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53
453화 승부사(1)
“꼭 이겨야 합니다.”
보통 출전하는 선수에게 이렇듯 부담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왕춘 감독은 거리낌이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이신이었으니까.
“예.”
쾌히 답하며 부스로 향하는 그 모습은 담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SC스타즈의 모든 이들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저 뒷모습을 보노라면 도무지 지고서 돌아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신은 4세트에 출전했다.
“자, 승부는 이제 2 대 2 원점이다.”
왕춘 감독의 농담에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웃었다.
“승부는 5세트에서 판가름 난다.”
그 말에 한 선수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
누구보다도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팀의 승패를 짊어진 상황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법.
“리우.”
“…예.”
5세트에 출전하기로 한 리우가 대답했다.
“전에 팀 크라이시스와 싸울 때도 널 5세트에 출전시켰었지.”
“예.”
“중요한 경기 땐 널 마지막 보루로 남겨놔야 안심이 됐거든.”
“…….”
왕춘 감독이 보내는 신뢰에 리우는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왜 이 중요한 시합에서 날 중용한 거야?’
더 중압감을 주면 정신 차리겠지 하는 기대인가?
아니면 자신 때문에 팀이 지면 죄책감으로 성실해지겠지 하는 심리인가?
문득 어제 왕춘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네가 금방 다시 네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리라 믿는다.”
‘내 본연의 모습?’
리우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선수 이전, 그는 본래 다양한 게임을 소재로 스트리밍 방송을 하던 BJ 출신이었다.
유쾌한 성격에 재치도 있고 게임 실력도 출중해서 아마추어치고는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중국은 스트리밍 시장이 워낙 커서 인기 BJ가 되면 수입도 많다.
그래서 프로게이머들의 주요 부수입 중 하나가 바로 개인 방송이었다.
방송이 흥행하면 수입이 많아지므로 선수 생활은 뒷전이고 개인 방송에 열중하는 행태도 벌어진다.
하지만 선수로서 실력이 떨어지면 결국 방송의 인기도 하락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리우는 다양한 게임을 즐겼지만, 특히나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웬만한 프로 못지않은 아마추어로 유명세를 떨쳤고, 그러다가 왕춘 감독의 러브콜을 받았다.
-다양한 게임을 두루 즐기면서도 스페이스 크래프트 실력이 프로 뺨치는 아마추어. 분명 어필할 요소가 있는 캐릭터지만, 진짜 프로의 벽을 넘을 수는 없어.
-하지만 선수로 데뷔해서 프로리그에서 대활약을 한다면 어떨까? 지금보다 수십 배는 더 인기를 모을 거라고 장담하지.
왕춘 감독의 제안에 넘어가 리우는 SC스타즈에 가담했고, 선수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왕춘 감독의 말이 옳았다.
혜성처럼 데뷔해 신인왕과 다승왕을 거머쥔 대활약을 하자 리우는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줄곧 개인 방송을 해왔던 기반도 있어서 그의 인기는 곧장 중국 최고 실력자인 지우펑과 견줄 정도가 되었다.
최근 들어 난생 처음 부진에 빠졌을 때, 리우는 선수 생활을 때려치우고 개인 방송에 집중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길을 그만 걷고 다른 진로를 알아본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따로 가지고 있니?”
그런 비전은 없었다.
한창 활약하는 프로게이머는 매력적이지만, 부진 끝에 은퇴하고 방송에 전념하는 쪽은 멋없다.
선수 생활을 게을리 해서 망했다는 이미지까지 첨가될 테니 더더욱.
리우는 문득 무대를 바라보았다.
부스 안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이신이 보였다.
‘저런 거창한 꿈까지 꾼 적은 없었는데.’
처음부터 아무런 야망이 없었던 리우였다.
이신처럼 정상에 우뚝 선 남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럭저럭 선수로서 제몫을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목표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을 뿐이다.
선수 생활은 힘들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훨씬 쉬엄쉬엄 지낸 리우였지만, 승부는 힘들었다.
무대 위에서 적과 진검승부를 벌이는 일은 언제나 부담되고, 그게 힘들다.
이기면 기분 째지지만, 지면 더러워지는 게 싫다.
‘언제부터 이렇게 부담을 느끼게 되었지?’
원래는 안 그랬다.
지면 어때?
난 원래 딱 이 정도만 하려고 했어.
이미 난 목표를 다 이뤘어. 더 무리 안 해도 돼.
그런 여유를 갖고 경기를 했고, 때문에 중요한 경기에서도 태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최근 들어 승부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지는 게 괴로워졌을까?
-카이저는 기갑정거장까지 무난하게 테크 트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카이저의 정찰 운이 별로 안 좋습니다. 11시, 7시를 거친 후에야 시허 선수가 있는 5시에 도달했습니다.
-거신병기가 마중 나왔죠.
리우가 복잡한 상념에 잠겨 있을 때, 4세트가 이미 시작되었다.
이신이 정찰 보낸 건설로봇이 5시에 도달했지만, 이미 시허의 거신병기가 앞마당 앞까지 나와 정찰을 차단하려고 지켜선 모습이었다.
시허는 정찰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앞마당을 올리지 않고 참회실을 하나 더 지었기 때문이다.
인류로 따지면 2기갑을 간 거나 다름없었다.
거신병기를 보자마자 이신은 건설로봇을 재빨리 뒤로 뺐다.
시야 밖으로 물러난 후, 빙 돌아서 측면에서 다시 파고들었다.
-카이저, 들어가려고 시도합니다.
-저건 막아야죠! 보면 안 됩니다.
본진으로 들어가려는 건설로봇.
이를 저지하기 위해 쫓아가며 빔을 쏘는 거신병기.
신도까지 나와서 본진 출입구를 가로막았다.
그런데 그 순간,
-어어어?!
순간적으로 앞마당 자원을 클릭했다가 다시 앞을 클릭하며 비비기를 시도했다.
신도와 건설로봇이 순간적으로 겹쳐지더니…….
-들어갔습니다!
-허허, 저걸 또 파고드나요. 테크닉이 대단합니다.
이신은 기어코 들어가서 시허의 본진 내부를 확인했다.
참회실이 2개 있다는 건 거신병기를 더 많이 뽑아서 초반부터 압박을 강력하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따라, 이신은 앞마당에 참호를 지어서 방어를 해놓기 시작했다.
‘한 발 물러나서 다시 블로킹했어야지. 시허 쟤 왜 저래? 허접도 아니고.’
시허는 상하이 게이밍의 에이스급 선수 중 하나였다.
준비된 정도에 따라서는 이신도 잡아볼 수 있는 카드라는 뜻이다.
하지만 저렇게 빌드 오더가 들켜서야 소용이 없었다.
‘또 이기시겠군. 무난한 대결로 가면 절대 카이저를 못 이길 테니까.’
리우는 이신을 세삼 다시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 저 나이에 오히려 더 성장을 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승부를 즐길 수 있는 걸까?
같은 인간 같지 않은 저 게임의 신을 보자면 그저 경외감만 들었다.
‘나도 저렇게 정신력이 강했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했을 때쯤이었다.
-오오!
-시허!
갑자기 돌발 변수가 터졌다.
시허가 갑자기 맵 센터에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 건물은 바로 로봇공학연구소.
수송기와 정찰기, 철갑충차를 생산하는 건물이다.
-이런 한 수를 숨기고 있었습니까! 이러면 정찰로 보여준 빌드는 거짓 정보입니다!
-시허 선수, 그리고 상하이 게이밍이 정말 벼르고 별렀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신은 시허가 거신병기로 압박하면서 앞마당 확장을 따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마당에 참호를 지어 방어해 놓았다.
하지만 시허는 수송기로 병력을 실어 날라 본진까지 침투할 생각이었다. 거기다가 철갑충차까지 동원해서 마무리!
앞마당 확장도 하지 않고 곧장 끝내버릴 참인 것!
“정말 단단히 준비를 했군.”
왕춘 감독이 신음했다.
눈치 못 채면 천하의 이신도 낭패를 본다.
정찰까지 아슬아슬하게 허용하면서 본진을 일부러 보여준 시허의 속임수가 절묘하게 먹혀 들어갔다.
다수의 거신병기가 이신의 앞마당에 들이닥쳤다.
사거리 업그레이드가 된 거신병기들은 멀리서 참호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신 또한 건설로봇 여러 기를 붙여서 참호를 수리했다.
이윽고 이신 측에서 기동포탑의 포격모드 개발이 완료되었다.
포격모드로 전환한 기동포탑이 거신병기들에게 포격을 한 방 후려갈겼다.
그 순간,
-들어갑니까!
-저 기동포탑 잡히면 카이저는 정말 위기입니다!
거신병기들이 갑작스럽게 참호를 무시하고 불쑥 들어와 기동포탑을 일점사한 것.
하지만,
-카이저의 블로킹!
참호를 수리하던 건설로봇들이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거신병기들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기동포탑도 포격모드를 풀고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이신도 미리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거신병기들은 소득 없이 참호 안에서 쏘는 보병들의 총알 세례만 맞으며 물러났다.
대신 시허도 거신병기 1기의 체력이 많이 닳았을 뿐 별달리 피해는 없었다.
리스크가 없는 선에서 한번 시도만 해보았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참호에서 갑자기 보병들이 나와서 거신병기들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 체력이 많이 닳아 있던 거신병기 1기를 일점사!
-퍼엉!
그리고는 다시 잽싸게 참호 안으로 숨어버리는 보병들!
“와아아아!”
“잘한다!”
“역시!”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과감하게 보병을 동원해 체력이 닳아 있던 거신병기를 마무리하는 센스!
-역시 명품 디펜스입니다, 카이저.
-순간적으로 반응한 속도도 일품이고, 역시 대단합니다. 하지만 이건 시허 선수의 진짜 공격이 아닙니다. 그냥 앞마당 압박할 거라고 카이저에게 보여준 것에 불과합니다.
-거신병기 하나를 잃긴 했습니다만 카이저의 이목을 앞마당에 붙잡아놨습니다. 진짜는 이제 막 생산돼서 날아오는 수송기입니다.
수송기가 인근에 도착하자 거신병기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기동포탑의 포격을 피해 물러난 것으로 보였으나, 진실은 수송기를 탄 본진 드롭이었다.
이신의 1시 본진 구석!
수송기가 거신병기를 2기씩 태워서 실어 날랐다.
무려 6기의 거신병기가 본진에 난입하자 이신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이신은 기동포탑 3기와 건설로봇들을 동원해 수비에 나섰다.
그리고 곧장 항공정거장 건설에 들어갔다.
시허가 철갑충차를 수송기에 태워서 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텔스 전투기를 생산해서 수송기만 격추시키면 막아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본진 난입한 거신병기들부터 처리해야 했지만.
진흙탕 싸움이었다.
거신병기들이 기동포탑의 포격을 피해 물러서면서 건설로봇들을 일점사해 하나씩 잡아 이신에게 피해를 주었다.
앞마당에서도 추가 생산된 광신도들이 달려들었다.
그쪽도 건설로봇을 동원해 본진에 난입 못하게 블로킹하고, 참호 안에서 보병들이 사격했다.
-정말 잘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가 누적되고 있죠! 잘 막고 있지만 철갑충차가 생산 완료됐습니다. 스텔스 전투기가 나오기 전까지 잘 버텨야 하는데요!
기동포탑도 2기나 잃었고, 건설로봇도 꽤 희생됐다.
시허는 집요하게 계속 병력을 뽑아 공격에 투입하면서 이신을 물어뜯었다.
마침내 철갑충차가 수송기를 타고 이신의 본진에 도착하였다.
이신의 처절한 수비력이 돋보였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난관이었다.
‘글렀지 저건.’
리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신이 지면 자기 차례까지 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화면에 이신이 비춰졌을 때, 리우는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파란 눈빛.
전혀 포기한 얼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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