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81
제 81화
“그래. 아예 손을 못 쓸 정도로 박아대었던 모양이야.”
오만득은 한태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장구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를 걱정했다.
“손을 잡아줘.”
“그러지.”
오만득이 이장구의 팔을 붙잡자 한태석은 본격적으로 이장구의 손에 박힌 못들을 뽑기 시작했다.
일단 못에 빠루가 걸리면 못의 모습이 드러났다.
땡강!
결코 빠질 것 같지 않던 못이 빠져나오며 바닥에 떨어졌다.
하나둘 못을 전부 뽑아내고 난 뒤에 한태석은 이장구의 일그러짐이 천천히 펴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직 평안을 찾지 못한 듯한 일그러짐이 남아 있었다.
“반대쪽 손도 확인을 해 봐야겠군.”
한태석은 반대쪽의 손에도 빠루를 걸었다.
그러자 다시 못의 모습이 드러났고 한태석은 지독한 짓을 한 흰 대장장이들에 대해 이를 갈며 모든 못을 뽑아내었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안하겠구나.’
두 세력 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한태석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장구의 손을 본 한태석은 단순한 대립을 넘어 증오와 복수가 깃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들 사이의 추악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때로는 마족들이 더 솔직한 존재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었다.
“후우! 이제 다 뽑은 것 같군.”
신기하게도 양손의 못을 전부 뽑고 나자 일그러져 있던 이장구의 표정이 펴졌다.
마치 안식을 찾았다는 듯한 표정에 한태석은 이장구가 자신의 목숨보다 대장장이로서의 명예를 더욱더 중요시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죽으면 다 끝인 것을.’
한태석도 이장구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자신 또한 그런 선택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망치를 붙잡을 정도로 대장장이 이외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다.
한태석은 이장구도 자신처럼 다른 생이 있다면 좀 더 좋은 삶을 살기를 기도했다.
“이제 끝났…….”
오만득에게 다 끝났다고 말을 하려고 할 때 한태석은 무언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미안하다. 너에게는 원한은 없어.”
“만득아.”
오만득은 피가 묻은 몽둥이를 쥐고서는 바닥에 쓰러진 한태석을 바라보았다.
그런 오만득을 아리가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았지만 오만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장구 아저씨가 나에게 준 마지막 기회다.”
오만득은 한태석의 몸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깃들어 있는 망치를 가져다 대었다.
오만득의 손에 쥐어진 망치는 잠시 빛을 뿜어내는 듯하더니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한태석의 힘을 빼앗은 것이었다.
오만득은 온몸이 묵직해지는 기운이 느껴지는 망치를 바라보고서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할 수 있다. 아리의 구슬을 되살릴 수 있다.’
오만득은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수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쓰러진 한태석을 남겨두고 오만득은 망치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빠루를 들고서는 이장구의 빈소를 빠져나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한태석이 돌아오지 않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 기사가 한태석을 찾아 빈소로 돌아왔다.
“이사님은 어디 계시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꽤 흘러도 연락이 없는 것에 김 기사는 텅 빈 빈소를 뒤지다가 빈소 뒤에서 피를 흘린 채로 쓰러진 한태석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야만 했다.
“이사님! 이사님! 이 봐요! 거기 누구 없습니까!”
고함을 지르는 김 기사의 외침을 한태석은 아득하니 들으며 텅 빈 허전함을 느껴야만 했다.
“…….”
한태석은 눈을 뜨자 지끈거리는 머리와 함께 하얀 천장을 볼 수 있었다.
“병원인가?”
“어? 태석 씨!”
한태석이 깨어나자 한태석의 옆에 앉아 있던 혜진이 깜짝 놀라며 태석을 바라보았다.
곧장 의료진을 부르는 버튼을 누르는 혜진이었다.
한태석이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혜진은 곧장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한태석을 간호하고 있었다.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한태석에 그동안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태석 씨! 괜찮아? 어? 괜찮냐고?”
한태석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더욱 울리는 혜진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누구?”
“……!”
혜진은 한태석의 말에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설마 기억 상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한태석에 혜진은 기억 상실을 떠올림과 함께 기구한 운명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건 기회였다.
“나…… 나 몰라? 나 태석 씨 아내!”
혜진은 이 기회에 결혼 도장 찍어버리자고 달려들었다.
기억 상실이니 아내라고 주장해서는 식 올리고 도장 찍고 애 하나 만들어 버리면 기억 돌아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문제는 한태석은 기억 상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침을 꿀꺽 삼키며 기대 어린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혜진에 한태석은 등줄기가 젖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혜진아. 그…… 그건.”
혜진은 한태석이 기억 상실이 아님을 깨닫고서는 얼굴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절묘한 순간에 병실의 문이 열리고 의료진들이 허겁지겁 들어오는 것에 혜진은 한태석을 맡기고서는 탈출을 감행했다.
“창피해! 창피해! 창피해애애애애!”
병실 복도가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는 혜진에 다들 의아한 듯이 바라보는 환자들과 의료진들이었다.
“크크크!”
한태석은 그런 혜진이 귀여웠는지 웃음을 터트리다가 자신에게 다가온 의사들에 입을 열었다.
“며칠이나 기절해 있었던 겁니까?”
“일주일입니다.”
한태석은 자신이 일주일이나 의식을 잃었다는 것에 놀랐다는 듯이 의사들을 바라보았다.
“뇌진탕 증상이 있었지만 크게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셔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의식을 회복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한성그룹의 한장우 회장이 노발대발해서 전전긍긍하던 병원 의료진들이었다.
다행히 한태석이 깨어난 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의료진들을 응시하던 한태석은 오만득을 떠올렸다.
“혹시 다른 친구와 함께 입원을 했습니까?”
그때까지도 한태석은 오만득이 자신을 공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를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공격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이장구의 손에서 못까지 빼 준 한태석이었다.
“다른 친구요? 아닙니다. 혼자 쓰러져 계셨습니다.”
“오만득. 오만득이라는 친구가 없었습니까?”
한태석이 오만득에 관해서 물어오자 의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람은 지금 경찰에서 쫓고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을 뒤에서 몽둥이로 친 자가 그 오만득이라는 자라고 합니다.”
“어째서?”
한태석은 의사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듯한 표정에 의료진들은 한태석이 오만득을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환자가 안정을 취하지 못하면 곤란했기에 이내 한태석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충격이시겠지만 지금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침대에 누워 한태석은 그렇게 며칠간 치료와 검사를 받고서는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사장님!”
“대장장이 양반 왔네.”
멍!
“제노! 제노! 주인님 오시는 동안 나 일 열심히 했다. 재료 많이 안 빼돌렸다.”
“안녕하십니까.”
한태석이 대장간에 돌아오자 반가운 얼굴들이 한태석을 맞아주었다.
“혜진이는…….”
한태석은 혜진이 보이지 않자 지민에게 혜진을 물었다.
한태석이 깨어난 날 얼굴을 붉히며 도망을 치고 난 뒤에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혜진 언니요?”
지민은 혜진을 찾는 한태석에 매장의 뒤쪽에 있는 휴게실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혜진이 얼굴의 반쪽만을 빼꼼 내밀고서는 한태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혜진이 한태석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붉어지며 휴게실 안으로 사라졌다.
혜진도 있는 것에 한태석은 피식 웃고서는 매장의 의자에 앉았다.
큰 이상은 없다지만 한태석은 극심한 무력감에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몸이 허전하다.’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껏 단련된 육체적인 힘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몸 내부에 있던 힘이 사라지며 몸이 너무나도 허전했다.
깊은 상실감이 한태석을 휩싸고 있었다.
“사장님. 김 PD님이 안부 전해 달래요.”
“아! 그러고 보니 방송은?”
가장 불운한 이를 뽑자면 김 PD였다.
촬영 기간에 이장구가 자살을 하고 한태석이 병원에 입원했으며 오만득은 한태석을 공격하고서는 어딘가로 행방불명이었다.
정상적으로 방송이 될 리가 없었다.
사실상 가장 실력 있던 이들이 빠지게 되어버렸으니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방송을 중간에 중단할 수는 없었기에 일곱 번째 시합에 이긴 청팀에 패자 부활전으로 올라간 인원을 합쳐 계속 시합을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렇군. 김 PD님께 폐를 끼쳐버렸군.”
한태석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서는 매장을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매장은 자신이 없는 와중에도 잘 운영이 된 듯 보였다.
“대장장이 양반! 나 자전거 언제 만들어 줄 거야!”
“호미야! 사장님 아픈 거 안 보여!”
철없는 호미의 외침에 지민이 도끼눈을 했지만 그 정도에 기가 죽을 호미는 아니었다.
한태석은 그런 호미와 지민에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한태석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한태석은 지금의 상실감이 오만득의 배신에 대한 마음의 병이라 생각을 했다.
그러니 다시 대장장이 일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지금 만들어 줄게. 잠시만 기다려.”
“오오! 아! 아! 아파! 이 인간 여자야! 도깨비 귀 떨어진다!”
“으이구!”
한태석은 지민의 손에 귀를 붙잡힌 호미를 웃으며 바라보고서는 자신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낯설구나.’
무척이나 오랜만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드는 대장간이었다.
한태석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된 대장간을 손바닥으로 쓸며 자신의 망치를 움켜쥐었다.
한태석의 실력이라면 자전거 정도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호미의 자전거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재료를 들어 망치로 살짝 두드리려는 순간 한태석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쿵!
한태석의 손에서 대장장이의 생명과도 같은 망치가 대장간 바닥에 떨어졌다.
“…….”
한태석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느껴지고 있는 상실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29.
떼구르르르!
녹색의 유리병이 바닥을 굴렀다.
짙은 알콜 냄새가 주변을 물들였고 그 알콜 냄새가 나는 곳에는 한 남자가 삶의 의지를 잃어가며 주저앉아 있었다.
‘어째서?“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누구에게 받은 힘이 아니었다.
자신의 힘으로 얻은 그런 힘이었기에 사라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사라져 버린 힘이었다.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술에 취해 독백하는 이는 한태석이었다.
며칠째 술에 기대어 머리는 떡이 져 있었고 수염은 깎지 않아 덥수룩했다.
누가 보더라도 한태석이 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한 모습이었다.
“사장님. 대체 왜?”
호미의 자전거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던 한태석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절망에 빠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