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34
434화 대승(1)
결국 피로스는 이신의 병력을 섬멸시켰다.
하지만 그것이 서열전의 승리로 연결되는 건 아니었다.
이신은 열세의 병력으로 무섭게 싸웠다.
약삭빠르게 포위당하는 것을 피해 달아나며 저항과 후퇴를 반복, 피로스의 병력과 시간을 낭비시켰다.
승부 타이밍을 완전히 놓친 피로스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이신의 진영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모든 방어 태세가 완비된 상황이었으니까.
전투는 이겼지만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른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피로스의 승리라 불릴 법한 상황 자체가 된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자 마력석 채집장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이신이 자연스럽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풍부한 마력을 바탕으로 대군을 꾸려 공격에 나선 이신을 피로스는 막아낼 수가 없었다.
[악마군주 비네님의 계약자 피로스님께서 패배를 선언하셨습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 승리입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께서 마력 5만을 획득하셨습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 마력 총량이 1,614,710이 되셨습니다. 서열의 변동은 없습니다.] [악마군주 비네님의 마력 총량이 1,683,900이 되셨습니다. 서열의 변동은 없습니다.]악마군주 비네와 피로스의 모습은 비슷했다.
둘 다 상처 입은 사자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런 무참한 졸전이 나였다고? 이 피로스가?’
2배에 가까운 병력!
퇴로를 막고 양면에서 덮쳤다.
엘프 스나이퍼들을 적의 배후로 우회시켜 삼면 포위를 만든 피로스의 능수능란한 전술 솜씨였다.
그런데 상식이 완전히 파괴당한 그 용병술의 향연은 뭐였을까?
엘프 가드를 앞세워 돌격시키고 엘프 슈터가 뒤에서 활을 쏘며 지원하는 당연한 병력 배치.
그런데 적은 엘프 슈터의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서며 접근한 엘프 가드만 사살했다.
어쩔 수 없이 엘프 가드를 뒤로 물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병들이 돌격해서 엘프 슈터들과 뒤엉켰다.
압권적인 것은 엘프 스나이퍼를 단숨에 몰살시킨 이신의 용병술.
전투 와중에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도로 병력이 좌우로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인지 피로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용병술이었다. 아무리 훈련을 잘 시켰어도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수는 없어. 설마, 본인이 직접 조종했단 말인가? 그 많은 숫자를?!’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숫자의 병력을 일일이 조종해서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전투뿐만이 아니라 추가 병력 소환이나 건축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그토록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일일이 조종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비결이 뭐건 간에 피로스로서는 정신적인 대미지가 무척 컸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었던 방식으로 진검 승부를 펼쳐 완패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나약한 휴먼에게, 초반부터 밀리면서 말이다.
초반부터 압박을 넣고, 중앙 지역을 장악한 채 지속적인 공격으로 승기를 거두는 것이 피로스의 필승 패턴.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건 그 패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서로 비슷한 전력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전제(前提)는 피로스를 모든 수단을 빼앗아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납득할 수가 없다! 이렇게 승복할 수 없어.’
첫 서열전의 패배로 악마군주 비네는 베팅한 마력을 잃고, 또한 이신에게 소원으로 1%에 해당되는 마력을 넘겨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악마군주 비네의 마력 총량은 1,667,061.
이신은 무려 53,924마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질 드 레와 다섯 사도를 모두 중급 악마로 만들고도 이렇게 많은 마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또 도전할 텐가?
“물론이지.”
그레모리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비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양측 모두 서열전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수준 높은 대결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피로스가 근본적인 부분에서 이신에게 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레모리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네는 자신의 계약자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같은 전장에서 더 싸워보고 싶습니다.”
-좋다. 베팅은 2만 정도가 적당하겠군.
비네는 피로스의 상태를 보고 그렇게 베팅을 정했다.
한 번 더 패해도 서열이 바뀌지 않을 아슬아슬한 선의 베팅이었다.
피로스는 불같은 눈으로 이신을 노려보았다.
한 번 더 붙어보자는 의지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이신은 그저 미소로 답했다.
‘싸우고 싶어서 안달 난 상대에게는 싸워주지 않는 게 내 철칙이지만.’
하지만 지금은 정면 승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피로스를 이기기 힘들었다.
* * *
‘이번에는 다르다는 거겠지?’
이신은 단단히 마음먹고 서열전을 개시했다.
궁병 5명이 모였을 때, 어김없이 본진에서 뛰쳐나와 중앙으로 향한다.
엘프 슈터 3명이 어김없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궁병 5명에 콜럼버스가 끼어 있는 조합이니 싸울 만하다.
‘엘프는 초반에 그리 부담되는 종족이 아니니까.’
아마 피로스는 상대가 마물이어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움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이다.
엘프 슈터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데다가 휴먼의 궁병과 달리 이동속도가 빨라서 헬하운드를 상대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휴먼이라면 살짝 이야기가 달라진다.
똑같은 원거리 공격 수단.
그리고 이동속도는 차이가 있지만, 체력은 비슷하다.
화살 맞으면 치명상 입는 건 휴먼이나 엘프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물론 엘프 슈터는 기본적으로 활솜씨가 궁병보다 빼어나서 차이가 있지만, 이신은 이 부분을 로흐샨과 그의 유도 사격 능력으로 커버했다.
거기다가 콜럼버스가 함께한 조합이라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피로스도 기 싸움에서 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신도 물러서지 않았으므로, 곧 교전이 펼쳐졌다.
소수 병력 간의 싸움이므로 서로 매우 신중했다.
서로의 사정거리 안팎으로 드나들며 신경전을 벌인다.
로흐샨은 5초에 1번씩 돌아오는 유도 사격 타이밍을 노렸고, 이신은 콜럼버스의 블링크와 마비침을 활용할 타이밍을 쟀다.
하지만 그런 신경전에서 이신은 은밀히 피로스를 향해 마수를 뻗고 있었다.
서로 밀고 당기며 충돌할 틈을 노리고 있으면서, 이신은 전투적인 의지로 충만한 피로스의 심리를 십분 활용했다.
바로 은근슬쩍 이신의 진영에 가까이 피로스의 병력을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밀어붙이고 있다고 기뻐해 줬으면 좋겠군.’
피로스가 악에 받쳐 기세등등할수록 이신은 이를 이용하고자 했다.
이신의 진영에 가깝기 때문에 서로 추가 소환된 후속 병력이 합류하는 속도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일시적으로 이신 측이 수적으로 우세해지는 것.
‘이제 그 사실을 깨달았겠지.’
이신은 피로스의 심리를 읽었다.
한 번 멘탈이 흔들린 상대는 이신의 심리전의 먹잇감이다.
귀신같이 그 심리를 놓치지 않고 읽어 들이고 이용한다.
‘그럼 위험하니 잠시 물러서서 후속 병력과 합류할 텐가?’
그게 안전한 판단이다.
하지만 지금의 피로스라면?
상대의 후속 병력이 합류하기 전에 재빨리 치고 들어가 공방을 벌이겠다는 공격적인 판단을 내릴 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맹수란 그렇게 공격적이게 되니까. 입은 상처를 숨기기 위하여 더더욱.
자, 언제냐?
그 심리를 꿰뚫고 있는 이신은 피로스가 치고 들어오길 기다렸다.
상대의 공격 의도를 알고 있으면 대응도 더 빨라진다.
자신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불리한 상황인지 피로스는 자각하지 못했다.
엘프 슈터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할 때였다.
‘바로 지금!’
양측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달려 들어와 거리를 좁힌 엘프 슈터들이 화살을 쏜 것.
로흐샨도 참고 기다렸던 유도 사격을 펼쳐 한 명에게 집중 사격을 가했다.
쉬쉬쉭-
콰직!
“크억!”
콰악!
“윽!”
양측에 사상자가 하나씩 생겼다.
그리고 엘프 슈터 중 한 명이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계약자 피로스의 사도 중급 악마 밀레가 능력 2단 사격을 사용합니다.] [8초간 화살을 2대씩 발사합니다.]2대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타깃은 바로 콜럼버스였다.
하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파앗!
[계약자 이신의 사도 중급 악마 콜럼버스가 능력 블링크를 사용합니다.] [10미터 범위 내에서 순간이동을 합니다. 3초 이내에 다시 사용하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갑니다.]아슬아슬하게 화살 2대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콜럼버스의 반사 신경이 아니었다.
이신의 반응 속도였다.
프로게이머의 정점에 올라선 이신의 반사 신경은 그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콜럼버스의 블링크는 가상 키보드의 단축키로 머릿속에 지정해 놓은 상태.
이를 이용하여 이신은 절묘하게 대응했다.
콜럼버스는 엘프 슈터들의 지척에 나타났다.
피로스의 사도 밀레를 향해 마비침을 있는 대로 쐈다.
몇 대는 피했지만 2발이 적중했다.
함께 있던 다른 엘프 슈터가 콜럼버스에게 화살을 쐈지만, 콜럼버스는 마비침을 모두 쓴 뒤에 다시 블링크를 펼쳐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궁병들이 일제히 사격했다.
밀레는 1초의 마비가 풀린 순간 몸을 날렸다.
과연 피로스의 사도로 임명될 만한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타깃은 밀레가 아니었다.
“크억!”
또 한 명의 엘프 슈터에게 화살이 적중된 것.
그 짧은 시간에 로흐샨도 약삭빠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마비침에 맞았다고는 하나, 자신을 노릴 것을 알고 있는 밀레를 죽이기는 힘들다고 판단, 허를 찔러 다른 엘프 슈터를 죽인 것이다.
궁병 4명과 콜럼버스.
피로스 측은 사도 밀레 하나뿐.
짧은 교전으로 삽시간에 승부가 판가름 났다.
밀레는 급히 후퇴하기 시작했고, 이신은 도망치는 그를 추격해 피로스의 앞마당까지 밀어붙였다.
극초반에 일어난 그 전투의 승패는 승기를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작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이지만, 초반의 그 차이는 나비효과처럼 양 진영의 운명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피로스는 무너져 버렸다.
이신은 병력을 계속 추가해 피로스의 앞마당을 아예 점거해 버렸다. 그곳에 화살탑도 짓고 식량창고도 지으면서 심시티를 해버렸다.
그렇게 밀봉시켜 놓고, 본인은 마력석 채집장을 늘리며 마력 격차를 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피로스가 봉쇄선 돌파를 시도했고, 실패한 후에 패배를 선언했다.
[악마군주 비네님의 계약자 피로스님께서 패배를 선언하셨습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2연승.
이신은 이미 이번 승부에서 이겼음을 확신했다.
이걸로 피로스의 전의를 꺾었다고 판단했기 때문.
‘오기로 계속 덤벼준다면 도리어 고마운 일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서열을 빼앗기고 나면 일단 조용히 물러나서 대책을 연구하는 게 옳은 판단이다.
이를 무시하고 악을 쓰며 계속 도전해 온다면 이신은 얼마든지 똑같은 방법으로 짓밟고서 마력을 더 착취해 그레모리의 서열을 높일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