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141
제 141화
71.
이름 모를 산속의 동굴에 호랑이 한 마리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앞에 술잔을 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두 존재는 한참을 서로 노려보고 있다가 어째서인지 호랑이가 먼저 눈길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산신님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당연하지요. 산신님과 같이 차도 마시고 등도 긁어 드리고 손톱 정리도 해드리고.”
다향은 산신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산신의 신하인 호군을 압박했다.
물론 호군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산신을 만나본 적도 없었기에 그런 다향의 압박이 통할 상대는 아니었다.
“그럼 산신님께서 어디 계시는지는 아십니까?”
“몰라요. 저도 수백 년 만에 깨어나 산신님의 생신이라 오늘에서야 찾아뵌 것이니까요.”
너무나도 당당하게 모른다는 말을 하는 다향에 호군은 인상을 구겼다.
수백 년이라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전대 호군도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후우! 아시다시피 산신님께서 부재하신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 듯하군요. 산신각이 저리도 황폐화되어 있는 것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다향은 호군도 산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산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다향으로서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렇게 다향도 알지 못한다는 듯한 모습에 호군은 허탈하니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앞에 놓인 종기 그릇 같은 술잔의 술을 손톱으로 들어 마셨다.
정말이지 이성을 잃을 정도로 술이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향은 호군 앞의 술이 비자 다시 술을 따라주었다.
“울지 말고 이야기해 봐요. 다 들어 줄 테니까.”
“…….”
술을 마시는 호군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호군을 달래는 다향에 호군은 입을 열었다.
“저는 마지막 호군입니다. 더 이상 이 땅에 호랑이도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예? 호랑이도 없어요? 엄청 많았는데!”
다향은 호랑이가 바글바글해서 난리였던 과거를 떠올리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잠들기 전만 해도 마을 뒷산에는 호랑이 한 마리씩 살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호랑이도 없어 더 이상 호군이 태어날 수 없다는 말에 다향은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씨! 떡하고 곶감 사 왔습니다.”
그렇게 판을 벌여 호군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때 다향은 호미가 사 온 떡과 곶감을 받고서는 호미에게 다시 주문을 했다.
“술 좀 더 사와.”
“돈은요?”
“여기 이 양반 호주머니 뒤져서 사가지고 와.”
“이 양반은 또 왜 여기 있어?”
호미는 한태석을 보고서는 한태석의 호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가지고서는 산을 뛰어 내려갔다.
그렇게 호랑이가 좋아하는 호떡과 곶감을 널어놓고서는 본격적으로 호군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호랑이는 달달한 곶감을 안주 삼아 한입 물며 호랑이의 과거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바다 건너 왜국의 인간들이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왜국이요? 아! 임진난에 그 왜놈들 말하는 모양이군요. 흐음! 저도 그때 잘못했으면 왜놈들에게 끌려갈 뻔했었지요.”
“그러시군요. 하여튼 그 왜놈들이 우리 호랑이 종족의 씨를 말리는 바람에 이 땅의 호랑이들이 모진 수모를 당했었지요. 아버님께 듣기로는 산신님께서 호랑이들과 여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하셨지만 전부 실패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호랑이는 왜놈들에게 전멸하고 산신을 모시는 호군도 그때 사실상 끝이 났다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남은 호랑이는 자신뿐이었고 호군에는 올랐지만 과거의 호군의 힘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나마 호군의 지위를 얻어 이 땅의 영수 중에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지만 그것도 이제는 오래지 않아 끝이 날 일이었다.
“여우신은요? 아직 여우들은 남아있는 것 같던데.”
다향은 언젠가 한태석의 대장간에서 보았던 구미호 일족의 아이를 떠올렸다.
“여우들은 아직 남아있습니다만 여우신이 될 여우는 아직까지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벌써 백 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호군은 산신을 모시는 두 신하 중의 하나인 여우신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마저 사라지고 나면 이제 산신의 흔적은 기억하는 이들조차 없어지게 될 터였다.
“그럴 수가. 여우신이 없다면 상제께 말씀을 드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상제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입니까?”
호군은 불경한 말을 하며 인상을 구겼다.
상제가 존재한다면 어째서 산신을 보내 주지 않느냐는 호군의 분노였다.
이 땅의 영수는 이제 씨가 말라버렸고 산짐승들도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산의 정기가 흐트러지면서 지상신들도 사라지고 도깨비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호군은 도깨비도 오늘 처음 보았을 정도였다.
산신전에 누가 들어온 것을 느껴 찾아갔더니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 있어 크게 놀란 호군이었다.
사실 산신전에는 인간들은 들어갈 수 없었으니 호군은 혹시나 산신이 온 것인가 하며 가슴이 뛰었다.
덕분에 동굴에 쓰러져 있는 한태석과 사리를 깨울 생각도 못 하고서는 곧바로 산신전으로 달려간 것이다.
“아씨! 술 사 왔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다. 너는 가서 산신전의 잡초를 마저 정리하거라.”
“…….”
다향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호미였다.
그렇게 호미가 투덜거리며 마저 신선전의 잡초를 뽑으러 갔을 때 다향은 호군에게 대접으로 술을 따라 주었다.
호군은 이제야 술 마실 생각이 든다며 다향이 따라준 술로 목을 축이며 세상을 탓했다.
“내가 얼마나 이 땅의 균형을 위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아시오. 아씨!”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호군은 본래 산신을 지키는 것이 임무이니 너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너무나도 직설적인 다향의 책망에 호군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울화를 다향이 따라준 술로 달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나는 산신을 뵈온 적도 없지만 나의 잘못이 맞소. 내가 호군인 이상 산신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 말이오. 그런데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오?”
“내가 알 리가 있겠느냐?”
다향의 말에 호군은 씨익 웃었다.
“오늘 신수를 발견했소이다.”
“불가살 말이더냐?”
동굴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사리를 보며 대답을 한 다향에 호군은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허허허! 맞소이다! 맞소! 영수도 다 사라졌는데 무려 신수가 나타났지 않소!”
호군이 태어날 때 당시만 해도 영수는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신수는 보기 힘들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이 신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 신수가 꽤나 건방지기는 했지만 호군은 그 신수를 발견한 것에 기뻐하며 일단 붙잡아 온 것이다.
“그리고 기묘한 기운을 가진 인간도 같이 있었소!”
“대장장이를 말하나 보군.”
“…….”
호군은 다향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자신이 하는 말마다 전부 대답을 하는 다향이 의아한 호군이었다.
“여기 이 대장장이가 나하고 방금 술 가져왔던 호미 그리고 저기 저 신수를 깨운 양반이니까.”
“…….”
호군은 어느덧 깨어나서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태석을 바라보았다.
“혹시 신선님이시오?”
호군은 도깨비들을 깨우고 신수까지 깨웠다는 한태석에 혹시 신선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했다.
“아니오.”
“도깨비하고 신수를 깨우셨다면서?”
“그건 맞소.”
“그럼 산신 맞는 듯한데?”
호군은 신선이 아니라면 어찌 도깨비와 신수를 깨웠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한태석을 바라보는 것이다.
“혹시 구미호를 찾아간 이유가?”
“누군가를 찾으려고 간 거요.”
호군은 한태석의 대답에 여우신을 깨우러 가는 걸 자신이 방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끄으응! 아이고! 삭신이야. 주인님! 괜찮아요?”
사리도 깨어났는지 한태석을 보고서는 괜찮으냐며 묻고서는 호군을 보고서는 흠칫 놀라 경계를 했다.
“네 이놈! 감히 주인님까지 건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호군은 신수가 주인님이라고 칭하는 것에 한태석이 산신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인간이 도깨비나 신수를 깨웠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호군이었으니 한태석이 산신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산신에 준하는 신이 분명한 것이라 여긴 것이다.
호군은 사리의 머리를 자신의 솥뚜껑만 한 앞발로 누르고서는 한태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에 안 마시던 술을 마셔 알딸딸한 상태로 한태석을 바라보는 호군은 왠지 모르게 한태석으로부터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거 놔라! 호랑이 놈아!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신수 불가살이다! 불가살!”
“당신 정체가 뭐요?”
호군의 질문에 한태석은 입을 열었다.
“대장장이요. 아무래도 당신이 찾고 있는 산신은 아니오. 그리고 나는 여우들이 숨기고 있는 오만득이라는 자를 찾고 있는 중이요.”
한태석은 호군과 다향의 대화 일부를 엿듣고서는 호군이 산신의 신하이자 이 땅의 마지막 남은 영수임을 알고서는 딱히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싸운다고 해서 자신에게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오해를 풀고 사리와 호랑이 굴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게 산신이 아닌 대장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태석에 호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랑이 굴 구석에서 무언가를 물고 나왔다.
툭!
호군은 한태석 앞에 자신이 물고 나온 물건을 떨어트리며 말을 했다.
“혹시 이걸 고쳐 주실 수 있으시오?”
한태석은 호군이 자신의 앞에 떨어트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작은 방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악기 같은 도구였다.
녹이 슬고 볼품이 없어 보이는 물건이었지만 한태석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물건에 신기가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산신의 흔적은 이것이 다요.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을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지금은 흔들어도 소리조차 나지 않소. 혹시 고칠 수 있겠소?”
한태석은 호군의 부탁에 제사에 쓰이는 방울종을 들어 올려서는 바라보았다.
수리 자체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신기가 깃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 대단한 신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리를 해 준다면 제 일을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태석은 호군에게 자신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했다.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았던 여우들을 보며 호군이라면 여우들을 설득해 오만득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해드리겠소.”
호군이 한태석의 제안을 승낙하자 한태석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호랑이 굴에 화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리야. 불을 피울 숯을 만들어 오려무나.”
한태석의 지시에 사리는 호군을 잠시 노려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랑이 굴 밖으로 나갔다.
커다란 통나무를 삼켰다가 뱉으면 질 좋은 숯을 만들 수 있는 사리였다.
그렇게 방울종을 수리할 준비를 하는 한태석에 호군은 눈빛을 반짝이며 한태석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존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호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