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5
84화 초월(1)
?
?
다음 날, 일요일이었지만 이신은 연습실에 나타났다.
MBS 선수들도 다들 연습실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프로게이머들은 주말도 반납하고 훈련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이신은 슥 선수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최찬영.”
“예, 코치님.”
“내 상대해.”
“아, 예.”
최찬영은 괴물 플레이어.
올해 들어 하도 부진해서 다음 경기 엔트리에서 빠진 1군 선수였다.
이신은 그밖에도 어린 연습생 한 명을 더 불렀다.
“이름 뭐야.”
“이철수요.”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연습생 이철수가 대답했다.
“잘 들어. 넌 이제부터 게임 관전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최찬영한테 가르쳐 줘.”
“네?”
“내가 어떤 유닛을 뽑고 어딜 공격하려고 하는지 즉각 최찬영한테 알려주라고.”
최찬영도 이철수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야 연습이 될 거 아냐.”
“…네.”
어찌 보면 최찬영을 한참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뭘 하고 있는지 다 알면 웬만해서는 지지 않는다. 프로라면 지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최찬영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오늘따라 이신의 얼굴이 살벌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자 옆자리에서 주디가 인사를 건넸다.
이신은 대꾸 없이 그대로 게임을 실행했다.
반대편에 있던 방진호 감독이 그런 이신을 슥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일 있어?”
“아뇨.”
“근데 왜 이렇게 살벌해?”
“박영호 이겨야죠.”
쌍영의 박영호.
이신과 1승 6패의 좋지 않은 전적을 가졌지만, 특유의 스타일을 확립하고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철벽 괴물.
공격성이 다분한 괴물을 디펜스 위주로 플레이하면서 확장.
그러고는 엄청난 자원을 바탕으로 물량을 끊임없이 뽑아내 압도한다.
그런 그의 철벽 디펜스는 같은 ‘쌍영’의 광기신족 최영준조차도 뚫기 힘들었다.
상대 공격을 미리 예측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면 그런 디펜스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게임을 후반으로 끌고 가서 상대를 압살해 버리는 후반 운영.
한마디로 박영호는 국내에서 피지컬과 멀티태스킹이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인 셈이었다.
그래서 이신은 박영호를 기필코 꺾어야 할 목표로 정했다.
‘죽여 버린다.’
이신의 눈빛이 매섭게 타올랐다.
그렇게 치열한 연습이 시작되었다.
최찬영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연습이었다.
알아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철수가 계속 사전에 알려줘서 대비를 하는데도 막아내지를 못했다.
그렇게 한 게임이 끝나면 이신이 최찬영을 불러서 질책했다.
“뭐해 지금?”
“죄송합니다.”
“네 대가리 속에는 상대가 언제 어디로 온다고 정해진 공식이라도 있어? 그래서 상대가 불규칙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면 매번 뚫리는 거냐고.”
“…죄송합니다.”
“초능력을 가지라는 게 아니야. 맵 장악 똑바로 해서 상대 움직임을 파악하란 말이야. 알았어?”
“예.”
“지켜본다. 접속해.”
그리고 재개된 연습게임에서 이신은 또다시 승리를 거두고 최찬영을 질책했다.
“박영호가 왜 디펜스가 좋은지 알아?”
“…….”
“너보다 3배는 더 부지런해. 너처럼 유닛을 가만히 놀게 놔두지 않는다고. 괴물은 그래야지. 실력이 없으면 더 부지런하기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승리는 공짜가 아니야.”
“예.”
다시 연습에 임하는 최찬영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마, 적당히 해. 애를 잡을 거야?”
갈수록 살벌해지는 연습실 분위기 속에서 보다 못한 방진호 감독이 한마디 했다.
이신이 말했다.
“최찬영, 감독님이 키웠죠?”
“그렇지. 이 팀에 내가 안 키운 애들이 어디 있어.”
“최찬영이 이 정도로 좌절할 애예요?”
“그렇게 멘탈이 약하진 않지.”
“그래서 연습 상대로 골랐어요. 까도 괜찮은 애로.”
“…악마 같은 새끼.”
독설도 사람을 봐가며 하는 이신이었다.
이신의 말대로 최찬영은 욕을 먹을수록 점점 경기력이 올라왔다.
연습생 이철수가 옆에서 이신이 뭘 하는지 사전에 이야기해 주는데 1군 선수가 맥없이 패할 리가 없었다.
점점 최찬영의 승리가 늘어나면서 스코어는 백중세가 되었다.
?
* * *
?
“외숙모!”
“어이고, 우리 딸!”
“깔깔! 진짜 내가 이 집 딸 같아.”
채정아는 외숙모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외숙모, 즉 이신의 어머니는 채정아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배고프지?”
“헤헤, 네. 맛있는 거 해준대서 쫄쫄 굶고 왔어.”
“그래그래, 갈비찜 해놨어.”
“아앙! 나 그거 너무 먹고 싶었어! 외삼촌은?”
“그 양반은 또 무슨 논문 준비한다고 정신없다.”
“아잉, 우리 외숙모 심심해서 어떡해!”
채정아의 애교에 이신의 어머니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그칠 겨를이 없었다.
“어휴, 정말 너 같은 며느리 얻고 싶다. 그럼 삭막한 우리 집안이 확 살 텐데.”
“재벌녀 말고?”
“재벌은 무슨, 그런 처자는 내가 무서워 얘.”
“근데 우리 외숙모 어쩌나? 신이 주변에 그런 재벌들 되게 많은데.”
“그러니?”
“응응, 그때 스캔들 터졌던 재벌녀 말고도 같은 팀에 신이 제자라는 외국애도 캐나다에서 알아주는 재벌이래.”
“그러니? 그런 애가 신이 제자야?”
“제자다마다. 주디라는 앤데 걔도 신이 광팬이라서 한국 온 거래.”
“어휴, 외국인 재벌도 무서운데.”
“에이, 걔는 안 무서워. 실제로 보면 얼마나 귀여운데. 볼래? 자.”
스마트폰을 꺼내 잽싸게 주디스 레벨린의 사진을 보여주는 채정아.
데뷔 첫 승을 거두고서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는 모습의 주디였다.
“어머, 귀엽네.”
“그치?”
“외국인이라서 좀 그랬는데 보니까 귀엽다.”
“이런 며느리는 어때?”
“활기차니 좋아 보인다, 얘. 으휴, 누군들 어떠니. 아무라도 좋으니 좀 데려왔으면 좋겠어.”
“에잉, 생각 같아서는 그냥 내가 확 신이 마누라 하고 싶은데. 근데 신이 디펜스가 너무 세. 철벽이야, 철벽.”
“여자가 누구든 너처럼 붙임성 없으면 고생 좀 할 거다. 성질머리가 지 아버지 소싯적 쏙 빼닮았거든.”
“외삼촌도 젊을 때 그랬어?”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 어디서 그런 독한 게 나온 건지 내 배 아파서 낳았지만 나도 모르겠다.”
“다 외삼촌 탓이야. 그냥 게임 하겠다는 거 놔뒀으면 성격이 저렇게까지 모나진 않았을 텐데.”
“휴우, 그러게 말이다. 나도 참 신이한테 잘못 많이 했지.”
이신의 어머니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가 반대를 안 하겠니? 아들이 게임으로 먹고 살고 싶다는데 걱정되잖니.”
“근데 저렇게 성공했잖아. 그럼 이제 좀 인정해 줄 만도 한데 왜 그랬대.”
“다쳤잖니! 나도 잘했다 수고했다 해주고 싶은데, 손목 부서진 거 보고 너무 속상해서 그만…….”
결국 모자 관계는 그런 식으로 어긋나 버린 것이었다.
“그럼 이제라도 화해하는 건 어때?”
“화해?”
“며칠 후에 신이 경기 있는데 같이 가서 응원하자.”
“그래도 될까?”
“안 될 건 또 뭔데?”
“우리 그이가 아주 싫어하잖니.”
“웃겨, 정말. 그럼 이제 와서 어쩔 건데? 벌써 프로게이머로 다 성공한 애를 갖다가 이제 와서 그만하래? 막말로 신이가 외삼촌보다 훨씬 성공했는데.”
“얘가, 그런 말 하면 못써.”
“외삼촌 앞에서는 안 하네요.”
채정아는 혀를 삐죽 내밀었다.
이신의 어머니는 눈을 흘기고는 부엌에 가서 식사를 차려주었다.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채정아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응?”
“괜히 내가 가서 얼굴 내비쳤다가 신경 쓰이게 해서 경기에 방해될라.”
“방해 안 돼. 외숙모는 자기 아들을 그렇게 몰라?”
“휴……. 알지, 그놈 독한 거. 그래, 괜히 찾아갔다가 무시 당할까 봐 겁나서 그런다, 왜?”
“에이, 신이가 그렇게 못되지는 않았지.”
“어이구, 충분히 못됐어.”
“아냐, 외숙모. 신이는 말이지, 표현하자면 나쁜 게 아니라 성격에 장애가 좀 있을 뿐이야.”
“성격 장애가 더 무섭다, 얘. 그리고 남의 귀한 자식한테 장애가 뭐니?”
“장애 맞지 뭐. 배려 장애, 말투 장애, 겸손 장애. 깔깔!”
이신의 어머니는 채정아를 철썩 때렸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무튼 같이 가기다? 그렇게 차근차근 화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래야 나중에 걔 은퇴하고 나면 공부하라고 권할 수도 있고 그렇지.”
“그럴까?”
“그렇다니까, 같이 가자. 외삼촌 눈치 보지 말고. 솔직히 외삼촌이 잘못한 거잖아!”
이신의 어머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난 채정아는 이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얘야. 여보세요, 하고 받는 게 전화 예절이란다.”
-용건.
“으휴, 못살아 정말. 내일모레 경기 티켓 2장만 줘.”
-2장?
“응, 외숙모랑 같이 보러 갈 거다. 왜? 부담돼? 엄마 앞에서 경기하려니까 콩닥콩닥하고 겁나?”
-알았어. 바쁘니까 끊어.
이신은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었다.
채정아는 실실 웃으며 물었다.
“이래도 장애가 아니야?”
“…….”
스피커폰으로 통화 내용을 들은 이신의 어머니는 민망해져서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쩌다 아들이 저렇게 컸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경기 당일이 되었다.
이신의 어머니를 데리러 온 채정아는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푸른색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차량에서 내린 운전사 정상범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모시러 왔습니다.”
“신이가 보냈어요?”
“예, 그리고 전해드리라는 티켓입니다.”
정상범은 티켓이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건넸다.
“어머어머, 어쩜!”
놀란 채정아는 집에 들어가 후다닥 이신의 어머니를 데리고 나왔다.
이신의 어머니 또한 집 앞에 대기 중인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고 놀랐다.
“이게 신이 차니?”
“응, 면허증 없어서 운전사까지 같이 질렀대. 깔깔!”
“신이가 우리 경기장 오라고 차 보내준 거야?”
“그렇다니까. 나도 깜짝 놀랐어. 가끔 잘해주는 나쁜 남자, 신이 완전 매력 터지네.”
두 사람은 뒷좌석에 탔다.
차 내부를 살펴보면서 이신의 어머니는 계속 놀랐다.
좋은 집안에 시집 와서 부족함 없이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런 호사는 처음이었다.
기업 회장이라도 되지 않으면 전문 운전사가 모는 롤스로이스 팬텀의 뒷자리에 탈 일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 신이가 이렇게나 성공했니?”
“외숙모는. 전 세계에 팬이 몇 명인데. 걔가 돈 벌겠다고 나서면 재벌도 될 수 있다.”
이신의 어머니는 차 내부를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롤스로이스 팬텀은 운행 내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에는 좋은 차라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경기장에 이르자 주목도가 더욱 심해졌다.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차를 가리키며 수군거리더니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쫓아오는 것이었다.
“저, 저 사람들 뭐니?”
“신이 팬들이야.”
차가 경기장 입구 앞에 멈추자 롤스로이스 팬텀은 수많은 인파로 둘러싸여 버렸다.
정상범이 먼저 내려서 교통정리를 했다.
“이신 선수는 이곳에 없습니다! 타고 계신 분은 가족 분들이니 부디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족?”
“그럼 신 오빠는 팀 차량 타고 오나 보다.”
그제야 팬들이 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비로소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이신의 어머니와 채정아는 지나가는 내내 여자들의 시선을 느껴야 했다.
이신교의 광신도들 입장에서는 이신의 가족을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