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
50화 새로운 영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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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에서 돌아와 보니 집이었다.
눈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서는 여전히 최영준의 개인 방송 녹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고맙군.’
이신은 최영준에게 감사를 표했다.
최영준과의 대결에서 얻은 교훈으로 조아생 뮈라라는 강적을 꺾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신에게 ‘공간’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것을 완전하게 터득하기만 한다면, 이신은 보다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던, 무결점의 전성기 시절보다도 더 수준 높은 플레이!
그야말로 스페이스 크래프트, 인류의 끝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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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월드 SC 그랑프리.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이, 그리고 특히 한국 e스포츠 팬들이 기다려 온 축제가 막이 내렸다.
실망스럽게도 쌍성전자는 단체전에 출전하여 8강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좌절했다.
하지만 단체전은 늘 그랬듯 메달 권에 진입해 본 경우가 없었으므로 팬들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 팬들의 관심사는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를 가리는 꽃 중의 꽃, 개인전이었다.
올해는 매년 금메달을 당연하게 따왔던 이신이 없었지만, 대신 그의 최강 계보를 잇는 신흥 강자가 더 많아졌다.
최영준, 박영호, 황병철 등.
이신에 비견되는 그들이 금·은·동메달을 휩쓸어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황병철 예선 탈락.
최영준 동메달.
박영호 은메달.
메달 세 개를 땄으니 꼭 나쁜 성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특히 준결승에서 운명처럼 만난 박영호와 최영준은 세계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쌍영전을 펼쳐 라이벌 매치다운 치열한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프로리그에서는 최영준에게 밀렸던 박영호였지만, 준결승 다전제에서는 특유의 철벽 수비와 무한 확장을 펼쳐 최영준의 물량공세를 막아냈다.
그러나 그런 박영호가 정작 결승전에서는 프랑스 선수 엔조 주앙(Enzo Juan)을 만나 거짓말 같은 1승 3패를 기록했다.
최영준은 3, 4위전에서 미국 선수 마이클 조셉(Michael Joseph)을 만나 쌍영전 못잖은 혈투 끝에 3승 2패로 간신히 동메달을 얻었다.
충격적인 것은 금메달을 거머쥔 프랑스의 엔조 주앙과 4위인 미국의 마이클 조셉의 플레이 스타일이 이신과 꼭 닮았다는 점이었다.
끊임없는 견제로 상대를 갉아나가는 플레이!
21세의 백인 미남자 엔조 주앙은 상대 심리를 흔드는 재치 있는 속임수와 정교한 컨트롤을 선보여 올해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19세 흑인 청년 마이클 조셉은 초스피드의 템포로 알고도 막기 힘들 정도의 견제를 폭풍처럼 퍼부었다.
마치 전성기 시절의 이신의 역량을 반씩 나눠가진 듯한 두 선수의 실력.
한국은 금메달 좌절에 실망하면서도 동시에 충격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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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의 후계자는 한국에 없었다.] [한국 4년 연속 개인전 금메달 좌절] [한국 e스포츠의 현주소] [(칼럼)이신이라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한국] [개인전 금메달 佛 엔조 주앙 “한국을 꺾어 더욱 기쁘다”] [금메달 엔조 주앙·4위 마이클 코어, 선진적인 인프라의 승리. 한국은?] [미국·프랑스 비롯한 세계 각국, 이미 수년 전부터 이신 분석·학습해]?
e스포츠의 가능성을 보고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선진국의 인프라는 과연 무서웠다.
전성기 시절의 이신의 실력을 구현해 내기 위해 그들은 아낌없는 투자를 감행했다.
의료팀이 반사 신경과 멀티태스킹 훈련 프로그램을 짰고, 수학자들이 대거 포함된 전략팀이 상대를 초 단위까지 낱낱이 분석해 대응 전략을 내놓았다.
그들의 과학적인 시스템은 결국 ‘민족 특성’이라고까지 불렸던 한국의 수준을 능가해 버렸다.
실망한 팬들의 관심은 단연 이신에게로 모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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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ㅉㅉㅉ 결국 이리 될 줄 알았지.
-포스트 신이 어쩌고 하더니 ㅋㅋㅋ
-엔조 존나 잘하더라. 잘생긴 것까지 이신 후계자 같았음.
-조셉도 잘하던데. 흑인의 순발력과 반사 신경 ㄷㄷ
-내년에는 조셉이 짱 먹을 듯. 이제 e스포츠도 흑형들의 시대인가!
-아, ㅆㅂ 금메달 당연히 딸 것처럼 떠들더니! 존나 기대했잖아!
-우리나라에는 단절된 이신 스타일이 양놈들이 가져가 버렸네. 우리나라는 대체 뭘 한 거냐?
-박영호 1세트 승리했을 때 조낸 좋아했는데 그 뒤로 내리 3패 ㅋㅋㅋ
-아 암 걸릴 뻔 ㅠㅠ
-이신 없으니까 금메달 못 따는구나.
-쌍영이 이신 넘어섰다니 어쩌니 헛소리 할 때부터 알아봤다.
-외국에서는 이신 따라하려고 기를 쓸 때, 우리나라는 이신을 잊으려고 기를 썼잖아. 그래서 포스트 신이 어쩌고 하면서 쌍영이랑 황병철 존나 밀어준 거고.
-신이시여, 돌아오소서.
-저희는 너무 나약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어서 복귀하셔서 금메달을 주소서! 아멘!
-그 와중에 황병철 예선 탈락 잼 ㅋㅋ
-황병철 그 새낀 기대도 안 했음.
-황병철 팬들 ㅂㄷㅂㄷ 중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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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신밖에 없다.
한국 e스포츠는 아직 이신이 필요하다.
그렇게 여론이 들끓자, 이신의 출근길에 꼬여드는 기사들과 팬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났다.
아침 출근길부터 포위당한 이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인터뷰에 응해야 했다.
“이신 선수, 이번 한국 대표 선수들의 개인전 성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체로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는데 잘했다는 겁니까?”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들한테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웃깁니다.”
이신의 말에 질문한 기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다른 기사들이 계속 질문했다.
“박영호 선수가 결승전에서 엔조 주앙 선수에게 1승 3패로 완패했는데, 이 시합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디펜스는 좋았지만 맵의 구조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기동포탑의 사거리를 이용한 견제에 대해 빈틈이 드러났는데, 사실 맵 구조 연구는 팀 차원에서 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속팀의 수준에서 차이가 발생했다고 보여 집니다.”
“엔조 주앙 선수의 스타일이 이신 선수를 꼭 닮았던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직 이신에 대해 잘 모르는 기자의 질문이었다.
“황병철 선수의 예선 탈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맛이 갔죠. 걘 뭐가 문젠지 모르겠습니다.”
기자들이 ‘월척’을 건졌다는 듯이 눈을 번뜩이고는 열심히 받아 적는다.
“요번 그랑프리의 성적 부진으로 팬들이 이신 선수의 복귀를 바라고 있는데요, 선수 복귀는 언제쯤 하실 예정입니까?”
“요번 그랑프리에서 한국 대표 선수들은 성적은 부진하지 않았습니다. 금메달은 못 땄지만 대단히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선수 복귀는 언제이십니까?”
“…….”
이신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기자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언가 굳게 결심한 듯, 이신이 말문을 열었다.
“이른 시일 내에.”
“예?!”
“복귀하시는 겁니까?”
“그럼 이번 시즌 후반기에……!”
이신은 기자들을 뿌리치고 방송국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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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박영호, 최영준 그만하면 잘한 편.”] [“박영호 결승 패배는 소속팀이 문제.” JKT 비판한 이신] [이신, 황병철에 직격탄 “맛이 갔다.”] [이신 “선수 복귀는 조만간.”]?
“인마, 너 정말 이렇게 말했어?”
방진호 감독이 물었다.
뉴스 제목을 훑어본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선수 복귀 조만간 한다는 것도?”
“예.”
방진호 감독은 덥석, 이신의 손목을 붙잡아 자기 눈앞에 끌어당겼다.
손목을 이리저리 살피는 방진호 감독.
스킨십을 싫어하는 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 나았어?”
“거의.”
방진호 감독이 날카로운 눈으로 이신을 바라보았다.
“지랄한다. 손목은 한참 전에 나았던 거지?”
“아닙니다.”
“웃기지 마, 내가 널 몰라? 손목은 다 나았는데 그놈의 완벽주의 때문에 복귀를 미루고 준비한 거 아냐.”
정확한 지적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세상에서 이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앙숙이었던 방진호 감독인 것이다.
“왜 말이 없어?”
“조만간.”
“뭐?”
“조만간 1군 테스트 하죠.”
“주디 얘기야?”
“주디가 아닙니다.”
“그럼…….”
의문을 표한 방진호 감독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냐?”
“예.”
“10명과 붙어서 승률 100% 나오면 복귀하겠습니다.”
“승률 100%? 너 지금 잠꼬대 하냐? 50% 넘으면 바로 복귀해, 이 새꺄.”
“그건 제 마음이라고 계약에도 명시되었을 텐데요.”
“……!”
그랬다.
경기 출전 여부는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계약상 명시되어 있었다.
“조금 양보해도 승률 90%입니다. 싫으면 계약을 파기하던가.”
방진호 감독은 인상을 쓰더니 이윽고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소리쳤다.
“Player_SIN 그거 너지 이 새꺄!”
“저 아닙니다. 걘 진짜로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너 맞잖아!”
“아니라는데 왜 이렇게 끈질깁니까?”
“끈질겨? 그거 그 새끼가 나한테 굉장히 많이 하는 소린데?!”
“저 아닙니다. 이럴 시간에 그 친구 영입할 궁리나 하십시오.”
방진호 감독은 걸리면 죽는다는 눈빛으로 이신을 노려보았다. 물론 이신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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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는 아마추어대회에 참가했다.
매달 개최되는 아마추어대회에 두 번째로 참여한 주디는 지난달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신의 가르침으로 실력이 급격히 성장한 주디는 단 한 세트도 지지 않고 연승행진을 이어나갔다.
양민학살이라는 테마로 이신에게 훈련을 받은 주디.
그런 그녀에게 아마추어리그는 그야말로 학살 축제나 다름없었다.
소속된 B조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준 프로 자격을 획득한 주디는 각 조별 우승자끼리 겨루는 플레이오프에서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각 조의 우승자들은 하나같이 프로팀 소속의 연습생이기에 마냥 쉽다고 할 수 없는 난이도였는데, 주디는 이번에도 한 세트도 지지 않았다.
아마추어리그에서 우승한 외국인 미소녀!
게다가 함께 온 전담코치는 다름 아닌 이신.
최근 다시 주목 받는 이신이기에, 그런 그와 함께 있는 주디는 큰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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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왜 이렇게 날 귀찮게 하는 거야?”
용산 e스포츠 센터를 간신히 빠져나오면서 이신이 투덜거렸다.
주디와 함께 아마추어대회에 온 그는 기자들과 팬들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고생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선수복귀를 한다는 말에 난리가 난 한국이었다.
그런 시기에 이신이 e스포츠 센터에 나타났으니 당연히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주디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거리고 있었다.
아마추어리그 종합우승을 차지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인과 카메라 촬영과 인터뷰를 요청하는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가느라, 이신과 손을 꼭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우승보다도 주디를 기쁘게 했다.
“정말 운전을 하든지 해야겠군.”
콜택시 어플로 택시를 부르면서 이신은 투덜거렸다.
차가 없으니 이럴 때는 힘들었다. 택시를 타러 밖에 나갈 때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전성기 시절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신은 운전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접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도 귀찮은데.’
바로 그때였다.
“코치님.”
“응?”
“저 차 있어요.”
“차가 있다고?”
“지금 부를게요.”
주디는 생글거리며 어디론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리무진이 도착했다.
“아가씨, 오늘은 어떠셨습니까?”
“우승했어요.”
“오, 잘됐군요.”
두 사람의 대화는 영어였던 탓에 이신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이신은 외국인 운전사를 빤히 바라보며 ‘바로 이거다’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