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161
제 161화
91.
한태석들로부터 도망을 친 뱀파이어 이그니스와 김아연은 원치 않은 도망자 신세에 허름한 여관방에서 숨어있었다.
“아연 씨. 저는 괜찮습니다. 돌아가세요.”
이그니스는 자신을 따라 집을 나온 김아연을 걱정했다.
고생하지 않아도 될 아연이 자신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이 안쓰러운 것이었다.
물론 본래의 이그니스였다면 그런 생각보다 먼저 김아연의 피를 탐했을 터였다.
하지만 마약으로 인해 맛이 가 버린 이그니스는 진심으로 김아연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그런 이그니스의 따뜻한 한마디에 김아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불타는 사랑에 빠져버린 김아연이었다.
자신도 이런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차갑게 식어서는 덜덜 떠는 이그니스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자신마저 이그니스의 손을 놓아 버린다면 이그니스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침이 되면 서울로 가요. 제가 서울에 집이 하나 더 있어서 그곳에서 머물면 돼요. 당분간 조금 힘들겠지만 방법을 찾으면 될 거예요.”
김아연. 그녀는 생각보다 능력 있는 여인이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다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회사를 정리하고 살던 집을 내어놓고서는 서울 외곽으로 나와 여유 있게 살려던 계획이었다.
그런 계획이 이그니스를 만나면서 산산조각이 나 버린 것이다.
‘내놓은 집은 다시 거두면 되고. 일을 다시 나가야 하려나? 회사에서 다시 받아 줄지 모르겠네.’
김아연은 정 안 되면 이그니스를 자신이 먹여 살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만일 주변 지인들이 그런 김아연을 알았다면 뜯어말릴 터였지만 김아연은 전혀 흔들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여관에서 이그니스와 김아연은 서로의 몸을 꼬옥 안고서는 잠이 들었다 깬 뒤에 서울로 버스를 타고 들어왔다.
부동산에 들러 김아연이 내놓은 오피스텔을 거두어들이고서는 이그니스를 그곳에 놓아두고 시골의 집에 들른 김아연은 다행히 이그니스를 잡으러 온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다시금 짐 정리를 했다.
“아! 예! 혹시 나 회사 복귀할 수 있을까요? 예! 예! 그럼 저야 고맙지요. 예! 알았어요. 나중에 같이 식사라도 하게요.”
김아연은 복귀하려는 회사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아는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서는 며칠간 바쁜 일상을 치러야만 했다.
워낙에 실력 있던 그녀였기에 다시 복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직장 상사들의 한 소리를 들어야만 할 터였고 직장 동료들에게도 사과를 해야만 할 터였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녀였다.
김아연은 그렇게 이그니스와 평소 꼭 해보고 싶었던 마트 장보기를 조심스럽게 시도했다.
이그니스가 불체자이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집 안에서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김아연과 큰마음을 먹고 도전을 한 것이다.
물론 바로 사람들이 있는 곳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에 처음에는 밤중에 골목길과 공원을 다니며 혹시 모를 단속 직원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에 마침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도전을 한 것이다.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요. 이그니스 씨는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나저나 이그니스 씨는 토마토 주스를 좋아하시네요.”
“아! 이상하게 빨간 것이 당기더라고요.”
빨간 것이 당긴다는 이그니스의 말에 김아연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서는 힐끔 속옷 매장의 빨간 속옷을 바라보았다.
“아우! 덥다.”
“예? 아연 씨. 괜찮아요?”
“예! 예! 괜찮아요! 괜찮아! 아! 그러고 보니 이그니스 씨. 옷이랑 속옷도 사야 하는데.”
단벌 신사인 이그니스를 위해 옷도 사고 생전 처음으로 남자 속옷을 사는 김아연이었다.
‘이거 꼭 내가 새댁이 된 느낌이네.’
자신이 남자 속옷을 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였다.
“어머! 남편이 정말 잘 생겼다. 미국인이에요?”
“예? 아…… 아니요. 멕시코.”
“어머! 그래요! 정말 두 분 잘 어울리신다. 이거 어때요? 커플 속옷인데.”
김아연은 이그니스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직원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만큼 이그니스는 잘 생겼다.
여자를 끄는 묘한 매력까지 있어서 지나가는 여인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었다.
그렇게 옆에 남자 하나 두었을 뿐인데 생전 처음 경험하는 시선들에 김아연은 말할 수 없는 우쭐함에 어깨가 펴졌다.
“이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예쁜 사랑 하세요. 새댁.”
그렇게 김아연과 이그니스는 데이트를 즐기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저 회사 갔다 올게요.”
“그래. 고생해.”
김아연이 전에 다니던 회사로 복귀하며 아침에 출근을 하자 이그니스는 김아연의 오피스텔에 홀로 남아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그니스는 뱀파이어였다.
무언가 뱀파이어로서의 본능이 끊어져 버린 것 같았지만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 이그니스였다.
인간의 피를 먹고 사는 뱀파이어로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알고 있는 이그니스였다.
하지만 이그니스도 김아연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나 때문에 그녀가 불행에 빠질 수도 있는데.”
왜 자신이 뱀파이어인지 원망스러울 지경인 이그니스였다.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몇 번이나 생각을 했지만 하지 못했던 이그니스였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떠나가 버릴 것이 어느덧 두려워진 것이다.
“나도 할 일을 찾아봐야 하려나.”
이그니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지만 얻어먹기만 하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았다.
이그니스는 김아연으로부터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테니 알려준 인터넷으로 자신이 할 만한 일은 없을까 찾아보기 시작했다.
“흐음! 가족 같은 분위기라.”
이그니스는 아연의 집에서도 가까우면서도 눈에 띄는 구인 광고를 보았다.
가족을 잃은 지 수백 년도 넘는 이그니스였다.
그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에 은근히 약한 이그니스였다.
“월급은 상의 후 결정이라. 그건 당연한 거고.”
한국의 최저 임금이 얼마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일단 무어라도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을 하는 이그니스였다.
“학력 무관에 몸만 튼튼하면 된다라.”
다른 구인 광고에는 대졸자들만 뽑는데 단 한 곳은 학력을 보지 않았다.
학력이 없는 이그니스로서는 더욱더 금상첨화였다.
혼자 결정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이그니스는 그날 퇴근을 하고 돌아온 김아연에게 자신이 본 것을 보여주며 일을 하겠다고 말을 했다.
“정말 괜찮겠어?”
“그래. 걱정하지 마.”
김아연은 자신도 일을 하겠다는 이그니스에 감격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도 고마운 것이다.
“그래도 조심하고. 무슨 일 생기면…….”
“걱정 마. 나 몸 빨라서 인간들 아니 사람들한테는 안 잡혀.”
“풋! 그래. 빠르긴 하더라.”
김아연은 이그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그니스라면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외국 애들은 힘이 좋다더니 사실인가 봐.’
커뮤니티의 개그란에 간혹 놀라운 외국인들의 운동능력을 보았던 김아연은 그것이 개그가 아닌 진짜라고 믿게 되어 버렸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김아연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뭐 짐승이어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렇게 이그니스의 희망찬 직장 생활을 기원하며 이그니스와 김아연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럼 파이팅!”
“그래. 파이팅!”
다음 날 아침 이그니스는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서는 구인 광고에 나와 있는 곳을 향해 찾아갔다.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건 기대감에 대한 흥분이라 생각하는 이그니스였다.
“아! 저기구나.”
이미 전날 통화를 마친 뒤였다.
상대방 쪽에서는 흔쾌하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고 바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정장이 아닌 편안한 복장으로 오라고 했다.
일을 바로 한다고 해도 어려운 업무는 없을 것이라며 안심을 하라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꽤나 따뜻했다.
그렇게 기대감을 안고서는 높다란 빌딩 숲 사이에 있는 한 상가 건물로 다가가는 이그니스였다.
딸랑!
문을 열자 경쾌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밝은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이그니스는 자신이 일을 할 곳이 상점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곳으로 보였다.
“저기 오늘 면접을 보러.”
“아! 잠시만요! 사장니임!”
마침내 새로 오는 신입 직원에 지민은 대장간을 향해 내달렸다.
외계인 바루가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면서 혼자 매장을 관리하던 지민이었다.
“그런데 서양인이네. 뭐 상관없겠지. 사장니임!”
대장간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한태석은 대장간 문을 열고서는 환한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는 지민을 보았다.
“구직자분 오셨어요!”
“아! 그래? 잠시만 옷 좀 갈아입고 올 테니까 손님 마실 것 좀 드려.”
“예!”
한태석은 마침내 온 구직자에 어지간한 흠만 아니라면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잠시 후에 매장으로 나온 한태석은 빨간 토마토 주스를 마시고 있는 이그니스를 볼 수 있었다.
조금 병약해 보이기는 했지만 제법 잘 생긴 외모의 서양 남자였다.
‘어째 직원들이 매번 정상적인 인물들은 아닌 것 같아.’
한태석은 무언가 조금 이상함을 느꼈지만 모처럼 찾아온 구직자가 겁을 먹고 도망을 치면 안 되기에 미소를 지으며 이그니스에게로 다가갔다.
본래라면 이그니스의 정체를 눈치채야만 했지만 김아연이 이그니스의 몸에 향수를 뿌린 데다가 뱀파이어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자 하면 동류가 아닌 이상은 쉽게 알아내기 어려웠기에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마족인 애나가 바로 옆에 있었다면 알아차렸겠지만 애나가 산신이 된 한태석에게 찾아올 일은 없었다.
‘무섭다.’
이그니스도 한태석과 마주하자 왠지 몸이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김아연으로부터 한국의 직장 생활과 고용주의 무서움을 충분히 배운 이그니스였다.
더욱이 인터넷으로 사장님 나빠요를 배운 뒤였기에 그 때문에 자신이 한태석 앞에서 위축이 된다고 착각을 해 버렸다.
“흐음! 외국인이시고. 한국말은?”
“조금 합니다.”
“아! 그래요. 그럼 됐습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그 고용 계약서를…… 지민아!”
“아! 예! 제가 인사과에 문의해 볼게요.”
한태석이 한국의 노동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형님의 도움을 조금 받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그니스는 지민이나 바루 때와 마찬가지로 한성 그룹 인사과에서 한성 그룹 본사 직원으로 고용되어 한태석의 매장에 파견 근무를 하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그니스의 신분이 문제가 되었지만 한장우가 고작 그런 것도 처리 못 하느냐고 버럭 화를 내자 금세 신분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장님!”
“하하! 인사성은 좋네! 그래요! 우리 한 번 열심히 해 봅시다!”
외계인도 고용했는데 외국인이라고 고용 못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한태석이었다.
그렇게 뱀파이어 이그니스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로 한태석의 대장간에 취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