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축제의 시작(2)
-옛날 생각이라도 하셨는가, 나의 계약자여?
문득 한신의 머릿속으로 질문이 들어왔다.
그제야 한신은 거대한 마력을 지닌 존재의 기척이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감지했다.
화라락!
거대한 봉황(鳳凰)이 날갯짓을 하며 내려와 사뿐히 그의 저택 지붕에 앉았다.
길조 중의 길조.
영물 중의 영물이라는 봉황이었다.
한신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봉황이 출현하면 천하의 주인이 나타날 징조라는 전설이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서롭기 그지없어야 할 봉황은 애석하게도 온몸이 새카매서 도리어 불길해 보였다.
고대 중국풍으로 잘 지어진 우아한 저택의 기와에 자리 잡은 검은 봉황을 보며 한신은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봉황인가?”
-결전을 앞둔 나의 계약자에게 좋은 징조를 보여주고 싶었다네.
“도리어 재앙이 드리울 것 같으니 그만두고 내려오게.”
-내 노력을 몰라주는군, 무례한 계약자 같으니.
검은 봉황은 마치 닭처럼 정신 사납게 푸드덕거리며 한신이 있는 연못가에 내려왔다.
어찌나 덩치가 큰지, 마당에 장식된 활엽수를 부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얼마든지 변신을 할 수 있는 자가 그러고 있으니 한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무슨 일인가?”
-결전이 코앞인데 무슨 일이기는. 잘 되고 있나 해서 왔지.
“걱정이라도 되나?”
-걱정이야 안 되지만, 이번 상대는 의미가 크니 말일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한신의 입에서 대적의 이름이 언급됐다.
그랬다.
다음 상대는 바로 나폴레옹의 팀이었다.
한신이 나베리우스를 서열 3위까지 끌어올리며 엄청난 활약을 떨칠 적에 그 승승장구를 가로막은 인물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한두 판으로 끝난 싸움이 아니었다.
최상위 서열의 악마군주들은 한 번 맞붙으면 마력 총량이 10% 이상 벌어질 때까지 서열전을 연거푸 치른다.
그때 한신은 나폴레옹과 엄청난 승부를 펼쳤다.
눈부신 용병술과 기책을 펼친 한신.
이에 맞서는 나폴레옹은 탄탄한 전략 구상과 각 병과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특히나 한신이 나폴레옹에게 감탄한 부분은 바로 그 병과 간의 조합이었다.
석궁병, 투석기, 기사, 마법사 등을 모조리 써서 조화를 이루게 한 나폴레옹의 전술은 무시무시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상의 차이였다.
병과 구성이 단순했던 고대의 무장이었던 한신보다는, 근대 시대에서 보다 체계화된 군사학을 연마한 나폴레옹이 조건상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투석기처럼 사거리가 긴 장거리 병과와 마법사처럼 큰 변수가 되는 강력한 화력을 내는 병과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지.’
지금은 비록 서열 10위까지 떨어져 있었지만, 사실 컨디션에 따라 서열 5위에서 10위 사이를 넘나들던 한신이었다.
이제 다시 심기일전하여서 반등을 노리고 있던 차에, 72악마군주의 축제를 만난 것이다.
‘다시 치고 올라가 설욕하고 1위를 쟁탈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마침 잘됐군.’
최종 승자가 되면 70만 마력이 떨어진다.
한 번에 서열이 반등되어서 좋은 계기가 된다.
철지부심 준비한 한신이었지만, 문제는 이게 일대일 대결이 아니라는 것.
3대 3은 예측불허였다.
거기에 제 13전장 그레이어스도 불규칙하고 지리가 복잡하여 앞을 알 수 없는 난전이 예상되었다.
고민이 많은 한신에게 나베리우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이 하나 있더군.
“뭔가?”
-왜 악마군주 아미를 지명하지 말라고 한 건가?
“아미라면, 항우인가?”
-그렇네.
“확실히 항우의 용맹은 대단하지.”
유방의 60만 군세를 단 3만을 끌고 달려와 두들겨 패버린 항우의 용맹은 한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면초가라 불릴 정도로 물샐 틈 없는 포위망을 조성했음에도 그걸 뚫고 달아나더니, 추격하는 한군을 상대로도 거의 혼자서 연거푸 승리하는 게 아닌가?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그때의 일을 떠올린 한신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남의 아래에 있을 자가 못된다. 지금은 위치가 달라졌음에도 그 오만불손한 태도라면 여전히 날 경시하려 들 거야.”
-하지만 그런 무식하고 용감한 녀석도 필요하긴 할 텐데 말이야.
“그런 자를 어르고 달래며 쓰는 일은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한신은 사람 다루는 일에 서툴렀다.
한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최고통수권을 갖고 지휘할 때뿐이다.
살아생전에도 한신이 정말 활약을 떨치기 시작한 건 유방의 파격적인 기용으로 대장군에 임명되고부터가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 한신은 순순히 자신의 지휘를 잘 받아들일 계약자들만 골라서 지명했다.
보다 손쉽게 다루기 위하여 같은 문화권 출신에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을 고른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지명한 계약자가 바로 화우지계의 제나라 무장 전단, 그리고 와신상담의 월나라 책사 범려다.
그런 요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신이 고려한 것은 바로 종족이었다.
‘마물 둘에 엘프 하나.’
수많은 돌발 상황이 있을 수 있는 싸움에서는 이쪽이 먼저 선공을 취하고 상대가 방어하는 입장이어야 한다.
그런 주관에 따라 발 빠르고 전술적 기교를 부리기 용이한 종족 선택을 취한 것이다.
한신은 사정없이 상대를 쥐고 흔들며 교란시킬 생각이었다.
“내일의 싸움은 볼만할 거야.”
-호오, 자신감이 대단하군. 기대하지.
* * *
결전 당일, 제 13 전장 그레이어스에 여섯 악마군주와 여섯 계약자가 모인 일대 장관이 연출되었다.
눈에 띠는 것은 거대한 검은 봉황의 형상을 띤 악마군주 나베리우스였지만, 악마군주들은 도리어 깡마른 체격의 늙은 현자를 경외하고 있었다.
-악마군주 중의 군주께 경배를 올리는 바요.
나베리우스는 봉황의 모습을 취하고 있음에도 멋들어지게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늙은 현자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의 입에서 사람이 도저히 낼 수 없는 기이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오랜만이군, 나베리우스. 우리가 겨뤘던 때가 엊그제 같구나.
-당신의 계약자가 훌륭하게 저희의 앞길을 막으셨지요.
-하하,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도 꽤 고전했지. 그나저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도 꽤 있구먼?
늙은 현자는 바로 서열 1위의 악마군주 아가레스였다.
아가레스의 말이 떨어지자 다른 악마군주들도 줄줄이 인사를 한다.
“마르코시아스입니다, 군주 중의 군주여.”
날개가 날린 늑대의 모습을 띤 악마군주 마르코시아스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괴이한 울음소리로 인사했다.
그는 전단을 계약자로 두고 있었다.
“겨루게 되어 영광이오, 군주 중의 군주여!”
인간의 몸에 황소, 인간, 염소 세 가지 머리가 달린 두려운 형상의 악마는 바로 아스모데우스였다.
그의 옆에는 계약자 범려가 있었다.
“같은 편이 되어 영광입니다.”
한 손에 뱀을 휘감고 있는 남자는 악마군주 안드로말리우스, 계약자는 바로 오자서였다.
악마군주들이 인사해올 때마다 서열 1위의 대군주 아가레스는 친절하게 웃으며 덕담을 나눴다.
그리고 그레모리의 차례가 되었다.
“이렇게 연이 닿아서 기쁘네요.”
-오, 그레모리로군. 악마군주의 지위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하기에 많이 걱정했는데, 지금은 제법 사정이 괜찮은 모양이군?
“걱정해줘서 기쁘네요. 좋은 계약자를 얻은 덕에 위기를 벗었어요.”
-참 잘 된 일이야.
아가레스의 시선이 문득 그레모리의 뒤에 묵묵히 서있던 젊은 동양 남자에게로 옮겨졌다.
시선을 받은 동양 청년은 흠칫했으나 별로 겉으로 동요한 티를 내지 않았다.
악마군주들 중에서도 정점에 올라 있는 대악마의 시선을 받고 있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평정심이었다.
-이신이라고 했던가?
“예.”
-나폴레옹이 칭찬을 많이 하던데.
그 순간, 아가레스의 눈빛에서 검은 광채가 흘렀다.
그레모리는 흠칫했다.
-언젠간 강력한 도전자가 될 것 같다고 말이야.
그 발언에 모든 계약자와 악마군주의 시선이 이신에게로 집중되었다.
대군주 아가레스와 그의 계약자 나폴레옹이 인정한 인물.
나폴레옹이 가장 먼저 지명한 실력자가 바로 이신이었다.
상위에서는 소문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보지 못했던 이신의 실력이 곧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봐주시니 영광일 따름이에요.”
겸손하게 대답한 그레모리.
하지만 그녀 역시 이신이라면 결국 해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 * *
“네가 이신이냐?”
뚜벅뚜벅 걸어와 묻는 장신의 사내.
허리춤에 찬 커다란 장검이 인상적인 검은 머리의 동양 사내였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한신이라고 한다.”
그러자 이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말로만 듣던 대장군 한신.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장이 눈앞에 있었다.
“영광입니다.”
이신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날 아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한신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나폴레옹이 그들의 대화에 즉각 끼어들었다.
“어이, 날 만났을 때도 영광이라고 했던가?”
“안 했을 겁니다.”
“내가 이 친구보다 못하지는 않았을 텐데? 같은 동양문화권이라고 대우가 다른 건가?”
“그땐 너무 갑작스러웠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이신은 누군가에게 영광이라는 표현을 쓰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부드러워진 편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살아생전 업적을 늘어놓으며 한신과 말다툼을 벌였다. 황제가 되어 제법 괜찮은 법전까지 제정했다는 나폴레옹의 말에는 한신이 할 말이 없어졌다.
어찌 되었건 한신은 이신의 위아래를 슥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와 비슷한 타입이군.”
“예?”
“전쟁질 말고는 죄다 엉터리라는 소리 많이 듣지?”
“…전 공부도 잘 합니다.”
“역시. 자기 자랑을 대놓고 하는 걸 보니,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겠군.”
“…….”
이신은 할 말이 없어졌다.
자신의 인간관계가 썩 좋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나도 그렇게 살다 보니, 죽을 때 내 편 들어주는 사람이 한 놈도 없더군. 날 천거했던 소하는 날 죽이는 계략에 동참했고.”
“…….”
“아직 살아 있을 때 후회 말고 잘 처신하며 살도록.”
“참고하겠습니다.”
“명심이 아니라 참고라니, 성격하고는. 영판 예전의 나 같군.”
한신은 핀잔과 함께 혀를 찼다.
아무튼 나폴레옹이 높이 평가한 신진이니 눈여겨보겠다며 말을 남긴 한신은 이윽고 오자서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역사적 위인에게 똑바로 살라는 일침을 당한 이신은 정신적 동요를 느꼈다.
덜떨어졌다는 소리를 면전에서 들은 건 난생처음인 이신.
왠지 꼭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그렇게 담화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아가레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하지?
[72악마군주의 축제를 시작합니다.] [악마군주 아가레스, 그레모리, 안드로말리우스님 대 악마군주 나베리우스, 마르코시아스, 아스모데우스님의 서열전입니다.] [서열전은 총 3회의 싸움으로 진행되며, 3승을 먼저 거둔 쪽이 승리합니다.] [패자는 72악마군주의 축제에서 탈락합니다.] [종족을 선택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