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피로스의 군단(3)
“꽤나 의식한 것 같지?”
“네놈이 도발한 덕분이지.”
알렉산드로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폴레옹은 씨익 웃었다.
“재미있잖나. 이신을 의식하고 있는 게 너무 빤히 보여서 가만히 둘 수가 없더군.”
피로스가 승리를 축하하는 술자리를 연 것은 전단을 꺾은 직후가 아니었다.
전단이 이신에게 패배하여 20위 자리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마계에 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신참 계약자이지만, 실력은 이미 공인된 상태.
삽시간에 20위까지 올라와서 자신에게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피로스로서도 부담감이 많을 터였다.
자신을 상당히 괴롭혔던 전단마저 2연승으로 가볍게 꺾었으니 더더욱 말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런 나폴레옹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역시 좋은 성격은 아니군.”
“하하, 그래서 재미없다는 건가? 그쪽이야말로 피로스에게 이신에 대한 정보를 이것저것 알려줬으면서. 설마, 정말로 피로스가 복수를 대신 해주길 원했던 건 아닐 테고.”
“뻔한 걸 묻는군.”
알렉산드로스는 히죽 웃었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피로스도 승부욕과 자존심이면 누구 못지않아서 조금만 부추겨도 불타오르지.”
“역시 무책임한 유언을 남긴 사람답군.”
“그런 유언은 남긴 적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알렉산드로스의 유명한 유언, 바로 후계자가 누구냐는 물음에 ‘가장 강한 자’라고 대답했더라는 일화를 뜻했다.
그 덕에 그가 죽자마자 제국은 사분오열되어 전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알렉산드로스는 과음으로 약해진 건강에 심각한 열병을 앓아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너무 젊은 나이였던지라 후계 준비도 안 되어 있었고, 그의 아들은 아직 태중(胎中)에 있던 터라 분열은 불가피했다.
“그러고 보니 축제 전에 계약자들의 실력을 보고 싶어서 서열전을 많이 관전했다고 했었지?”
“그랬지.”
“그럼 마력 몇 만을 대가로 지불하면 이번에도 서열전을 관전할 수 있지 않나?”
알렉산드로스는 피로스와 이신의 대결이 무척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한동안 서열전도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터라 더욱 이 같은 흥밋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을 터였다.
나폴레옹은 어깨를 으쓱했다.
“관전을 허락한 건 주로 하위 서열의 악마군주들이었지. 낮은 서열에서는 마력 몇 만으로도 많은 것이 좌우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라.”
“그래도 마력을 싫어하는 악마는 없지. 백만이 넘는 마력을 갖고 있어도 1만 마력이 걸린 서열전에서 패배하면 불같이 화내는 게 악마군주들이니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야. 지난번은 축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내게 실력을 증명해서 같은 편으로 지명받고자 하는 심리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라. 악마군주 비네와 그레모리는 최상위권을 노리는 이들일세.”
“우리마저도 잠재적 경쟁자로 본다는 건가. 확실히 그렇겠군.”
“그러니 고작 마력 몇 만 때문에 자기 계약자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노출시키고 싶지 않을 걸세.”
“귀찮군. 그냥 보고 싶으면 서로 언제든 관람할 수 있게끔 하면 좋을 텐데.”
“아무도 자기 밑천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까.”
두 사람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피로스의 저택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피로스는 이신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 * *
“준비는 충분히 되셨나요?”
“예, 문제없습니다.”
이신은 피로스를 상대할 콘셉트를 정하고 단기간이지만 혹독하게 연습에 몰두했다.
준비한 이 콘셉트가 통하지 않는다면, 일단 물러서서 다시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물러섰다가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만은 도전하는 측의 유일한 특권이니까.
‘하지만 되도록 패배는 하기 싫지.’
다전제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한두 세트 패배하는 것쯤은 감안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패배할 때마다 그레모리의 마력이 깎이니 보다 높은 서열로 향하는 데 제동이 걸린다.
그리고 되도록 패배 기록이 거의 없는 지금의 전적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럼 가죠. 악마군주 비네가 방문을 허락했어요.”
그레모리는 이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텔레포트했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잠시 들더니, 이윽고 도착한 곳에는 역시나 범상치 않게 생긴 악마군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마력을 통해 내는 목소리가 어쩐지 사자의 울음과 비슷하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악마군주 비네는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사자의 형상이었다.
사슬갑옷을 몸에 두르고, 거대한 흑마(黑馬)에 올라탄 채 그레모리와 이신을 위풍당당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 든 거대한 활과 맹수의 눈빛에서 위압감이 흘렀다.
그의 안에 내제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기운이 이신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이신과 달리 당당히 악마군주 비네와 마주했다. 당연하게도, 그녀도 도전자로 이 자리에 온 같은 수준의 악마군주였기 때문이다.
“도전을 하러 왔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자 이신은 비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받아들인다. 나도 내 계약자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이신은 위압감 넘치는 악마군주 비네의 뒤에 있는 인간을 발견했다.
기원전 사람이라 그런지 키는 작은 편이었고, 고집스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가 바로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였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군.’
역사책에서 여러 번 언급된 당사자를 직접 보니 새삼스럽게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도 다루고 서양 전쟁사에서 명장으로 손꼽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휘관으로서 어떤 전략 전술을 펼쳤는지는 제대로 다룬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피로스의 승리라는 고사만 있는 터라,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는 위인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계약자가 된 후로 역사를 취미로 두게 된 이신은 가능하다면 피로스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그가 치렀던 전쟁에 대해 듣고 싶었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그럴 기회는 없을 듯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피로스의 눈빛에 흉흉함이 감돌았기 때문.
‘날 무척 경계하고 있군. 긴장한 모습도 보이고.’
상대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오히려 실력 발휘를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신의 생각에 피로스는 그 정도로 정신력이 약한 인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살아생전 전란을 살아온 남자였다.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재기한 적도 있었고, 전쟁터에서 맹활약을 떨쳤다.
‘10위권에 있는 인물이니 방심은 금물이다.’
서열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배팅할 마력은 5만, 전장은 제12 전장 레틴으로 정해졌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과 악마군주 비네님의 서열전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서열과 마력에 영향을 줍니다. 마력은 총 10만이 배팅됩니다.] [마력 10만이 마력석이 되어 전장에 유포됩니다.] [종족을 선택해 주십시오.]“휴먼.”
“엘프.”
두 사람은 종족을 골랐다.
마침내 서열전이 시작되려 했다.
그때, 이신을 빤히 노려보던 피로스가 문득 말을 건넸다.
“날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상대 중 하나로 여기고 있나?”
“그렇다.”
이신의 그 대답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피로스의 얼굴 근육이 분노로 씰룩거렸다.
“아주 잘나셨군.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하기야 계약자란 족속들이 다 그렇지만.”
“…….”
“어디 한번 실력을 봐주마. 실망시키면 곤란해.”
[서열전이 시작됩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 계약자 이신님과 악마군주 비네님의 계약자 피로스님께서 참전합니다.]그렇게 첫 대결이 시작되었다.
제12 전장 레틴은 이신도 예상했던 가장 유력한 전장 중 하나였다.
앞마당으로 진입하는 통로가 넓어서 심시티 등으로 방어를 하기가 무척 어려워서 휴먼이 불리했다.
또한 전장의 중앙 지역도 드넓고 별다른 엄폐물이 없어서 기동성을 살려서 싸우기 용이했다.
이 점도 투석기의 원거리 포격을 십분 활용하여서 지형지물의 이점을 잘 살려야 하는 휴먼에게 불리하게 작용된다.
‘병력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싸우기 좋은 전장이다.’
이신은 차분히 생각했다.
전단에게 들은 조언이 있기 때문에 피로스의 스타일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피로스는 어느 정도 병력이 모이면 ‘승리의 군단’을 조직하여서 적극적으로 공세를 띨 것이다.
드넓은 중앙 지역을 장악한 채 계속 병력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곳곳을 압박할 터.
크고 작은 타격을 계속하며 승리의 군단을 계속 키우고, 마침내 어느 정도 군단의 힘이 강해졌다고 생각될 때 승부수를 띠운다.
이것이 전단이 알려준 피로스의 패턴이었다.
특별히 비밀이라 할 만한 전략도 아니었다. 피로스는 서열전 때마다 줄곧 이 패턴을 유지해왔다고 하니 말이다.
‘알고도 막기 힘든 패턴이라는 것이군.’
상당히 효과적인 필승 전략이기도 했다.
엘프는 기동성과 원거리 공격 두 가지를 모두 갖췄기 때문에 전장을 누비며 곳곳에 압박을 넣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초반에 휴먼의 궁병과 비교해도 공격 사거리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게 엘프의 초반 전투 병과인 엘프 슈터.
휴먼은 투석기가 나올 때까지 사거리에서 엘프를 압도하지 못한다.
싸움의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첫째, 투석기.
둘째, 승리의 군단 제한 인원 50명.
이 두 요소를 종합해 보면 피로스가 공격에 나서는 타이밍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아직 이신에게 투석기가 많이 안 모였을 때.
그리고 승리의 군단의 제한 인원인 50명이 다 찼을 때!
피로스가 휴먼을 상대로 가장 강할 수 있는 타이밍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때 공격해오겠지.’
끝장을 보겠다고 달려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때 전투를 벌여서 서로 병력을 소모해 주려 할 터였다.
적을 죽이고 적 건물을 파괴할수록 승리의 군단은 강력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병력을 모아서 50명을 채운 뒤에 또다시 공격!
그렇게 계속 소모전을 하다 보면, 승리의 군단은 더없이 강해져 있고 상대는 계속된 병력 소모 끝에 기진맥진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피로스의 필승 패턴에 대한 이신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적극적으로 싸운다.’
궁병이 5명 정도 모였을 때, 이신은 밖으로 한 번 진출했다.
아직 무기 개발도 되지 않은 궁병 5명이지만, 콜럼버스가 뒤따르고 있었다.
피로스 측에서는 엘프 슈터 3명이 소환된 상태였다.
숫자는 적지만 보다 날쌘 탓에 오히려 궁병 5명보다 더 강력한 전력이었다.
양측이 중앙 지역에서 서로 마주쳤다.
‘중앙을 안 내준다.’
핵심 포인트는 전장 어느 지역과도 모두 연결되는 핵심 요충지인 중앙이었다.
피로스가 이 중앙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맞서 싸울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싸우고 싶어 하는 전투적인 피로스와 기꺼이 싸워준다는 게 이신의 이번 콘셉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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