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98
498화 추억(1)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호프에 모여서 술자리를 가졌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호프의 대형 TV는 SC코퍼레이션 발표회의 이벤트 경기를 방영하고 있었다.
-인공지능과 경기를 치러본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뚱뚱한 백인 사회자의 질문이 통역을 통해 한국말로 시청자에게 전달되었다.
질문을 받은 중국인 선수 또한 옆에 있는 통역사에게 뜻을 전달받았다.
이름이 지우펑이었던가?
보통은 해외의 프로게이머에게 관심이 있을 턱이 없었지만, 저 선수는 이신과 같은 팀이라는 이유로 한국인에게 낯익었다.
-사람 같아서 놀랐습니다.
-어떤 부분에서요?
-경기 내내 계속되었던 심리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우펑은 조금 생각하다가 다시 답했다.
-예전에 바둑을 두던 인공지능은 엄청난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던 탓에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었죠.
-근데 제가 오늘 겪어본 상대는 정반대였습니다. 서로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걸 저지하기 위해 싸웠죠.
-솔직히 말하자면, 경기 내내 반대편 부스에 이신 선수가 숨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관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자도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재미있었겠지만, 정말로 인공지능이 맞습니다. 코렛 사장이 엄청난 뻥쟁이가 아니라면 말이죠.
관중들의 웃음이 더 커졌다.
호프에서 술을 마시던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TV를 보다가 한마디씩 했다.
“와, 진짜 게임이 뭐라고 게임 만드는 회사가 인공지능까지 만들지.”
“그러게 말이다.”
“야, 뭐 그런 얘기 있잖아. 나중에 군사적으로 활용하려고 이신을 이용한 거라고.”
“알파고가 알까기 하는 소리 한다.”
“왜 인마, 말은 되잖아?”
음모론을 제기하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이 한마디씩 비난했다.
“네 말 대로면 신이가 군대 있을 때가 북한 쳐들어가서 통일할 찬스였는데 존나 아쉽겠다.”
“신이라면 할 수 있었을 지도 몰라. 워낙 못하는 게 없었잖아.”
“제발 진심으로 말하지 마라. 내가 다 쪽팔린다.”
“저 새끼 신이랑 셀카 찍은 사진 가보처럼 가지고 다닌다.”
“그 사진 지금까지 수백 명한테 보여주고 자랑했을걸. 정말 징한 놈이다.”
“근데 신이가 국방부장관이었으면 되게 웃기겠다. 분명히 우리나라가 먼저 북한 도발할걸?”
“자원을 아껴야 한다고 장성들 모가지 우수수 날리겠지.”
“남의 말은 더럽게 안 듣고.”
친구들은 서로 맞장구치며 낄낄거렸다.
그랬다.
그들은 이신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었다.
이따금 같이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던 사이였지만, 그들 중 이신과 친했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 음모론을 제기했던 김수혁이었다.
“어? 이신이다.”
친구들 중 하나가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TV로 향했다.
-지금 이신 선수가 오늘의 메인 매치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세팅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뭐라고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원래 좀 예민한 편이에요. 아마 장비를 바꿀걸요?
해설에 참여한 박영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신의 장비 세팅을 담당하는 SC스타즈의 매니저가 새로운 키보드를 가져온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신은 새 키보드를 세팅하고 다시 게임을 플레이해 보다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시네요. 중국에서도 저런 경우가 자주 있었나보죠?
-예, 딱히 고장 난 것도 아닌데 누르는 감촉이 달라졌다고 교체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죠. 키보드나 마우스나 다 좋은 장비 쓰고 있어서 잘 고장 나는 물건도 아닌데, 참 예민한 양반이죠.
-하하, 그만큼 철두철미하다고 봐야겠죠?
-예, 게임에 관해서는요. 평소에는 또 저렇지도 않거든요.
-하하하.
TV에 진지하게 컴퓨터를 상대로 연습게임을 하는 이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서 나왔다.
“와…….”
“진짜 잘생겼다.”
호프의 주변 테이블에서 여자들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남자인 친구들이 봐서 명백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뭘 하든 저렇게 성공할 줄은 알았다.”
“난 쟤가 연예인 될 줄 알았는데. 아버지처럼 교수가 되든지. 근데 프로게이머는 상상도 못했네.”
“그러게.”
“신이 추정 재산만 400억 넘는다더라. 프로게이머로 저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지.”
“400억? 진짜?”
“기사에 그렇다고 나오던데. 얼마 전에 인수한 팀도 가치 오르고, 중국 재벌한테 선물받은 집까지 시세가 올랐다나.”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내가 천년을 회사 다녀도 못 모을 돈이네, 허허.”
친구들의 잡담을 들으며, 김수혁은 멍하니 TV 속의 이신을 쳐다보았다.
‘신아…….’
이렇게 TV로 자신의 친구를 보고 있으면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김수혁은 이신과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다.
중학교 때는 남남이었으나, 고등학교 때는 2, 3학년을 같은 반으로 보냈다.
김수혁이 기억하는 학창 시절의 이신은 지금 TV 속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었다.
워낙에 수재였고 외모도 수려해서 가만히 있어도 늘 인기가 따랐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 가르쳐달라고 모여들고, 시험 끝나면 소개팅에 나와 달라고 또 모여들었다.
이신 얼굴 보겠다고 다른 학교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는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오니, 다 번잡스럽고 귀찮게 여겼으리라.
김수혁이 이신과 친해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친구들과 PC방에 가는데 숫자가 맞지 않아서 한 명을 더 찾아야 했다.
그때 교실에 남아 있었던 것이 이신이었다.
혹시나 싶어 제안하니 의외로 가겠다고 응하는 것이었다.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신에게 김수혁은 간단한 것만 가르쳐주었다.
“그러니까 자원을 빨리 모아서 빨리 쓰면 이기는 거네?”
간단한 조작법만 설명해 주었는데 이신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팀을 나눠서 한 첫 게임에서 엄청난 숫자의 보병을 뿜어냈다.
건설로봇과 보병 생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지만, 그렇게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보병 부대로도 엄청난 활약을 했다.
그날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하면서 이신은 단축키를 다 익혔다. 자기 나름의 빌드 오더도 생각하여서 더 많은 보병들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어때, 할 만해?”
“재미있네.”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즐거워하는 이신의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이신은 김수혁 일행과 함께 PC방에 다니게 되었다.
빌드 오더, 정찰, 멀티태스킹 등등…….
개념을 하나둘 익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프로들이 하는 방식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게임으로 이신을 당해내는 사람이 온라인에서도 드물었다.
‘이제는 하다하다 게임조차도 잘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었다.
옆에서 봐도 워낙 비현실적이어서 질투심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신이 ‘엇나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점점 게임에 몰두하더니 급기야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했다.
김수혁은 깜짝 놀라서 뜯어말렸지만 이신은 요지부동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말렸지만 이신의 결심은 확고했다.
이신의 진로 문제가 화제가 되자 김수혁은 깊은 자책감을 느꼈다. 게임을 하자고 처음 꼬드긴 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때문에 괜히 전국구로 놀던 우등생이 망가졌다는 자책감!
참다못해 방과 후에 조용히 불러서 따졌다.
“너 진짜 왜 그래? 공부해서 명문대에 가고 탄탄대로 걸어서 성공할 녀석이 무슨 프로게이머야? 거긴 상위 몇 프로 외에는 다 굶는 데인 거 몰라?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도박을 해?”
그런 김수혁에게 이신은 뜻밖에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게임으로 성공하는 게 더 쉬워보여서.”
“…뭐?”
“농담이야.”
이신은 김수혁의 어깨를 툭 치며 계속 말했다.
“재미있어서 참을 수가 없거든. 그래서 그래.”
그 뒤로 이신과 어울려 노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신은 뭔가에 홀린 듯, 수업이 끝나면 훌쩍 사라져 버렸다.
가끔 새벽에 게임을 켜보면, 온라인에 항상 이신의 아이디가 접속해 있었다.
게임에 미쳐 있을수록 이신의 성적은 떨어졌고, 결국 모두의 기대에 미치는 대학에 가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나쁜 대학에 간 것도 아니어서, 나중에라도 프로게이머를 관두면 낭비했던 시간을 다시 만회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김수혁은 죄책감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듬해, 김수혁은 이신이 우편으로 보낸 결승전 티켓을 받았다.
그 티켓으로 결승전 경기를 직관한 김수혁은 상대를 순식간에 압살해 버리고 우승패에 키스를 하는 이신을 볼 수 있었다.
‘게임으로 성공하는 게 더 쉬워보여서.’
김수혁은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 후로도 유명인이 된 이신에게 섣불리 연락을 먼저 하지 못했다.
이신도 딱히 연락하지 않아서 그렇게 인연은 끊겼지만, 김수혁은 자신이 직접 본 가장 특별한 인간을 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사회 초년생이 된 지금, 이신이라는 존재는 김수혁이 매사에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롤 모델이 되었다.
똑같은 나이에 이미 수많은 업적을 이루고 많은 역경을 이겼던 친구를 보고 있노라니, 최소한 발끝이라도 따라잡고 싶다고 자극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지지 마. 계속 최고로 있어줘, 신아.’
김수혁은 이제는 옛 추억이 된 친구를 응원했다.
* * *
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던 걸까?
부스 안에서 세팅을 마치고 명상에 잠겼던 이신은 딴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친구 따라 간 PC방에서 이 게임과 처음 만났던 때를 잠시 떠올렸었다.
그때를 회상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지금 이렇게 부스에 앉아 수많은 관중이 바깥에 앉아 있는 풍경을 보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많은 사건을 겪었던 탓에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아직 10년도 안 됐다.
그때 그 친구는 지금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했거나, 아니면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다.
‘아직 10년도 못 했는데 벌서 끝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약 올랐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전성기란, 인생을 바친 것치고는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절대 안 질 거다.’
아직 옛 추억만 되새기기에는 자신이 너무 어렸다.
옛 추억이 형상화된 분신 그 자체인 인공지능에게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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