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돌발 사태(3)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자 이윽고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
화려한 궁전의 1층 홀.
눈앞에는 두 존재가 보였다.
굳이 ‘존재’라 표현한 이유는 그중 하나는 어딜 봐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개의 형상에 등에는 새의 날개를 달았으며, 발 또한 날카로운 새의 발톱이 흉악스럽게 돋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인물은 백인 사내였다.
이신과 비슷한 키의 사내인데 몸집은 더 크고 건장했다.
어딜 봐도 악마군주와 계약자였다.
그리고 이신의 옆에는 권좌에 앉아 있는 그레모리가 보였다.
그레모리는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이신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도전을 받았군요.”
“네, 당분간은 쉴 시간을 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해요.”
“어쩔 수 없지요.”
72악마군주의 축제를 통해 서열 23위로 껑충 뛰어올랐던 그레모리였다.
축제에서 이신은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활약을 떨친 바 있었다.
이신이 대단한 실력자라 신참 계약자라고 얕볼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도전이 없을 줄 알았다.
‘정말 곤란하군.’
박영호와 결승전을 치르던 도중이었다.
2세트까지 치렀고 2-0으로 승리가 목전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그런데 그 중간에 이렇게 마계로 불려와 서열전을 치르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하는 수 없나.’
이왕 도전을 받게 되었으니 빨리 끝내버리고 현실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도전 받는 입장이라 전장을 선택할 권리도 이쪽에 있다.
별다른 준비 없이도 익숙한 전장에서 원하는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주도권이 있었다.
“상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일단 저들은 악마군주······.”
그레모리가 뭐라고 요약 설명을 하려 할 때였다.
돌연 날개 달린 개의 형상을 띤 악마군주가 말했다.
-내가 직접 인사를 하지. 나는 서열 24위의 위대한 악마군주 글라샬라볼라스(Glashalabolas)다. 그리고 이쪽은 나의 계약자 리처드지.
“반갑군, 동방 출신의 계약자여.”
리처드라 소개된 사내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리처드?”
이신이 물었다.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잉글랜드의 리처드란 바로 나를 일컫는 말이다.”
잉글랜드에 리처드라는 왕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소개하며, 악마군주의 계약자로 발탁될 만한 인물은 한 사람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사자심왕(Lionheart)?”
“그렇게 불렸지.”
이신이 알아보자 리처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필이면.’
이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자심왕 리처드 1세.
그는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에 맞서 활약한 전설적인 군주였다.
그런 명성 때문에 압도되어서 이신이 낭패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나폴레옹, 알렉산드로스 등등 그보다 더 대단한 위인도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다만 리처드 1세는 이신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유형의 계약자였다.
쉽게 표현하자면, 동양에 항우가 있다면 서양에는 리처드 1세가 있다면 보면 된다.
수만 명이 얽힌 전장에서 혼자의 용맹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을 정도였다면 설명이 될까?
한마디로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맹장인 것!
‘저런 타입이 깜짝 전략을 들고 나오면 곤란해지는데.’
그런데 아마도 필히 리처드 1세는 회심의 전략을 준비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72악마군주의 축제를 통해 위명을 떨친 이신에게 도전하는 위험을 무릅썼을까?
리처드 1세는 십자군 전쟁 때도 보급에 신경 쓰는 등 성품과 다르게 의외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었다.
“훌륭한 아들도 아니었고, 훌륭한 남편도 아니었으며, 훌륭한 왕도 아니었으나, 용감하고 빛나는 군인이었다.”
영국의 역자학자 스티브 런치만이 평한 말이었다.
다른 모든 게 엉터리였지만, 오직 전쟁에 대해서는 리처드 1세의 능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종족이 뭡니까?”
이신이 물었다.
그레모리가 답하려 했을 때, 리처드 1세가 먼저 말했다.
“오크다.”
‘그럴 것 같았다.’
살아생전에 용맹으로 유명했던 계약자들은 주로 종족 선택을 오크로 하는 경향이 강했다.
병력 하나하나가 강력하면서 용맹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종족이었기 때문.
‘조아생 뮈라처럼 오크 노예 사도에 빙의해서 정찰 단계에서 싸움을 거는 수법이라도 쓰면 곤란하겠군.’
이신이 당한 유일한 1패는 조아생 뮈라의 그 같은 기행적인 전략이었다.
리처드 1세도 비슷한 전략을 준비했다면 이신으로서는 단단히 각오를 해야 했다.
파앗!
“이제 전장을 고르고 배팅할 마력량을 정해야 해요.”
그레모리는 마력으로 막을 둘러 악마군주 글라샬라볼라스와 리처드 1세가 대화를 듣지 못하게 차단하며 말했다.
이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장은 제 3 전장 리벤이 좋겠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저들이 왜 굳이 우리에게 도전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야 바로 위 서열이 우리니까 그렇죠.”
그레모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단순한 대답을 하는 그 모습이 푼수 같고 귀여웠지만,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짧은 시간에 가파르게 서열이 상승한 우리의 행보를 보면, 조금만 기다려도 보다 위로 올라갈 거란 걸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야 그런데······ 아! 조금 기다렸다가 더 만만한 계약자와 붙어도 될 텐데, 하필 축제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카이저에게 도전한 건 확실히 이상하네요?”
“예. 그렇다면 이 인근 서열의 다른 계약자들이 저보다 더 두려운 것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최상위 서열에 있는 계약자가 아니면 제 적수가 그다지 없어 보였으니까요.”
뻔뻔스럽게 자화자찬을 하는 이신.
하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내린 결론이란 게 이신다웠다.
그레모리는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악마군주 아가레스님조차도 카이저를 인정했으니까요.”
그레모리는 그저 이신에 대한 칭찬 일색! 이신의 말이면 뭐든 철썩 같이 믿을 태세였다.
이신이 계속 말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그게 뭐죠?”
“제가 고르는 종족이 휴먼이라는 것.”
“아······!”
“리처드 1세는 아마 문득 어떤 영감을 얻어서 기발한 전략을 구상했을 겁니다. 그 전략은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가장 잘 통할 상대 종족은 휴먼이었을 테지요.”
상세한 분석에 그레모리가 감탄하는 가운데, 이신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겁쟁이는커녕 패기 있는 성격인 리처드 1세는 호승심이 들었을 겁니다. 축제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제가 상대라 해도, 이 전략이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이신이 계속 말했다.
“그래서 고른 전장이 제 3 전장 리벤입니다. 본진 출입구가 좁아서 초반 방어에 용이한 전장이라, 리처드 1세 같은 맹장을 상대로 효과적입니다.”
“그 짧은 순간에 거기까지 생각을 하셨군요. 역시 대단하세요. 그럼 마력을 얼마나 배팅할까요?”
“그게 문제입니다만, 혹시 양측의 마력 차가 어느 정도입니까?”
“제 마력 총량이 145만 9천, 글라샬라볼라스는 139만 8천으로 매우 근소한 차이에요.”
백만이 넘는 마력을 지닌 상위권에서 6만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것은 매우 근소한 것이었다.
이신은 가만히 계산을 해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3만으로 가죠.”
이신의 말에 그레모리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하필 3만이죠? 그건 우리가 졌을 시 아슬아슬하게 서열이 뒤바뀌는 위치인데요.”
패하면 3만 마력.
그리고 리처드 1세가 소원으로 그레모리에게 마력을 요구하면, 1%의 마력을 내줘야 한다.
그럼 아슬아슬한 격차로 양측의 서열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저쪽은 카이저의 말마따나 특별한 전략을 준비했을 테고, 반면에 카이저는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불려왔죠. 우리가 패할 위험을 감수한 배팅이라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서 보다 적게 배팅을 하는 게 어떨까요?”
그레모리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신이 자신이 있었다면 무조건 최대치 5만 마력을 불렀을 것이다. 빨리 최상위로 가고 싶어 하니 말이다.
그런 그가 3만을 이야기했다면 패배했을 시의 리스크를 감안해서 좀 더 줄여서 배팅했다는 뜻.
그런데 왜 하필 서열이 바뀌게 되는 수치일까?
2만 8천 정도만 배팅해도 서열은 지킬 수 있는데 말이다.
“패배의 위험을 감수한 선택입니다.”
“카이저의 생각을 듣고 싶네요.”
이신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건 제 개인적으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카이저의 부탁이요?”
“만일 제가 패했을 때, 2만 8천 마력만 배팅했다면 졌다 해도 서열은 여전히 우리가 더 높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죠.”
“그러면 여전히 마력 배팅도 전장을 고르는 권한도 우리에게 있어 유리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저쪽이 도전을 계속할 때의 일입니다.”
“아, 한 번 이겨서 마력을 얻을 걸로 만족하고 그냥 물러날 수도 있겠군요?”
준비했던 회심의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리처드 1세는 그걸로 만족하고 웃으며 물러날 수 있었다.
악마군주 글라샬라볼라스도 엄청난 상승세를 뽐낸 그레모리 측과 계속 2차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을 테고 말이다.
한마디로 준비한 전략으로 그레모리에게서 마력을 한 번 뽑아낸 다음 빠지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승세의 그레모리에게 일격을 선사했다는 업적을 쌓았으니, 다른 악마군주로 하여금 두려움을 줄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서열이 바뀌어서 이쪽이 도전하는 입장이 된다면, 저들은 도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레모리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윽고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눈웃음을 지었다.
“카이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어요.”
“······.”
“패배했을 때 카이저가 갖는 리스크 때문이죠?”
“그래서 부탁드린다고 하는 겁니다.”
그랬다.
만약에 패배를 하게 되면, 다음 서열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이신은 패배의 대가를 치른다.
그 대가란 바로 멈춰졌던 현실세계의 시간이 흐르는 것.
즉, 현실세계에서 이신의 몸은 잠든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이다.
결승전 도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주 큰 난리가 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승리를 코앞에 두고 기권 패로 처리되어서 금메달을 놓친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도전해서 승리를 따낸다면, 현실세계에서 이신이 정신을 잃은 시간은 불과 몇 분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정도면 그냥 단순한 해프닝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레모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셔도, 제가 어떻게 카이저의 제안에 따르지 않겠어요? 할게요, 3만 마력으로.”
이윽고 그레모리는 글라샬라볼라스에게 전장과 3만 마력 배팅을 통보했다.
그들은 쾌히 이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서열전이 결정되었다.
이신으로서는 갑작스럽게 치르게 된 서열전이라 많이 부담스러웠다.
‘높은 서열에 올라갈수록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질 것이다.’
이신은 나름대로 각오를 했다.
겨우 이런 일로 당황할 생각은 없었다.
첫 싸움에서 패배하더라도 리처드 1세가 준비한 전략과 그 대응책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가볍게 이겨버리고 돌아가 결승전을 마저 치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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