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6
55화 BJ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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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천장과 넓은 실내.
강화 유리벽 너머로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별장이었다.
그곳에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홀로 거실에서 안락의자에 몸을 맡긴 채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점심경이 넘었음에도 아직 파자마 차림인 모습은 나른하게 보낸 그녀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노트북에서 ‘띠링’ 하는 알림음이 들렸다.
눈을 뜬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노트북을 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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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veSin: 새 사진 찍었어요, 교주님. 카페에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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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한 하얀 얼굴에 생기발랄한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신교 팬카페에 접속했다.
iLoveSin, 새롭게 이신교의 대사제가 된 요 맹랑한 캐나다 꼬맹이가 새롭게 올린 글이 있었다.
“하아…….”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정신을 비우고, 말끔한 상태에서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다.
딸칵.
글을 클릭했다.
이윽고 노트북 모니터를 가득 채우는 여러 장의 사진들.
“아……!”
깊은 충족감이 가슴 벅차게 올라온다.
꾸밈없이 불편한 기색이 드러나 있는 이신과 그런 그에게 기생충처럼, 아니, 아무튼 찰싹 붙어 있는 iLoveSin까지.
함께 찍은 셀카 외에도 여러 가지 사진이 있었다.
몹시 귀한 사진들이었다.
1군 테스트를 받는 정다울의 게임을 냉정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신.
다리를 꼬고 앉아 턱을 괜 특유의 포즈가 자연스럽게 담긴 이신의 사진!
존재 자체로도 아름다운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차가운 눈으로 게임을 관망하며 생각에 잠긴 표정이 너무나 섹시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이신의 모습이었다.
보통 일반 여성 팬들은 게임에 대해 거의 모른 채 그저 그의 잘생긴 외모만 보고 꺅꺅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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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습니다.
-예?
-재능이 있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태껏 그렇게 생각해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제 눈에는 다 그 선수가 그 선수로 보여서 누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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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하도 화제가 되었기에 우연히 본 인터뷰 영상을 보고 그녀는 전율을 느꼈다.
일명 신의 오만이라 불린 영상.
훌륭한 선수라고 대충 둘러댈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이신이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오만한데, 그것이 꾸밈없기에 더욱 기가 찼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져서 이신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의 예전 경기를 보며, 그의 플레이를 보며 점차 매료되었다.
순간순간에 번뜩이는 지성을 보여주는 천재적인 플레이에 그녀는 흥분을 느꼈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저렇게 지적이어도 된단 말인가!
그 뒤로 그녀는 이신의 행적을 쫓아다녔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점점 그에게 몰두하였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푹 빠져든 상태였다. 심지어는 이신교의 교주, 즉 팬클럽 회장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성실한 성격이었다. 일단 역할을 맡은 이상 아주 성실하게,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일을 해낸다.
이신이 손목 부상으로 잠정 은퇴한 기간 동안 이신교도 주춤했었다. 전 교주 ‘신님의품격’도 충격으로 몸져누워 교주직을 반납했다.
그때 뒤를 이어 교주가 된 사람이 바로 그녀, 닉네임 ‘인의예지신님’이었다.
IT 미디어 신흥 재벌의 딸인 그녀는 인터넷의 속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경영적 판단을 총동원해 이신교를 살리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콘텐츠 확보와 활동들을 통해 이신교는 도리어 회원 수가 증가했다.
이신을 습격한 무뢰배의 음모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열심히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주도해 낸 결과였다.
회원 수 증가와 더불어 광고 수입으로 유용할 수 있는 자금이 늘자, 탐정까지 고용해 손목 습격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교도들은 그런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 교주를 신뢰했고, 네티즌들을 그녀를 재능낭비의 아이콘이라 불렀다.
-사랑합니다.
문득 들리는 문자 메시지 알림음.
‘어머!’
그녀는 냉큼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이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만든 알림음이었다. 이 알림음이 울리도록 등록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딱 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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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님♡: 차를 사려고 하는데 추천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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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의 문자 메시지였다.
이신교의 교주였고 여러 가지로 생활상의 편의 지원까지 해준 덕에 그와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요즘 시대에 아직도 SMS를 보내는 신 님도 멋져!’
눈에 콩깍지가 쓰인 그녀에게는 별게 다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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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사시게요?
-신님♡: 네.
-그런데 신 님 운전 싫어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차 선물하려고 했을 때도 거절하셨고 ㅠㅠ
-신님♡: 제가 차를 선물 받을 이유가 없고 운전은 지금도 싫습니다.
-그럼 차를 왜 사세요?
-신님♡: 있으면 편리. 뒷자리 편한 차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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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문자 쓰기 귀찮아지셨다.’
갑자기 말이 짧아진 문자 메시지를 보고 그녀는 귀신같이 눈치챘다.
좀 더 많은 대화를 시시콜콜 주고받고 싶었지만, 이쯤 해두기로 했다.
실은 차를 사려 한다는 말을 꺼냈을 때, 이미 그녀는 이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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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리가 편안한 차는 역시 롤스로이스 팬텀이죠! 쉽게 구할 수 있는 차 아니니까 제가 사서 보내드릴게요. 실력 좋은 운전사도 같이 구해서 보내드릴게요.^^
-신님♡: 얼마?
-제 선물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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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 번 찔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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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님♡: 필요 없음.
-ㅠㅠ 견적 나오는 대로 금액 알려드릴게요. 근데 집 사고 이것저것 하시면서 돈 얼마 안 남으셨잖아요. 연봉도 박봉이라고 하던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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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기준으로 연봉 1억은 박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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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님♡: 또 벌면 됨. 그럼 이만.
-네^^ 오늘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신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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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문자 메시지 대화를 보고 또 보면서 황홀감에 잠겼다.
‘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줘요.’
세월이 흘러도 늘 같은 모습의 이신을 보며, 지금처럼 여전히 두근거릴 수 있기를 그녀는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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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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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S 연습생 숙소.
같은 MBS 소속이라도 숙소는 등급에 따라 달랐다.
1군은 1인 1실.
2군은 2인 1실.
그리고 정식 프로가 아닌 연습생들은 4인 1실로 생활해야 하며, 청소·빨래·설거지 등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하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나마도 e스포츠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에 비하면 훨씬 대우가 좋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연습생 시절이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생활환경보다는 바로 그들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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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얘기하자. 안 되는 놈은 안 돼. 나도 마찬가지고, 내가 보기에 너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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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연습생 동기였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백지수는 심란해졌다.
올해로 벌써 스무 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백지수는 하루하루 먹어가는 나이가 무서웠다.
아직 1군은커녕 2군의 벽도 뚫지 못했다.
프로게이머로 지낼 수 있는 연령은 제한되어 있는데, 백지수는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벌써 스물이었다.
‘정말 난 안 되는 걸까?’
연습생에서 1군까지 다이렉트로 1개월 만에 뚫어버린 주디를 떠올리며, 백지수는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심지어 남자도 아닌 예쁘장한 소녀가 순식간에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곳으로 올라가 버리는 걸 보며 얼마나 좌절했던가.
나도 한번 해보자 하는 독기로 더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좌절감을 느낀 연습생들도 적지 않았다. 백지수는 그중 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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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거 계속 붙잡고 있지 말고, 너도 나처럼 빨리 나와서 방송이나 해.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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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생 동기였던 친구 박한영은 아마추어리그에서 턱걸이로 준 프로 자격을 획득했지만, 2군의 벽은 뚫지 못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박한영은 연습생을 관두고 나와서 파프리카TV의 게임 BJ로 전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실력은 모자라지만 워낙에 좋은 입담을 유감없이 발휘해 개인방송의 스타 BJ가 되었고, 지금은 수익이 웬만한 1군 선수를 능가한다고 했다.
똑같이 힘든 연습생인 박한영이 어느 날, 머스탱 쿠페를 타고 나타난 것을 보고 백지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비싼 곳에서 밥까지 사준 박한영은 백지수에게 같이 개인방송 BJ를 하자고 꼬드겼다.
자기가 밀어주면 금방 자리 잡고 고정 팬을 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박한영 본인 또한 함께 방송하는 콤비가 있으면 방송 콘텐츠가 더 많아져서 좋다고 했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거기까지는.
“근데 여태까지 연습생 하면서 고생했는데 퇴직금은 받아서 나와야 하지 않겠냐?”
그렇게 시작된 박한영의 제안은 놀라웠다.
“이신 1군 테스트 했었지?”
거기서 이미 백지수는 박한영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멱살을 잡고 그것 때문에 날 불렀냐고 화를 냈다. 그러자 박한영도 덩달아 화를 내며 소리쳤다.
“씨발, 넌 억울하지도 않아? 숙소에서 한 방에 네 명씩 처박혀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면서, 그래도 게임 해보겠다고 시간 보냈잖아. 남들 다 공부해서 대학 가고 연애하고 척척 자기 인생 살 때 우리만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그렇게 화를 내는 박한영은 진심으로 보였다.
“근데 팀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우린 그렇게 인생을 걸어야 했는데, 팀은? 그냥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 그런 거 아냐. 우리 장래를 위해서 무언가 챙겨준 거라도 있냐? 그런 거 없으면 우리가 알아서 챙겨야지, 안 그래?”
“…….”
박한영은 백지수의 손에 USB 메모리 스틱을 건넸다.
“이거 이신 컴퓨터에 꽂기만 하면 돼. 넉넉잡고 15분이면 충분하다더라.”
멍하니 그것을 본 백지수는 이윽고 박한영을 노려보았다.
“너, 나 속이는 거면 정말 칼 들고 찾아간다.”
“아 새끼가 진짜. 개인방송 같이하자는 것 진심이라니까? 막말로 내가 너 속여서 빼내오게 하고서는 나 모른 체했다고 소문나면? 내가 그러고도 방송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렇지.’
하기야 워낙 친한 사이였던 두 사람이었다. 박한영이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한번 생각해 볼게.”
그리고 밤이 되었다.
몇 번을 더 고민해 보던 백지수는 이윽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고등학교 동창들 앞에서도 부끄러웠던 자신의 처지를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심각한 범죄도 아니잖아? 온라인에서 한 판 붙어도 남는 게 리플레이 파일인데.’
새벽녘에 백지수는 조용히 숙소를 나와 연습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박한영에게 짧게 문자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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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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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도착한 백지수는 조용히 USB 메모리 스틱을 이신의 자리에 있는 컴퓨터에 꽂고 전원을 눌렀다.
위이잉―
모니터에 윈도우 대신 이상한 화면이 떴다.
‘설마 컴퓨터 맛 간 건가?’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잠시 후 스스로 재부팅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원래의 윈도우 시작화면이 나타났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윈도우 로그인 화면을 보며, 백지수는 안심하고 USB 메모리 스틱을 뽑았다.
다음 날, 백지수는 연습생을 관두고 MBS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