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42
제 42화
“좀 나가서 쉬다가 오세요. 그렇게 좁은 대장간 안에 틀어박혀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한태석은 지민과 혜진의 말에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매장을 나섰다.
어느덧 성큼 가을이 다가와 있는지 바람에 서늘함이 깃들어 있었다.
폐 속 가득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지만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난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산책이나 가 볼까.”
전생에서도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홀로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던 것이 떠오른 한태석이었다.
문제는 그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불에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들 수 있을까?”
“형씨!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돈 있으면 가서 술 좀 사와.”
“응?”
한태석은 자신의 옆에서 때가 꼬질꼬질한 노숙자가 자신에게 술을 사 오라는 말을 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덧 해는 저 있었다.
그리고 한태석은 웬 지하철역 앞에 앉아 있었다.
한 가지 생각에 잠기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한태석이었기에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뭐해? 술이나 좀 사 오지 않고!”
한태석은 술을 사 오라는 노숙자의 성화에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삼천 원뿐이군.”
대장간을 나오면서 지갑과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않은 한태석이었다.
사실 간단히 산책이나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그냥 맨몸으로 나온 것이었다.
지민이나 혜진도 한태석이 설마 가출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니 매장 안에 한태석의 핸드폰과 지갑이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마 호주머니에 꼬질꼬질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이 있어서 한태석은 편의점에 들러 소주 하나와 값싼 과자 하나를 샀다.
“오! 돈 있었네! 이리 줘 봐.”
노숙자 김 씨는 한태석이 정말로 소주를 사 온 것에 한태석의 손으로부터 소주병을 빼앗아서는 한 모금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크으! 좋다. 좋아!”
오랜만에 몸 안으로 들어온 알콜에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듯이 반응을 했다.
금세 취기가 올라오며 아프던 몸이 내 몸이 아닌 듯했다.
그렇게 연거푸 소주를 입에 붙던 남자의 주변으로 다른 노숙자들이 다가왔다.
“김 씨. 자네만 먹지 말고 우리도 좀 줘.”
말은 부탁 조였지만 당장에라도 소주병을 빼앗을 기세였다.
김 씨는 욕설을 뱉으며 저항했지만 알콜 냄새에 모여든 사람들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세 텅 빈 소주병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모여들었던 노숙자들은 흥미를 잃고서는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고개를 푹 숙이고서는 주변에 관심을 끊는 듯했다.
“…….”
한태석은 인생의 도피자들을 보며 이 지구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유토피아는 아님을 깨달았다.
전생에서도 매음굴이나 빈민촌들은 있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도 가지지 않은 채로 숨만 붙어 있는 시체나 다를 바 없었다.
한태석 자신도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그들이 가지는 절망감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 가장 손해인 것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봐. 돈 더 없나?”
술을 더 사내라는 말임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 돈이었습니다.”
“쳇! 돈도 없는 거지였구만.”
자신도 돈이 없으면서도 한태석에게 돈이 더는 없다는 말에 김 씨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노숙자 김 씨를 빤히 바라보던 한태석은 김 씨에게서 신경을 끄고서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김 씨가 노숙자가 된 사연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 한태석에게 중요한 것은 불에 타지 않는 금속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장간에 돌아가 봐야 어차피 만들 수 없으니 시원한 이곳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에 노숙이라도 해볼까 싶은 것이었다.
물론 정말 노숙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없이 멍하니 중얼거리기만 하는 한태석에 김 씨는 신경이 쓰였다.
오히려 김 씨야말로 한태석이 노숙자가 된 사연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갔다고.”
취기까지 올라 김 씨는 한태석이 들으라는 듯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번듯한 사업도 하고 있었고 처자식도 있었고 술집에 가면 하루에 백만 원도 우습게 쓸 정도였어.”
노숙자마다 말하는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자신은 잘 나갔는데 그런 능력의 자신을 세상은 몰라봐 준다는 것이었다.
다들 재기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이들도 있었지만 분명 그들도 옛 영광만큼은 못해도 소소한 행복을 찾아 살길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저당 잡혀 버렸다.
이제는 되돌아갈 용기가 없었기에 주저앉아 과거만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용기를 가진 자는 이미 떠났고 남은 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힘으로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집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 젊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야.”
김 씨는 길거리에 나앉은 한태석에게 충고했다.
자신에게 소주 한 병을 사준 한태석이었으니 충고를 한 것이다.
그러고서 김 씨는 자신의 품 안에서 고장 난 회중시계를 꺼냈다.
회중시계의 뚜껑에는 한때는 사랑했던 여인과 자식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청승맞군.’
술에 취할 때마다 바라보는 사진은 자신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고장이 나 멈춰 버린 기계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은 마치 멈춰버린 자신을 나타내는 듯했다.
‘이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면…….’
소주 한 병 사 마실 돈도 없는 김 씨가 시계를 고칠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설령 돈이 있더라도 고칠 자신이 없는 김 씨였다.
“고장 났습니까? 고쳐드릴까요.”
“뭐?”
김 씨는 한태석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가 어느덧 자신의 손에서 사라진 회중시계를 볼 수 있었다.
김 씨의 눈이 자신의 회중시계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고 마침내 찾았을 때는 더욱더 경악스러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태석이 바닥에 김 씨의 회중시계를 내려놓고서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를 망치로 내려치려고 하고 있었다.
“히익!”
멈추라는 말이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김 씨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아마도 술에 취해서라고 생각을 했지만 한태석의 망치가 시계 위를 사정없이 내려치는 것에 이성의 가느다란 끈이 끊어져 버렸다.
“이 자식아아아아아! 미쳤냐아아아아!”
한태석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지르는 김 씨에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이 미친놈아!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그게 어떤 건데!”
김 씨가 마지막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해준 물건이었다.
물론 그건 핑계였지만 김 씨에게 남은 유일한 보물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고장이 났지만 전당포에 맡긴다면 소주 몇 병 사 마실 돈은 나올 물건이었다.
그런 김 씨에게 너무나도 귀한 보물을 망치로 사정없이 후려쳤으니 김 씨의 분노는 참기 힘들 정도였다.
당장에라도 한태석을 죽여버리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었지만 이미 몸이 망가져 버린 김 씨가 철근 정도는 단번에 휘어버릴 수 있을 만큼 건장한 한태석을 어찌하기는 어려웠다.
고목에 매달린 애처로운 매미 한 마리처럼 아무리 힘을 줘도 꿈쩍을 하지 않는 한태석에 김 씨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흐어엉! 허엉!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러면! 그냥 열심히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안 되는 걸 어쩌란 거야! 안 되는걸!”
“서…… 선생님.”
한태석은 자신의 품에 매달려 울음을 터트리는 김 씨에 당황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음을 터트리다가 진정이 된 듯이 김 씨가 한태석에게서 떨어지자 한태석은 그제야 수리된 김 씨의 회중시계를 내밀었다.
“여기 수리 끝났습니다.”
“……?”
김 씨는 회중시계가 완전히 부서졌으니 자신도 이제 마지막을 맞이하자고 다짐을 방금 막 한 상태였다.
아직 한강 수온이 그리 춥지는 않을 날씨였기에 조용히 이 세상을 정리하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한태석의 손에 들린 회중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한태석을 바라보는 김 씨에 한태석은 미소를 지었다.
“이 쌍놈의 새끼가아아아!”
“예?”
한태석은 다시 한 번 김 씨가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서는 고래고래 욕을 하는 것에 왜 이러나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한태석과 김 씨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의 일로 서먹서먹하니 대화도 없었다.
물론 한태석이야 불에 타지 않는 금속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고 김 씨는 십 년 만에 고쳐져 버린 회중시계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이 복잡해도 인간인 이상 생리 현상만은 어쩔 수 없었다.
꼬르르륵!
한태석과 김 씨의 배에서 허기진 소리가 들려올 때 한태석과 김 씨가 앉아 있는 지하철 입구 주변에서 한 여성 직장인의 하이힐이 뚝 하고 부러졌다.
“꺄아악! 아! 뭐야?”
갑자기 하이힐이 부러져 버린 여인은 황당하고 당혹스러우며 창피했지만 당장 주변에는 구두 수리점도 없었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구두 판매하는 곳도 열지 않았다.
한태석은 그렇게 당황해하는 여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구두 고쳐드릴까요?”
“예?”
“구두 고쳐드린다고요.”
웬 노숙자가 하이힐을 고쳐준다는 말에 황당했지만 한태석은 망치를 들고서는 부러진 하이힐의 뒷굽을 고칠 준비를 했다.
호주머니에서 작은 철 못 하나를 꺼내서는 여인에게서 하이힐을 받아 뚝딱거리며 순식간에 고쳐버리는 것이다.
“아! 고맙…….”
“만 원입니다.”
한태석이 손을 내밀며 만 원이라고 하자 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돈을 주지 않으면 노숙자에게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결국 지갑에서 만 원을 한태석에게 내어주었다.
그렇게 만 원을 받은 한태석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김 씨에게 말을 했다.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냥 상관 안 해도 상관없지만 어제의 일도 인연이고 김 씨의 배에서 들려오는 허기진 소리가 거슬렸다.
그렇게 한태석은 김 씨와 함께 골목길 시장 안의 오천 원짜리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허기진 배 속에 뜨거운 국물이 들어오자 차갑게 식었던 몸이 따뜻해져 왔다.
아무리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지만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 허기짐을 채우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아! 좋네. 소주 한 병 마시면 소원이 없겠네.”
김 씨는 얼큰하고 따뜻한 국밥에 소주 한 잔이 절실했지만 한태석이나 자신이나 돈이 더는 없음을 알기에 그냥 하는 소리였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호응을 해주거나 그것이 아니면 경멸 어린 눈빛을 보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 이 허름한 식당에 들어올 때만 해도 자신을 바라보는 주인장 할머니의 눈빛이 결코 반갑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