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3
92화 선물(2)
“질 드 레.”
“부르셨습니까, 계약자님.”
질 드 레가 소환되어 나타났다.
계약자 출신의 사도인 질 드 레는 이신의 최측근이었다.
“악마군주 세에레의 계약자 이존욱을 아나?”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상위 서열에서는 어지간히 상승세인 인물이 아니면 하위 서열의 계약자들에게 별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야 그럴 것이다.
상당한 상위권에서 활동했던 질 드 레로서는 66위에 불과한 이존욱을 알 리 없었다.
“다음 상대는 그 이존욱이다. 마침 종족이 마물이니 네가 모의전 상대를 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의전이 시작되었다.
질 드 레는 마물의 강점과 휴먼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적이 나타났습니다!]시작부터 본진 출입구 부근에 나타난 헬하운드 4마리.
이신은 출입구에 병영을 건설해 폭을 좁혀놓고, 궁병 2명과 노예 2명을 세워놓아 방어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질 드 레가 콜럼버스를 사살해 정찰을 차단하자, 이신은 불안감을 느꼈다.
‘출입구를 막는 수밖에 없군.’
결국 이신은 화살탑을 건설해 출입구를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고작 헬하운드 4마리.
하지만 질 드 레가 헬하운드를 더 소환해서 작정하고 돌파를 시도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정찰이었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질 드 레의 집요한 정찰 차단에 막혀 사살되었으니, 이신은 상대가 무엇을 할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본진 출입구를 건물로 완전히 밀봉시킨다는 건 사실 엄청난 페널티였다.
바깥으로 나가려면 스스로 건물을 부숴 길을 열거나, 열기구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진다.
‘많이 늘었군.’
정찰을 차단시키고서는 위협 모션을 취해 출입구를 막도록 강요하는 플레이.
단지 위협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신은 출입구를 봉쇄할 수밖에 없었다.
이신의 모의전 상대를 계속하다 보니, 질 드 레도 실력이 쑥쑥 성장한 것.
이신이 연습을 할 때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중시 여기며 어떻게 상대를 이기려 하는지를 배웠으니 실력이 느는 것이 당연했다.
현실 세계에서의 제자가 주디라면 마계에서의 제자는 질 드 레라고 봐도 좋을 정도.
지금이라면 다시 계약자가 된다 해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신은 자신의 사도가 된 질 드 레를 다른 악마군주에게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신은 질 드 레를 일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현장지휘관 같은 역할을 시킬 생각이었다.
생각으로 일일이 명령을 내려가며 전투를 지휘하는 것은 키보드·마우스 컨트롤보다 백배는 더 힘들었던 탓에 전투에 능한 부하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신도 질 드 레의 전략에 맞서 빌드 오더를 새롭게 수립해야 했다.
‘사나다 마사유키와 싸웠을 때처럼 해야겠다.’
출입구를 건물 배치로 봉쇄시켰으니 방어는 이만하면 충분했다.
질 드 레도 이걸 뚫고 들어와 승부를 볼 생각까지는 없을 터였다. 유리한 상황에서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한 승부수를 띄울 필요는 없을 테니까.
이신은 더 이상 방어에 투자하지 않고 테크 트리를 올리는 데 주력했다.
[그리핀이 소환되었습니다.]이른 시간에 소환된 그리핀.
아직 대장간에서 무기 개발도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빠른 타이밍에 나타난 그리핀이었다.
하지만 이신은 궁병 2명을 그리핀에 태워서 질 드 레의 진영을 향해 날려 보냈다.
‘일단 공격을 하지 말고 진영을 쭉 둘러보기만 해라.’
그리핀을 빨리 소환한 이유는 바로 못한 정찰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정찰은 중요했다.
그리핀은 궁병 2명을 태운 채로 질 드 레의 진영으로 빠르게 비행했다.
그리고…….
‘……!’
이신은 꽤나 놀라고 말았다.
질 드 레의 진영에 헬하운드들이 득시글거렸다!
마력석 채집장을 더 가져가 본진에 갇힌 이신보다 훨씬 많은 채취한 마력을 헬하운드에 쏟아 부은 것이었다.
‘이런! 철수해, 빨리!’
이신은 즉시 명령했다.
그리핀의 존재를 보여주면 안 된다.
그간 실력이 성장한 질 드 레라면 그리핀을 보자마자 이신이 테크 트리를 올리는 데 몰두해 병력이 얼마 없다는 걸 알아차린다.
명령대로 그리핀은 달아나 버렸지만…….
“으르릉!”
“크르르릉!”
헬하운드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질 드 레는 그리핀의 존재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것이다.
이신은 급히 병영을 늘려 짓고 병력을 소환했다.
그리고 궁병 2명을 태운 그리핀으로 질 드 레의 진영을 휘저으며 견제를 했다.
하지만 무기 개발이 안 된 궁병의 조잡한 활은 큰 위력이 없었다.
마력석을 채집하는 클로를 간간히 잡아주긴 했지만, 워낙 위력이 약해 속도가 더뎠다.
질 드 레는 헬하운드만 소환하느라 대공 수단이 없어 일방적으로 견제에 당했지만, 전혀 당황한 눈치가 아니었다.
‘그리핀을 보자마자 마룡을 소환하기 시작했겠지.’
무기 개발이 완료되면 궁병이 석궁병으로 업그레이드된다.
하지만 비슷한 타이밍에 질 드 레도 마룡이 소환된다.
그때까지 클로 몇 마리쯤은 내줘도 별 피해가 아니라는 계산이었다.
정말로 많이 성장한 질 드 레의 실력이었다.
“크르릉!”
“으르릉!”
이신의 진영 앞까지 당도한 헬하운드들이 입구를 막고 있는 화살탑을 때리기 시작했다.
화살탑과 건물 바리케이드 뒤에서 궁병들이 화살을 쏴댔지만, 헬하운드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부, 부서진다!”
화살탑 안에 들어가 있던 궁병 4명이 겁에 질렸다.
우르르!
끝내 화살탑이 무너져 버렸다.
무너져 내린 화살탑과 함께 추락한 궁병들은 헬하운드들에게 물어 뜯겼다.
궁병들이 뚫린 입구를 막으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피해는 계속 늘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병영에서 창병 2명과 방패병 2명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창병 2명 중 하나는 유독 독특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붉은빛으로 근사하게 빛나는 갑옷과 3미터쯤 되는 기다랗고 특이하게 생긴 창을 든 창병.
체격이 장대한 동양인이었는데, 그가 바로 오자서가 준 새로운 선물이었다.
[창병이 소환 완료되었습니다.] [계약자 이신 님의 사도 이존효가 소환 완료되었습니다.]이존효는 소환되자마자 뚫리기 직전의 출입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혼천절로 헬하운드의 머리통을 힘차게 찔러 버렸다.
퍼어억!
벌린 헬하운드의 아가리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린 혼천절! 그대로 몸속이 꿰뚫려 절명해 버린 헬하운드였다.
혼천절은 네 갈래로 난 창날에 반달 모양의 칼날이 부착되어 있고, 추가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무기였다.
찌르고 베고 때리고를 모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병기였는데, 이존효는 그 혼천절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저 정도면 조아생 뮈라와 붙어도 되겠는데?’
이신은 귀신 같이 잘 싸우는 이존효의 활약에 깜짝 놀랐다.
마치 프로게이머가 슈퍼 컨트롤로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이신은 이존효의 빛나는 무위로 위기를 모면했다.
방패병들이 붙어서 구멍을 매우고 뒤에서 이존효와 다른 창병이 반격했다. 비로소 혼란을 수습한 궁병들도 열심히 화살을 쐈다.
게다가,
[대장간에서 무기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그 메시지와 함께 궁병은 석궁병으로, 창병은 장창병으로, 방패병은 가지고 있던 방패가 더욱 커졌다.
결국 질 드 레는 헬하운드를 전부 쏟아 부었음에도 출입구를 뚫지 못했다.
물론 방어하느라 이신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어쨌거나 위기를 넘겼다는 게 중요했다.
‘이제 마룡으로 주력을 바꾸겠군.’
그 틈에 이신도 본진에서 나와 앞마당에 마력석 채집장을 가져갔다.
숨 막히던 폭풍이 지나가고 조금 여유가 되자 이신은 이존효에게 말을 건넸다.
“네가 이존효냐?”
“예, 계약자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존효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존욱을 알고 있나?”
“이존욱이요? 다음 상대가 이존욱입니까?”
이존효는 놀라서 물었다.
“그렇다.”
“이존욱은 제 양부 되시는 분의 친아들입니다.”
“양부? 그럼 이존욱과 형제라는 뜻이군.”
“예. 하지만 원래 양부께선 인재라고 생각되는 인물을 보면 족족이 양아들로 삼았기 때문에, 사실상 저는 부하 장수였고 친아들인 이존욱은 후계자였지요.”
이극용은 당나라 말기의 돌궐족 출신 군벌인데,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절도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바로 악마군주 세에레의 계약자 이존욱.
이존욱은 당나라 멸망 후 전란에 휩싸인 혼란기의 중국 대륙을 모두 평정하고 후당(後唐)의 황제가 된 입지전적인 사나이였다.
“사실 그것도 나중에 지옥에서 들은 이야기지, 제가 죽을 당시 이존욱은 10살도 채 안 된 어린아이였기에 잘 모르겠습니다.”
알고 보니 이존효는 아무리 열심히 싸워 공을 세워도 인정받지 못하니,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 후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런 인물이 지금은 이신의 수중에 들어와 이존욱·이극용 부자와 싸우게 되었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었다.
“그 이극용이라는 자도 지금 이존욱의 사도가 되었다고 하더군.”
“예, 들었습니다.”
“싸울 자신 있나?”
“양부님께도 이존욱에게도 달리 남아 있는 앙심은 없지만, 지금은 계약자님의 사도가 되었으니 제 소임을 다 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이미 이신은 이존효를 제외한 전 병력을 공격 보낸 뒤였다.
이신은 그리핀 한 마리를 불러 이존효 앞에 대기시켜 놓았다.
“그걸 타고 가라. 실력을 더 보고 싶군.”
“예!”
그리핀은 이존효를 태운 채 날아올랐다.
한 손은 고삐를, 다른 손은 혼천절을 쥔 채 그리핀을 타고 날아오르는 이존효의 모습은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처럼 보였다.
‘가만?’
그리핀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신의 뇌리로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한 번 해볼까?’
이신은 이존욱과의 서열전에서 어떤 전략을 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결국 모의전은 노련한 후반 운영을 한 이신의 승리로 끝났다.
“제가 졌습니다. 역시 못 당하겠습니다.”
질 드 레가 패배를 순순히 인정했다.
“실력이 많이 늘었더군. 이존효가 아니었으면 내가 질 수도 있었다.”
질 드 레는 함께 있는 새로운 동료 사도, 이존효를 응시했다.
“저도 놀랐습니다. 저 정도면 조아생 뮈라와 일대일로 싸워도 해볼 만할 겁니다. 물론 말이 없으니 이길 수 없겠습니다만.”
직접 조아생 뮈라와 검을 들고 싸워보기도 했던 질 드 레의 평이었다.
아쉽게도 이존효의 병과는 기사가 아닌 창병에 불과했다.
“아니, 창병이면 돼.”
이신이 말했다.
“오히려 창병이라서 더 좋지.”
“그렇습니까?”
질 드 레는 말뜻을 캐묻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신이 어떤 전략을 쓸지 결정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사도가 되어서 최측근으로 지내니 이신에 대해 잘 알게 된 질 드 레였다.
“한 번 더 하지. 새로 떠올린 전략을 시도해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모의전이 시작되었다.
이신은 수없이 모의전을 반복하며 전략을 수립해 나갔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빈틈을 보완하고, 골격에 살을 붙여가며 전략의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