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5
525화 한니발(5)
4차전은 한니발의 역습이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독포자꽃을 주력으로 소환하여서 곳곳에 대공 방어를 해두었다.
이신은 첫 그리핀이 소환되자마자 정찰을 보냈는데, 한니발의 방어 태세를 보고는 그리핀 편대를 쓸 생각을 포기했다.
그리핀 1마리는 계속 정찰로 활용하면서, 이신은 역시나 마법사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윽고 한니발이 급작스럽게 총공세를 펼쳤다.
한니발의 회심의 한 수였다.
바로 마룡!
이신이 그리핀을 모으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한니발이 비밀리에 마룡을 모은 것이다.
그리핀 편대가 없는 이신은 제공권을 한니발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거기다가…….
‘저건 정말 너무하는군.’
이신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계약자 한니발 바르카님께서 고유 능력을 사용합니다. 300마력이 소모됩니다.] [50마리의 마물이 절벽을 건넙니다!] [5마리의 마물이 절벽을 건너다가 추락사했습니다.]마물들이 절벽을 기어올라 이신의 본진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대부분 헬하운드와 독포자꽃이었지만, 그중에 종종 보이는 육중한 몸집의 엔트들이 이신을 질리게 했다.
독포자꽃이 진화한 형태인 엔트는 거대한 나무 괴물이었다.
엄청난 몸집의 나무 괴물이 낑낑거리며 절벽을 기어오른 것이다!
그 엔트를 뒤에서 열심히 받쳐주는 헬하운드들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
살아생전의 한니발이 코끼리들을 끌고 알프스를 넘던 모습이 저러했을까 싶었다.
사실 그때 한니발은 코끼리를 대부분 알프스 산맥을 넘다가 잃었기 때문에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한이라도 됐던 것일까?
한니발은 기어코 엔트들을 이끌고 절벽을 넘어 이신의 본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엔트들은 석궁병의 볼트가 잘 박히지 않는 엄청난 방어력 때문에 이신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마법사의 파이어 스톰으로 불태우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마법사가 접근할라치면 곧바로 마룡들이 날아와 집중 공격했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비밀리에 마룡 편대를 모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탓에 제공권을 잃은 결과였다.
엔트들을 앞세운 한니발은 본진 출입구를 가로막았다.
출입구를 장악당한 탓에 본진과 앞마당이 서로 고립당하자, 뒤이어 마물들이 물밀 듯이 이신의 앞마당을 공격했다.
출입구가 막혀 있어서 본진에 있는 병력이 앞마당을 구원하러 갈 수가 없었다.
깨끗이 당했음을 인정하고 이신은 패배를 선언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님의 계약자 이신님께서 패배를 선언하셨습니다. 악마군주 가미진님의 승리입니다.]이로서 2승 2패.
다시 동률이 되자 한니발은 씨익 웃어보였다.
“이제야 앙갚음을 해주었군. 솔직히 3차전 때는 정말 열받았거든.”
시종일관 여기저기 들쑤시고 내빼버리는 이신 특유의 집요한 견제 플레이는 당하는 이를 열받게 만든다.
그렇게 당하면 보통 멘탈이 나가버리기도 하는데, 한니발은 침착하게 설욕했다.
그것도 3차전의 패배 원인이었던 제공권을 빼앗는 계책으로 말이다.
“훌륭하시군요.”
이신은 4차전에서 보여준 한니발의 실력을 순순히 인정하였다.
2패!
한니발은 확실히 지금까지 상대해봤던 다른 계약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신이 다양한 테크닉으로 압도했다면 한니발은 묵직한 한 방으로 2승을 챙겼다.
물론 고유 능력에서 상성상 불리한 점이 크긴 했지만.
‘가만.’
이신은 문득 지난번에 박영호와 했던 연습게임이 떠올랐다.
신족으로 박영호의 마물에 맞섰는데 상당히 치열했던 명경기로 개인 방송에서 크게 호응을 받았던 터라 기억났다.
그때도 계속 압도적인 물량으로 몰아치는 박영호를 사략기 편대의 제공권을 바탕으로 대사제와 철갑충차 등 특수 유닛을 현란하게 쓰며 맞섰다.
‘결국 졌었지.’
연구해보겠다고 리플레이 파일을 가져간 전략팀에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써먹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왔다.
“카이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플레이입니다.”
피지컬과 컨트롤, 멀티태스킹의 부담이 너무나 컸기 때문.
수송기 3기를 각기 따로 운용하면서 컨트롤에 실수가 절대 없어야 하니, 미치지 않고서는 구현할 수가 없는 플레이였던 것이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나?’
너무 외줄타기 곡예 같은 전술을 고집한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로 적의 물량에 맞서겠다는 기본 발상은, 마법사의 파이어 스톰이 불발 났을 때의 대가가 혹독했다.
그런 위험천만한 싸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성격이 역효과를 불러왔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
‘괴물을 잡는 건 신족의 강력함이 아니라 인류의 탄탄함이지.’
신족의 유닛이 아무리 강력한들, 괴물이 물량 공세에 부딪쳐 소모전이 나버리면 견뎌내지 못한다.
하지만 탄탄한 방어력을 펼치는 인류는 괴물의 물량을 녹여버린다.
한니발의 고유 능력 탓에 휴먼의 장점을 너무 포기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나폴레옹이 한니발에게 고전했다는 얘기 때문에 나폴레옹과 반대의 노선을 택한 게 문제였나.’
이신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휴먼의 정석.
역시 투석기였다.
사거리와 파괴력을 활용해야만 한니발의 마물 대군을 막을 수 있다.
기동성에 약점이 있으나 한 곳에 일단 자리를 잡고 바위를 쏘면 마법사보다 더 확실하다.
‘그리고 공병도 투입해서 건물을 수리하면 디펜스는 확실히 더 좋아지겠지.’
이신은 5차전의 콘셉트를 잡았다.
이번에는 디펜스였다.
-준비가 됐으면 시작하지?
악마군주 가미진이 물어왔다.
이신은 그레모리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레모리가 말했다.
“준비는 됐다. 다시 도전하겠어.”
-똑같은 전장, 똑같은 배팅이다.
“응하겠다.”
이윽고 이신과 한니발은 5차전에 돌입했다.
전장으로 투입되어 서열전을 개시한 두 계약자를 지켜보며, 문득 악마군주 가미진이 그레모리에게 말을 건넸다.
-무모한 도전을 강행하는군.
“나와 내 계약자에게 이 서열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말할 셈이냐?”
-천만에. 네 계약자는 탁월하다. 서열전을 지켜본 세월이 얼만데 실력 하나 못 알아볼까? 저 탁월한 재능은 척 보면 알 수 있지.
가미진은 휴먼의 진영에서 지휘를 내리는 이신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상대가 좋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군. 너도 보지 않았나? 한니발은 확실하게 이기지만 네 계약자는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걸.
“…….”
그 지적에는 그레모리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도 이신과 함께하면서 그의 수준 높은 서열전에 안목이 높아졌다.
오늘의 승부는 2승 2패로 팽팽하지만 내용은 그리 비등하지 못했다.
한니발은 자신이 계획한 확고한 필승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반해, 이신은 위험천만한 싸움을 했다.
어려운 상황을 해쳐나가는 솜씨는 감탄이 나올 정도이지만, 근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는 게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확실히 상대가 좋지 않았을 수도.’
차라리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와 겨루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이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가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면, 난 믿을 수밖에 없어.”
* * *
2승 2패.
5차전.
이제는 서로에 대해 파악이 끝났으며,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피차 확신을 갖게 된 시기였다.
이신은 언제나처럼 콜럼버스를 정찰에 내보냈다.
어쩌면 대결 내내 가장 위험한 곳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였다.
재빨리 한니발의 본진에 들어간 콜럼버스는 체제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헬하운드를 소환하고 있습니다. 곧 나오겠는데요?”
정찰에 이골이 난 콜럼버스는 헬하운드가 소환 완료될 시기까지 꿰고 있었다.
물론,
‘6초 안에 나온다. 슬슬 물러나.’
이신은 더 정확했지만 말이다.
2초간 더 둘러본 콜럼버스는 남은 4초 동안 본진에서 빠져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6초가 지났을 때 헬하운드 6마리가 튀어나왔다.
“진짜 회중시계라도 들고 계시나?”
콜럼버스는 정확히 예언한 시간에 나타난 헬하운드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윽고 콜럼버스는 중앙 지역까지 도망쳤다가 다시 방향을 돌렸다.
다시 한 번 한니발의 진영을 염탐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찰을 철저히 차단하는 헬하운드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5마리가 서로 10미터 간격을 유지한 채로 콜럼버스를 마크하는 포메이션.
블링크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10미터임을 정확히 아는 대처였다.
마비침으로 따돌린다 해도 즉각 다른 헬하운드가 커버할 수 있는 대형에 콜럼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안되겠습니다.”
‘무리할 필요 없다. 그냥 돌아와. 1마리가 비는데 이쪽에 정찰 오는 것 같다. 중간에 마주칠 수 있으니 주의해.’
“옛!”
예언대로 헬하운드 1마리가 콜럼버스가 돌아오는 길에 대기하고 있었다.
뒤에서도 5마리가 일제히 뛰어오면서 콜럼버스를 사냥하려 들었다.
“웃! 위험한데?”
콜럼버스는 눈앞의 1마리에게 마비침을 쐈다.
휙!
그러나 헬하운드는 놀라운 몸놀림으로 마비침을 피했다.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니, 사도가 틀림없었다.
콜럼버스는 블링크를 써도 위험할 수 있겠다 싶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쉬익― 콱!
“크릉!”
멀리서 날아온 화살에 어깨를 맞은 헬하운드가 몸서리를 쳤다.
그 틈을 타 콜럼버스는 꽁지가 빠져라 튀었다.
퓻!
그 와중에 마비침을 1발 더 쏴서 1초간 마비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헬하운드 사도는 어깨에 박힌 화살을 물어서 뽑았다.
어깨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그 헬하운드 사도의 특수 능력은 빠른 회복이었다.
“크르릉…….”
화살이 날아온 곳을 노려보았다.
불꽃같은 한 쌍의 눈이 노려보는 곳에는 로흐샨이 서 있었다.
로흐샨이 지시를 받고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콜럼버스를 마중 나온 것이었다.
로흐샨과 콜럼버스는 함께 본진까지 후퇴했다.
그 뒤에도 한니발의 헬하운드는 계속 이신의 진영 인근을 꼼꼼히 살피며 콜럼버스가 정찰하러 나오지 못하게 체크했다.
“휴, 놈들이 점점 철두철미해지는데.”
콜럼버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투덜거렸다.
“우리를 상대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뜻이지.”
로흐샨이 대꾸했다.
3차전 때 그리핀 편대를 이끌고 활약한 로흐샨은 한니발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체감했다.
이기는 건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 뒤 4차전에서 지는 건 너무 쉬웠다.
부디 자신들의 주군이 한니발을 이길 확실한 비책을 세웠기를 바랐다.
그때, 콜럼버스는 이신의 명령을 받았는지 본진 한쪽에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로흐샨은 그게 어떤 건물인지 알 수 있었다.
‘특수병영?’
평소보다 빠른 타이밍에 지어졌기 때문에 로흐샨은 의아해했다.
아마도 이신에게 새로운 생각이 생겼으리라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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