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65
565화 선택(2)
[마계에서도 현실에서도 더는 오를 곳이 없어진 너는 아직도 여전히 열정이 식지 않았다 말할 수 있느냐?]“솔직하게 예전처럼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신은 솔직히 시인했다.
[그립지 않나?]“예전이 말입니까?”
[그래. 탐욕스럽게 승리와 야망을 바라던 그 시절이 네게도 있었지.]왜 안 그립겠나.
처음 게임을 접했던 고등학생 시절.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과 프로 경기를 보며 플레이를 배워나가는 재미.
나만의 플레이를 하나둘 만들어나가는 즐거움.
그렇게 강해지면서 하나둘 상대를 깨고 랭킹을 올렸던 짜릿함.
프로 데뷔 첫해까지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첫 해까지는.’
데뷔하자마자 개인리그 무패우승.
이어서 월드 SC 그랑프리 무패 금메달.
세계 최정상에 오르기까지 단 한 세트도 지지 않았고, 전 세계 e스포츠계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그의 실력에 질식할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너무 빨리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도전정신과 투지가 가득했는데, 그 즐거움은 너무나 빨리 끝나버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신인 시절로.
[그리워하는구나.]그런 이신의 마음을 아는지 음성이 또 들려왔다.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이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꺼지지 않는 무한한 열정을 줄 수 있다. 영원히 승리에 웃고 패배에 울게 될 것이다. 이것이 네가 바라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니냐.]“제게 악마군주가 되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신이 탄식하듯이 말했다.
악마군주.
72명밖에 없는 악마들의 군주.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된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다?
이신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마력을 탐하는 악마들.
그러나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욕망하고 투지를 일으킨다.
그 욕망의 샘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마르는 법이 없다.
어쩌면 그건 경쟁과 승리를 좋아하는 이신에게 적합한 삶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이신은 웃으며 답했다.
“아직 제 열정이 완전히 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전 아직 젊고, 제가 경험해본 것보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더 많습니다.”
[그게 네 선택인가.]“예. 누군가는 제 승리를 응원하고, 누군가는 저를 꺾고 싶어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아직 인간인 이신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가. 그 또한 나쁘지 않다.]음성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마계와 현실에 한 발씩 걸친 자여.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니, 네가 말한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도 넌 과연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노쇠하고 죽고 혹은 잊혀지고, 언젠가는 그런 날도 올 것이다.
[넌 오늘의 기억을 잊으리라. 하지만 그날이 다시 이곳에 왔을 때, 기억은 되살아날 것이고 다시 이 질문 앞에 설 것이다.]“……알겠습니다.”
또다시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인가.
그도 나쁘지 않다고 이신은 생각했다.
과연 그날이 왔을 때는 자신이 또 오늘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음성이 끝난 직후, 이신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어디론가 흡수되듯, 의식을 잃어가면서 마지막 음성이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다.
* * *
“헉!”
이신은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마치 꿈속에서 압도적인 어떤 존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계에서 돌아온 길에 벌어진 일이니 단순한 꿈일 리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분명 중요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뭐, 하는 수 없이.’
빠른 포기.
기억이 안 나면 안 나는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마침내 마계 서열 1위를 달성했으니, 이제는 현실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월드 SC 그랑프리 말이다.
이신의 소속팀 SC스타즈는 중국 리그를 재패하면서 단체전 출전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신은 개인전뿐만이 아니라 단체전까지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함께 개인전에 출전하는 박영호, 지우펑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부담이니 공평했다.
박영호는 개인전, 단체전 대비 훈련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개인 연습도 따로 했다. 거기다가 틈틈이 방송까지 하고 있으니, 정말인지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프로게이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박영호가 2번이나 놓친 금메달을 이번에야말로 따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한국에서는 차이와 장양이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 출전권을 얻었다.
e스포츠의 종주국인 대한민국 무대를 제패해버린 두 외국인 천재 소년들이 마침내 세대교체에 나선 것이다.
미국에서는 영원한 북미 최강자 마이클 조셉이 3수에 나섰다. 이번에는 반드시 메달을 딸 각오로 혹독한 훈련 중이라는 소문이었다.
이신이라 할지라도 자칫 잘못하면 결승전에 올라가기도 전에 미끄러질 지도 몰랐다.
저들 중 누구를 만난다 해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거였다. 아무리 다전제 무패의 이신이라 해도 말이다.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지.’
그게 선수 생활을 줄곧 해온 이신의 기본적인 마인드였다.
팀 연습실에 출근하여 연습을 시작했는데, SC스타즈의 게으른 천재 리우가 웬일인지 연습 상대를 자청했다.
“금메달 딸 때까지 개인전 준비를 쭉 도와줄 테니 필요하면 말만 해.”
이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리우를 바라보았다.
넌 누구냐는 눈빛.
팀의 정규 훈련도 싫어하는 리우가 이렇게 친절할 리가 없었다.
“왜 그렇게 봐? 나도 이제 마음잡고 게임 열심히 할 거야.”
“그랑프리 끝날 때까지 날 도와주겠다고?”
“그래, 결국 네 가장 큰 적수는 역시 러너잖아?”
“그렇긴 하지.”
차이, 장양, 마이클 조셉 등 무서운 적수는 많지만, 여태껏 이신을 괴로울 정도로 몰아붙였던 상대는 박영호밖에 없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정석적인 운영 대결에서는 밀리기도 했다.
“러너와 가장 비슷한 스타일로 플레이하는 사람은 아마 나일걸?”
그건 그랬다.
리우는 천재라는 명성 값을 하는지 남의 플레이를 한 번 보고 곧잘 흉내 낸다.
요즘은 같은 팀에 최고의 괴물 플레이를 하는 박영호의 게임을 참고하고 있었다. 어느 괴물 플레이어가 박영호를 흉내 내지 않겠느냐마는.
“난 연습량이 많아. 도와줄 수 있겠어?”
“물론이지. 나만 믿어.”
큰 소리 치는 리우의 태도에 더 불안해지는 이신이었다.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리우가 해명했다.
“나도 내년에는 국제무대에서 메달 하나 따고 싶어. 그래서 네가 어떻게 금메달을 따는지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어.”
리우는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메달 하나쯤 따야 스트리밍 방송도 더 흥하잖아.”
“……도와준다니 기꺼이 받아들이지.”
그렇게 이신은 리우와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3연패를 당했다.
한동안 부진 모드였던 리우가 갑자기 천재 모드를 발동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서열전에 몰두한 탓에 이신의 감각이 아직 안 돌아온 탓이 컸다.
“뭐야? 왜 이래 카이저? 이래갖고 어떻게 금메달을 따?”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쉴까?”
“컨디션이 안 좋을 땐, 더 혹독하게 연습해서 회복시키는 거야.”
이신의 말에 리우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무서운 한국의 게이머.’
게으른 리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이었다.
-퍼엉! 펑! 펑!
-키엑!
쐐기충 편대가 춤을 추듯이 날아다니며 이신의 진영을 헤집었다.
이신은 보병들로 2방향을 틀어막고 쐐기충들을 몰이사냥하려 했지만, 리우는 오히려 보병 6명을 죽여 버리고 탈출했다.
‘손이 잘 안 따르는군. 역시 게임을 너무 오래 손 놨어.’
쐐기충과 보병의 싸움은 컨트롤이 단순해보여도 심리전이 숨어 있다.
쐐기충이 쐐기를 쏘려고 앞으로 나왔을 때 달려들어서 일점사를 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역시나 너무 오래 쉰 탓이었다.
쐐기충으로 한동안 날뛰며 이신에게 피해를 입힌 리우는 곧바로 독침충과 촉수충을 준비했다.
확장보다는 이신의 숨통을 끊기 위하여 병력을 모은 것.
이신이 어찌어찌 피해를 수습하고 보병·의무병 부대를 끌고 나왔을 때, 리우가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투타타타타타타!!!
보병들이 총을 난사했다.
큰 전투가 되자 이신은 잠시 컨트롤 감각이 돌아왔다.
전투의 치열함이 이신의 감각을 깨운 것이다.
땅속에 기어 들어가 촉수를 뻗는 촉수충들의 공격을, 이신의 보병들은 놀랍도록 잘 피해 다녔다.
의무병의 치료에 힘입어 보병들은 독침충들을 상대로 그럭저럭 선방을 했다.
병력 규모에서 밀리는 싸움이었는데 그럭저럭 컨트롤이 살아나면서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쐐기충은 어디 갔지?’
비로소 퍼뜩 든 생각.
위험을 감지했지만 살짝 늦었다.
전투를 틈타 어느새 본진까지 침투한 쐐기충들이 건설로봇들을 학살했다.
정면에서 전투를 벌이며 쐐기충 후방 침투!
천재 모드인 리우는 상당히 감각적인 공격을 선보였다.
결국 거기서 무너진 이신은 고개를 저으며 GG를 쳤다. 쐐기충에 지속적으로 당한 견제 탓에 피해가 누적되어서 더 이상 대항할 여력이 없었다.
내색은 안 하지만 이겼다고 내심 좋아하는 리우.
게임이 잘 안 풀려서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낀 이신은 치유 능력으로 기분 전환이나 할까 싶었다.
그런데 문득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출근한 박영호가 빤히 이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신의 게임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왔냐.”
이신의 인사에도 대꾸를 하지 않는 박영호.
다만…….
“좋아, 금메달은 내꺼다.”
이신의 부진한 게임을 보곤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는 박영호였다.
이신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내가 저 새끼 때문에 금메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평소에 금메달을 향해 투지를 불태우는 박영호를 보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지고 싶지는 않은 이신이었다.
그날 리우는 정규 훈련이 끝난 후에도 이신에게 붙잡혀 연습 상대가 되어 주어야 했다.
20판 넘게 게임을 하자 이신의 감각도 서서히 돌아왔다.
워낙 감각을 되찾는 일에 익숙해져서 하루 만에 회복한 것이었다.
진이 빠진 리우는 이신의 훈련을 돕기로 한 약속이 후회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 있어서 물리기 어려웠다.
월드 SC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캐나다로 출국하기까지, 이신의 훈련은 순조롭게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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