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80
제 80화
“이장구?”
한태석은 이장구라는 이름에 누구인지를 떠올리다가 이내 기억이 났다는 듯이 지민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그게, 자살이라는 것 같은데요.”
“뭐? 자살?”
이장구는 열 명의 대장장이에 속할 정도로 실력이 좋은 대장장이였다.
비록 나이는 조금 들었지만 아직 정정한 몸에 눈빛도 살아있는 것이, 자살을 할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럴 리가.”
“방송에서 눈매가 날카롭던 그분 맞죠? 완전 카리스마 있으신 분이시던데. 실력도, 사장님하고 오만득 장인 다음으로 실력도 있으셨고요. 그런데 왜 자살을 한 걸까요?”
비록 한태석은 그와 대화를 길게 나눠 보지 못했지만, 일면식도 있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장례식은 언제 한다는 거지?”
“글쎄요. 그건 저도. 뉴스를 봐서.”
뉴스에 이장구 장인의 죽음이 나온 건 천하제일 대장장이 대회라는 방송 덕분이었다.
그가 왜 자살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인이 된 사실은 확실한 듯싶었다.
한태석은 김 PD에게 전화를 걸어 고인의 사망을 확인하고서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김 기사님한테 연락 좀 주겠어.”
“예? 아! 예! 알겠습니다.”
한태석도 항성 그룹의 비상임 이사이기도 했기에 한성그룹의 경호실의 차량을 이용할 수 있었다.
운전 면허증도 있고 차도 있었지만 운전을 할 줄 모르는 한태석이었기에 그렇게 차를 빌려 이용을 하고는 했다.
“언니는 지금 뭐 하는지 몰라.”
지민은 한태석에게서 받은 투구를 착용하고서는 남몰래 랠리에 참가 중인 혜진의 부재를 떠올렸다.
스피드에 눈을 떠버린 혜진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는 있었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이서가 되어있었다.
혜성처럼 등장해 각종 레이싱 대회를 휩쓸고 있는 중이었다.
국적이 한국이라는 것만이 알려진 그녀는 각종 언론사에서 그녀를 취재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그녀의 신분도 결코 만만치 않은 데다가 한태석이 준 투구로 인해 철저하게 신분이 감추어지고 있었다.
하여튼 그렇게 부재중인 혜진을 대신해 김 기사가 한태석을 이장구 대장장이의 장례식장까지 태워 주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예! 천천히 볼일 보시고 오십시오.”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차에서 내린 한태석은 지방에 위치해 있는 한 장례식장 앞에 도착했다.
“어! 태석이 왔나!”
“형님도 오셨군요.”
“그래. 나도 와야지. 아이구. 어쩌다가 이런 일이.”
장례식장 앞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중에는 한태석이 아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방송이 아니었다면 서로의 존재조차 모를 이들이었지만 짧지만 짧지 않은 인연으로 한자리에 모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오만득.”
한태석은 장례식장에서 오만득을 볼 수 있었다.
“저 친구가 상주 역을 했다더구만.”
“상주 역을요?”
“그래. 이장구 그 친구가 처자식이 없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만득이 저 녀석이 대신 상주 역을 자처한 모양이야. 둘이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야.”
대장장이들 중에 가장 연장자인 명석은 한태석에게 나름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말 없고 왠지 모를 어둠을 가진 이장구였기에 다른 대장장이들과 그다지 친밀한 관계를 맺지는 못했지만 오만득은 그런 이장구와 제법 친하게 지낸 모양이었다.
실력만큼은 한태석과 오만득 못지않게 뛰어나 운만 따른다면 우승도 해 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던 이장구였다.
그런 이장구가 갑자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어 버리자 다른 대장장이들도 안타까움과 함께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한태석은 명석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준비해 간 봉투를 부조금함 속에 넣고서는 인자한 표정의 사진이 걸려있는 빈소의 앞으로 다가갔다.
한태석의 전생에서와 장례 방식은 달랐지만 한국에서의 장례식 방식에 따라 큰 절을 두 번 한 한태석은 상주 역을 하고 있는 오만득을 바라보았다.
‘적의? 어째서?’
한태석은 오만득의 눈에서 자신에 대한 적의가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적의에는 원망도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못.”
“뭐? 못?”
한태석은 나지막이 들리던 오만득의 목소리에 이장구의 시신이 있는 빈소를 바라보았다.
이질적이지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그래. 당신 때문에 이장구 아저씨는 자신의 자부심이 부서지는 것을 기다려야만 했다.”
한태석은 오만득의 말에 서영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검은 대장장이였나?”
“…….”
오만득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태석은 흰 대장장이들에게서 손에 못이 박혀 대장장이로서의 생명이 끊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멍청한. 못을 뽑으면 되었을 텐데.”
한태석은 호미가 가지고 놀던 빠루를 떠올렸다.
자신에게 부탁만 했다면 그깟 못 따위는 얼마든지 빼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몰랐을 수도 있었지만 한태석은 오만득은 자신이 못을 빼내었음을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태석이 뭐하나?”
“예? 아! 예!”
한태석은 명석의 부름에 오만득과의 짧은 대화를 뒤로하고서는 빈소에서 물러 나왔다.
실상을 알게 되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고 어리석은 죽음인 것에 화가 나는 한태석이었다.
빠루가 없었다면 못을 빼지 못했겠지만 빠루가 존재하는 이상 못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검은 대장장이와 흰 대장장이의 싸움은 한태석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세상을 파괴할 다크 스미스가 위험할 뿐 변화를 추구하는 검은 대장장이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검은 대장장이들 중에 다크 스미스가 끼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모든 검은 대장장이가 다크 스미스는 아니었으니 한태석은 굳이 검은 대장장이들에게 적의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아울러 흰 대장장이들에 대해서도 딱히 적대감은 없었다.
그들 또한 다크 스미스를 경계하며 막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흰 대장장이들이 검은 대장장이와 다크 스미스를 구분 짓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렇게 한태석은 동료 대장장이들과 간단한 담소를 나누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김 기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한정 없이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태석의 팔을 붙잡는 이가 있었다.
“오만득?”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잠시 이야기를 하자는 오만득에 한태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오만득과 자리를 옮겼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거지?”
“부탁이 하나 있어.”
한태석은 오만득의 부탁이 있다는 말에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
“못을 빼 주었으면 좋겠어.”
한태석은 죽은 이장구의 손에서 못을 빼달라는 부탁에 인상을 찡그렸다.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은 거지? 알고 있었으면서 진작 말했다면 설마 내가 거절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건가?”
한태석은 오만득의 부탁에 화를 내듯이 말했다.
“후우! 나도 알지 못했다.”
한태석은 오만득의 자신도 알지 못했다는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장구 장인과 잘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나?”
“잘 아는 사이라. 뭘 얼마나 우리가 오래 보았다고 잘 아는 사이라는 거지?”
한태석은 오만득의 말에 할 말을 잃어야만 했다.
사실 알고 지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해진다고 해서 속속들이 알기에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후우! 알았다. 그렇게 하지.”
한태석은 오만득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김 기사에게 부탁해 서울에 있는 빠루를 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이미 죽은 이장구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 될지도 몰랐지만 그것이 이장구에게 마지막 예의가 되는 일이라면 해주는 것의 도리라 여기는 한태석이었다.
그렇게 한태석이 순순히 해주겠다는 말에 오만득은 이를 악물었다.
‘이장구 아저씨.’
분명 자신에게 접근을 한 것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지만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이장구에 오만득은 이장구가 진심이었음을 확신해야만 했다.
“오만득.”
한태석은 몸을 돌려 다시 빈소로 가려는 오만득을 불러 세웠다.
“뭐지? 할 말이 있는 건가? 대가라도 원하는 거야?”
오만득의 말은 차가웠다.
처음 보았을 때는 예의 바르고 말도 몇 살 위인 한태석에게 형님 대우를 하며 존대를 했지만 지금은 차가운 반말이었다.
‘대체 무엇이 이 친구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단 말인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연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며 한태석은 오만득에게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너는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재능도 어둠 속에서는 그 빛을 발휘할 수 없어. 어둠을 멀리해라.”
“…….”
오만득은 한태석의 조언을 경고로 받아들이며 몸을 돌렸다.
한태석은 오만득이 자신의 조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에 자신의 행동이 헛수고가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도와줘.’
하지만 그때 한태석은 오만득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아리의 입술이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애처로운 눈빛을 한 채로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는 아리에 한태석은 요물이라 불리는 아리의 의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뭐란 말이냐?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냐. 분명 재능은 있다지만 그 정도의 능력은 안 될 텐데.’
누구나 타락할 수는 있지만 타락이 어둠을 불러오려면 그만한 능력과 가치가 있어야만 했다.
한태석은 오만득이 리치나 데스나이트와 같은, 타락을 불러온 자들과 같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오만득이 스스로 불러온 타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단은 이장구 장인의 손에 박힌 못부터 뽑아야겠어. 그리고…….”
한태석은 이장구의 손에서 못을 뺀 뒤에 서영희에게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검은 대장장이들도 문제였지만 지금으로써는 흰 대장장이들이 더 문제로 느껴지는 한태석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고 빈소에는 한태석과 오만득만이 남았다.
가족이 없던 이장구였으니 지인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자 둘만이 남은 것이었다.
“이사님. 말씀하신 것 가지고 왔습니다.”
“아! 예! 고맙습니다.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한태석은 김 기사로부터 황금색 빠루를 넘겨받았다.
일반 빠루로는 이장구의 손에 박힌 못을 빼낼 수 없었기에 번거롭게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오게 한 것이다.
빈소에 지키는 사람도 없었으니 빠루가 도착하자 오만득은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한태석과 오만득은 아무런 말도 없이 빈소 뒤쪽의 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관을 열자 창백한 안색이었지만 당장에라도 일어설 것만 같은 이장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표정은 고통스러운 듯이 일그러져 있어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에 몸부림을 쳤음을 짐작하게 했다.
한태석은 그런 이장구의 표정을 바라보고서는 이장구의 손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못이었다.
한태석도 못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뒤틀린 손은 무언가에 의해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끼릭!
빠루를 들어 이장구의 손바닥에 걸었다.
“한두 개가 아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