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55
제 55화
박성길은 한태석이 만들어 준 장갑에 사리를 하루 맡아 주는 것을 흔쾌하게 승낙했다.
한태석이 만들어 준 장갑은 뜨거운 물체를 잡아도 버틸 수 있었으며 험한 일에도 찢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 놀라운 성능과 내구성 때문에 박성길은 동료 소방관들의 장갑과 구두를 주문하기도 했다.
한태석도 박성길이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소방 장비들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태석으로부터 저렴하고 질 좋은 소방 장비들을 제공받은 소방서는 사리를 자신들의 마스코트로 여기며 예뻐해 주고 있었다.
“오늘도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우리 사리 덕분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사리가 있을 때는 아무도 다치질 않아요.”
멍! 멍!
사리와 함께 불을 끄러 갈 때는 다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 마치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여튼 한태석은 군식구들을 데리고 강남행이라는 영화를 보러 왔다.
“좀비라.”
좀비가 나오는 영화라는 말에 한태석은 전생에서의 좀비를 떠올렸다.
언데드 괴물로 은이나 미스릴과 같이 정화를 할 수 있는 무기로만 죽일 수 있는 괴물이었다.
물론 본래는 괴물이 아닌 인간이었지만 좀비가 되어 버리면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없었으니 괴물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슬픈 존재들이었다.
하여튼 한국에서 만든 좀비 영화라는 것에 다들 기대를 하며 표를 예매했다.
“호미야. 좀비 본 적 있니?”
“좀비? 흐음! 조선 인종 때였나. 충청도의 두막골이라는 곳에서 뼈만 남은 남녀가 산골 마을을 배회하여 사람들을 습격하다가…….”
“하지 마!”
지민은 호미의 말에 왠지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호미의 입을 막아버렸다.
눈앞에 있는 도깨비의 말을 들으면 진짜 밤에 잠을 못 잘 것만 같았다.
“나는 본 적이 있어. 좀비. 그 사악하고도 불쌍한 사람들.”
한태석은 좀비를 본 적이 있다며 아련한 눈빛을 했다.
“사장님까지 왜 그래요오오오! 저 잠 못 잔다고요!”
지민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을 하며 방방 날뛰었다.
“크크큭!”
그런 지민의 옆에서 혜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자신의 배를 잡고서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예매를 하고서는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때. 한태석은 의외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응?”
“어?”
엘리제였다.
한 손에는 팝콘 상자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콜라를 쥐고 서 있는 엘리제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넌 왜 여기 있는 거야!”
엘리제와 가장 사이가 나쁜 혜진이 엘리제를 향해 삿대질하며 흥분을 했지만 지금 혜진의 복장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장비를 다 착용하고도 엘리제를 이기지 못했으니 한태석과 데이트 겸해서 예쁘게 차려입고 있는 혜진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혜진과 지민이 경계하고 있을 때 엘리제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영화 보러 왔다.”
“…….”
영화관에 영화 보러 왔다는 엘리제의 말에 할 말이 없어졌지만 인간이 아닌 엘프가 영화를 보러 왔다는 것에 혜진이나 지민 모두 기가 막혔다.
“다…… 당신 세계가 지금 위험하다며. 어? 지금 영화 볼 만큼 한가한 거야?”
지민은 엘리제에게 한 방 먹일 말을 떠올리며 외쳤다.
‘잘한다! 우리 지민이!’
혜진도 지민의 사이다 발언에 두 눈을 초롱초롱하니 엘리제를 노려보았다.
“그래. 한가해. 어차피 나 하나 빠진다고 바로 망할 세계도 아니고. 그리고.”
엘리제는 힐끔 영화관의 한쪽에 걸려 있는 포스터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공윤 팬이거든.”
“…….”
엘프가 강남행의 주인공인 공윤의 팬이라는 말에 지민과 혜진은 공윤의 포스터를 보며 한류 스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창피한지 얼굴을 붉히고 있는 엘리제에 지민과 혜진은 맥이 빠져야만 했다.
“하긴 뭐. 영화 볼 수도 있죠. 뭐.”
“그…… 그래. 나도 공윤 팬인데. 야! 너무 잘 생기지 않았니?”
“큼! 여…… 연기가 좋더라고. 도깨비도 그렇고.”
세 여인은 갑자기 공윤으로 대동단결하기라도 한 것인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도깨비 여기 있다. 내가 도깨비다. 도깨비야!”
호미는 세 여자가 도깨비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자신이 진짜 도깨비라고 주장을 했지만 세 여인의 정말 싫다는 표정에 복장이 터져야만 했다.
“이 눈빛은 뭐야? 어? 내가 뭐 어때서? 도깨비가 뭐? 뭐! 도깨비가 다 잘생겨야 해? 와! 못생긴 도깨비 서러워서 살겠나! 아이고! 아이고! 내가 죽어야지! 내가 죽어야지! 그래서 적당히 살다 가야 하는데! 아이고! 서러버라!”
호미가 서러움에 눈물을 터트리는 것에 한태석은 호미의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를 했다.
그렇게 엘리제까지 포함해 다섯은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손에는 팝콘과 콜라. 그리고 구운 오징어를 들고서는 기대 어린 표정으로 상영관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와! 시작한다.”
“으! 사장님. 나 무서운데 손 좀.”
“태석 씨 나도 무서워. 나도!”
한태석을 가운데로 하고 둘러앉은 지민과 혜진에 주변의 시선이 잠시 모여 부러움과 질투, 시기로 변했다.
“쳇! 누군 서러워서 살겠나.”
“내가 손잡아 주지.”
“…….”
호미는 자신의 옆에 앉은 엘리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호미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지만 엘리제의 눈은 스크린에 나오는 공윤에 고정되어 있었다.
“너의 시커먼 마음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공윤 따라 하면 죽는다. 안 똑같다.”
“…….”
어떻게든 호미 자신을 꼬셔내어 혼란스러운 엘리제의 세계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을 호미도 알고 있었다.
하여튼 지금 혼란스러운 자신의 세계보다 눈앞의 공윤이 더 중요해 보이는 엘리제에 호미는 한숨이 나왔다.
“저기 혜진아. 지민아. 그렇게 잡고 있으면…….”
“꺄아악! 꺄악! 사장님! 사장님! 사장니임!”
“아이 무셔! 태석 씨 나! 저거 너어무 무셔!”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고 지민과 혜진은 간간이 비명과 함께 어색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런 두 여인이 무인도에서는 표범을 때려잡고 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아!”
그렇게 두 여인에 의해 한숨만 늘어나는 한태석과 달리 호미는 자신의 옆에 앉는 엘리제 때문에 안절부절못해야만 했다.
“저 좀비 놈들! 이 사악한 게인슈라! 네놈을 내…….”
“아니…… 저기 선생님. 너…… 너무 감정 이입하신 것 같은데. 저건 영화인데요.”
좀비들이 나타나고 사람들을 습격할 때마다 살기를 뿜어내며 분노하는 엘리제였다.
게인슈라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좀비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외쳐대며 머리를 뽑아버린다거나 허리를 반으로 접어버린다거나 하는 흉악스러운 말을 토해내는 엘리제였다.
“저기 너무 그렇게 흥분하지 마시고. 아! 죄송합니다. 저희 담임 선생님이세요.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아니 이상한 사람은 맞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하며 호미는 그냥 대장간에서 잠이나 잘 걸 하는 후회를 했다.
“아! 공윤님.”
다행히 좀비에 흥분하던 엘리제는 공윤에 더욱 흥분해 얼굴 발그레하니 차분해졌다.
만일 공윤이 나오지 않았다면 검을 뽑아 들고 스크린을 향해 돌진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와! 무서웠지만 재미있었다!”
“공윤 너무 잘 생긴 것 같아.”
“연기도 좋았다.”
얼굴에 꽃이 핀 세 여인과 달리 한태석과 호미는 마치 좀비가 되기라도 한 듯이 얼굴이 초췌했다.
“내가 저것들이랑 같이 영화를 보면 도깨비가 아니다. 도깨비가.”
“그래도 다들 즐거워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한태석은 이런 시간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생 결단을 내는 듯이 싸우던 세 여인이 같이 붙어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고 있었다.
사실 딱히 싸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서로 감정싸움이 되기는 했지만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엘리제가 호미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강제로 끌고 가려는 것도 아니기에 관계가 좋아질 구석도 있었다.
물론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기는 했다.
“사장님! 우리 밥 먹으러 가요! 밥!”
“그러지. 뭐로 먹으러 가야 할까?”
한태석은 저녁을 먹자는 지민의 말에 잠시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고민을 했다.
도깨비가 하나 끼어 있었지만 아리따운 세 여인과 함께였으니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해야겠지만, 한태석은 입맛이 그리 고급스럽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태석이 고민할 때 엘리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 삼겹살 먹고 싶다.”
“응? 삼겹살?”
볼이 붉어져 있는 엘리제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물론 한태석은 그런 엘리제에 넘어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엘프는 고기 안 먹지 않나?”
한태석은 전생에서 엘프들이 고기 먹는다는 소리는 못 들어보았기에 다른 세계의 엘프들은 고기를 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 여긴 지구니까.”
한태석의 의문에 엘리제는 당황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뭐 그럼 삼겹살 먹으러 가지.”
한태석의 삼겹살 먹으러 가자는 말에 엘리제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모처럼 차려입고서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고기 좀 썰어보려던 지민과 혜진은 엘리제의 표정이 너무나도 해맑은 것에 자신들이 양보하기로 했다.
“나 들었다. 삼겹살 맛있다고. 그런데 아직 못 먹어봤다. 학교 회식 삼겹살집 안 간다.”
엘리제는 아쉽다는 듯이 아직 그 맛있다고만 들었지 먹어보지 못한 삼겹살을 떠올리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제 언니는 꼭 외국인 같네. 아니 외국인 맞나?”
“그러게. 꼭 외국인 먹방 보는 것 같네. 엘리제 혹시 김치 먹어봤어?”
“김치 먹어봤다. 맵다. 그리고 나 싸이도 안다. 강남 스타일. 우리 집 강남이다.”
“오올! 한국 사람 다 되었네. 싸이도 알고.”
지민과 혜진은 무척이나 기뻐하는 엘리제를 보며 생각보다 엘리제가 그리 나쁜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이는 대체 나이가 몇 살이야? 혜진이도 그렇고. 나한테는 반말이고 혜진이한테는 언니라고 하고. 그리고 저 여자 나보다 나이 많아! 할머니야! 할머니!”
호미는 지민이 족보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투덜거렸다.
그렇게 한태석의 일행들은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소주까지 시켜서는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엘리제가 지구에 온 이유와 사연을 제대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내가 말이야아!”
혀 꼬부라진 목소리에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름다운 미녀가 울먹이고 있었다.
“자알 하는 짓이다.”
“호미야!”
“뭐? 아니 무슨 술 몇 잔 마셨다고 이래 취하나?”
호미는 자신에게만 엄격한 지민에 투덜거리며 술에 취한 엘리제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먹어본다는 삼겹살에 감격하더니 오크 고기 맛이 난다며 고개 갸웃거리게 한 엘리제였다.
한태석은 그런 엘리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크 고기 맛이 무엇인지를 아는 듯했지만. 지민과 혜진은 차마 오크 고기가 뭔지 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