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34
제 34화
석상의 한 모퉁이가 부서져 있었기에 지민은 한태석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사장님! 이거…….”
“응? 지민 양! 그거 불가살이로구만.”
“뭐래?”
“괴물이야. 그거.”
지민은 호미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달려와서는 자신의 손에 들린 기묘한 모양의 동물 석상을 바라보며 괴물이라 말하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도깨비가 있는 것도 내심 무서운 판에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불가살이라고 하니 몸서리가 쳐지는 지민이었다.
실상은 서큐버스의 갑옷을 입는 지민이 더 소름 끼쳤지만, 호미의 말에 다들 부서진 석상으로 시선이 모였다.
“불가살?”
“그건 또 뭐야? 괴물? 그냥 석상 같은데.”
그런 것이 왜 이곳에 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도깨비 호미도 있는 판이고 한태석도 있었으니 좋게 생각을 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물론 매장 밖으로는 수십 층 높이의 빌딩이 우람하니 서 있었고 길거리에는 수백 대도 넘는 차들이 매연을 뿜어내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복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 불가살. 그 괴물 같은 것의 이름이지.”
호미는 불가살 석상을 마치 부정한 것이라도 되는 양 손가락으로 툭툭 건들고서는 골동품 더미로 다시 몸을 돌렸다.
“호오! 이 녀석은 앞으로 70년만 더 있으면 도깨비가 될 수 있겠군. 이 녀석은, 보자!”
오래된 골동품이라고 해서 모두가 도깨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도깨비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것들이 있었기에 호미는 자신의 동료가 될 수 있을 만한 녀석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참! 세상천지가 도깨비 천국이 되겠네.”
혜진은 호미의 행동들에 고개를 내저으며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것은 없는지 뒤적거렸다.
호미나 혜진 모두 정리를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기에 결국 한태석과 지민만이 정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이건 내가 조금 더 손을 봐야 할 것 같고. 저것들은 매대에 진열을 해 둬.”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커다란 박스를 가득 채운 한태석은 박스째로 들고 대장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로 만들기도 하지만 고장이 나거나 미흡한 부분을 수리하고 보강해서 매장에 내어놓기도 했다.
아무리 빠르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밀려드는 손님을 만족시킬 만한 숫자의 물건을 만들 수는 없었다.
깡! 깡! 깡!
그렇게 수리가 시작되고 온몸을 땀으로 목욕을 하며 하나하나 완성품들을 만들어가던 때쯤. 한태석의 손에 불가살 석상이 붙잡혔다.
“응? 이건 내가 넣은 적이 없는데.”
한태석은 수리할 물건을 담을 상자에 석상이 들어 있는 것에, 호미가 장난을 친 것으로 생각했다.
부서져 있기는 했지만 돌로 되어 있는 석상이라 딱히 수리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기에 한태석은 상자 속에서 석상을 꺼내 작업대 옆으로 옮겨놓았다.
그렇게 한태석은 다시 다른 물건들을 하나하나 모두 수리하고 나서야 상자 속에 수리된 물건들을 챙겨 넣어 매장으로 향했다.
거기까지는 항상 하던 일과였기에 평범했다.
남는 시간에 예약을 받아 놓은 물건들을 만들고 그래도 남는 시간이 있으면 한태석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태석이 나간 대장간의 전기 화로에 불이 꺼졌다.
대장간의 필수품 중 하나인 화로였으니 화로가 고장 났다는 것은 대장간이 멈춘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우! 그럼 오늘 예약된 것을…… 응?”
대장간으로 돌아온 한태석은 뜨거운 열기가 사라진 대장간에 의아해하다가 화로를 바라보았다.
붉은 불꽃이 넘실대야 할 전기 화로가 꺼져 있는 것이었다.
한태석이 전기 화로를 끌 이유는 없었으니 다른 이가 껐나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아닐 터였기에 그럼 전기가 나갔나 싶었다.
“불이 꺼져 있어? 정전이라는 것인가?”
아직 경험해보지는 못했으나 전기가 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들었던 한태석이었다.
하지만 보조 발전기와 전원 유지 장치를 설치해 두었기에 정적이 되었다고 화로의 불이 꺼질 일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랐기에 한태석은 전에 기술자에게 들었던 것처럼 화로에 연결된 전원 버튼을 다시 작동했다.
우웅!
화로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다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흐음! 이제 되는군. 그나저나 불이 꺼지다니. 후우! 어쩔 수 없는 일일 테지만.”
고장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도 고장은 아닌 듯 보였다.
다시 화로 속에서 맹렬하게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설령 고장이 났다고 하더라도 한태석이라면 수리를 할 수 있었기에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이 화로도 새로 만들어야겠어. 화력이 충분하기는 하지만 불의 힘이 약하다고나 할까. 더욱이 이런 고장이라도 난다면 곤란하니.”
한태석은 불의 정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은 불의 정수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재료와 능력이 되지 않았기에 생각만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태석이었다.
불의 정수뿐만 아니라 화로 속의 열기를 더해 줄 바람의 정수와 뜨겁게 달구어진 쇠를 식힐 물의 정수도 필요했다.
전생에서도 그것들을 만드는데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었으니 대장간을 연지 반년도 되지 않는 한태석으로서는 지금 당장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한태석은 그날 일과를 끝내고서는 대장간의 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는 대장간은 화로에서 비치는 불길만이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전기 고로의 특성상 전원을 껐다 켜는 것이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하는 일이었기에 화로를 끄지 않았다.
아침에 다시 화로의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면 제대로 열이 올라갈 때까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려 제대로 작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속 화로의 불은 꺼지지 않고 타올라야만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이 점점 사그라들다가 꺼져버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좋은 아침.”
“아! 학교 가기 싫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학교야!”
“커피 마실 사람?”
다음 날 아침. 강남의 빌딩 숲 사이로 붉은 햇살이 비추기 시작할 때쯤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한태석의 대장간도 기지개를 켜며 또 다른 일과를 시작하려고 했다.
호미는 학교에 가고 지민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매장을 정리하며 혜진은 저 먼 외국의 고양이 똥으로 만들었다는 커피를 내렸다.
한태석은 평화로운 아침을 만끽하며 매장 앞을 청소하고서는 자신의 일터인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렇게 너무나도 평화스러운 아침. 한태석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체 어떤 놈이냐!”
어지간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는 한태석이 잔뜩 화가 난 듯이 고함을 지르자 매장 안의 지민과 혜진은 놀란 눈으로 대장간을 바라보았다.
“뭐야? 태석 씨 왜 저래? 뭔 일 있나?”
“그…… 그러게요. 언니. 사장님 저러는 거 처음인데?”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고 어두운 대장간 안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태석을 볼 수 있었다.
“어째서 불이 꺼져 있는 것이냐! 어째서?”
한태석은 대장간의 화로가 또다시 꺼져 있는 것에 화를 냈다.
전날 화로가 꺼진 것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는 했지만 사실 대장간의 화로가 꺼진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생에서도 한번 대장간의 화로를 꺼트렸던 적이 있던 어린 시절의 한태석은 스승인 대장장이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을 정도로 혼이 나야만 했었다.
자신의 대장간을 연 뒤로도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을 했었으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불이 꺼진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화로를 설치한 기술자에게서 절대 정전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을 몇 번이나 받았던 한태석이었다.
화로의 불이 꺼지는 것은 대장장이의 심장의 불이 꺼지는 것과도 같았기에 이제 전기 화로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져 버리는 한태석이었다.
한태석은 지금까지 그 정도로 화낸 적이 없었다.
격노한 그는 다시 떨리는 손으로 화로의 전원을 넣었다.
우우웅!
화로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다시 화염이 화로 속에서 치솟았다.
고장은 결코 아니었다.
고장이었다면 한태석의 눈에 보였을 터였다.
결국 한태석도 알지 못하는 전기 문제였기에 한태석은 짜증스럽게 전기 기술자를 불러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오전 일은 제대로 못 하겠군.”
화로의 불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쇳물을 녹일 온도에 도달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기에 오전의 일과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기분 좋던 아침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괜찮으세요? 사장님.”
“불이 꺼졌던 거야? 태석 씨?”
“후우! 그래. 괜찮아. 호미는?”
“학교 갔지.”
한태석은 대장간에 남아 있었던 호미가 장난으로 불은 끈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워낙에 장난기가 많은 도깨비였으니 이런 고약한 장난을 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저녁때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어.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니.”
한태석은 일단 전기 기술자를 불러보자는 생각을 하며 전기 화로를 설치해 주었던 기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이 가기 전에 도착한 기술자는 이것저것 점검을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주변이 정전되었다는 소리는 없었는데요. 설령 전원이 나갔다고 해도 예비 전원도 있고 해서 화로가 꺼질 일은 없을 텐데.”
“그럼 불이 왜 꺼졌다는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일단 전부 점검을 했으니 다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 연락을 한 번 더 주십시오.”
전기 문제로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말에 한태석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따진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도 아니었기에 그러자고 말을 했다.
그렇게 기술자가 떠나고 화로의 불길을 바라보던 한태석은 혜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태석 씨. 점심 먹으러 가요.”
“후우! 그래. 곧 나갈게.”
식사하러 가자는 말에 한태석은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이 화로를 바라보았다.
조수라도 있다면 온종일 화로를 지켜보며 불이 꺼지는 것을 대비케 하기라도 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 거야. 이상이 없다고 했고 내 눈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으니까.”
한태석은 애써 마음을 다독이고서는 대장간을 나섰다.
평소와는 달리 대장간의 입구를 열쇠로 잠근 한태석은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할 말을 잃어야만 했다.
“또 불이 꺼져 있다.”
맹렬하게 불이 일렁이고 있어야 할 화로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한태석은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고서는 화로를 향해 다가갔다.
14.
뚝딱! 뚝딱!
전기 화로를 전부 분해해 버렸다.
화르륵!
간이 화로를 설치해서는 분해해 버린 전기화로의 부품들을 보강하고 전부 강화해 버렸다.
절대 고장이 나지 않을 수준으로 강화를 완료하고 난 뒤에 재조립한 한태석은 다시 한 번 전기를 넣었다.
화륵!
처음부터 고장이 나지 않았기에 불은 당연히 들어왔다.
강화를 한 덕분인지 더욱 맹렬한 불길이 치솟았고 그 열기는 한태석조차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고장은 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