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6
85화 초월(2)
?
?
“교주 언니, 신님 가족 분들이 경기장에 오셨대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여자가 말했다.
지수민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족 분들? 정말로?”
“네, 어머니랑 또 젊은 여자라던데.”
“젊은 여자?”
지수민을 포함하여 VIP석에 앉은 여자들의 표정이 일제히 험악해졌다.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러 온 젊은 여자라니!
“설마 며느릿감으로 내정된 여자라도 되는 거야?”
“에이, 설마. 신님께 그런 여자가 어디 있어요?”
“혹시 모르잖아. 전통 있는 집안이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님이 혼사를 결정했을 수도 있죠.”
“에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냐, 나 그런 집안 알아. 재벌들 중에 유서 깊은 문중(門中)은 그러기도 해.”
VIP석에 나란히 앉은 대사제들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럴 때 나서는 건 어김없이 교주 지수민이었다.
지수민은 잽싸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아가씨.
“상범 오빠! 그 여자 누구예요?”
-친척 누나라고 들었습니다.
“오키, 수고!”
지수민의 얼굴이 악마에서 천사로 바뀌었다.
“친척 누님 되시는 분이라네요.”
“아하.”
“난 또.”
“친척 누님이시구나.”
분위기가 급격히 온화해진 대사제들이었다.
“잠깐, 선수들 가족들은 보통 VIP자리에 초청되죠?”
“네, 바로 요 근처에…….”
무슨 이유인지 그녀들을 일제히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여성이 그녀들이 앉은 VIP석에 나타났다.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은 지수민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지수민이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중년 여성, 바로 이신의 어머니는 의아해하면서도 인사에 화답했다.
그런데 같이 온 채정아는 지수민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 그 신이랑 썸 타는 재벌녀다. 맞죠?”
썸이라는 단어에 잠시 당혹한 지수민은 이윽고 아까보다 한층 더 온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 맞아요. 이신 씨와는 친척 누님 되시죠?”
“절 아세요?”
“네, 이신 씨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의도적으로 이신의 애인인 양 말하는 지수민.
“우와, 신이와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면 정말 보통 사이가 아닌 건데.”
그때였다.
“썸 같은 사이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팬클럽 회원이에요.”
“맞아요, 그분은 그냥 팬클럽 회장이라서 자주 연락을 나눌 뿐이고요.”
“괜한 오해를 하지 않으셔도 돼요.”
대사제들은 일제히 진실을 위해 나섰다.
지수민은 얼굴 표정이 살짝 찡그러졌다가 다시 원상 복구 되었다.
“아하, 그럼 다들 신이 팬 분들이시구나. 우리 신이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아이, 뭘요.”
“신님 팬 아닌 사람 찾기가 더 힘들걸요.”
“e스포츠 팬과 신님 팬은 거의 동의어죠.”
지수민과 대사제들은 일제히 명함을 꺼내 채정아와 이신의 어머니에게 공손히 건넸다.
올도어 부사장, 치과 의사, 패션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화가 등 직업군도 다양했다.
“어머머, 다들 대단한 분들이시다.”
채정아는 명함을 보며 감탄했다.
“아이, 별말씀을요.”
“신님의 친척이 더 대단하죠.”
“신님의 가족은 그 자체로 성혈이에요.”
“신혈이 아닐까?”
“올림포스의 일족급이지.”
그녀들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는 채정아였다.
그녀들과 금세 친해지자 채정아는 장난스러운 눈빛을 띠더니, 불쑥 이신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외숙모, 며느릿감 그냥 이 중에서 골라도 될 것 같지?”
“어휴, 과분하지. 다들 예쁘시고…….”
이신의 어머니는 영혼 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당연하게도 그냥 예의상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지수민과 대사제들은 일제히 눈빛이 돌변하였다.
그리고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대사제 ‘이신교순교자’.
한국 미술계에서 유망주로 주목받는 29세의 화가 안영희는 큐레이터를 지망하는 채정아와 코드가 맞아 폭넓은 미술 교양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녀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신의 초상화·일러스트를 그린 장본인이었다.
대사제 ‘신께서보고계셔’.
강남의 잘나가는 치과를 물려받은 30세의 치과 의사 이미주는 이신 어머니의 치아 건강을 걱정해 주기 시작했다.
이신에게 스케일링을 해주다가 반해 대사제까지 된 그녀는 그때 이신의 입술을 핥고 싶었다고 고백해 이신교의 전설이 되기도 했다.
대사제 ‘이신전심’.
25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정희는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화장법을 조언해 주기 시작했다.
담당하는 유명 가수와 함께 이신의 팬이 되었다는 그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유명 가수와 함께 대사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대사제 ‘신님의옷이될래’.
27세의 패션 디자이너 정민영은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패션 코디를 조언해 주며 함께 쇼핑을 하자는 약속까지 따내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참고로 매일 이신에게 문자로 패션 코디를 일러주는 장본인으로, 이신 본인보다 더 그의 옷장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밖에도 대사제들이 인사를 하던 중, 잠시 자리를 비웠던 지수민이 돌아왔다.
“이것 좀 드세요. 호호, 입에 맞나 모르겠네요.”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잔뜩 가져온 지수민은 모두에게 나눠주며 잘 챙겨주는 현모양처 행세를 시작했다.
대단한 여자들이 열심히 덤벼드는 통에, 이신의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평소에도 혼담은 많이 들어오지만 그건 부모님들끼리의 이야기일 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와아아아아!”
어느새 경기장에 가득 찬 관중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니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이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
?
-박영호 선수, 트위터에 이신 선수와 겨뤄서 설욕하겠다고 포부를 밝히셨는데 정말로 2세트에서 대결이 성사되었어요. 이게 우연입니까?
“2세트 맵 붉은 사막에서 제가 이신 선수에게 3차례나 패한 바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거 지난번 1차전 때에 이어 이번에도 이신 선수 대 박영호 선수라는 굵직한 매치를 보게 되었네요. 오늘 오신 팬 여러분들은 정말 호강하시는 겁니다!
“와아아아아!”
“이신! 이신! 이신!”
“박영호! 철벽괴물 박영호!”
팬들이 응원카드를 흔들며 열광하였다.
과거의 최강자 이신과 현재의 최강자 박영호의 대결!
스페이스 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이 열심히 키보드 배틀을 펼치던 바로 그 승부가 마침내 펼쳐지게 된 셈이었다.
양 팀 출전 선수가 무대에 나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다가 이신의 차례가 되었다.
-이신 선수, 박영호 선수가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데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이기겠습니다.”
-…그게 끝입니까?
“예.”
-오늘따라 좀 저기압이시네요? 평소처럼 독설도 좀 하고 그래야죠.
“독설 안 좋아합니다.”
그 말에 관객들은 물론 사회자 이병철까지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럼 평소에 하는 말은 독설이 아니었다는 거군요?
“예.”
-라고 하는데 박영호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영호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저 금메달 못 땄을 땐 우리 팀의 책임이라면서 팀 디스를 해놓고 이제 와서 뭔 소리를 하는지……!”
관중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라는데요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까?
사회자 이병철의 물음에 이신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 발언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오, 잘못을 시인하는 겁니까?
“전 팀의 지원 같은 거 없이도 금메달 잘만 땄는데, 그냥 박영호 선수가 못한 것 같습니다.”
환호와 웃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 도발에 박영호도 웃음을 머금었다.
-와, 금메달을 3개나 갖고 계시는데 정말 부럽네요. 어떻게 혼자서 3개씩이나 갖고 계세요?
“상대가 없었습니다.”
-이야, 그 말씀도 역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죠?
“예.”
-자자, 박영호 선수. 그 시절에 박영호 선수도 현역이었는데, 상대가 없었다는 말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관객들의 웃음 속에서 박영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 지난 추억이란 걸 보여주겠습니다.”
-오, 그럼 이신 선수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나 이기면 금메달 하나 준다.”
“아, 필요 없어!”
발끈 하고 리액션을 보인 박영호의 예능감에 다시금 웃음바다가 된 경기장이었다.
경기 전 인터뷰는 그렇게 성황리에 마쳐졌다.
양 팀 선수는 무대 양옆의 각자 팀 벤치로 돌아갔다.
-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2020년 프로리그 4라운드 제3차전! MBS 대 JKT의 대결을 시작합니다. 먼저 1세트는 MBS의 짭, 아니 박신 선수 대 JKT의 진철환 선수입니다.
-최근 부진 중인 박신 선수와 반대로 기세가 오르고 있는 진철환 선수의 대결이네요.
-예,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저 상승세의 진철환 선수를 잡아낸다면, 박신 선수 이걸 계기로 부진을 떨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박신 선수도 작년에는 승률 54%의 준수한 활약을 보인 견실한 선수인데, 이신 선수도 MBS에 합류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이때에 다시 컨디션을 회복해서 팀에 힘을 주어야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MBS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려면 이번 4라운드는 반드시 승점을 많이 따야 하거든요!
-4라운드 플레이오프에서도 우승해서 추가 승점을 가져가야 비로소 포스트시즌을 노려볼 만한 승점이 되죠. MBS로서는 이번 4라운드가 팀 성적 부진을 떨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라운드입니다.
-예,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럼 1세트, 시작합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신은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오늘 오전까지 줄곧 봤던 박영호의 경기 영상을 복기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전략은 이미 결정한 상태.
계속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돌리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뜨고 VIP석 좌석 쪽을 바라보았다.
채정아와 어머니가 오늘 경기장에 온다고 들었다.
VIP석 쪽을 쭉 훑어보니 팬클럽 회장 지수민과 회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지수민의 옆에 앉은 채정아와 어머니가 보였다.
“신아! 여기!”
눈이 마주치자 채정아가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채정아는 어머니의 손도 붙잡고 억지로 같이 흔들어 보였다.
어머니는 민망해하면서도 이신을 응시했다.
“…….”
이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경기를 보러 온 어머니…….
한 번도 본 적도, 어느 순간부터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풍경이었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신은 말없이 채정아와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뗐다.
?
* * *
?
“어쩜, 리액션이 없네. 알은척이라도 좀 해라. 쟤 진짜 성격 장애라니까.”
채정아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이신의 어머니가 나직이 말했다.
“인사하잖니.”
“인사한다고?”
“손.”
어머니의 말 대로였다.
이신의 오른손이 두 사람을 향해 살짝 들려 있었다.
“와, 저게 인사야?”
채정아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는 어느새 두 손을 모아 꽉 쥐었다. 아들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