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130
제 130화
60.
당장에라도 칼부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흉흉한 분위기가 룸 안을 감돌았다.
그 가운에 고위 마족인 애나만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양주가 담긴 술잔을 빙글빙글 손으로 돌리고 있었다.
술잔에 든 얼음조각이 유리잔에 부딪히며 거슬리는 소음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 소음이 오히려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켜주고 있었다.
“일단 이 녀석이 이번 저주 사건의 원흉은 맞아.”
술에 곯아떨어져 있는 장길산이 범인이라는 말을 하는 애나의 말에 장길산은 고개를 들더니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후우! 그놈, 겨우 잠이 들었군.”
장길산의 얼굴이 사악하게 미소 지어지고 있었다.
“몸속에 들어가 있었던 건가?”
한태석은 분위기가 달라진 장길산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떴다.
미행을 하면서도 마족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은 의아해하고 있던 한태석이었다.
마족 중에 인간의 약한 마음속에 파고들어 가 숨어 있는 존재도 있었기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쳇! 뭐야? 인간 아닌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장길산은 방 안에 정상적인 인간은 한태석과 혜진밖에는 없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가 한태석과 혜진도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알고서는 투덜거렸다.
애나의 지시로 술집에 와서는 장길산의 본래 인격을 잠재우고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결코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었다.
“애나키…….”
“죽여 버린다.”
장길산을 지배하고 있는 마족은 애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싱글거리고는 있었지만 살벌한 말을 하는 애나에 입을 급히 다물어야만 했다.
하급 마족인 그로서는 고위 마족인 애나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너 아까 내 허리 만졌지.”
“그…… 그건 제가 아니라.”
장길산은 술에 곯아떨어지기 전에 애나의 허리를 만지며 술을 마셨던 것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의식을 잃게 만들려고 술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애나의 몸을 꽤나 주물거렸던 장길산이었다.
“이거 계산 니가 다 해.”
“…….”
애나는 오늘도 매상을 올렸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고서는 여전히 살벌한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고 미소를 지으며 건배 제안을 했다.
“이 마족 놈이 계산한다니까 다들 긴장도 풀 겸 한잔 어때요?”
“오만득. 오만득은 어디에 있지?”
한태석은 애나에 주눅이 들어 있는 장길산을 향해 오만득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 한태석에 장길산은 피식 웃어버렸다.
“내가 그걸 말해 줘야 할 이유가 있나? 인간.”
애나만 아니라면 눈앞에 있는 인간들이나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을 전부 잔인하게 죽여 버릴 장길산이었다.
하급 마족인 자신이 오만득 덕분에 하급을 넘어 중급에 다다라 있었다.
중급만 되어도 인간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신과도 같은 존재나 다름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
물론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중급 마족이 되었다고 해서 자기 멋대로 설치고 다니다가는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컸지만 적어도 이 좁은 방 안에 있는 존재들 정도는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길산이었다.
하지만 장길산은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하고 상대의 힘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쾅!
한태석의 손에 들린 검붉은 망치가 장길산의 머리 앞에서 멈추었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강제로 멈추어진 것이었다.
“태석이 오빠. 살인은 안 돼요.”
“크윽!”
한태석은 기다란 손톱으로 자신의 망치를 막고 있는 애나를 볼 수 있었다.
단번에 장길산의 몸에서 마족을 빼내려던 것을 애나가 막은 것이다.
“역시 마물! 이제야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사리가 불가살의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온몸에 화염을 일렁이며 으르렁거렸다.
평소 작은 강아지 모습을 하고 있던 사리였지만 지금은 호랑이에 근접할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너! 이게 본 모습이었나? 흐음! 그럼 나도 본 모습을 보여 볼까?”
호미도 사리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의 도깨비는 뿔이 없다.
흔히 뿔이 있고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일반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인간보다 큰 덩치에 장난기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호미 또한 우락부락한 덩치에 머리는 산발을 하고 수염이 가득해 마치 산적과 같은 모습을 하고서는 한 손에 돌기가 돋아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들려져 있었다.
“이 모습은 오랜만이군. 흐음! 아직 모든 힘을 다 쓸 수는 없나 보군. 아무튼 이 정도만 해도 네 놈 따위는…….”
“야! 너 왜 그렇게 변했어? 징그러!”
“…….”
호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자신의 모습을 징그럽다고 말하는 사리를 바라보았다.
사리의 모습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리는 호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다시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난리였다.
그렇게 티격태격하기는 하지만 사리와 호미가 전투 상태로 들어가자 분위기는 더욱더 험악해졌다.
혜진까지 어느덧 갑옷과 무기를 꺼내 들어서는 당장에라도 한태석을 도우려는 것에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엘리제의 입이 열렸다.
“그만둬.”
엘리제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에 호미와 사리 그리고 혜진은 움찔 몸을 떨어야만 했다.
당장에라도 자신들의 몸에 차가운 칼날이 파고들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엘리제의 살기에 자유로운 이는 한태석과 애나뿐이었다.
“저…… 저 여자는 또 뭐야?”
장길산도 엘리제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엘리제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자신 정도는 가볍게 죽여 버릴 수 있을 정도인 것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오만득으로부터 힘을 모아 자신만만하던 장길산이었지만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들이 가득한 것이다.
당장 애나가 한태석의 공격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장길산도 무사하기 어려웠다.
“오만득. 오만득의 위치만 말하면 된다.”
“태석 오빠. 그럴 수는 없다니까요.”
한태석의 말에 애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난 조금 더 이곳에 있고 싶단 말이에요. 저주 풀어 줄 테니까 그만 놔두면 안 될까요?”
애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태석을 바라보았다.
“언니도 좋고. 오빠도 좋고 여기 매니저 오빠나 언니 동생들 다 마음에 들어서…….”
애나는 술잔을 기울이는 엘리제를 힐끔 보고서는 말을 이었다.
“부숴버리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애나의 말과 함께 오싹한 기운이 룸 안의 온도를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듯했다.
전부 다 죽여 버릴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마왕은 아니라지만 고위 마족이었다.
평범한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신과 하등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도시 하나가 날아갈 정도로 강한 힘을 쓰는 존재였다.
엘리제조차도 희생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장담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내 세계도 아니니. 아니, 내 세계가 아니더라도 너무 위험해.’
서울은 천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대도시였다.
이런 도시에서 고위 마족과 대혈투를 벌였다가는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의 피해가 벌어지는 것이다.
엘리제의 세계에서 천만이라는 인구는 제국의 전체 인구수와 맞먹는 숫자였다.
지구의 인간은 과도하게 숫자가 많은 것이었다.
그런 인구가 한순간에 죽을지도 모를 모험은 엘리제라도 사양하고 싶었다.
더욱이 애나는 굳이 자신들과 싸움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지금 용사도 동료도 없어.’
한태석과 힘을 합칠 수도 있었지만 한태석은 전투원이 아닌 대장장이였다.
상당히 강한 무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한태석이 가진 무력 그 자체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태석이 감당할 수 있는 마족은 장길산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 녀석이 만든 저주의 숫자는 102개. 앞으로 6개만 더 만들면 중급 마족이 될 수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부서진 모양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희생이 생길 상황인 거지요. 오만득을 포기하면 저주를 제가 책임지고 없애 드릴게요. 어때요? 나쁘지 않은 제안 아닌가요?”
“저기, 애나 님…….”
장길산은 애나의 제안에 자신의 의사는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다가 애나의 눈동자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에 입을 다물었다.
‘죽는다. 그것도 잔인하게.’
평소 헤헤거리는 것이 나사 하나 풀린 것 같이 순박해 보이는 애나였지만 마족이었다.
“이 녀석이 죽더라도 저주는 풀리지 않아요. 저주가 깃든 물건을 전부 회수해 부숴버리기 전에는 희생자는 계속 나오게 될 수밖에 없지요. 결국 저주를 심은 존재가 저주를 풀어주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거지요. 수백. 아니 수천이 넘는 희생자들을 막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이지 않을까요?”
“…….”
애나의 말에 한태석은 시선은 여전히 장길산에게 두었지만 마음은 점점 애나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자는 어떻게 할 거지?”
“잠이 들 거예요. 아주 오랜 시간. 이 아이는 마족이지만 마족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 멀고 먼 이 남자의 조상 중의 한 명이 마족과 통교를 해서 생긴 존재예요. 사실 이런 존재는 마족들의 수치여서 보통은 발견하면 그냥 죽이게 되어 있거든요. 이 남자의 몸에서 이 아이를 꺼낼 생각이셨나 본데 꺼내지지 않아요. 대를 이어 오다가 이 남자의 대에서 눈을 뜬 것뿐. 다시 잠들면 먼 미래에 다시 눈을 뜨겠지만 적어도 당신의 대에서는 아닐 겁니다. 뭐 살인을 하시겠다면 말리지는 않지만요. 뭐 그러면 저주를 풀 수는 없겠지만요. 안 그래?”
애나가 장길산을 바라보자 장길산은 인상을 찡그렸다.
겨우 장길산의 몸에서 마족으로서의 의식이 깨어났는데 다시 잠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애나를 거역하면 자신의 완전 소멸까지 이루어질 수 있었기에 거역할 수도 없었다.
“계속 이렇게 방해를 할 건가?”
한태석의 말에 애나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오만득을 찾아내려면 애나를 먼저 넘어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더니 그 여자 마족과 닮았어.’
한태석은 애나의 미소를 보며 애나가 자신이 알고 있던 한 마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물리친 마왕 베오란트의 아내이자 마족들의 여왕을 떠올린 것이다.
“나는 오만득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저는 막을 거예요. 태석 오라버니.”
그렇게 저주는 풀렸다.
“쳇! 그 대장장이의 힘이 생각보다 강해. 저주의 힘이 약화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직접 찾아다니면서 저주의 씨앗을 회수해야지. 보통 저주를 풀면 저주의 씨앗이 사라지기 마련인데 대장장이 그 작자의 힘이 너무 강해. 아무튼 그 저주의 씨앗은 내가 직접 찾아다니며 회수하지.”
장길산은 애나의 눈치를 보며 저주의 씨앗을 회수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런 장길산에 호미의 말이 이어졌다.
“저 자식 수작 부리네. 잠 안 들려고 저러는 거야. 분명.”
호미의 말에 움찔 떨기는 했지만 저주의 씨앗을 전부 회수하려면 장길산이 아니라면 불가능함을 알기에 장길산은 당분간은 그대로 존재할 수 있었다.
“걱정 말아요. 나쁜 짓 하면 내가 직접 소멸시켜 버릴 테니까. 너 때문에 나도 골치 아파졌으니까. 너 하루에 한 번씩 착한 일 하고 나한테 와서 검사받아.”
“…….”
다행히 애나가 보증을 서주는 것으로 장길산의 악행을 제약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