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31
431화 피로스의 군단(2)
이신이 마계에서 상대했던 계약자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엘프는 단연 한신이었다.
전술적으로도 병력 배치가 뛰어났고, 그러면서 전체적인 전쟁 판도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가 일품이었다.
비록 일대일 대결이 아니어서 실력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한신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시작 지점이 8군데나 되는 거대한 전장을 전부 아우르는 전략을 볼 때, 한신은 굉장히 치밀한 성격이었다.
그가 일으키는 소소한 전투 하나하나가 모여서 전체적인 국면을 좌우하는 변수가 된다.
사실 그런 스타일이 가장 무섭다.
e스포츠에서도 그런 넓은 시야와 치밀함을 갖추고 있어야 톱클래스에 이를 수 있다.
‘피로스는 아마도 그와 정반대의 성향일 거다.’
전단이 들려준 서열전 내용을 돌이켜보면 그런 결론이 들었다.
국면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와 치밀성은 부족하다.
하지만 전술적인 능력만큼은 대단히 뛰어날 것이다.
계속 일으키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계속 이득을 챙긴 끝에 승리하는 공격적인 스타일인 것.
하지만 단지 그것뿐일까?
“여기까지만 말하면 공격성이 극단적이고 시야가 협소해 소탐대실하는 자라 여길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방심하지 말게. 의외로 그는 자네 생각과 다를 걸세.”
전단은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전략적, 외교적 식견 없이 전쟁만 일삼다가 사방에 적만 만들고 전장을 배회한 끝에 전사한 피로스의 일생만 보아도 그런 편견이 생길 법했다.
하지만 전단의 그러한 충고는 다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살아생전의 인생과 계약자로서의 서열전 스타일을 고스란히 대입시킬 수는 없다는 건가.’
손실만 가득한 승리라는 뜻이 담긴 고사의 주인공인 피로스이지만, 서열전의 전장은 살아생전의 무대처럼 넓지 않다.
거기다가 일대일.
어쩌면 피로스에게는 아주 단순명쾌한 싸움일 수 있었다.
어쨌든 피로스의 고유 능력인 ‘승리의 군단’의 효과를 보면,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진다는 뜻임은 분명했다.
그것은 참으로 골치 아픈 사실이었다.
이쪽이 싸워주지 않고 수비적으로 나선다면, 오히려 그때부터 피로스의 페이스에 말려들 위험이 있었다.
기동성 좋고 변수를 만들어내는 병과가 많은 엘프에게 수비적인 휴먼은 오히려 요리하기 좋은 먹잇감이다.
이신 자신이 매우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프로게이머였다.
수비적인 상대를 수없이 깨뜨린 전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진영을 견제해서 맞불을 놓는 식으로 할까?’
피로스가 공격할 때마다, 이신도 똑같이 그의 진영을 급습해 피해를 주고받는 패턴이 있었다.
이신은 그런 류의 난전에 자신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군단이 가지는 약점을 생각해 보라.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면 효과가 사라진다.
그것은 수비가 약점이라는 뜻임이 명백했다.
그랬다.
너무나도 명백했던 것이다.
그런 명백한 약점을 극복 못한 채, 피로스가 19위라는 높은 순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전단도 생각과 다를지 모른다고 충고했었다.
‘그렇다면…….’
이신은 고심 끝에 결심을 내렸다.
어떤 식으로 피로스를 상대할지 결정했다.
“질 드 레.”
“예, 주군.”
“엘프로 내 연습을 도와야겠다.”
“알겠습니다. 이런 날이 곧 올 거라 생각해서 평소에도 자주 연습해 뒀습니다.”
과연 이신의 오른팔인 질 드 레였다.
19위에 피로스가 있는 것을 알고는, 이신의 모의전 상대가 되기 위해 엘프를 연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나머지 사도들도 중급 악마로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이신은 일단 사도들을 모두 중급 악마로 탈바꿈시키는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아직 중급 악마가 아닌 사도는 마르몽과 서영 두 사람이었다.
[오귀스트 마르몽(휴먼, 공병)무기: 사브르(공격력 +5%)
방어구: 가죽갑옷(방어력 +5%)
능력: 빙의, 명중률(주변 아군의 원거리 무기 명중률이 100%가 됩니다.)]
마르몽의 능력은 본인의 명중률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아군까지 영향받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건 유용하군.’
마르몽의 주변에 투석기를 밀집 배치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 모든 투석기가 다 명중률 100%가 되면 위력이 엄청나게 배가될 터였다.
게다가 투석기라고 명시되지 않았다.
원거리 무기라면 석궁병도 포함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되면 마르몽이 배치된 지역은 디펜스가 걱정 없었다.
[서영(휴먼, 기사)무기: 장창(공격력 +5%)
방어구: 명광개(明光鎧)(방어력 +7%)
능력: 사기(아군을 각종 혼란에서 회복시키고 사기를 크게 상승시킵니다.)]
서영의 경우는 변화가 없었다.
다만 이존효와 마찬가지로 마력으로 인하여 육체적인 힘이 강해졌다고 했다.
어차피 서영의 능력은 상대 계약자나 사도들의 정신계 공격 능력으로부터 회복시키는 역할이었으므로, 지금보다 더 진화할 필요가 없었다.
서영이 더 강해졌다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도 5인이 모두 중급 악마가 되니, 이신도 어느덧 서열 20위의 계약자에 걸맞은 구색을 갖추게 된 셈이었다.
이신은 곧장 질 드 레를 상대로 모의전을 시작했다.
진화된 사도들의 능력을 고루 활용하는 데 집중하면서 모의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 *
그가 아드리아 해에서 로마와 큰 전투를 치렀을 때의 일이었다.
전투는 승리로 끝났지만, 이런 승리를 한 번만 더 하면 우리가 망한다는 장탄식이 나왔던 즈음이었다.
“폐하, 로마를 정복하신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현자 시네아스가 물었다.
이에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가 답했다.
“그 옆에 시칠리아가 있으니 거길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더 위대한 승리의 전초전일 뿐이다. 우리는 리비아와 카르타고를 정복할 것이다. 그때는 누가 우리에게 대항할 것인가?”
“누구도 대항하지 못할 겁니다. 그 후에는 마케도니아는 물론 그리스 전체가 폐하의 것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폐하, 그 뒤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친구여, 그러면 우리는 보물을 쌓아놓은 채 함께 마음 놓고 종일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시네아스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탄식처럼 말했다.
“위대하신 피로스 왕이여, 그걸 지금 하면 안 되겠습니까?”
바야흐로 디아도코이(Diadochoi) 전쟁의 시기였다.
디아도코이란 그리스 어로 후계자들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를 자처한 그의 부하 장군들을 뜻했다.
엄청난 대제국을 이룩한 알렉산드로스가 유언도 후계자도 남기지 못한 채 급사하는 바람에 그 패권을 놓고 부하 장군들의 패권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목표였던 세계 통일 제국과는 반대로 사분오열된 헬레니즘 세계는 전쟁에 휩싸였는데, 피로스는 그런 혼란기에 탄생한 전쟁의 명수였다.
그는 알렉산드로스를 본받아 세계 정복의 꿈에 박차를 가하였지만,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듯이 패망.
하지만 그로부터 까마득한 세월이 흐른 뒤,
“크하하하! 마음껏 마시자! 오늘 같은 날은 축배를 들어야지!”
피로스는 절친한 술친구들을 초대하여 한바탕 술판을 벌였다.
그가 기거하는 곳은 보물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피로스는 마계에서 매일같이 누리고 있었다.
“꽤 힘든 싸움을 치렀다고 하더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피로스에 의해 초대된 손님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는 바로 알렉산드로스였다.
죽음의 원인 중 하나가 과음이었을 정도로 알아주는 술꾼이었던 알렉산드로스가 술자리 초대를 마다할 리 없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서열전이 없어서 무료할 때는 말이다.
“숙적을 꺾었지. 이번에는 꽤나 벼르고 도전해온 터라 고생 좀 했지만, 그래도 꺾었으니 당분간은 다시 도전해올 의욕을 내지 못할 거야.”
피로스는 기분 좋게 소리쳤다.
전단과의 긴 서열전에서 승리한 피로스는 큰 짐을 하나 덜은 기분이었다.
10위권 진입을 코앞에 둔 전단이 언제까지고 20위에 머무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때문에 피로스도 내심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 도전을 물리친 것이다.
“그거야 축하할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 진짜 강적을 해결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미남자는 바로 나폴레옹.
서열 1위.
계약자들의 정점이자 알렉산드로스와는 앙숙 관계인 그가 술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술맛 떨어질 것 같은 소리는 관두지. 전단이 이신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으니까.”
피로스가 투덜거렸다.
그도 알고 있었다.
전단보다 더 무서운 강적이 마침내 자신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전에도 알렉산드로스로부터 경고와 조언을 들었었는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악마군주 그레모리의 계약자 이신!
72악마군주 중 최하위에 있었던 그레모리를 20위까지 상승시킨 이신의 엄청난 활약상은 마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악마군주들의 서열전은 마계의 모든 악마들에게 화제의 대상이었다.
마치 스포츠의 팬처럼 악마들은 계약자들의 활약상에 귀를 기울이며, 언젠가는 자신들도 상급 악마가 되어서 서열전을 치러 악마군주가 되는 날을 꿈꿨다.
단연 이신의 이름을 모르는 악마는 마계에 없었다.
72위에서 무려 20위까지!
마계 서열전 역사상 최단 기간의 상승폭이었다. 최고의 상승폭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대로 10위권은 물론이고 10위 내에도 진입할 만한 실력자로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피로스는 부담이 컸다.
그 또한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를 갈망하는 건 마찬가지였는데, 계약자가 된 지 2년도 안 된 신참이 갑자기 치고 올라와 자신마저 추월할 기세였던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자신을 고생시켰던 전단마저도 가뿐하게 2연패시켰다고 했다.
“갑자기 서열이 높아져서 적응 기간이 필요할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나 보군.”
알렉산드로스가 중얼거렸다.
“당장 우리와 붙어도 승리를 낙관할 수 없을 정도이니까.”
나폴레옹은 늘 그렇듯 이신에게 후한 평가를 주었다.
쾅쾅!
그때 피로스가 술잔으로 테이블을 마구 두들겼다.
“이봐! 대체 누굴 응원하는 거야? 그 새파란 애송이 녀석을 높게 평가하는 건 알겠는데, 날 꺾지는 못할걸? 듣자하니 꽤나 똑똑하고 치밀한 녀석 같은데, 내가 그런 녀석들을 한두 번 상대해봤을 까봐?”
피로스는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쳤다.
“두고 보라지. 그 녀석을 꺾고 나야말로 치고 올라가 너희와 자웅을 겨룰 날이 올 테니까!”
피로스에게 서열전은 참 심플한 것이었다.
위 상대를 이기고 서열을 한 단계씩 상승시키면 되는 구조다.
공간이 한정된 전장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싸우니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끊임없이 경쟁하는 곳.
피로스의 적성에 딱 맞는 방식이었다.
‘이신, 네놈이 얼마나 잘난 실력으로 내 군단을 막을지 직접 확인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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