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0
59화 이블 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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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영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방송 환경에 맞게 세팅하고 테스트 방송까지 비공개로 해본 이신은 대충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성의껏 도와준 박한영은 대신 면죄부를 받아 다시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물론 파프리카TV에서는 퇴출된 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그래도 파프리카TV에서 쫓아온 충성 팬들도 있어서 그럭저럭 해나가는 모양이다.
박한영의 꾐에 넘어가 함께 일을 공모했던 백지수도 함께 방송을 시작한 걸 보니, 군 입대 전까지는 그러고 지낼 모양이었다.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볼일이 끝났으므로 이신은 두 사람은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다.
그런데 그때, 문득 눈앞에 작은 흑색 점이 허공에 생겨났다.
흑색 점은 점점 커졌다.
이신은 그것이 그레모리의 부름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게 불러주는군.’
이신은 그 흑색 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흑색 점에 손이 닿자, 순식간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파아아앗!
잠시 후, 눈을 떠보니 그레모리가 보였다.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죠?”
“그렇군요.”
“차 드세요. 막 내왔어요.”
사방이 붉은 장미로 둘러싸인 정원.
하얗고 동그란 예쁜 티 테이블에 두 사람은 앉아 있었다.
고급스러운 티 컵과 접시에 홍차와 갖가지 모양의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이신은 홍차를 입에 가져가 조금씩 마셨다.
향긋한 차향이 머리를 맑게 정리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좋죠?”
“예, 좋은 차 같습니다.”
“다음 서열로 도전을 하는 겁니까?”
“네.”
그레모리는 다음 상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현재 서열 69위에 있는 악마군주는 플라우로스예요.”
“그의 계약자는 누구입니까?”
“사나다 마사유키라는 인물입니다. 아시나요?”
“이름은 들었던 것 같은데 잘 모릅니다.”
“생전에는 뛰어난 지략가였다고 해요. 종족은 마물, 전장은 제5전장 이블 홀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붙어보셨습니까?”
“예, 예전에 그에게 패한 적이 있었어요.”
그레모리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때의 서열전을 설명해 주었다.
당시에 그녀의 계약자는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무기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 석궁병과 장창병, 방패병으로 구성된 병력을 이끌고 공격을 감행했다고 했다.
세 종류의 보병 병과의 조합으로 전투에서 승리하겠다는 필승 방책이었다. 로마사에 정통했던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긴 전략이었다.
하지만 사나다 마사유키는 언덕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빠른 마물들의 이동 속도를 이용하여 방어해 냈다.
또한 헬하운드들을 뒷길로 빼돌려 마키아벨리의 본진을 역습.
당황한 마키아벨리가 본진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회군시키자, 사나다 마사유키는 중간에서 그 병력을 포위 섬멸시켜 버렸다.
이야기를 들은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페이스 크래프트에서 인류가 괴물에게 패배하는 정석 패턴이군.’
이신은 제5전장 이블 홀의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
전장 중앙이 탁 트린 벌판이라, 보병 전력으로 섣불리 나서서는 안 되는 지형이었다.
‘마치 칸나에 섬멸전처럼 당해 버렸군.’
계약자가 된 후로 역사 공부를 틈틈이 해둔 이신.
한니발 장군이 발 빠른 누미디아 기병을 이용해 로마군을 포위 섬멸한 희대의 전투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사에 정통했던 마키아벨리는 그야말로 그 당시 로마군처럼 당해 버린 셈이었다.
“대충 어떤 스타일인지 알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정보를 토대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요. 시간은 충분하니 만족할 때까지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
“예.”
홍차와 디저트를 다 먹은 이신은 즉시 전장으로 보내 달라고 그레모리에게 요구했다.
“도전하는 쪽은 우리이니 시간은 많아요.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천천히 하세요.”
“괜찮습니다. 전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연습이 즐겁다니, 어쩔 수 없는 분이로군요. 그 덕에 제가 이렇게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지만요.”
그녀는 이신을 제5전장 이블 홀로 보내주었다.
“질 드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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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질 드 레를 소환하시겠습니까?]?
“소환한다.”
그러자 눈앞에 질 드 레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계약자 시절에 네가 즐겨 쓰던 종족이 뭐지?”
“마물입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자의 6할 가량이 마물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잘됐군. 다음 상대는 마물이다. 내 연습 상대가 되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상대 악마군주와 계약자가 누구입니까?”
“플라우로스, 사나다 마사유키.”
“그자로군요.”
“싸워봤나?”
이신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질 드 레는 서열 15위나 되는 악마군주 엘리고르의 계약자였었다.
서열 69위 플라우로스의 계약자인 사나다 마사유키와 서열전을 치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계약자로서가 아닙니다.”
질 드 레가 그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휴먼을 즐겨 선택하는 계약자에게 소환되어서 싸운 적 있었습니다.”
“어땠나?”
“실체 없이 싸우는 자였습니다.”
“그렇군.”
“제 말뜻을 이해하시는군요?”
“이해했다.”
질 드 레의 얼굴에 존경의 빛이 살짝 나타났다.
이신이 말했다.
“그 스타일을 그대로 흉내 낼 수 있겠나?”
“예, 가능합니다. 조금 꺼려지는 스타일이긴 합니다만.”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e스포츠 프로리그에서 그런 스타일을 구사하는 괴물 플레이어들이 몇 있다.
그런 스타일은 안정성이 떨어지므로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승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습을 시작했다.
질 드 레는 확실히 제법이었다.
본래도 마물을 다루던 계약자 출신답게 매우 능숙했다.
초반부터 다수의 헬하운드를 소환해 민첩하게 전장을 누비며 이신을 압박했다.
초반에 취약해서 방어에 치중하고 소극적인 플레이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휴먼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해 들어왔다.
이신이 끝내 초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하는 일이 잦아졌다.
“계약자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질 드 레가 걱정스레 물었다.
휴먼으로는 계속 패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전장이 휴먼에게 불리하군.”
“그렇습니다. 본진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두 개나 있으니 마물을 상대로 방어가 어려울 겁니다.”
그랬다.
특이하게도 제5전장 이블 홀은 본진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출입구가 두 개였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출입구 밖에는 마력석 채집장도 두 개였다.
한마디로 스페이스 크래프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앞마당과 뒷마당이 본진에 붙어 있다는 뜻이었다.
이 덕에 마물은 아주 손쉽게 확장 기지 두 개를 늘려 빠르게 몸집을 불릴 수 있었다.
그리고는 초반에 방어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는 휴먼과 마력량 격차를 크게 벌려놓고 압도적인 싸움을 펼치는 것이다.
웬만한 상대라면 이신이 운영 능력으로 격차를 극복시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질 드 레는 한때 상위 서열 악마군주의 계약자 출신답게 웬만하지가 않았다.
“사나다 마사유키도 만만한 상대라고 보기는 힘들지.”
“차라리 일시적으로 종족을 바꿔보심은 어떠십니까?”
“상위 서열에도 휴먼을 고르는 계약자는 있겠지?”
이신이 거꾸로 반문했다.
질 드 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들도 이곳 제5전장에서 마물과 싸울 때는 다른 종족을 고르나?”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됐다. 방법은 있어. 아직 내가 못 찾았을 뿐이지.”
이신의 입장에서 훈련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수십, 수백 판씩 연습 게임을 치르는 프로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아직 급할 게 없었다.
‘일단은 무기 업그레이드 타이밍을 최대한 빠르게 해야겠군.’
이신은 제5전장의 특성에 맞춰 빌드 오더를 수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점차 질 드 레에게 압도적이었던 승패 스코어에서 이신의 승리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질 드 레가 이신을 이기기가 힘들게 되었다.
질 드 레도 패턴을 바꿔가며 달리 상대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이신의 전략도 유연하게 변화하며 대응해 나갔다.
이신의 임기응변을 질 드 레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 전장에서는 상대가 계약자님을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직 붙어보지 않았으니 모르지.”
이신은 결과를 단정 짓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군.”
“예.”
“혹시 모르니 다른 전장에서도 연습을 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신은 쉬지 않고 연습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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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들판을 질주하는 큰 키에 잘생긴 백인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멀리서 누군가가 접근해 오자 속도를 서서히 낮췄다.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백인 사내의 얼굴에 이채가 띠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인데?”
백인 사내는 말을 멈춰 세웠다.
상대 역시 말의 속도를 낮춰 천천히 다가왔다.
백인 사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검은 머리칼의 동양인 사내였다. 점잖게 기른 수염과 그와 대비되는 신경질적인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조아생 뮈라.”
동양인 사내가 말했다.
백인 사내, 조아생 뮈라는 씨익 웃었다.
“여, 사나다 마사유키. 예전에 한 번 붙어본 뒤로는 오랜만인데?”
동양인 사내는 바로 일본 전국 시대에 활약했던 무장 사나다 마사유키였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땅, 다른 언어권의 두 사람이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이곳이 마계였기 때문이었다.
사나다 마사유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예전에 치렀던 서열전에서 그는 조아생 뮈라에게 패한 바 있었다.
“그땐 멧돼지처럼 막무가내로 싸우는 놈을 상대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하핫, 그렇게 막무가내로 싸워서 왕까지 된 몸이시다.”
“흥, 어쨌든 졌으니 그 힘은 인정할 수밖에.”
“내게 아부 떨러 온 건 아닐 테고.”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
“그레모리의 계약자 때문이겠지?”
“아는군.”
“그러고 보니 그레모리가 11만 9천 마력을 가지고 있었지 아마? 너네 악마군주인 플라우로스가 몇이지?”
“12만 1천이다.”
“얼마 차이도 안 나는군. 걱정이 많으시겠어?”
“긴 소리 듣기 싫군. 용건만 말하지. 그레모리의 계약자는 어떤 작자였나?”
“글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기억해 낸다면 50마력을 주지.”
“오오, 놀랍군! 고작 50마력이라니!”
조아생 뮈라가 호들갑을 떨었다. 사나다 마사유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100마력. 대신 서열전을 있는 그대로 모두 설명해 주어야 한다.”
“흐음, 어쩔까나.”
“나쁜 얘기가 아닐 텐데?”
“잘 모르겠는데. 난 그레모리의 계약자가 이기기를 원하거든.”
“……무슨 뜻이지?”
“난 말이지, 그 녀석이 어서 이기고 후딱 높은 서열로 떠나 버리길 기다리고 있다고.”
“…….”
“정말 다시 상대하기 꺼림직스럽거든. 보나파르트랑 비슷한 냄새가 난단 말이야.”
“자세히 듣고 싶군.”
사나다 마사유키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뭐, 100마력부터 내놓으라고.”
사나다 마사유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력 일부를 조아생 뮈라에게 건넸다.
조아생 뮈라는 자신이 패배한 이야기였지만 유쾌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