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41
제 41화
“태석 씨 커피?”
“아! 고마워.”
한태석은 혜진에게서 커피를 받아들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한태석의 옆에 달라붙은 혜진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태석 씨 요즘 안 좋은 일 있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잉! 말해 봐아. 우리가 남이야? 고민 있을 때는 같이 풀어야지.”
혜진의 애교 때문인지 아니면 혜진의 우리는 같은 동료라는 말 때문인지 한태석은 조금은 편안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사실 무척이나 욕심 많은 인간이었어.”
“아! 그…… 그래. 그렇지.”
혜진은 과거의 한태석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벌 2세로 좋게 말하면 곱게 자랐고 나쁘게 말하면 제 잘난 맛에 자란 한태석이었으니 인간성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과거를 알고 있는 혜진이었으니 한태석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보며 기대를 너무 많이 했지.”
“그래. 알아. 태석 씨. 나도 그랬는걸.”
한태석은 진심으로 자신의 말에 호응을 해주는 혜진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물론 두 사람의 공감은 무언가 핀트가 많이 어긋나 있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나는 단지 나이고 싶을 뿐인데.”
“그렇구나. 하지만 힘내. 우린 태석 씨를 태석 씨 그대로 보고 있으니까.”
한태석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혜진의 말에 감동했다.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 했었는지 몰랐다.
“혜진아.”
“태석 씨.”
혜진은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촉촉이 젖은 한태석의 눈동자에 혜진은 지금 당장 도장을 찍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었다.
오물오물!
촉촉이 젖은 혜진의 입술이 오물거리면서 점점 태석의 얼굴로 다가갔다.
한태석도 그런 혜진에 이끌려 당장에라도 마왕을 베어 넘길 검을 만들어 바칠 기세였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한태석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혜진이 운명의 신의 저주를 받았는지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운명의 신의 거대한 외침이 있었다.
“어. 써. 오. 쎄. 요! 쏜. 님!”
박력 넘치는 외침과 함께 들어오려던 손님이 도망을 칠 것 같은 지민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기 보는 앞에서 염장질을 하려는 두 사람이 못마땅한 지민이었다.
“히…… 힘이 넘치는구만. 지민 양.”
“예? 아! 하하하!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래. 한 사장 있나? 아! 저기 있구만. 한 사장!”
매장에 들어온 사람은 나이 지긋한 학자 풍의 남자였다.
이런저런 손님으로 와 한태석과 인연을 맺은 그는 한국대의 교수였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실력 있는 학자이자 기술자라고 하는데 그냥 인자한 느낌의 교수였다.
“장만복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한태석은 장만복 교수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태석과 바짝 달라붙어 있던 혜진의 볼살이 살짝 떨렸지만 더 매달려 있을 수도 없었으니 지민을 노려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지민이 너!’
‘저…… 정정당당히 하자고 했잖아요! 언니! 이…… 일터에서는 작업 걸지 말자!’
지민과 혜진은 꽤나 묘한 관계였다.
혜진도 지민이 한태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여자의 감으로 알고 있었다.
약혼을 했다지만 지금에 와서는 유명무실해진 관계였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남녀 관계였으니 혜진과 지민은 한태석을 차지하기 위한 나름의 약속을 했다.
그 첫 번째 약속이 직장에서는 한태석에게 꼬리 치지 말자였다.
그렇게 약속을 했지만 혜진으로서는 매일 붙어 있는 지민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누가 봐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는 서큐버스의 갑옷을 입고서는 한태석의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지민이었다.
물론 혜진 자신 또한 한태석이 만들어 준 야한 갑옷을 입는 이유가 한태석에게 섹시 어필을 하기 위해서였으니 먼저 한 것은 혜진이었다.
“놀고 있네! 아주 다 벗지 그러냐?”
경쟁하며 한태석에게 섹시 어필을 하는 두 여인을 보며 호미가 한 소리씩 하고는 있었지만 두 여인의 경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여튼 한눈팔면 지민이 한태석을 잡아먹어 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에 혜진은 매일 같이 출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둘은 직장에서는 선을 넘지 말자고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이 쉽게 지켜질 리는 없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두 여인의 관계는 마치 친자매같이 다정스러웠다.
한태석이 싸우는 것을 보면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이루어진 전생 속의 평화였다.
문제는 한태석이 여자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답답한 것은 혜진과 지민이었지만 언젠가는 이 평화가 깨어질지 알 수 없었다.
“뭐 고장 난 것이라도 있습니까? 교수님.”
“하하! 아닐세.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한태석은 장만복 교수가 자신에게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말에 무언가 의뢰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그…… 그게 말일세.”
장만복 교수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뭇거렸다.
자신이 하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태석의 실력은 알고 있었지만 이 작은 대장간에서 부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답답한 심정 때문에 찾아오기는 했지만 막상 입을 열기는 어려운 장만복 교수였다.
“혜진아. 교수님 커피 한 잔만.”
“응? 어! 알았어. 태석 씨!”
혜진은 한태석의 부탁에 커피를 내려서는 장만복 교수에게 내어주었다.
“고맙네, 혜진 양.”
“호호호! 아니에요.”
사실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린 것은 장만복 교수였으니 혜진의 웃음에 살기가 어리는 것은 당연했다.
“호호호호! 교수님.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그런 혜진과는 달리 지민은 장만복 교수의 방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니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고…… 고맙네. 실은 말이야.”
“예.”
한태석은 어렵사리 입을 여는 장만복 교수의 의뢰를 들을 수 있었다.
“불에 타지 않는 금속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어떤 열에도 타지 않는 금속. 하하! 미안하네.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보구만.”
장만복 교수는 한태석에게 아무리 뜨거워도 타지 않는 금속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한태석은 그런 장만복 교수의 요청에 고민에 빠졌다.
‘열에 타지도 녹지도 않는 금속이라.’
금속이 열에 녹지 않는다면 물건을 만들 수 없었다.
그 어떤 금속도 결국에는 불에 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장만복 교수가 불에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해 온 것이었다.
한태석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한 요청이었다.
금속을 녹여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녹지 않는 금속이란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태석은 그 녹지 않는 금속에 대한 도전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온도까지 버텨야 하는 것입니까?”
“1억 도네.”
1억 도라는 말에 한태석은 미소를 지었다.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철이 녹는 온도는 1,539도였다.
구리는 1,083도, 금은 1,063도, 은은 960도, 알루미늄 660도, 아연 420도 등. 철이 녹는 온도에 도달하면 거의 대부분의 금속성 물질은 녹일 수 있었다.
그러니 1억 도에 녹지 않는 금속은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의 표면 온도가 6,000도였으니 1억 도는 인간이 넘볼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한번 해 보도록 하지요.”
“응? 뭐? 최 사장. 그게…… 무슨?”
장만복 교수는 한태석의 대답에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태석의 모습에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절대 녹지 않는 금속. 한번 도전해 볼 만합니다.”
난도가 높을수록 성취 의욕은 높아지는 법이었다.
그렇게 한태석은 녹지 않는 금속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또 실패로군.”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지만 쉬울 리는 없었다.
한태석의 능력을 쏟아부어 봐도 금속의 한계로 인해 고온에 녹아내렸다.
물론 일반 대장간의 화로가 아무리 성능이 좋다 한들 1억 도까지 온도를 올릴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면 바로 현실에서 핵융합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설령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들어 냈다고 할지라도 테스트를 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태석에게는 불의 정수가 있었다.
불의 정수는 불 그 자체였기에 온도를 극한까지 올릴 수 있었다.
“강화를 해도. 불의 속성을 깃들게 해도 무리다.”
태양의 온도인 6천도 쯤에 달하면 한태석이 만든 금속판은 여지없이 녹아버렸다.
무리를 해서 두 번의 강화까지 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녹다 못해 기체로 타버리는 통에 절대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장만복 교수가 한태석에게 부탁을 한 이유는 장만복 교수가 대한민국 핵융합 개발의 책임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핵융합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장만복 교수는 핵융합에 도달하기 위한 1억 도의 온도를 버틸 소재 개발에 애를 먹고 있었다.
일단 금속이 아닌 열에 강한 세라믹으로 핵융합이 일어나는 공간을 두르고 그것도 한참 부족해 플라즈마로 그 열을 막아야 그나마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다.
그동안 꿈의 에너지라고 불리는 핵융합 기술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상용화하기에는 한계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중에 핵심이 바로 핵융합이 일어나는 공간을 담아낼 용기의 개발이었다.
엄청난 시설들이 즐비한 연구시설에서도 불가능한 일을 장만복 교수는 강남의 조그마한 대장간에서 부탁한 것이었으니 남들이 알았다면 다들 비웃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태양열에 필적한 온도까지 버텨내는 금속판을 완성한 한태석을 알지 못했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좀 더 열에 강한 금속을 만들어야만 한다! 좀 더 강한!”
한태석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판을 대장간 바닥에 내던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멍! 멍!
한태석을 구경하던 사리는 대장간 바닥에 굴러다니는 금속판을 얼른 입으로 물었다.
하지만 도저히 씹어지지 않는 강도를 가진 금속판에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서는 곧장 입 밖으로 뱉어내었다.
“역시 신의 영역을 넘보는 것인가.”
한태석은 1억 도를 버틸 금속을 만드는 것이 신의 영역임을 깨달았다.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영역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포기를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후우!”
온몸이 익어갔다.
열기로 가득 찬 대장간 안에서 온종일 고열과 씨름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열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태석 씨.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몸 상해요.”
한태석은 자신을 걱정하는 혜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온통 열에 녹거나 타지 않는 금속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열에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웠다.
한태석이 전생에서의 전성기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1억에 달하는 고온을 견딜 만한 금속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