움에 특화된 맹장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맹장 타입은 차라리 아무 생각이 없으므로 잠자코 오더가 떨어지는 대로 충실히 따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제 13전장의 구조를 지도로 한눈에 확인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오더를 내릴 수는 없다.
계속해서 속출하는 돌발 상황에서는, 각자 스스로의 판단력도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자서는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나폴레옹의 오더를 순순히 따르면서도, 그 오더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임기응변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그럼 이제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축제를 앞두고서 이신은 따로 생각을 해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무기를 연마할 생각이었다.
프로게이머이기에 생각해낼 수 있는 무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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