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89
389화 인수(3)
“이신 선수?”
안경을 낀 순한 인상에 큰 키를 가진 사내였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제로섬 한태곤입니다.”
그랬다.
왕춘 감독이 추천했던 한태곤이 이신을 만나겠다고 직접 뉴욕에 온 것이다.
“언젠가 만날 날이 오겠지 했는데, 이제야 뵙게 됐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한적한 카페에서 두 사람은 커피를 주문했다.
한태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신을 보며 이따금 웃는 기색이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실례했습니다. 그 카이저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요.”
한태곤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꼭 한 번 묻고 싶었습니다. 대체 무슨 비결로 그렇게 게임을 잘하냐고요.”
“딱히 비결은 없습니다.”
“그런가요? 하긴 그쯤 되면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니겠죠.”
“…….”
“진심입니다. 동시대의 최환열 감독은 노력하면 이길 수 있는 라이벌이었지만, 이신 선수는 아니었죠.”
한태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로섬은 원조 온라인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현역 프로 선수들까지 꺾고 한국 서버 온라인 1위를 달성한 아마추어는 그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한태곤은 한국을 떠나 중국애서 데뷔했다.
더 큰 물에서 시작해 성공을 거두겠다는 야심찬 포부였다.
그리고 마침내 상하이 슈퍼리그에서 준우승을 거두고 프로리그 MPV를 차지하여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한태곤을 알아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냥 잊어버렸다.
결국 한국에서 활약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지도 기반이 없어 금방 잊힌 탓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최환열이 오성준을 꺾고 최강자로 등극한 탓이 컸다.
만리타국에서 홀로 활동해야 하는 외로움과 향수병이 겹쳐져서 한태곤은 최환열에게 적개심을 가졌다.
월드 SC 그랑프리에서 만나든, 한국에 돌아가서 만나든 붙으면 꺾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신은 달랐다.
데뷔 첫 해에 무패 우승을 해버린 미친 신인.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던 고난도의 플레이로 그랑프리의 세계 강자들까지 압살해 버린 모습에 한태곤은 그저 기가 질렸다.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저렇게 플레이할 수는 없다.
한국 개인리그와 그랑프리 개인전을 통틀어 한 세트도 안 졌다는 것은, 무슨 짓을 해도 이길 도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제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이 가벼워진 것도 그때부터였죠. 다 한낱 인간이거늘, 하는 해탈한 심정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 가볍게 웃는 한태곤이었다.
하지만 한태곤도 은퇴할 때까지 꾸준한 활약으로 중국에서 인정받았으며, 코치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거군요?”
이신이 물었다.
한태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전 같은 한국의 e스포츠 환경이었다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도 혁신을 꾀하는 추세라 생각이 달아졌습니다.”
한태곤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세련된 시스템을 갖춘 팀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없으니 처음에는 2군 팀 감독으로 시작해 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이신 선수의 제안을 받게 된 거죠.”
“팀을 리빌딩할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1부 리그 무대가 어딥니까?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각오였는데 잘 됐죠.”
이신은 문득 한태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의아해하는 한태곤이었지만 순순히 악수에 응했다.
“자신 있습니까?”
“온 힘을 다 바쳐서 해볼 생각입니다. 돈은 지금껏 충분히 벌었고, 이제 제가 추구하는 건 열정밖에 없습니다.”
[진실.]상급 악마 엘티마에게서 얻은 바 있었던 능력이 발현되었다.
한태곤은 진심이었다.
더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실망시키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태곤은 이신이 인수할 팀 넥스트의 새 감독직을 맡기로 했다.
* * *
결국 팀 넥스트는 인수할 기업을 찾지 못했다.
이에 한국 e스포츠 협회장은 직접 이신에게 연락해 인수를 정식으로 부탁했다.
-감독은 사퇴하기로 했고, 그밖에도 이신 선수의 요구 조건을 최대한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후반기 시즌 시작이 코앞인 터라 급한 쪽은 이신이 아니었다.
당연히 인수 협상에서도 최대한 이신의 편의를 봐줄 터였다.
“새 감독으로 내정한 사람을 제 대리인으로 인수 협상에 보내겠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한태곤.”
-아, 제로섬?
“아시는군요.”
-물론이지요. 데뷔 때부터 은퇴 후 코치 생활까지 쭉 중국에서 한 중국 통 아닙니까. 새 팀의 감독으로도 손색없는 인물을 고르셨군요.
역시 월급 도둑질 하려고 협회장을 지내는 건 아닌 듯했다.
“아무튼 전권을 위임했으니 그 사람과 협상을 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을 시 인수는 없을 겁니다.”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서 한국에 이신의 대리인이 나타났다.
한태곤은 팀 넥스트와 협상을 진행했다.
그런데 팀 넥스트에게 한태곤이 처음 요구한 건 다름 아닌,
“근 일주일 치 리플레이 파일을 모두 보여주십시오. 선수별로 날짜별로 잘 정리되어 있겠지요?”
모든 선수의 연습 기록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코칭스텝과 선수들이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한태곤이 강력히 요구하자, 그제야 코칭스텝은 선수들에게 각자 리플레이 파일을 가져오게 했다.
한태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설마 했는데 아직도 팀 운영이 주먹구구식이었다.
소속 선수들 리플레이 파일을 코칭스텝이 따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니.
그래가지고 리플레이 파일이 유출되는 위험은 어떻게 예방할 것이며, 선수들의 전력 분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선수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각자 리플레이 파일을 웹 저장소로 보냈다.
선수 별로, 날짜 별로 정리된 리플레이 파일의 양을 보며 한태곤은 더욱 기가 막혀 졌다.
‘연습을 하긴 한 건가?’
하루에 연습 게임을 한 횟수가 매우 적었다.
이 정도면 거의 먹고 자고 놀았다는 뜻이었다.
슥 둘러보다가 어이가 없어진 한태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다 자기 PC 켜!”
순한 모범생 같은 이미지였던 한태곤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지자 선수들은 혼비백산했다.
한태곤은 선수들의 PC를 하나하나 둘러보며, PC에 설치된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다,
온라인 축구 게임에 FPS 건 슈팅 게임에…….
스페이스 크래프트 외에 팀원끼리 함께 노닥거리며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한 가득이었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겠습니다. 혹시 미치셨습니까?”
한태곤이 팀 넥스트의 모두에게 물었다.
“여기가 PC방입니까! 이걸 팀이라고 인수해달라고요? 지금 누가 PC방 인수하러 온 줄 아십니까?”
싸늘해진 연습실.
코칭스텝이나 선수들이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태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선수들의 리플레이 파일을 쭉 살폈다.
전부 살펴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새 구단주님의 뜻을 전달하겠습니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한태곤이 말했다.
“모든 선수 및 코칭스텝의 재계약이 불가피합니다.”
“…….”
“일단 코칭스텝은 전원 해고.”
코치들이 하늘이 무너지는 얼굴들이 되었다.
하지만 지어놓은 죄가 있는지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태곤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최욱, 변재현.”
“예!”
“예!”
호명된 두 선수가 손을 들었다.
최욱과 변재현은 둘 다 1군 주전 선수였다.
“1군부터 연습생까지 통틀어 연습량이 상식적인 수준이었던 사람은 이 두 선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분은 연봉이 30% 인상된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최욱과 변재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개판이 된 분위기 속에서도 스스로 연습을 하며 자신을 갈고 닦은 선수는 이 둘밖에 없었다.
그 대가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호명되는 선수는 30% 삭감된 조건으로 재계약할 대상입니다. 물론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원한다면 타진해 주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1군 선수와 2군 선수의 절반가량이 호명되었다.
호명된 선수들이 털썩 주저앉거나 얼굴을 싸쥐고 괴로워했다.
싫으면 다른 팀에 가라는 뜻.
그러나 갈 수 있었으면 진즉에 갔을 터였다.
다들 어느 팀에도 영입 제의를 받지 못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신은 팀을 인수하지 않을 것이다. 팀이 해체되는 것이다.
한태곤은 저승사자처럼 선고를 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호명하는 인원은, 연습량으로 미루어보아 더 이상 팀의 연습생으로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분들입니다.”
한태곤의 목소리에 더욱 날이 섰다.
누구보다도 기회에 목말라야 하고 간절히 노력해야 할 연습생의 신분이면서도 연습을 하지 않았다.
성품의 문제든 다른 사정이 있건, 이제라도 프로게이머 말고 다른 진로를 찾는 게 본인들 인생에도 나을 터였다.
호명받을 때마다 연습생들이 멍해지거나 울먹였다.
“이 조건에 응한다면, 연습실 및 숙소의 전세금 일체와 각종 장비 값을 지불하고 팀을 인수하겠다고 새 구단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다.
강경한 한태곤의 요구사항은 모두 이신의 요구였다.
“그럼 여러분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 * *
[이신, 팀 넥스트 인수] [감독과 코칭스텝, 소속 선수 다수 방출 ‘뼈를 깎는 인수’] [구단주 된 이신, 팀의 신임 감독으로 ‘제로섬’ 한태곤 내정] [선수, 코치, 감독 이어 구단주 된 이신] [해체 위기의 팀 넥스트, 이신이 인수했다] [이신의 새 팀에 취임한 한태곤 감독 “새 팀 만들 것. 1부 리그 잔류 목표”]팀 넥스트의 새 팀명은 나중 문제였다.
감독으로 취임한 한태곤은 중국에서 알고 지내던 은퇴 선수나 코치를 코칭스텝으로 영입했다.
선수 관리 시스템은 SC스타즈의 것을 도입하기로 했다. 왕춘 감독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덕에 쉽게 성사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전력 확충.
즉시 전력감 선수를 영입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기사회생하여 새 출발을 하는 팀에게 그런 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선수를 키우고 발굴하겠다.’
프로리그 4라운드를 치르고 승강전을 치르기까지의 기간은 약 반년.
그 안에 한태곤 감독은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일 생각이었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선수를 효율적으로 육성시키면,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도 성과를 낼 수 있을 터였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한태곤 감독의 일이었다.
일단 팀 인수 문제가 일단락된 이상, 이신은 월드 SC 그랑프리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 때문에 경기 준비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신은 아주 철두철미한 타입으로 보였지만, 한태곤 감독은 그럼에도 걱정이 들었다.
중국 통인 한태곤 감독은 이신의 4강전 상대인 지우펑을 잘 알았다.
‘아주 독한 승부사지.’
중국에서 가장 연습량이 많은 선수를 꼽으라면, 모든 관계자가 지우펑을 꼽는다.
상대를 이길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파고들고야 만다.
절대 못 이긴다는 순간에서도 판을 엎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걱정되는군.’
한태곤 감독은 이신의 준비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토록 오랜 세월 정상에 군림하다 보면 상대를 얕보는 습성이 없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우펑은 도전자의 입장에서 불가능에 도전할 때 더욱 강해진다고 스스로 인터뷰로 밝힌 적도 있을 정도.
이신이 지우펑에게 심리상의 허점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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