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7
517화 후기리그(2)
오전 7시.
이신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끔한 모습으로 연습실에 출근했다.
집에서도 내내 입었던 추리닝 차림이었지만,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기럭지 탓에 매우 자연스러웠다.
“아오. 피곤해, 졸려.”
더 자고 싶어서 투덜대다가 결국 이신에게 끌려나온 박영호는 함께 출근해 놓고는 내내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홍삼을 쪽쪽 빨며 자기 자리에 앉아 연습할 준비를 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박영호가 모니터에 대고 인사하자 옆자리에 있던 이신은 흠칫 놀랐다.
어느새 박영호가 개인 방송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며 어기적거리더니 개인 방송 켜는 건 정말 빨랐다.
이신도 방송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평소에 훈련 전에 한두 시간 정도 손 풀기로 가볍게 게임을 할 때 방송을 했다.
이신의 경우는 중국의 스트리밍 업체와 계약하여서 매달 거액을 받았고, 박영호는 평소에 하던 파프리카TV에서 계속 활동했다.
“형, 나랑 한판 할래? 나 괴물, 형은 신족.”
박영호가 시청자들로부터 이신과의 대결을 보고 싶다는 요청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박영호랑 하면 손 풀기 정도가 아니라서 부담스러웠다.
“신족으로 널 어떻게 이겨?”
“못 이긴다고 시인하는 거야?”
“너도 서브 종족 해.”
“아 싫어. 그럼 상대가 안 되잖아.”
이신이 세 종족 모두를 탁월하게 잘하는 건 이미 유명한 일이었다.
신족으로 플레이한데도 박영호와 상대가 가능했다.
반면 박영호는 다른 종족으로는 그만큼 잘할 재주가 없었다.
“에이, 여러분. 형이 무서워서 안 한대요. 쫄보네, 쫄보.”
이신은 아주 살짝 분노가 치밀었다.
더불어 서브 종족으로 저놈을 박살 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들로부터 이신의 신족조차 못 이기냐는 지탄을 받는 박영호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해.”
“오, 진짜지?”
박영호는 희희낙락했다. 이신과 게임을 하면 이기든 지든 별사탕 축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빅 매치가 성사됐습니다. 기뻐해 주세요!”
-정말 오지게 모기 짓 하네ㅋㅋ
-이신 따라 중국 간 게 박영호의 신의 한 수였다.
-형, 대체 연애는 언제 할 거야ㅠㅠ
-모기처럼 이신 옆에 붙어서 파프리카 랭킹 1위를 한 남자.
-철벽모기…….
-덕분에 아침부터 눈 호강하겠네.
-출근길 지하철에서 명경기 관람 개꿀!
박영호의 개인 방송 시청자들은 한마디씩 채팅을 하며 즐거워했다.
방송 때마다 이신을 팔아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박영호의 어그로 솜씨는 이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렇게 온라인에서 둘이 한판 붙으려 할 때였다.
-Lightning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Lightning: 형님들 안녕하세요! 저 박이현입니다!
-Lightning님께서 퇴장당했습니다.
누군가가 두 사람의 대전실에 멋대로 입장했는데,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신이 퇴장시켜 버렸다.
대전실에 멋대로 난입하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습관적으로 퇴장시킨 것이다.
“방금 그거 박이현 아냐?”
“몰라.”
“뭘 몰라. 아이디가 박이현인데.”
“그냥 해.”
“와, 정 없는 거 보소.”
무시하고 다시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
-Lightning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Lightning: 형님들ㅠㅠ
-Lightning: 쫓아내지 말아주세요ㅠㅠ
-Lightning: 저 옵 좀 봐도 될까요?
박이현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와 관전을 구걸했다.
이신 대 박영호라는 빅 매치를 자기 개인 방송에서 중계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 징한 놈이다.”
박영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부터 방송을 시작한 박이현.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이신이 아침에 방송을 하기 때문이었다.
-모기가 또 나타났다.
-쌍박 모기가 또…….
-이신 모기 쌍박 오진다.
박영호의 방송 시청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와, 쟤도 진짜 낯짝 두껍네요. 방송 흥하고 싶어서 아주 신이 형 스토커 짓을 하고 있어요.”
박영호가 그런 박이현을 나무랐다. 그랬더니,
-너나 잘해.
-응 너도.
-똥 뭍은 놈이 겨 묻은 놈한테 뭐라 하네.
-쟤도 너만큼은 아니야.
-못생긴 난쟁이 놈아. 넌 이신 덕에 방송에서 번 돈이 수억은 될 거다.
‘똑같은 놈들이군.’
이신은 그저 혀를 찰 뿐이었다.
뭐,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이신으로서는 두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이용하든 귀엽게 봐줄 뿐이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게임은 시작되었고, 박이현은 관전을 했다.
가볍게 손 풀려고 했는데 어느덧 일이 커져버린 느낌이었다.
두 사람 다 질 수 없다는 마음가짐.
특히나 신족을 하는 이신과 달리, 자기 메인 종족인 괴물로 임하는 박영호는 져서는 안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우 치열한 승부가 되어버렸다.
시작부터 정찰 온 신도가 앞마당에 부화실을 건설하려는 일벌레를 방해했고, 조금 뒤에는 광신도가 난입해 공격하기도 했다.
잠시 후에는 반대로 박영호가 바퀴 떼를 몰고 달려와 뚫기를 시도했다.
이신은 캐논포와 신도들의 블로킹으로 절묘한 수비를 펼쳤고, 박영호도 그 와중에 뚫기를 포기하고 신도들을 일점사해 몇 기를 사살했다.
그 뒤로, 이신은 사략기로 하늘군주를 사냥하러 다녔다.
하늘을 누비는 사략기 편대를 잡기 위해 박영호는 폭탄충 무리를 동원했다.
공중전의 황제 이신의 사략기.
그리고 폭탄충의 명인인 박영호.
두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공중전이 펼쳐졌다.
박영호의 폭탄충들이 요소요소마다 지키고 서서 사략기들의 침입을 가로막았다.
이신의 사략기 편대는 폭탄충들을 피해 끊임없이 침투하며 박영호의 신경을 건드렸다.
공중에서 사략기와 폭탄충이 쫓고 쫓기는 아찔한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지상에서도 끊임없이 충돌했다.
이신의 진영 인근에는 촉수충들이 잔뜩 땅속에 심어져서 나오지 못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이신은 그런 촉수충 밭을 뚫고 나가기 위해 계속 돌파를 시도했다.
공중과 지상에서 계속 부딪치며 불꽃같은 멀티태스킹을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운영은 박영호가 좋았다.
이신의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계속 확장 기지를 늘려서 풍부한 자원을 먹어치웠다.
자연스럽게 자기가 유리한 상황으로 만든 박영호의 운영 솜씨는 과연 톱클래스였다.
하지만 이신은 고비마다 고급 유닛을 기가 막히게 잘 써서 위기를 넘겼다.
대사제가 수송기를 타고 다니며 전격 마법을 뿌려댔고, 철갑충차가 충격탄을 쏘며 방어했다.
수송기 3기에 각기 고급 유닛을 태우고 곳곳을 다니며 이신은 계속 활약했다.
순전히 컨트롤과 멀티태스킹으로 아슬아슬하게 승부의 균형추를 맞추고 있었다.
싸움은 40분이 넘어가고 50분이 다 되어서야 결판이 났다.
“아자!”
박영호가 벌떡 일어나 부르짖었다.
마지막 자원 지역을 놓고 치러진 최후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었다.
끝까지 잘 버텼으나 결국 패배한 이신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와 나, 무슨 놈의 서브 종족을 이렇게 잘해? 하마터면 망신당할 뻔했네.”
박영호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었다. 졌으면 시청자로부터 욕을 무지 먹을 뻔했다. 물론 지금은 별사탕 축제를 벌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와!”
“아까웠다.”
“진짜 잘했는데.”
연습실은 더 이상 이신과 박영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연습실에 출근한 SC스타즈의 선수들 및 연습생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승자는 박영호였지만, 모두의 선망을 받고 있는 사람은 이신이었다.
분명 시종일관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략기를 끝까지 살리며 제공권을 장악한 것이 크게 유효했다.
덕분에 수송기가 고급 유닛을 싣고 마음껏 맵을 누비며 홍길동처럼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상에서는 병력 물량이 압도적이었던 박영호였는데, 계속 전격 마법이나 철갑충차의 충격탄으로 게릴라를 펼치는 탓에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다.
이신이 방송을 종료하고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리플레이 파일을 전략팀에서 가져갔다.
굉장히 독특한 운영이었기 때문에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날, 정규 훈련을 마치고 왕춘 감독과 면담을 했다.
“요즘 컨디션이 좋아 보이더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이신도 인정했다.
아침에 박영호와 했던 게임에서 스스로도 놀랐다.
불리한 상황을 제공권 장악 및 고급 유닛 활용으로 극복한 플레이는 말이 쉽지, 매 순간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컨트롤에서 한 번도 미스가 안 났고, 멀티태스킹도 쌩쌩했다.
“최근의 기록을 보니 피지컬이 전체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예?”
그 말에는 이신도 깜짝 놀랐다.
컨디션이 좋긴 했지만, 설마 이제 와서 피지컬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이 나이에?’
보통 사람은 은퇴하거나 일선에서 물러나야 정상인 나이였다.
“거의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 것 같다고 하더군요.”
“…설마요.”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그만큼 컨디션이 좋아지셨다는 뜻인데, 어떤 계기라도 있으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신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다시 말했다.
“사실 게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다만?”
“아직 기다려 줘야 하는 애들이 있습니다.”
“기다린다고요?”
“차이나 장양, 그리고 가까이는 박영호도, 제게서 금메달을 빼앗고 싶어 하는 애들이 아직 있습니다. 그걸 기다려 주려고 합니다.”
“끝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요?”
“물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죠.”
이신은 조금은 쓸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영어나 한자도 이제 조금씩 읽을 줄을 압니다. 방송에서 올라오는 채팅이나 인터넷의 글들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죠.”
뜬금없는 말에 왕춘 감독이 의아해했다.
이신이 계속 말했다.
“그들은 저보고 지겹다고 말합니다. 또 이겼냐고, 네가 e스포츠를 망치고 있다고요.”
“그런 헛소리를 귀담아 듣지는 않으시겠죠?”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신.
특히 작년에 모든 도전자를 물리치고 다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반감이 촉발됐을 수도 있었다.
마치 옛날 모든 게임의 e스포츠를 한국인들이 독점했던 때를, 이신을 보며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사실 저도 지겨운 건 마찬가지니까요.”
왕춘 감독은 그런 이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더 고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게 패배의 고통을 맛보게 해주겠죠. 너무 분해서 다음번에는 꼭 복수해주고 싶고, 그런 뜨거운 감정을 느끼지 못한 지 너무 오래 됐거든요.”
11차전까지 진행된 후기리그.
이신의 전적은 현재까지 10승 0패.
“그날을 기다리면서 힘을 내고 있습니다. 제 자리를 빼앗을 후배에게, 제가 나이든 덕에 이길 수 있었다는 소리를 듣게 하면 안 되니까요.”
올 시즌의 모든 공식전 승률은 현재까지 100%.
대항마로 여러 선수가 거론되었던 작년과 달리, 올 시즌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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