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03
503화 청부사(1)
이신은 하트셉수트를 도와서 서열전 단체전에 참가했다.
상대는 이반 4세.
악마군주 엘리고르가 새로이 지옥에서 데려온 계약자였다.
이반 4세는 중국의 시황제에 비견할 수 있는 폭군이었는데, 말도 못하게 잔학한 폭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황제의 업적이 폄하되지는 않듯, 이반 4세 역시 입지전적인 업적을 세운 남자였다.
이반 4세는 어린 시절에 고아가 되고 꼭두각시 왕이 되었는데, 귀족들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며 고통을 겪었다.
그 학대가 광기의 원천이 되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타고난 왕의 기질을 갖춘 남자이기도 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스스로 독서를 하며 지식을 쌓았고, 끝내는 자신을 학대하는 귀족들로부터 권력을 되찾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여서 폭정과 선정을 반복했는데, 주변 지역을 차례로 정복하여서 러시아를 동유럽 강국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말도 못할 학살과 숙청을 하기도 했다.
시황제와 마찬가지로 그 광기의 증상은 수은 중독.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어린 시절에 한량 짓을 하고 다니다가 걸린 매독을 치료하느라 수은을 쓴 것이다.
첫 아내인 아나스타샤 로마노프를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영웅이라 불릴 만한 무수한 업적을 세워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내가 죽자 억눌렸던 광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가 독살 당했다고 믿고 수무한 귀족들을 숙청했다.
하지만 훗날 소련 시대에 발굴된 아나스타샤의 묘에서는 기준치가 훨씬 넘는 수은이 검출되었다.
방에 아궁이를 놓고 수은을 끓이고 마신 짓을 반복한 이반 자신이 바로 아내를 죽인 장본인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친놈이지.’
이신은 그냥 간략하게 요약해 버리고는 서열전에 임했다.
실제로 본 이반 4세는 수은 중독 현상이 없어졌던 탓인지 이성을 상실하는 광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생전에 형성된 지랄 같은 성격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는 현재 서열 32위에 있던 계약자 범려를 꼬드겨서 한편이 되어 하트셉수트에게 도전했다.
종족은 휴먼.
고유 능력도 재미있었다.
사도에게 빙의하여서 채찍질로 아군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 폭력적인 독려를 받으면 병력들은 채찍질에 상처를 입어 체력이 깎이면서도 더 열심히 싸워 공격력이 증가했다.
노예에게 채찍질을 하면 마력석을 더 빨리 채집하는 효과가 발생하는데, 대신 상처 때문에 그 뒤에는 속도가 더 느려지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반 4세는 자신의 고유 능력을 이용하여 일순간에 역량을 집중해 승부를 보는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이신은 그걸 알고 하트셉수트의 능력으로 대응했다.
하트셉수트의 고유 능력은 건물을 짓는 속도를 일시적으로 앞당기는 것.
이반 4세가 고유 능력을 쓸 때, 타이밍 맞춰서 하트셉수트도 고유 능력으로 방어시설을 빨리 지었다.
그리고 이신의 치유 능력으로 함께 버티기!
이반 4세가 승부를 보려 했던 타이밍만 넘기자, 그때부터는 주도권이 이신 측에게로 넘어왔다.
이신은 발 빠르게 역공을 가하여서 적을 구석으로 몰아내고 전장을 장악했다.
그리고는 시종일관 더 많은 마력석을 캐며 우위를 지켜 항복을 받아냈다.
“빌어먹을. 역시 명성값을 하는군.”
이반 4세는 연신 투덜거렸다.
무려 10만 마력짜리 판이었다.
악마군주 엘리고르로서는 최근의 기세를 믿고 도전했다가 호되게 당한 셈이었다.
“공격하는 타이밍을 너무 능력에 의존했나. 다음부터는 패턴을 조금 바꿔봐야겠군.”
이반 4세는 나름대로 반성도 했으나, 이미 10만 마력짜리 판에서 졌기 때문에 순위가 한 계단 내려가 재도전할 수는 없었다.
“수고 많았어요. 연습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는데 호흡이 잘 맞네요.”
하트셉수트가 인사를 했다.
이신도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손쉽게 마력 얻어갑니다.”
“호호, 이대로 위 서열로 한 번 더 도전하는 건 어떤가요?”
“그러고 싶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나중을 기약하죠.”
“그래요.”
이신은 또 바쁘게 움직였다.
다음은 라스푸틴.
하지만 악마군주 오리아스와 동탁은 이신이 지원으로 오자 깨끗이 도전을 포기해버렸다.
“큰 판에서 놀 것이지 이런 덴 뭐하러 나타나?”
동탁은 물러나면서 이신에게 핀잔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함께 싸울 수 있는 기회를 고대했는데 아쉽게 됐소.”
라스푸틴이 말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럴 거라 예상했습니다.”
“물론이오. 하지만 덕분에 시간을 벌었소. 동탁이 다시 도전해 오기 전에 단체전 파트너를 구해서 연습을 해야겠소.”
사실 라스푸틴은 동탁이 도전해 올 것을 예상했지만 적당한 서열전 단체전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신을 이용해 시간을 번 셈이었다.
“그렇다고 도움을 받았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이것을 받아주시오.”
라스푸틴은 시커먼 마력을 일으키더니, 그것을 찰흙처럼 뭉쳐서 까마귀 한 마리를 만들어냈다.
까마귀는 푸드덕 날더니 이신의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떨떠름한 표정이 된 이신에게, 라스푸틴이 말했다.
“누군가가 도전해 오거든 미리 알려줄 것이오.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좋지 않겠소?”
“…….”
“도전이 없으면 울지 않고 조용할 거요.”
“…계속 여기 앉아 있는 겁니까?”
이신은 자신의 어깨 위에 둥지라도 튼 듯이 앉아 있는 까마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귀엽지 않소?”
이신은 혹 하나 달린 기분을 느끼며 소득 없이 라스푸틴과 헤어졌다.
기능은 괜찮긴 한데 현실로 이 까마귀를 데려고 갈 수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보기 예쁘지도 않았다.
찜찜한 기분으로 까마귀를 어깨에 달고 찾아간 곳은 조아생 뮈라의 거처였다.
“꼴이 그게 뭐냐?”
조아생 뮈라는 어깨에 까마귀를 달고 있는 이신의 꼴을 보며 물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선물받았다.”
조아생 뮈라는 자지러져라 웃음을 터뜨렸다.
조아생 뮈라와도 호흡이 좋았다.
사실 이신이 중심에 서서 오더를 내리니 누구와도 호흡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조아생 뮈라는 좋은 검이었다.
이신이 시키는 대로 곧잘 움직이면서 뛰어난 싸움 실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오크 노예, 오크 전사, 오크 창기병 등등 어떤 병과의 사도에게 빙의하든 잘 싸우는 조아생 뮈라는 확실히 알렉산드로스가 축제 때 한편으로 지명할 만했다.
덕분에 이신은 조아생 뮈라와 손잡고 서열전 연승 행진을 시작했다.
조아생 뮈라는 아직 58위 정도에 있었기 때문에 상대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신의 전략과 컨트롤.
그리고 조아생 뮈라의 용맹을 활용한 다양한 견제 플레이.
이신이 집중적으로 붙어서 활약한 덕에, 악마군주 벨리알과 조아생 뮈라의 서열이 쭉쭉 올랐다.
몇 번 호흡을 맞추고 나니, 더 이상 연습도 필요 없었다.
이신은 스케줄을 조정하며 더더욱 바짝 마력 벌이를 했다.
여기저기서 지원 요청을 하니 일거리가 넘쳐흘렀다.
일단 조아생 뮈라를 시켜서 위 서열에 도전하게 한 뒤, 상대에게 주어지는 사흘간의 여유 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서열전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식이었다.
그 결과…….
[마력 총량 2,674,710으로 악마군주 그레모리님께서 서열 8위가 되셨습니다.]8위!
실로 놀라운 성과였다.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 마력 벌이를 한 결과, 무려 40만이 넘는 마력을 그레모리에게 벌어다주어서 11위에서 8위까지 야금야금 서열을 올린 것이었다.
한 번 흐름을 탄 결과였다.
여태까지 이신의 단체전 승률은 9할이 넘었다.
축제를 통해 명성을 떨쳤고, 알렉산드로스를 도와 승리를 만들며 실력을 입증.
그렇게 한 번 신뢰가 생기자 여기저기서 요청이 왔고, 이신은 또 그들을 도와서 계속 승리했다.
가는 곳마다 대부분 승리를 하니 더더욱 요청이 쏟아졌다.
그렇게 쭉쭉 마력을 벌어다가 그레모리에게 가져다주니,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8위였다.
게다가 많이 치러볼수록 경험이 쌓여서, 이신의 서열전 단체전에 대한 이해도는 더더욱 높아진 상황.
“세상에, 그대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나?”
오랜만에 놀러온 나폴레옹이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서열을 좀 높이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수단으로는 1위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요.”
이신은 덤덤히 대꾸했다.
“정말인지, 우리가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모를 거다.”
의아해하는 이신에게 나폴레옹이 설명했다.
알렉산드로스와 테무친의 충돌 이후로, 최상위권 서열에서는 그동안 서열전 단체전을 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가 된 분위기였다.
왜냐면 어마어마한 배팅으로 수차례 치러지는 큰 대결에서, 결국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사람은 이신이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누가 이기든 아무런 리스크 없이 승리의 대가를 반씩 나눠 갖는 지원자를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특히나 이신은 그들을 위협하는 경쟁자였고, 실제로 이제 8위였다.
거기다가 체면도 있었다.
하위 서열에서 누가 도와달라고 요청해도 응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기라도 하면 괜히 망신이었기 때문.
명예 실추보다 더 중요한 건, 단체전에 약하다는 약점이 공개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최상위권의 계약자들은 자신들끼리 일대일만 할 뿐, 단체전이라는 새로운 서열전 시스템은 좀처럼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네는 체면이고 뭐고 부르는 대로 다 쫓아다니며 마력을 긁어모았단 말이지.”
나폴레옹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차라리 도전을 하는 게 빠르지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8위에 있는 걸 보고 다들 태도가 달라졌네.”
이렇게도 서열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이신이었다.
사실 그냥 위 서열로 쭉쭉 도전을 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최상위 서열에 있는 계약자들은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다.
웬만한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
그만큼 준비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에, 이신은 그 대신 지원자로서 여기저기 다니며 리스크 없이 빠르게 마력을 모으는 길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조아생 뮈라와 함께할 땐, 피도전자에게 주어지는 사흘의 여유 시간을 이용하여서 다른 서열전까지 다녀오고는 했던 이신이었다.
그게 다 중하위권의 만만한 서열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미친 짓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점.
“덕분에 많은 종족을 상대로 경험을 쌓았습니다.”
다양한 종족과 전장, 그리고 계약자마다 가진 수많은 고유 능력들.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이신은 실력을 더더욱 키웠다.
“정말 무섭군. 한동안 용병 노릇을 계속 할 생각이냐?”
그 물음에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배팅이 작은 쪽은 거절할 생각입니다.”
마력 벌이도 슬슬 약발이 떨어져갔다.
이신이 나타났다 하면 상대측은 도망가거나 낮은 배팅을 했다.
그만큼 마력 벌이가 줄어드니 이제 슬슬 그만둘 때가 되었다.
“곧 그리로 갈 겁니다.”
이신은 나폴레옹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고, 나폴레옹은 웃으며 환영의 제스처를 취했다.
“언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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