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124
제 124화
54.
심판자.
“우리에 의해 일어난 일은 우리의 손으로 매듭을 지어야 하는 법.”
한태석은 평소와는 다른 복장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마치 의식을 치르기라도 하는 듯이 경건하게 차려입기 시작한 복장은 지구에서의 복장과는 조금 생소했다.
아니 지구에서는 그 누구도 한태석의 차림처럼 입고 돌아다니지 않았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그것도 아주 일부의 집단만이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서만 입는 특수한 복장이었다.
“대장장이가 만든 물건들이 인간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고대로부터 대장장이는 생명을 거두어가는 무기를 만들었다.
농기구를 만드는 것은 그 뒤의 이야기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스스로, 그리고 가족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대장장이들은 피의 역사를 걸어온 자들이다.”
한태석의 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한태석은 이마를 가리는 검은 천을 묶으며 마치 악귀와 같이 사나운 눈빛을 반짝였다.
“대장장이의 긍지를 짓밟는 놈을 용서할 수 없다.”
대장장이는 도구를 만드는 자이지만 그 도구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이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땅으로부터 받은 광물을 불과 물 그리고 바람으로 단련하고 또 단련해서는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 성스럽기까지 한 행위는 힘겨운 대장장이 일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다.
그런 자긍심을 더럽히는 행위를 하는 다크 스미스들은 모든 대장장이의 공적이었다.
대장장이들 중에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블랙 스미스들은 다크 스미스가 나타나면 그 어떤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다크 스미스를 처단한다.
물론 다크 스미스도 본래는 최고의 경지에 드는 블랙 스미스였다.
타락한 블랙 스미스가 다크 스미스가 되기에 다크 스미스들은 어지간한 블랙 스미스들보다 강했다.
그렇기에 다크 스미스가 나타나면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대장장이들의 세계에서는 커다란 전쟁이 벌어지고 수많은 대장장이들이 목숨을 잃고는 했다.
하지만 대장장이들은 자신들에 의해 일어나는 세상의 혼란을 자신들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그런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다크 스미스가 만든 물건들이 이 세상에 활개를 친다면 그 누구도 대장장이들을 믿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한태석은 처단의 복장을 갈아입고서는 심판자의 망치를 들어 올렸다.
대장장이들이 전투 직종은 아니었지만 대장장이들의 완력과 체력은 기사 못지않았다.
물론 전투란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결심이 없다면 최후의 일격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장장이가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지라도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마지막의 끝이 무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크 스미스를 처단하기 위한 심판자가 되는 블랙 스미스들은 흔들리는 마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의식을 치르는 것이었다.
한태석은 심판자의 옷을 차려입고서는 심판의 망치를 들고 아직 해도 뜨지 않은 밤에 대장간을 나섰다.
남들에게 보여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대장간을 나서는 한태석에 세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장장이 양반 어디로 가는구만.”
“뻔하지. 그 오만득이라는 자에게 가려는 것이겠지.”
“만득 씨.”
한태석이 대장간을 나서는 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다름 아닌 인간도 아닌 기묘한 존재들이었다.
호미와 사리 그리고 사리 덕분에 조금은 움직일 수 있게 된 아리는 걱정스럽게 한태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탁이야. 만득 씨를 도와줘.”
“시끄러워! 쫄따구! 일단 따라나 가 보자고.”
사리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아리를 째려보고서는 호미를 바라보았다.
“후우! 그래. 가자. 개근상은 물 건너가는구나.”
호미는 학교 등교 걱정을 하다가 고개를 내젓고서는 한태석의 뒤를 은밀하게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태석과 함께 한태석을 미행하는 세 명의 아이들이 대장간을 나서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간의 불이 켜졌다.
“제노! 제노! 오늘도 제노 열심히 일을 한다. 오늘 만들 물건들의 목록을 보면. 음! 바이브레이터? 이건 또 뭐냐? 안마 기계? 그런데 모양이 왜 이러냐?”
제노는 오늘도 손님들이 주문한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기계 몸을 움직이며 대장간을 먹여 살릴 준비에 들어갔다.
최근 들어 한태석이 이런저런 일이 많다 보니 주문이 밀려 있는 중이었다.
제노는 지하의 기계 제국 건설을 일단 중단하고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망치를 들어 올려야만 했다.
“아니고! 내 팔자야! 누구는 세계 최고의 인간하고 바둑 대결을 하는데 나는 이런 거나 하고 있고! 제노! 앗! 주인님. 나 신성한 대장간 일에 불만 없다. 제노!”
제노는 혹시라도 한태석이 듣지는 않았나 투덜대던 입을 다물고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서는 아무도 없는 것에 안도했다.
“그럼 오늘도 즐겁게 일을 시작해 보자. 제노!”
제노의 망치 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대장간의 하루도 평화롭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뒤 외계 이주 노동자인 바루 씨가 출근해서 제노가 만들어 놓은 안마기를 매장에 진열했다.
“이건 뭡니까? 제노 씨?”
“아! 안마기입니다. 방수 기능을 꼭 추가해 달라고 쓰여 있는데 혹시나 매장에 팔릴까 싶어 몇 개 더 만들어 보았습니다.”
“호오! 길쭉한 것이 크고 아름답군요.”
바루는 안마기를 보며 감탄을 하고서는 아직 출근하지 않은 지민을 대신해 매대에 진열했다.
제노가 정성껏 만든 최신형 안마기는 수십 개의 모드와 그 강력한 진동과 기기묘묘한 패턴을 보유한 명품이었다.
비록 한태석이 만든 것은 아니어서 속성 추가나 성능 강화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기계 제국의 황제인 제노가 최신의 기술을 동원해 만든 것인 만큼 그 성능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그렇게 한태석의 대장간을 먹여 살릴 물품 도구가 탄생한 날이었다.
물론 제노와 바루는 안마기 이외의 다른 용도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큼! 큼! 아! 요즘 어깨가 많이 결리네. 이거 하나 가지고 가도 되지?”
생각 이상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제노의 안마기를 어쩐 일인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하나 챙겨가는 지민이었다.
제노는 지민이 어깨가 결린다는 말에 인간은 역시 불편하구나 하며 지민을 걱정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제노였지만 한태석에 의해 영혼을 가진 제노는 그동안의 정이 들었는지 지민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렇게 제노는 직원들을 위해 vol 2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안마기를 지민뿐만 아니라 혜진과 엘리제 및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어 새로운 세상을 눈뜨게 만들었다.
하여튼 한태석도 예상하지 못한 차세대 명품 안마기를 제작하게 된 대장간은 뒤로하고 한태석은 저주의 보석을 손에 쥔 채로 저주를 건 시전자를 찾아 향하고 있었다.
한편 오만득을 한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저주의 기운을 증폭하고 머금을 수 있는 물건들을 제조하고 있었다.
깡! 깡! 깡!
온몸과 제작되는 물건들 주위로 검고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은 오만득이 망치질을 할 때마다 모루 위의 물건으로 스며들어 갔다.
“아리. 어디로 간 거냐. 아리. 그놈들 때문이다! 그놈들 때문이야!”
오만득은 아리를 잃어버렸다.
자신의 몸에서 한시라도 떨어지면 죽거나 평범한 여우가 되어 버린다는 것 정도는 오만득도 알고 있었다.
오만득의 주위로는 미라를 연상시키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오만득은 그런 시체들을 화로 속에 철괴와 함께 넣어 녹였다.
시체 속의 성분들이 제작되는 물건들의 성능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예부터 인간의 시체는 대장장이들의 최고의 재료 중 하나였다.
물론 사사로이 드러낼 일은 아니었다.
망자에 대한 모독은 그 어떤 문화권에서도 금기시하는 것이었기에 대장장이들도 시체를 재료로 사용했다는 것을 밝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만득은 서슴없이 시체들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화로 속에서 철과 함께 녹아가는 시체의 괴기함이 짙어질수록 오만득이 만들어 내는 물건의 힘은 강해졌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이 먼저 시작한 일이다.”
마치 시체들에게 하는 말인 듯이 오만득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시체들은 오만득을 노리던 대장장이들이었다.
평범한 대장장이들이 아니라 기이한 힘을 사용하는 대장장이들로 오만득이 가진 황금 망치와 오만득의 힘을 노린 흰 대장장이와 검은 대장장이들이었다.
수백 년을 이어오며 비밀 결사의 단체가 된 두 집단이었지만 한태석의 힘을 손에 넣고 자신을 노리던 대장장이들의 힘을 빼앗은 뒤에 세상에 남은 얼마 남지 않은 요괴들의 힘까지 가진 오만득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아리를 위해 요괴들을 사냥하던 오만득은 충분히 요기를 모았지만 때마침 공격해 오던 두 대장장이 집단에 의해 아리와 떨어져야만 했다.
오만득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본 두 대장장이 집단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힘을 합쳐 오만득을 제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오만득이 가진 힘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가지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다.
오만득이 뿜어내는 기운이 한 존재를 불러낸 것이다.
그는 오만득에게 힘을 주겠다고 제안하며 다가왔다.
아리는 그런 오만득에게 거절을 하라고 했지만 이미 힘에 사로잡혀 버린 오만득은 아리의 만류에도 그 존재와 손을 잡았다.
그렇게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오만득을 인간들인 대장장이들이 상대할 수 없었다.
흰 대장장이와 검은 대장장이들은 전멸했고 오만득이 만드는 저주를 담을 물건의 재료가 되어 있는 것이다.
“크크크크크! 설마 저런 자를 이 세계에서 만날 줄이야.”
오만득이 자신의 저주를 담을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광경을 지켜보는 존재는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 오만득의 역할은 무척이나 컸다.
“후후후!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한다면…….”
온몸에 힘이 넘친다는 듯이 사악하게 웃는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만득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던 그는 그도 예상치 못한 존재가 끼어 들어옴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흐음! 그랬구나.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니까.”
“누…… 누구냐?”
그는 자신이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존재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고서는 경악을 해야만 했다.
“다…… 당신은?”
“내 허락도 없이 감히 이런 앙큼한 짓을 꾸미고 있었던 거냐. 네 놈 때문에 내 계획에 차질이 벌어지고 있지 않으냐.”
“으…… 으으!”
어둠 속에서 미소짓고 있는 존재는 오만득을 이용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존재가 넘보기에는 너무나도 아득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