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111
제 111화
41.
다향이라는 이름을 가진 찻잔 도깨비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한장우를 노려보았다.
“뭐…… 뭐냐? 이 여자는?”
한장우는 갑자기 나타난 다향을 보며 한태석을 바라보았지만 한장우에게 사실대로 말을 해 줘야 하는지 쉽사리 결정을 하기 어려웠다.
‘도깨비라는 것을 어떻게 말해.’
말을 해 봐야 믿지도 않을 것이기에 다들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다향은 분노를 토해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감히 내 몸에 술을 따르다니! 용서할 수 없다!”
다향은 찻잔이었다.
무척이나 뛰어난 도공이 일생의 마지막 역작으로 만들어 높으신 분에게 바쳤던 귀한 몸이었다.
호미와는 차원이 다른 신분의 그녀였지만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도깨비였던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오직 차만을 몸에 담아 오던 그녀는 수많은 주인을 바꾸어가며 그 주인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다들 하나같이 인격이 고매하고 지식이 넘쳐 다향은 그런 주인들의 품성이 몸에 배기 시작했고 이내 인격이 담기었다.
그렇게 도깨비가 되었지만 다향은 주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여전히 자신의 몸에 차를 담아내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주인만 만날 수는 없었다.
존경할 만한 주인이 죽으며 유산으로 망나니 같은 아들에게 넘겨졌다.
그래도 그리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향의 몸값은 여느 찻잔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고 그 누구도 다향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팔리더라도 다향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은 다향을 무척이나 귀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망나니 아들은 달랐다.
“조금 촌스럽기는 하지만 이게 그렇게 비싼 것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사용해 줘야지!”
망나니 아들은 찻잔을 자신의 탁자 위에 올려놓고서는 다향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었다.
“어떻게 내 몸에 술을 따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웃음을 파는 잔이 아니야!”
그랬다.
다향의 몸에 술이 따라진 것이었다.
망나니 아들은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술을 좋아하는 양반이었다.
사실 망나니라고 불릴 정도로 막 나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높은 벼슬을 하고 학문도 꽤나 박식하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다향은 자신의 몸에 술을 따른 것 때문에 그를 망나니라 불렀다.
그윽한 차향에 술향기가 담기자 다향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몰래 밤중에 망나니 아들을 찾아가 술보다는 차가 몸에 좋다며 차를 마셔볼 생각이 없냐고 유혹도 해보았지만 망나니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술을 계속 따랐다.
그건 다향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감히! 감히! 어떻게 나에게!”
망나니라고는 하지만 주인을 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아가던 다향은 술을 따른 잔을 기생에게 넘겨주는 것에 꼭지가 돌아버렸다.
그나마 다향은 주인집 텃밭에서 일을 하던 호미와 인간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한을 서로 털어놓으며 버티고 있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 많은 도깨비 생을 마감해 버린 것이다.
“다향 아씨! 다향 아씨! 안 됩니다! 안 돼요!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아씨!”
“돌쇠야. 미안해. 너는 부디 너의 삶을 살렴.”
비가 몹시도 내리던 날 호미는 시름시름 앓다가 눈을 감는 다향의 몸을 부여잡고서는 통곡을 했다.
다향의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호미는 자신의 호미 날로 다향의 몸을 긁어 술 냄새를 닦아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호미는 다향을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묻고 언젠가 다향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호미도 점점 힘을 잃고 눈을 감아 버렸으니 두 도깨비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조선은 대한민국이 되고 강남에서 두 도깨비가 한 대장장이의 힘에 의해 깨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찻잔인데 술을 따라서 화가 났다는 말이지요?”
“당연하지!”
한장우는 전통복장을 곱게 입은 여인의 말에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도무지 분간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아가씨가 방금 그 찻잔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내 더 이상은 참지 못해 인간의 몸으로 바꾸었노라! 그러니 당장 사과를 하거라!”
나이도 어려 보이는 여인이 버럭버럭 화를 내는 것에 한장우는 확 뒤집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를 했다.
당연히 한장우는 다향이 찻잔이며 도깨비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믿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후우! 그건 내가 사과를 하겠소.”
다향은 한장우로부터 순순히 사과를 받자 살짝 놀란 눈으로 한장우를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을 함부로 대한 인간이었지만 모르고서 한 실수라면 한 번은 용서를 하는 것이 양반가의 덕목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사과를 하시니 이번 한 번은 넘어가 드리지요.”
기세등등하던 다향이 한장우의 사과에 누그러들더니 양갓집 규수와 같은 분위기로 돌변을 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다향이었다.
자신의 몸에 술을 따르는 무례가 아니라면 굳이 다향이 화를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차를 담아주시옵소서.”
“예? 아! 예.”
한장우는 다소곳이 인사를 하는 다향을 보며 자신의 동생인 한태석의 팔을 끌어서는 매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태석아.”
“예. 형님.”
“저 아가씨 뭐 하는 아가씨냐? 좀 정신이…….”
동생의 가게 손님인지 아니면 직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봐도 정신 나간 여자 같다는 생각을 하는 한장우였다.
“저기 호미 아는 지인인 듯합니다.”
“그래? 아무튼 좀 이상한 여자 같으니까 조심해라. 하여간 서비스 업종이 힘들긴 힘들어. 별별 진상들도 많고 말이야. 아무튼 나는 이만 가 볼 테니까 알아서 해라.”
“예. 알겠습니다. 형님.”
한태석은 도망가듯이 매장을 나서는 한장우를 배웅해 주고서는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다향을 보았다.
다향뿐만 아니라 매장 직원들 모두가 한태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이 하나 더 생겼어.’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여기 건물터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다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태석보고 책임을 지라는 눈빛에 한태석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다향을 사가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저런 골칫덩이를 파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고 보니 형님께서 산다고 하셨는데.”
한태석은 한장우가 다향을 산다는 말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안 돼! 대장장이 양반! 다향 아씨를 팔려고 하다니!”
한태석의 혼잣말이 조금 컸는지 호미는 버럭 화를 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 다향을 팔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그런 호미의 몸을 붙잡는 손이 있었다.
“그만하게.”
“아씨?”
호미는 다향의 고운 얼굴에 단호함이 깃들어 있음을 보며 가슴 속이 불안해졌다.
같은 도깨비였지만 다향은 호미와는 달랐다.
호미가 흙바닥에서 뒹굴 때 다향은 풍류가 가득한 곳에서 깊은 향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마치 양반과 농민 같은 신분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호미나 다향 모두 옛 물건들이었다.
호미와 다향의 인격은 그 시절에 형성이 되어 지금에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소녀도 들었사옵니다. 저의 주인은 분명 그분이시겠지요.”
서글프게도 다향이 만들어져 몇 번인가 팔리기도 했다.
때로는 선물로 넘겨지기도 했고 가보로 내려오기도 했지만 몰락한 가문의 귀한 찻잔은 팔릴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다향은 한태석을 보며 그가 대장장이임을 알아보았다.
대장장이가 자신과 같은 귀한 찻잔을 가질 수는 없었다.
차를 즐기지도 않을 것이었기에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에게 가고자 하는 다향이었다.
“그분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한장우 한성 그룹 회장님이십니다만.”
“한장우 한성 그룹 회장님이시라. 성은 한가인 듯하고 함은 장자 우자에 한성 그룹의 회장님은 신분이신 듯한데. 천한 신분은 아니신 듯하군요.”
다향의 말에 다들 뭐 이딴 도깨비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지민은 이런 도깨비와 함께 일하면 꽤나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저 건물 주인이세요.”
“건물의 주인?”
다향은 지민이 매장 밖의 한 빌딩을 가리키자 매장의 창문으로 향해서는 높다란 건물을 바라보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건물은 다향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에구머니나! 이게 어찌 된 일인고?”
“다향 아씨! 지금은 조선도 사라지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긴 때입니다.”
“대한민국? 그런가? 새로운 세상인가?”
다향은 호미의 말에 자신이 무척이나 오랜 시간 잠이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돌쇠야. 한장우 회장님은 어떠신 분이시냐?”
“저기 제 이름은 호미로 바뀌었고 한장우 회장님이시면 일반인들은 뵙기 힘드신 분이시는 하지요. 수십만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그룹의 회장님이시니까.”
“수십만의 직원. 혹시 영주님이시더냐?”
“뭐 그런 건 아닌데 하지만 조금 복잡하기는 합니다. 아씨.”
다향은 호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한태석에게 바라보았다.
“저를 한장우 회장님께 보내 주십시오.”
한태석은 호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다향 또한 자신의 형에게 가겠다고 하니 딱히 반대를 할 수도 없었다.
“후우! 그러지요.”
한태석의 승낙에 다향은 미소를 지으며 인간의 모습에서 찻잔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다향 아씨!”
“힘을 다해 지친 것뿐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태석의 말에 호미는 다향의 몸을 두 손으로 잡고 있다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한태석을 바라보았다.
“왜? 다향 아씨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거지?”
한태석은 호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했다.
“그녀가 있을 곳이 이곳은 아니니까.”
한태석의 말에 호미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 또한 언젠가 자신의 주인이 될 이의 손에 들려 한태석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을 예감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호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다향을 바라보았다.
‘아씨. 아씨가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호미는 다향의 행복을 빌어주며 한태석에게 다향을 넘겼다.
“하나 분명히 이야기를 해 줘. 다향 아씨는 오직 차를 담는 찻잔이라고. 결코 술을 담지 말라고.”
호미의 말에 한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이 지켜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태석은 호미에게 그렇게 말을 해주겠다고 다짐을 해 주었다.
그렇게 다향은 한태석을 통해 한장우에게로 넘겨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찻잔으로만 사용하라는 한태석의 부탁에 한장우는 의아해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물론 차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한장우였기에 다향이 사용될 일은 별로 없었다.
결국, 다향은 회장실 한쪽의 진열장에 장식품으로 놓였다.
감정사가 다향을 보고서는 거의 국보급에 해당하는 귀한 찻잔이라고 감정을 한 것이다.
‘한장우 회장님.’
그렇게 다향은 회장실에서 업무에 열중하는 한장우를 남몰래 지켜보며 야속한 마음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