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
3화 그레모리의 부름(3)
“이신? 당신의 이름이 이신인가요?”
“예.”
“당신은 카이저 아니었던가요?”
“그건 제 별명 같은 겁니다.”
“그랬군요.”
그레모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럼 이제 제가 계약을 이행할 시간이군요?”
아마도 손목 치료를 뜻하리라.
“이리로 오세요.”
이신은 그레모리에게 다가갔다.
서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더 자세히 보였다.
완벽한 비례를 이루는 이목구비에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이신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가 귀엽다는 듯 그레모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올렸다.
섬섬옥수 같은 손길이 이신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이윽고 그레모리가 말했다.
“시력 저하와 안구 건조증이 있네요. 허리는 디스크 초기 증상에, 손목은 다치기 전에 이미 수근관 증후군(손목터널증후군)이 있었고요.”
“……네?”
“어쩌다가 이렇게 건강이 안 좋아지셨나요? 가만히 앉아서 눈을 장시간 뜬 채로 손가락만 격렬히 움직인 것 같아요.”
‘그 말씀 그대로였습니다만…….’
이신은 그제야 습격 전에 이미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였음을 깨달았다.
프로게이머의 직업병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모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제가 치료해 드릴 테니 염려 놓으세요. 그리고 계약한 기념으로 다시는 이런 증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 드리죠.”
“가,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러한 직업병이 일어나지 않게 해준다니 이신으로서는 땡큐였다.
파앗!
그녀의 손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와 이신의 몸에 스며들었다.
이신은 자연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속을 따스한 어떤 이물질 같은 에너지가 헤집고 다니는 기분을 느꼈다.
잠시 후 그녀가 손을 떼며 말했다.
“이제 확인해 보세요.”
그제야 이신은 눈을 떴다.
‘엇?’
화들짝 놀란 이신.
눈앞이 방금 전보다 훨씬 또렷했기 때문이었다.
‘내 눈이 원래 이렇게 좋았나?’
세상이 달라진 느낌.
마치 뿌연 안개가 걷힌 듯한 말끔한 기분이었다.
‘손목은?!’
이신은 오른손목을 조심스럽게 돌려보았다.
손목이 놀라우리만치 부드럽게 돌아갔다. 아무런 통증도 없이.
‘이럴 수가!’
믿기 어려웠다.
그동안 그렇게도 그를 절망시켰던 손목이 단숨에 나아버렸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손목이 낫게 해달라고 얼마나 신께 빌었던가.
‘이 여자는 이렇게 쉽게……!’
그제야 이신은 세삼 눈앞의 그레모리가 대단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약속대로 손목뿐만이 아니라, 온몸의 문제점을 알려주고 말끔히 치료해 주었다.
‘방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약속은 지키는 여자 같다.’
어찌 되었든 치유를 받은 그의 몸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상쾌한 기분.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육체의 문제들이 사라져 버린 덕분이었다.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이제 제가 계약을 이행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이신이 말했다.
“서열전에 대해 알아야겠습니다. 다음 상대는 누구이며, 우리의 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의 적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레모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은 서열전의 탄생 배경부터 설명해야겠네요.”
그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서열전의 기원은 오래전, 천계의 천사들과 크게 다퉜던 천마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마대전에서 패배한 뒤, 자신만만했던 마계는 충격에 빠졌다.
분명 마계는 천계보다 강했다.
하지만 천사들의 주도면밀한 전략에 악마들은 형편없이 패퇴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에 능한 쪽은 천사들이었던 것이다.
마신(魔神) 루시퍼는 크게 분노하여 선포했다.
“72악마군주의 서열을 전쟁에 걸맞게 재구성하겠다!”
그리하여서 72악마군주는 끊임없이 서로 서열 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전쟁에 서투른 악마군주는 자연히 몰락케 하는 조치였다.
하지만 서열 재정립을 위해 서로 싸우면 마계의 힘이 악화될 뿐이었다.
그것을 막고자 루시퍼는 고심 끝에 특별한 전쟁 방식을 고안해 냈다.
“그리하여서 지금의 서열전이 탄생했죠. 이 서열전은 당신이 지금껏 알고 있던 전쟁과 많이 다를 거예요.”
그러면서 그레모리는 서열전의 규칙을 모두 가르쳐 주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이신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그야말로 제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전쟁 방식입니다만?’
72악마군주의 서열전.
그것은 그가 미쳐 살던 실시간 전략 게임(RTS)을 쏙 빼닮아 있었다.
그레모리는 착각으로 인하여 더없이 완벽한 계약자를 데려온 셈이었다.
***
72악마군주가 벌이는 서열전은 실시간 전략 게임(RTS)을 쏙 빼닮아 있었다.
전쟁으로 마계의 땅이 피폐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열전은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치러진다.
그런 차원 공간이 총 12가지.
‘이건 뭐 맵(Map)이로군.’
서열전은 도전으로 성립된다.
도전 자격은 보유한 마력이 상대의 9할일 것. 그 도전만 갖추면, 상대방은 결코 도전을 피할 수 없다.
서열전이 결정되면 양측은 동일한 마력을 배팅하며, 서열과 세력을 떠나 공평한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한다.
물론 완전히 공평하지는 않았다.
도전을 피할 수 없는 대신, 피도전자는 두 가지 권리가 있었다.
1. 전장을 고를 수 있다.
2. 배팅할 마력량을 1만~5만 사이에서 결정할 수 있다.
원하는 전장에서 싸울 수 있으니 지리적 이점이 있고, 이길 것 같으면 많은 마력을, 자신 없으면 적은 마력을 마음대로 배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배팅된 양측의 마력은 마력석이 되어 전장에 유포된다.
악마군주 스스로가 나서도 되지만, 대체로 서열전을 치르는 것은 그들의 계약자였다.
계약자들은 맵에 유포된 마력석을 채집하고, 모은 마력으로 싸움에 쓸 전사들을 소환한다.
당연히 마력석을 많이 모을수록 병력도 많아진다.
‘이건 자원 캐서 유닛 뽑는 거잖아?’
전쟁은 상대가 전멸하거나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게임은 자격을 갖춘 도전자가 바로 위 서열의 군주에게 도전했을 때 성립된다.
2. 맵과 배팅 마력량은 피도전자가 정한다.
3. 게임은 군주나 군주의 계약자가 치른다.
4. 배팅된 마력은 맵에 유포되며 양측 계약자는 유포된 마력을 채집해 유닛을 생산, 전쟁을 치른다.
5. 승자는 배팅된 전 마력을 갖는다.
서열전의 룰을 쭉 듣다가 이신이 물었다.
“최하위이신 그레모리 님은 도전을 받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군주가 되고 싶어 하는 상급 악마들의 도전을 받아야 해요.”
그레모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이미 도전 자격을 갖춘 지 오래인 상급 악마가 몇 명 있어요. 그들은 하나같이 군주의 지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