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44
제 44화
날씨가 그리 춥지도 그리고 덥지도 않았기에 자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호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딱히 걱정도 되지 않는 한태석이었으니 당장 대장간으로 돌아갈 필요성도 없었다.
물론 한태석은 자신이 가출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머리 식히기 위해 조금 멀리 산책을 한다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닿은 곳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한강이 보였다.
한태석은 그렇게 한강이 마주 보이는 곳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한태석에게 있어서 신의 축복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이의 저주가 될 수도 있었다.
“아앗! 아! 뭐야? 체인 빠졌네.”
한태석의 뒤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왜 이리 안 빠져.”
체인이 꽉 낀 것인지 도무지 빠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수리점은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집이나 자전거 수리점까지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할 판이었다.
“하아! 미치겠네.”
투덜거리며 누군가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없을까 잠시 둘러보았지만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야 하는 법이었다.
깊게 생각에 잠겨 있는 한태석은 자신 때문에(?) 자전거가 고장 난 사람의 어려움을 미처 보지 못했다.
“아악! 아! 뭐야? 에이! 정말!”
또 다른 누군가의 자전거가 고장을 일으켰다.
한태석의 점심밥이었지만 한태석은 생각에 깊게 잠겨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한태석에게로 와 고쳐 달라고 요청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한태석은 무척이나 중요한 생각에 잠겨 있었기에 먼저 나서서 고쳐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 체인 끊어졌다.”
“어? 브레이크! 브레이크!”
무수히 많은 자전거가 수난을 당했다.
“윽! 뭐야? 어제 샀는데 왜 밑창이 나가?”
“어머? 브래지어 후크가!”
무언가 이상한 부분이 고장이 나기도 했지만 한태석은 미동도 없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한강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석양이 지고 주변이 점점 어두워질 때쯤 한태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어려운 것인가.”
고개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한태석은 고민을 한다고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서는 일단 대장간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했다.
작은 힌트라도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고민을 해보겠지만 작은 힌트도 떠오르지 않았다.
금속에 화염에 대한 저항 속성을 넣어보거나 아니면 금속에 불과 상극인 물 속성을 부여해 보는 것도 이미 시도해 본 뒤였다.
그렇게 해 보아도 너무나도 뜨거운 열에 의해 소용이 없었으니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완성된 금속을 넘겨주거나 아니면 당장은 해결 방법이 없다며 사과를 하는 수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태석은 대장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한강의 다리를 건너 강남 쪽으로 가야 했기에 일단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쪽으로 향했다.
“응?”
그러던 중 한태석은 한 중년의 남자가 다리의 난간을 붙잡고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어두웠지만 한태석은 남자의 얼굴에서 수심이 가득함을 볼 수 있었다.
삶의 희망을 잃은 듯한 모습에서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 남자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 한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남자는 한강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품 안에서 편지지 한 장과 볼펜 하나를 꺼내었다.
유서를 쓰려는 것이었다.
그냥 세상을 마감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남자는 그래도 이 한 많은 세상에 자신의 흔적 하나 정도는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유서를 쓰고서는 다리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방금 산 볼펜이었으니 글씨는 잘 써질 터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한태석이 남자를 지나고 있었고 신의 저주는 남자의 볼펜에 닿았다.
“뭐야? 왜 안 나와? 고장 났나? 얼마 전에 산 건데?”
남자는 볼펜이 나오지 않는 것에 황당했다.
비록 그리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볼펜을 유서로 쓸 편지지 위로 문질러보았지만 역시나 볼펜은 자국만을 남길 뿐이었다.
“아이! 진짜!”
남자는 짜증스러움에 볼펜을 한강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
“제가 고쳐드릴까요?”
“응?”
볼펜을 한강으로 던져버리려는 순간 남자는 한태석의 목소리를 들었다.
볼펜을 고쳐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고쳐주겠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는 뒤 돌아보았다.
남자도 다리 난간에서 분위기 심상치 않게 서 있으면 경찰이 와서 잡아간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호…… 혹시 경찰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대장장이입니다.”
남자의 질문에 한태석은 고개를 내저으며 스스로 대장장이라 소개했다.
“고장 난 볼펜. 고쳐드리겠습니다. 만들어져 자신의 임무를 한 번도 수행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예? 볼펜을요?”
한태석은 남자의 손에서 볼펜을 구해내었다.
한강으로 던져져서는 영영 글씨 한번 써보지 못하고 끝날 운명을 바꿔 주는 것이었다.
한태석은 볼펜 끝의 금속 볼이 찌그러져 잉크가 나오지 않음을 보았다.
간혹 이 볼이 빠져서 써지지 않기도 했지만 이처럼 찌그러져서 움직이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볼펜의 볼이 찌그러져 있군요. 불량품이었던 모양입니다.”
“아…… 그…… 그래요?”
남자는 불량품이라는 한태석의 말에 볼펜도 자신과 같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자신을 처음부터 불량품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결국 자신은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불량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럼 못 고치는 거지요?”
남자의 힘없는 질문에 한태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세상에 못 고치는 물건은 없습니다.”
“예?”
한태석은 볼펜 끝의 지름 1mm짜리 볼을 빼내었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크기였다.
더욱이 밤이 되어 그다지 밝지 않은 다리 위의 조명등 아래여서 손바닥 위가 아니라면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 녀석을 수리할 겁니다.”
“그 녀석이요?”
남자는 한태석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너무나도 작은 볼을 보았다.
그 작은 것을 어떻게 수리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왠지 수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달리 너는 고쳐져서 임무를 끝까지 하거라.’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런 장비도 없이 고쳐질 것 같지 않았다.
설령 고쳐진다고 해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남자가 지켜보는 사이 한태석은 망치를 꺼내 들고서는 1mm짜리 찌그러진 볼을 후려쳤다.
깡! 깡! 깡!
평평한 난간 위에 눈에도 잘 안 보이는 볼을 놓고 머리통만 한 망치로 후려쳤다.
“…….”
남자는 이 어이없는 광경에 한태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가 대장장이는 아니었지만 상식 있는 현대인으로서 1mm짜리 볼펜 볼을 망치로 두드려 찌그러진 곳을 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한태석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찌그러진 부분을 펴며 최대한 구의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십 수백 번의 두드림 속에 볼펜의 볼은 점점 완전한 구의 형태로 잡혀가기 시작했다.
“그만합시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남자는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태석에게 그만하자는 말을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한태석의 망치질도 멈추어졌다.
한태석은 볼펜의 볼을 들어 검수하고서는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다 되었습니다. 이제 볼펜의 끝에 끼우면…….”
한태석은 찌그러진 부분을 핀 볼펜의 볼을 볼펜의 끝부분에 끼우고서는 결합이 되도록 망치로 끝을 두들겼다.
뭔가 미세 공정 과정이 허무해지는 것이었지만 볼펜은 고쳐질 수 있었다.
“한번 써 보세요. 잘 써질 것입니다.”
“예? 고쳤다고요?”
남자는 한태석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볼펜 수리를 이렇게 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한태석의 표정에 남자는 밑져야 본전이고 화를 내더라도 일단 되는지 확인을 해보고 해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신의 손에 쥔 편지지에 볼펜을 그어보았다.
스윽!
부드럽게 그어지는 볼펜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 고쳐졌네.”
“만 원 받기는 좀 뭐하고 오백 원입니다.”
“예?”
남자는 한태석의 오백 원이라는 말에 황당했지만 손을 내밀고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한태석의 눈에 얼떨결에 호주머니에서 오백 원을 꺼내어 주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 예. 저…… 저기.”
한태석은 남자가 자신을 붙잡는 것에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뭘 더 고쳐 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시죠?”
“저 제가 뭘 하려는지 혹시 모르세요?”
“아! 알고 있습니다. 유서 쓰시려는 거 아니었나요?”
한태석은 남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죽으려고 유서를 쓰는데 볼펜이 고장이 나 유서를 쓰지 못하니 한태석은 그 볼펜을 고쳐 준 것이었다.
“예! 유서 쓰려는 건데. 아니 아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죽으려고 하면 막기 마련인데 막을 생각이 전혀 없는 한태석에 남자는 어이가 없는 것이다.
“보통 막지 않습니까?”
“막는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까? 제가 당신을 책임져 줄 수 없는데 죽지 말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당신의 상황이 달라지냐는 말입니다. 그나마 유서라도 쓰려는 분을 위해 유서를 쓸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 외에는요.”
남자는 한태석의 말에 말문이 박혔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격려를 한다고 해도 위로를 한다고 해도 남자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남자의 마음은 그런 격려와 위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반발만 커질 뿐이었다.
그렇게 한태석은 떠나갔다.
남겨진 남자는 다리 난간 아래 주저앉아 편지지와 볼펜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후에 유서를 쓰기 위해 볼펜을 집고서는 편지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더럽게 잘 써지네. 어쩜 이렇게 잘 고쳤냐?”
자신이 이렇게 글씨를 잘 썼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유려한 필체의 글이 써졌다.
“흐윽! 흑!”
더욱이 어쩜 그렇게 글도 잘 썼는지 글을 쓰면서 읽은 자신의 유서는 눈물이 펑펑 나올 정도였다.
자신의 문장력이 이토록 대단한지 남자는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사실 자살을 할 생각이 사라졌다.
맥이 풀려버렸다고나 할까. 자살이란 충동적인 것이어서 맥이 풀리고 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살에 대한 결단을 넘어버리고는 했다.
물론 임계치에 도달하면 또다시 자살에 대한 결단이 커져 버리겠지만, 남자의 마지막은 적어도 오늘은 아니게 되었다.
“에이! 제길! 제길! 제길!”
남자는 연신 욕을 하며 유서를 마저 썼다.
그리고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선생니임.”
“예?”
눈물을 흘린 채로 고개를 들자 무서운 얼굴을 한 남자 두 사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서인가요?”
“예? 예. 아…… 아니 그게.”
“잠시 동행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아…… 아니 저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괜찮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씀들 하시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