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8
528화 대왕(1)
어린 시절을 장식했던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는 지금 돌이켜도 진저리가 쳤다.
아버지가 지옥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냉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구제할 생각도 없었다. 다 죗값을 치르는 합당한 과정이 아닌가?
철학과 예술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야만인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악마군주의 계약자가 되어 끝없는 전쟁을 하게 된 현실.
감수성 넘쳤던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악마들이 사는 이곳에도 그가 좋아하는 예술과 학문이 있었다.
그와 계약한 악마군주인 파이몬도 예술과 과학에 능통했다.
간혹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을 작곡하여서 악보를 선물하기도 하였는데, 그 악보를 보면 참을 수 없어서 완주할 수 있을 때까지 플루트에 매달리곤 했다.
정말인지 시간 가는 줄도 몰라서 수십 년씩 한 곡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서열전이란 것은 참 오묘하단 말이지.’
군대를 길어 전쟁을 하고 영토를 얻기까지.
그 과정이 극단적으로 함축된 이 전쟁 방식은 그를 매료시켰다,
아버지는 군대를 키우는 데 평생을 할애했는데, 그 기질을 물려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서열전에 푹 빠져서 보다 효율적으로 강력한 군대를 모으기 위해 건물을 짓는 순서를 계산하는 일에 골몰하는 것이 그의 일과 중 하나였다.
새로운 병과의 조합이 생각나면 시험해보고 싶어서 당장 모의전을 해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
그렇게 수많은 연구를 하여서 무적이라고 할 만한 전략을 창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적의 전략도 결국 누군가에 의하여 격파당하곤 했다.
서열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계약자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천재들이었기 때문.
그런 경험을 통하여 결국 완전한 전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가 누구이며 어떤 성향을 가졌느냐에 따라 전략도 달라진다.
또한 그 상대가 변하면 거기에 맞춰서 자신 또한 변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조심스럽군. 이번에는 한 번도 상대해본 적이 없는 계약자이니 말이야.’
아늑한 달밤.
달빛이 은은하게 스테인드글라스를 빛나게 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그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넓은 방을 둘러싼 수십 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저마다 살아생전의 그의 일화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마계의 것이라고는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흘렀다. 음악을 기록한 마법 장치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림도 있었다.
유명한 명화를 똑같이 재현한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지상낙원과도 같은 그곳에서 남자는 유심히 테이블 위에 있는 ‘모형 전장’을 주시했다.
13개의 전장을 똑같이 재현한 축소 모형.
그 위에 휴먼의 병과가 조각된 인형을 하나씩 얹었다.
“10미터까지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노예 사도가 하나.”
노예 인형이 전장에 얹어졌다.
“여기에 빙의하여서 치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약자 이신. 빠르고 강력한 용병술도 구사한다지? 그럼 병영 병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군.”
석궁병, 방패병, 장창병 등이 전장에 마구 놓였다.
그리고 그 숫자에 맞춰서 드워프의 병사들도 올려졌다,
서로 뒤엉켜 싸우는 모양새를 만든다.
드워프 총수와 드워프 도끼병이 강력한 공격력과 우월한 체력으로 밀어붙인다.
하지만 휴먼 병력은 약하긴 하지만 보다 빠르다.
날렵하게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활개를 치리라.
어쩌면 충돌을 피해 우회하여서 본진을 치는 작전도 구사할 수 있다. 이동 속도가 더 빠르니 충분히 가능했다.
휴먼 병력이 한 발씩 앞서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드워프로서는 그 뒤를 쫓아다니기 급급한 형국이 될 수 있으므로 좋지 못하다.
‘그것을 방지하려면 휴먼의 본진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지점까지 먼저 병력을 진군시켜야겠군.’
턱밑에 칼을 들이대서 다른 데 한 눈 팔지 못하도록 말이다.
‘여기저기에 동시다발적으로 교전을 일으켜서 혼란을 꾀하기를 즐긴다지?’
알렉산드로스에게 들은 바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처럼 많은 일을 동시에 해낸다고 했다.’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상대를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걸 즐긴다.
이는 상대가 누구든 머리 회전에서 앞선다고 자신하는 태도였다.
‘그건 정말 무서운 자신감이군,’
그도 계약자로 지낸 세월이 무척 길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이 서열전에서 얼마나 유용한지 잘 알았다.
부분적으로 유능한 부하에게 지휘를 맡겨도 되긴 하지만, 계약자가 직접 조종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지 못하다.
지휘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으면 부대가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계사에서 얼마나 많은 무능한 장군이 멀쩡한 군대를 말아먹었단 말인가.
물론 그도 지휘 체계에 대해서는 자신 있는 부분이 있었다.
‘나의 군대는 최고니까.’
이신에게 용병술과 두뇌회전이 있듯, 그에게도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잘 훈련된 군대!
그는 자신이 평소 소환하는 드워프들의 이름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병사 하나하나를 일일이 이름을 지목하여서 소환했다.
오랫동안 그의 지휘를 받아왔던 드워프들은 장기간 훈련되어 온 정예나 다름없었다.
즉, 이러한 군대의 훈련 상태에 있어서는 이신이 따를 수 없는 것이다.
‘내 휘하에서 공을 많이 세워 전역한 드워프들도 많으니까.’
죄를 감할 만큼의 공을 세워서 지옥에서 해방된 것을 그는 전역이라 불렀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이러한 선순환적인 구조는 그의 지휘 체계를 더욱 강하게 결속시킨다.
내 밑에서 열심히 훈련 받고 명령에 잘 따르면, 죄를 감하고도 남을 만한 전공을 능히 세울 수 있다고 서열전 전에 모의전에서 수차례 독려하곤 한다.
그래서 그의 군대는 다른 계약자들의 병력보다 더 사기가 높았다.
이렇게라도 남다른 강점을 키워야 했다.
왜냐고?
‘하여간 쓸데없는 고유 능력을 얻어가지고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무튼 그는 전략의 큰 틀을 이미 결정했다.
그는 전장 모형 위에 놓인 자잘한 병사 인형들을 전부 치워 버렸다,
그리고 대포 인형을 올려놓았다.
‘역시 이것밖에 없다.’
* * *
이신은 오랜만에 원숭환을 불러 모의전을 치렀다.
다음 상대가 드워프이니, 이신과 친분이 있는 가장 뛰어난 드워프 계약자인 원숭환을 부른 것이다.
그런데 그 모의전을 구경하는 사람이 있었다.
구경꾼은 모의전이 끝나자 평을 해주었다.
“너무 수비적이군.”
“그렇긴 하오만 그게 단점이 된다고 생각되진 않소.”
원숭환은 덤덤히 대꾸했다.
구경꾼, 바로 나폴레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연습 상대로서는 적합하지 않지. 그는 그대처럼 수비적이지가 않거든. 오히려 과감하게 기동하는 편이지.”
“그건 참고하겠소.”
이신도 방금 치른 모의전에 대한 생각을 마친 뒤에 나폴레옹에게 뒤늦게 인사를 했다.
“자주 뵙는군요.”
“그대는 나의 큰 즐거움 중 하나거든.”
“저도 어서 전장에서 만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말은 전부터 자주 들었지만 이제는 꽤나 현실성 있게 들리는군. 벌써 5위니까 말이야.”
이신도 새로운 기분이었다.
벌써 5위.
이제 위로 네 사람밖에 없었다.
눈앞에 1위가 있기 때문에, 이신은 한니발을 꺾은 후에도 쉬지 않고 계속 다음 서열로의 도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서열전은 잘 치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잘못 들었군? 낭패를 좀 봤다. 2번 이기고 4번을 졌으니까.”
“어쨌든 순위는 유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야 자네 덕분이지. 하마터면 1위 자리를 빼앗길 뻔했어. 알렉산드로스에게 1위를 내주면 피곤해지거든.”
전장을 고를 수 있는 피도전자의 권리는 실력자일수록 의미가 컸다.
종족별로 유리한 전장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스타일상 선호하는 전장도 있으니까.
나폴레옹은 언제나 그 이점으로 알렉산드로스의 도전을 이겨냈다,
하지만 그 이점을 잃는다면 승부는 이제 불투명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복수도 할 겸, 자네에게 어드바이스를 해주러 왔지. 날 물 먹인 장본인이 바로 자네가 상대해야 할 사람이니까.”
“재미있군요.”
이신은 알렉산드로스와 그 남자의 조합을 상상해 보았다.
마물과 드워프.
확실히 속도에서는 마물이, 화력에서는 드워프가 나폴레옹의 휴먼을 압도하는 조합이었다.
‘초반에는 마물이 얼마나 상대를 잘 흔들고 판을 깔아주느냐가 중요하지만, 뒤에 가면 드워프가 승부의 열쇠를 쥐게 된다.’
이길 걸로 보아 알렉산드로스가 잘도 주연 자리를 양보하고 조연 역할을 자처한 듯했다.
‘승리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시 드워프겠지.’
나폴레옹은 투석기 배치나 전선을 짜서 겨루는 데 능했다.
그 능력은 이신도 72악마군주의 축제 때 똑똑히 보았다.
그런 나폴레옹에게 낭패를 주었다니, 역시나 상당한 실력이었다.
“다른 건 됐고, 고유 능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고유 능력이라, 그게 가장 궁금하겠군.”
“예, 이상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더군요.”
최상위권 계약자들 같은 강자들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진 편이었다. 그들이 한두 차례만 서열전을 해본 것도 아닌데, 당연히 알음알음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 자기 고유 능력을 잘 활용하는 쪽으로 전략을 구상하기 때문에, 고유 능력만 알아도 그 계약자에 대해 알 수 있는 법이지.”
“예, 지금까지도 계속 그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걸세.”
그 말에 이신은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그자의 고유 능력이 뭡니까?”
나폴레옹은 씨익 웃었다.
“알면 재미있을걸. 난 그처럼 멋진 고유 능력을 가진 계약자를 보지 못했으니까.”
“…….”
이신은 묵묵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나폴레옹이 명쾌하게 알려주었다.
“그는 플루트를 아주 잘 연주한다.”
“……예?”
“플루트를 아주 잘 다룬다고.”
“……?”
이신은 그 말뜻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플루트를 연주하여서 그 곡에 담긴 감성을 듣는 이의 가슴에 전달하지. 거기다가 한 번 마스터한 곡은 다시는 연주할 때 실수하지 않지.”
그제야 이신은 말뜻을 이해했다.
“설마 그게 고유 능력입니까?”
“물론이지. 참고로 전장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능력이지.”
이신은 당혹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서열전에 전혀 써먹지 못할 고유 능력을 가진 계약자라니.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답다는 생각도 들어서 납득이 갔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많은 곡을 작곡한 군주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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