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140
제 140화
70.
훌쩍훌쩍 산들을 뛰어넘는 도깨비들이 있었다.
“아씨! 안 불편하십니까?”
“괜찮다. 돌쇠 아니 호미야.”
다향은 호미의 등에 업혀서는 오랜만의 바람 맞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규방 규수 같은 삶을 살았던 다향에게 있어서 일 년에 한 번 접할 수 있는 이 날은 정말이지 특별한 날이었다.
더욱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참석하지 못했기에 떨림은 더욱더 컸다.
호미는 그렇게 설렌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 다향을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며 발을 놀렸다.
‘아씨. 세월이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은 도깨비들에게도 너무 긴 시간이었다.
강산이 변해도 수십 번은 변했을 세월이었기에 다향이 기대하는 상황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호미는 다향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다향이 실망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늦게 보고 싶은 호미였다.
그래서인지 옛날이었다면 벌써 도착을 했을 걸음이 느릿느릿하기만 했다.
도인들의 축지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도깨비 걸음도 십 리 길을 한걸음에 내달릴 만큼 빨랐다.
호미가 걸음을 늦추고자 하나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호미는 어느덧 자신의 등에서 잠이든 다향을 깨웠다.
“아씨! 아씨! 도착했습니다.”
“응? 아! 미안하구나. 내가 깜빡했구나.”
다향은 호미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것에 잠을 깨고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호미야. 제대로 온 것이 맞느냐?”
다향은 호미의 등에서 내려서는 자신이 알던 곳과 너무나도 다른 풍경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우신님과 호군님은 어디 계시는 것이냐? 산신님은 어디 계시고?”
“…….”
일 년에 한 번 산신의 생신에 온 나라의 신들과 도깨비가 모여 산신의 생신을 축하드린다.
먼 동해의 용왕님도 특사를 보내 산신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로 다향은 산신님을 위해 차를 대접하는 일을 한다.
그동안 차를 드리지 못했던 것을 죄송하게 생각해 평소 산신님께서 좋아하시던 술을 가지고 온 다향이었다.
“산신각이 아닌 듯하구나.”
“아씨! 흑! 여기가 산신전입니다.”
호미의 억눌린 울음소리에 다향은 무너져 버린 산신전의 전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산신전의 입구에는 손님을 맞는 여우신이 있었고 난동을 부리는 요괴와 귀신들을 엄하게 노려보는 호군이 있었다.
수많은 신들과 도깨비들이 입구에서 줄을 서 산신각을 지나 산신전으로 들어선다.
이건 축제였다.
신과 도깨비가 함께 하는 축제로 때로는 인간도 초대를 받고는 하는 흥겨운 축제였다.
영원에 가까운 수명을 가진 신들이었기에 이 축제는 끝이 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산신각의 입구에는 풀이 무성하고 황량한 바람만이 휘몰아쳐 사라지고 있었다.
도무지 과거의 번성했던 산신각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광경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나 우리가 이리 존재하지 않느냐? 우리도 존재하는데 산신님께서 계시지 않다니! 들어가 보자꾸나. 들어가 봐.”
“아씨!”
다향은 실성한 사람마냥 산신각의 입구를 지나 황량한 마당으로 들어섰다.
과거와는 달라져 있었지만 산신전의 옛 모습이 남아있는 전각에 다향은 풀이 가득한 마당에 주저앉아야만 했다.
“아씨!”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어찌하여.”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향은 황망한 눈빛으로 옛 영화조차 느낄 수 없는 산신전을 바라보았다.
그런 다향의 뒤로 호미는 입술을 깨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먼저 부활을 했지만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짐작을 했기에 확인하기를 거부한 것인지도 몰랐다.
“호미야.”
“예. 아씨.”
“술을 올릴 생각이니 기다려주려무나.”
“아씨!”
다향이 술을 올린다는 말에 호미는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다향의 뜻을 꺾을 수 없는 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향이 산신전으로 들어서자 호미는 마당의 잡초들을 바라보았다.
과거였다면 화초가 아름드리 피어있을 장소였다.
지금은 잡초들이 가득하니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호미는 그런 잡초들을 뽑아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마당이 꽤 넓기는 하나 호미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기에 다향이 술을 올릴 때까지 마당 정리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럼 힘 좀 써 볼까.”
천생이 농사꾼이었던 호미였으니 능숙한 손으로 잡초들을 뽑아나갔다.
그렇게 호미가 산신전의 마당을 정리하고 있을 때 다향은 허물어져 가는 산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 약탈이라도 해 갔는지 텅 빈 산신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산신이 그려진 족자조차 없는 것에 다향은 어디에 술을 올려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과거 산신이 앉았던 곳으로 다가가 자신이 가지고 온 술의 마개를 땄다.
“몸에 좋지 못하다 하여 술을 드리지 못했던 것이 이제야 한이 되옵니다.”
찻잔에 술을 따르자 그윽한 주향이 산신전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 주향을 즐길 수 있는 이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다향이었다.
그렇게 애수에 잠겨 다향의 눈에 눈물이 맺힐 때 다향은 마당에서 들린 호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호군님이시오?”
“그대는 누구인가?”
누가 찾아온 듯했다.
다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산신전에서 마당으로 나갔고 그 앞에 나타난 것은 낯선 호랑이 한 마리였다.
호랑이는 마당의 풀을 뽑고 있는 도깨비를 보고서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몸이 얼어있었다.
누군가 산신각에 들어온 것을 느껴 찾아왔건만 마당의 풀이 다 뽑혀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혼자도 아닌 듯이 산신전에는 그윽한 술향기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도깨비 호미인데. 댁은 누구시오? 호군은 맞는 듯한데. 혹시 새로 호군 되신 분이시오?”
호미가 인간이었다면 호랑이를 보고 깜짝 놀랐겠지만 호미는 도깨비였다.
물론 도깨비와 호랑이가 친하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호랑이가 호군이라면 딱히 놀랄 이유는 없었다.
“아! 아아! 호군님!”
호랑이는 이번에는 웬 여자 도깨비가 달려오는 것에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호군님! 호군님! 산신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것이옵니까?”
“……!”
놀란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호랑이는 이 밤도깨비들에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호군이 맞긴 하지만 산신님을 모시는 호군은 아니오.”
“…….”
“…….”
호군의 말에 다향과 호미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불신에 가득한 눈빛으로 호군을 바라보았다.
산신을 모시기에 호군이지 산신을 모시지 않는 호군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호랑이는 많았지만 호군이라 불릴 호랑이는 몇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선택받은 호랑이가 호군이었기에 호미와 다향의 불신의 눈빛은 당연한 것이다.
차라리 호군 없는 산신은 있을지언정 산신 없는 호군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아씨! 이놈 잡범인 듯합니다.”
“그런 것 같구나.”
다향의 싸늘한 눈빛에 호군은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쫓아낼까요?”
“그러려무나.”
잡범이라면 더는 볼 일이 없었다.
호미가 풀을 뽑던 괭이를 손으로 움켜쥐자 호군은 기가 막혔다.
이제는 도깨비들 따위가 자신을 잡범으로 무시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호군이 되고 난 뒤로 그 누구도 찾지 않던 산신전에 나타난 도깨비라 놀라 잠시 멍해져 있었다고 자신을 너무 무시한 것이다.
‘오늘은 별일이 다 있군.’
웬 인간과 신수를 구미호 일족이 있는 산에서 붙잡아 온 호군이었다.
호미가 호군을 잡범으로 여겼지만 진짜 호군에는 호미라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호군은 무에 있어서는 최강의 존재였고 호미는 농사일하던 도깨비에 불과했다.
물론 상대가 잡범이라면 호미에게 승산이 있었겠지만 호군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아이구! 호미 살려! 다향 아씨! 이 잡범이 도깨비 잡습니다그려!”
“호미야! 이것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다향은 호군이 호미를 물고 흔들어 대는 것에 버럭 화를 내며 외쳤다.
“내가 마! 너그 산신님하고 같이 차도 마시고! 어! 다 했던 그런 사이야!”
호군은 다향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서는 호미를 내려놓았다.
“전 산신님의 지인이신가 보군요. 산신님은 이제 계시지 않습니다.”
산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일단 호군은 산신을 모시던 존재였기에 전 산신의 손님인 두 도깨비를 안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호미는 아닌 듯 보이지만 다향에게서 풍기는 향기는 쉽게 범접하지 못할 그런 기세마저도 있었다.
“산신님께서 안 계시는데 왜 호군이? 혹시 여우신께서는?”
호군이 공손해지자 다향은 여우신의 행방을 물었다.
“여우신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 남은 호군입니다.”
호군의 말에 다향은 멍하니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따라오시지요. 전 산신님의 손님은 제 손님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호군은 다향과 호미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을 하고서는 텅 빈 산신각을 나섰다.
그런 호군의 꼬리를 보며 다향은 호미에게 속삭였다.
“가서 호떡하고, 그래. 곶감 좀 사 와.”
“…….”
호미는 다향의 순진무구한 눈빛을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잡범인 줄 알고 덤볐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기에 호군을 달랠 호떡과 호군이 무서워하는 곶감을 준비해 두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호미가 바람같이 호떡과 곶감을 사러 간 사이 다향은 겁도 없이 호군과 함께 호랑이 굴로 들어섰다.
“애들은 뭐야?”
“인간과 신수요. 신경 쓰지 마시오.”
다향은 호랑이 굴 안에 들어와서는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한태석과 사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호군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둘에 역시 호군이 맞는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호군을 노려보았다.
‘호미야! 곶감을 빨리 가지고 오거라!’
호미도 당하지 못하고 한태석과 사리도 당하지 못한 호군이었으니 다향 혼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호랑이가 무서워한다는 곶감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다.
일단 그런 내색을 해서는 안 되기에 다향은 호랑이에게 차라도 대접을 하며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로 했다.
물론 호군은 다향의 눈에 불신이 가득함을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차 한잔하시겠소? 호군님.”
“차 말입니까? 글쎄요. 차는 별로…….”
차를 마신 적이 없는 호군으로서는 다향이라는 도깨비가 준다는 차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술이라도 한잔 드리지요.”
다향은 호군 앞에 찻잔을 놓고 산신에게 줄 술을 따랐다.
이내 호랑이 굴 안에 그윽한 주향이 퍼져 나갔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주향은 다향의 능력이었다.
‘이걸 마시라고?’
문제는 호군의 앞에 놓인 종지 그릇만 한 술잔의 술이었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술에 한숨이 나왔지만 다향에게 설명을 해야만 할 것이 있었으니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한 것이다.
“저는 마지막 호군입니다.”
호군은 다향에게 산신전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향에게 자신이 모르는 과거의 산신과 호군과 여우신 그리고 도깨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호군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을 왠지 다향은 알고 있을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다향이 전 산신과 같이 차도 마시고 할 것 다 했다는 말을 했기에 다향이라면 자신이 모르는 과거를 알고 있을 듯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