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투혼(3)
그것은 박영호가 준비했던 노림수였다.
2세트에서도 이신은 정석적인 빌드오더로 출발하고, 철통 같이 수비하면서 병력을 모은 뒤 충분히 모인 군대를 끌고 진출했다.
그리고는 이를 분쇄하기 위해 박영호가 준비한 전략에 대해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한마디로 디펜스-카운터의 컨셉이었던 것이다.
이신이 마음먹고 수비를 하니 박영호로서는 찌를 곳이 없었고, 타개책을 꺼내드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 카운터를 치며 수 싸움에서도 우위를 보였다.
그렇다고 박영호도 똑같이 수비적으로 운영하며 장기전을 가자니, 1세트 때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괴물이 인류에게 패배하고 마는 결말에 이를 뿐이었다.
2세트가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박영호는 핀치에 몰린 상태였다.
1, 2세트 연속으로 노림수를 읽히고 카운터를 맞았기 때문에 뭘 해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 직후에 3세트가 정상적으로 시작되었더라면, 박영호는 지금처럼 과감한 올인 전략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 아픈 게 좋아할 일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다행이었어.’
박영호는 안도했다.
이신이 쓰러진 해프닝이 발생한 동안 박영호는 침착하게 3세트를 준비했다.
덕분에 2세트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아예 초반 올인으로 때려눕혀버리자고 굳게 마음을 다잡을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
무너지려는 멘탈을 다잡고 3세트에 임한 박영호에게, 이신은 2세트와 똑같은 1병영 더블 빌드를 꺼낸 것.
시간이 지나면 이신이 철통 방어를 펼쳐서 파고들 수 있는 모든 여지를 다 막아버릴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박영호는 가차 없이 바퀴 올인으로 승부를 내버렸다.
‘컨디션이 안 좋구나, 역시.’
자신이 던진 미끼에 걸러든 이신을 보고 박영호는 알 수 있었다.
2세트까지 박영호의 노림수를 모조리 꿰뚫어보았던 날카로운 감각이 무뎌졌다는 뜻이었다.
그럴 수밖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자마자 경기를 치렀는데 이신의 컨디션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박영호가 양심의 가책이나 배려심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난 상처가 보이면 더 후벼 파는 놈이야.’
승리를 향한 끝없는 집념.
박영호는 벼랑 끝에서 찾아온 역전의 실마리를 전혀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신이 건강 문제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그 점을 철저히 공략하는 것이야말로 프로로서의 박영호의 본분이었다.
4세트 맵은 신의 귀환.
이신의 복귀를 기념하여 SC코퍼레이션에서 제작한 2인용 맵이었다.
4세트에서 쓸 전략은 이미 SC스타즈의 전략연구팀과 상의하여 짜놓은 상태.
하지만 박영호는 그것을 갈아엎었다.
‘운영 싸움을 하고 싶다 이거지?’
이곳에서 이신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박영호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이신도 4세트 전략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원래 4세트 맵 신의 귀환에서 준비한 전략은 8병영 치즈 러시 후, 2항공 스텔스 전투기였다.
한 번 가볍게 치즈 러시를 시도해서 박영호가 방어로 일벌레를 동원하게 만든다.
그 일벌레를 되도록 많이 잡아 손해를 입힌 채 시작한다.
그 직후 고속전차를 찔러 넣어서 다시 한 번 견제.
그리고서 항공정거장 2채를 짓고 스텔스 전투기를 뽑아서 제공권 장악 및 견제.
1, 2, 3세트까지는 방어적으로 했으니, 4세트에서는 공격성이 투철한 운영을 펼치려 했던 것이다.
이신이 사전에 미리 구상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4세트까지 왔다면 스코어는 2-1로 유리한 상황이어야 했다.
박영호의 엄청난 역량과 정찰 운 등의 변수에 의해 1패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승리를 목전에 둔 여유로운 상황일 거라고 상정했다.
일단은 시나리오대로 2-1로 4세트까지 오긴 했다.
하지만…….
‘결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지.’
스코어는 여전히 리드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마계에서 서열전을 치르고 오느라 다전제 대결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태.
1, 2세트부터 이어왔던 심리전과 기 싸움의 맥을 놓친 탓에, 3세트는 도리어 심리적으로 박영호에게 압도당했다.
다전제 불패 신화의 이신의 시나리오에 ‘중간에 마계에 불려간다’는 내용은 없었다.
심지어 서열전 패배 리스크까지 당해 현실세계에서 난리가 벌어진다는 시나리오는 더더욱 없었다.
‘이 타이밍에 2인용 맵에서 치즈 러시는 너무 뻔해졌다.’
아직 스코어를 리드하고 있을 때, 한 번쯤 치즈 러시를 걸어본다?
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이다.
심지어 박영호는 이신의 컨디션이 극히 안 좋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되도록 일찍 승부를 내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고 박영호도 예상할 터.
‘역시 정석밖에 떠오르지 않는군.’
2세트, 3세트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출발하고, 철저한 방어를 갖춰나가며 장기전을 지향한다.
박영호의 노림수를 찾아내 하나둘 분쇄하며 장기전을 만들면, 유리한 쪽은 단연 인류였다.
신의 귀환은 자원이 많지 않은 맵이라 더더욱 장기전에서 괴물이 고사(枯死)당하기 쉬웠다.
3세트 같은 올인 전략만 주의하면 무난하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바퀴 올인을 또 시도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이지.’
* * *
4세트, 신의 귀환.
이신은 평범하게 병영을 짓고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구축했다.
앞마당은 병영과 군량고 2채로 심시티를 이루었다.
하지만 반면에 박영호는 상당히 공격적인 빌드 오더로 시작했다.
광산과 수정관을 먼저 짓고, 그다음에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갔다.
그렇게 해서 일찌감치 뽑은 바퀴 6마리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이신의 정찰을 커트하기 시작했다.
-그랑프리 중계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중요한 경기일수록 첩보전이 정말 치열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특히 저 카이저를 상대로 승리한 보기 드문 사례들을 살펴보면, 카이저의 정찰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그 정찰을 역이용해 치밀한 속임수를 썼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정도까지 해야 카이저를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앞선 3세트에서도 러너가 바퀴의 숫자를 숨기고 미끼를 던져서 멋지게 카이저를 속여 냈었죠. 그런 플레이가 한 번 더 나와야 합니다, 러너!
박영호가 바퀴를 뽑은 것을 확인한 이신은 심시티를 해놓은 앞마당 통로에 수비용으로 건설로봇을 1기 더 세워놓았다.
6마리의 바퀴로 아무런 소득을 못 보게 만들면, 이신이 보다 자원적으로 부유한 출발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실제로 바퀴들이 한 번 심시티의 빈틈을 파고들며 난입을 시도했지만, 건설로봇의 블로킹과 보병들의 사격에 의해 저지되었다.
-키엑!
-켁!
바퀴 2마리를 잃고서 박영호는 조용히 거리를 두고 한 걸음 물러났다.
-일단 출발이 좋습니다, 카이저. 안전하게 심시티를 해놓은 채, 기갑정거장을 지으며 순조롭게 테크 트리를 올립니다.
-오, 그런데 러너의 빌드 오더가 범상치 않은데요?
박영호가 본진에 짓고 있는 건물은 다름 아닌 독침충 둥지였다.
-쐐기충을 뽑아서 견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고 인류도 그걸 가장 까다로워하는데, 러너는 쐐기충이 아니라 독침충을 택했습니다.
-독침충을 촉수충으로 변태시킨 후에 일찌감치 공격을 펼치겠다는 뜻입니다. 부화실도 여전히 2채뿐! 이건 올인이에요!
-가난한 출발을 한 러너이기 때문에 이 노림수가 실패하면 승부가 거의 기운다고 봐야죠?
-하지만 아직까지 괜찮습니다. 바퀴들이 계속 앞마당 앞에서 얼씬거리며 카이저가 정찰을 보내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카이저는 정찰보다는 레이더가 개발되면 러너의 체제를 확인하려 할 겁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늦죠! 러너의 공격은 그전에 시작될 테고요!
그런데 그때, 이신이 건설로봇 2기를 정찰에 투입했다.
1기가 앞서서 밖으로 나와 바퀴들을 유인했다.
그 틈을 타 다른 1기가 쏜살같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오오!”
관중석에서 가벼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퀴들을 유인한 건설로봇은 임무를 완수하고는 도로 안으로 돌아갔다.
재치 있게 건설로봇 1기를 밖으로 빼낸 이신은 그대로 박영호의 진영으로 달려갔다.
바퀴들도 그제야 그 건설로봇을 쫓아오며 어떻게든 정찰을 저지하려 들었다.
부화실만 펴진 채 자원 캐는 일벌레는 1마리도 없는 앞마당만 봐도, 이신은 박영호가 무언가 올인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때문에 바퀴들은 그야말로 열심히 달리며 건설로봇과 술래잡기를 했다.
계속 따라붙으며 한두 대씩 대미지를 넣는 바퀴들이나, 이를 요리저리 피해 다니며 계속 움직이는 건설로봇이나 진땀 흘리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박영호의 진영에서 독침충 3마리가 생산되었다.
독침충이 건설로봇에게 발견되면 끝장이었다.
박영호는 약간 생각을 바꿨다.
바퀴들이 건설로봇을 북쪽으로 조금씩 몰아갔다. 약간이라도 더 멀리 우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틈을 타서 독침충 3마리는 밖으로 나와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건설로봇은 독침충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아아! 못 봤습니다!
-러너의 순간적인 재치였습니다! 저걸 못 보면 일단 올인인 걸 알아도 바퀴랑 같이 오는 게 독침충인지 쐐기충인지 모르죠!
건설로봇은 박영호의 앞마당만 확인한 채, 뒤이어 생산된 바퀴들에게 둘러싸여 죽었다.
하지만 앞마당에 일벌레가 없는 것을 본 이신은, 즉각 자신의 앞마당 통로에 참호를 짓기 시작했다.
-카이저도 위험한 낌새를 알아챘습니다!
-참호를 지어 디펜스를 보강하면서, 기갑정거장도 추가로 짓습니다!
-그리고 러너도 마침내 칼을 뽑아듭니다!
대량생산된 바퀴 떼가 일제히 달렸다.
맵 중앙에서 약간 남쪽에 치우친 곳에서도 독침충 3마리가 촉수충으로 변태를 완료했다.
이신은 완성된 레이더로 박영호의 본진을 찍어보았다.
그제야 확인되는 독침충 둥지!
독침충+바퀴 올인 러시임을 깨달은 순간, 박영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키엑! 켁!
-촤촤촤?!
바퀴들이 앞에서 건물을 때리고, 뒤이어 땅속에 들어간 촉수충이 있는 힘껏 촉수를 뻗었다.
-퍼어엉!
군량고 1채가 삽시간에 파괴되고, 그 뒤에 있던 참호도 촉수에 같이 긁혀서 불타올랐다.
건설로봇들이 일제히 붙어 수리하기 시작했지만, 촉수충과 바퀴 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진격했다.
-촤촤?!
-퍼엉!
-으악!
-키엑!
-투타타타타타!
이리저리 뒤엉킨 격전이 펼쳐졌다.
때마침 생산된 기동포탑이 싸움에 합류했다.
건설로봇들이 춤을 추며 블로킹을 하지만, 촉수충들의 촉수에 의해 계속 피해가 속출했다.
그래도 가까스로 막아지나 싶었을 즈음이었다.
“와아아아아!!”
추가 생산된 바퀴들이 합류했다.
끈질기게 막아내는 이신의 초반 디펜스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합류하는 바퀴들도 박영호의 집요한 공격을 대변했다.
-꾸엉!
-꾸어엉!
그 와중에 촉수를 피해 다니며 촉수충을 잡는 보병 컨트롤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꾸만 자아냈다.
하지만 계속 나타난 바퀴들에 의하여 그나마 저항하던 보병들도 전멸.
1마리밖에 안 남은 촉수충과 바퀴 떼가 함께 본진으로 돌입했다. 박영호도 처절하긴 마찬가지였다.
-Kaiser: GG.
이신의 GG 선언이 뜬 순간, 박영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의 희열을 드러냈다.
“아자!!”
박영호의 외침!
-러너!! 초인적인 카이저의 디펜스를 끝끝내 뚫어내고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2대 2! 스코어가 이제 2-2입니다!
-연패의 벼랑에서 일어나 기어코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 갔습니다! 정말 러너도 대단합니다! 지독한 투혼입니다!
2연속 올인.
1, 2세트의 운영 대결에서 연패하고는 3, 4세트 모두 운영보다 올인을 시도했다.
박영호가 체면 불구하고 그토록 우악스럽게 연속 올인으로 덤벼들 줄은 이신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온 가운데, 마지막 5세트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신은 어쩌면 이번 금메달을 놓치는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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