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82
제 82화
슬럼프가 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태석의 손에서 망치가 아닌 술병이 들린 것이다.
물론 한태석의 의지가 그렇게 약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대장장이로서의 혼이 강한 인간이었다.
이제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다시 망치를 든 것은 자신의 영혼이 대장장이 이외에는 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환생을 했을 때도 한태석의 신체는 대장장이와는 너무나도 멀었지만 한태석의 영혼에 각인된 감각과 힘이 있었기에 빠르게 대장장이의 힘을 되찾아갔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그런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마치 신체에서 대장장이로서의 재능과 감각이 완전히 지워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어떤 분야에서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재능 위에 노력이 가미되어야만 대성을 할 수 있었다.
일말의 재능도 없다면 아무리 노력을 해 봐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태석의 영혼은 분명 전무후무한 대장장이였지만 지금 한태석의 신체는 대장장이의 재능이 전무했다.
아주 약간의 재능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한태석도 이렇게 폐인이 되다시피 좌절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완전히 사라졌다. 완전히.”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는 한태석이었으니 대장장이가 아니더라도 할 일은 많았지만 한태석은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가고 대장장이로서의 일말의 재능만이라도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봐! 대장장이 양반! 적당히 하라고! 뭐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이야!”
“그래! 태석 씨! 충격으로 조금 몸이 불편해진 모양인데 조금 쉬다가 다시 시작해.”
주변에서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었지만 한태석은 그들이 자신이 느끼는 절망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신이여. 차라리 이 삶을 주지 말지 그랬소. 적어도 나의 영혼이 평온을 되찾게 해 주지 그러셨소.”
한태석은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준 신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한태석은 이장구가 자살을 한 이유를 너무나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삶의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달래도 보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한태석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한태석도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엘리제가 한태석의 앞에 서 있었다.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네. 힘을 잃은 거냐? 그래서 절망하고 있는 건가?”
“…….”
호미로부터 한태석이 폐인이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엘리제였다.
엘리제도 한태석이 정점에 섰던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태석으로부터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한태석은 한때 정점에 서 있던 자였고 지금은 정점으로 걸어가고 있는 자라는 것을 꿰뚫어보았다.
정점에 섰던 자와 정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자가 하나의 몸에 있다는 것이 모순되는 일이었지만 엘리제는 세상에 기적과도 같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천 년이 넘는 삶 속에서 경험했었다.
이성과 기술이 극도로 발전을 한 지구에서는 기적이라는 것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엘리제의 고향은 신과 악마 그리고 마법 등 기이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힘을 잃기도 하고 다시 힘을 되찾기도 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힘을 잃었다면 다시 힘을 되찾으면 되는 것 아니냐.”
“불가능하다. 이 몸에는 재능이라고는 없어.”
한태석은 엘리제의 말에 대답했다.
술에 취해 몸은 가누기 어려웠지만 한태석의 정신은 너무나도 또렷했다.
“불가능하다고? 웃기는군.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 절망도 없지.”
한태석은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오만한 눈빛이었다.
타인의 고통 따위는 조금도 생각해 줄 생각이 없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대장장이의 신에게 안내해 주겠다.”
“대장장이의 신?”
한태석은 자신이 모셨던 아루모스와 헤루델을 떠올렸다.
자신의 세계에 있던 대장장이들의 신의 이름이었다.
한태석이 게리인 드라실루스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때 자신의 모든 힘과 생명까지 다 쏟아부어 신에게 바치는 재물을 만들어 바친 신들이었다.
“그래. 우리 세계의 대장장이 신. 그라면 너의 절망을 꺼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너희들의 대장장이 신.”
한태석은 자신이 믿던 대장장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엘리제의 말로부터 알 수 있었다.
지구는 신과 인간이 나누어져 분리되었다.
더 이상 신은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 않았으며 인간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게리인의 세계와 엘리제의 세계는 신과 인간이 아직 공존을 하고 있는 세계였다.
물론 공존을 한다고 해서 옆집 아저씨 아줌마 보듯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적 존재가 인간들 앞에 직접 강림을 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신은 초월적인 존재일 뿐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것은 명심해라.”
엘리제는 눈에서 희망의 불꽃이 살아나는 한태석에게 경고의 한마디를 했다.
엘리제의 세계의 신은 지구에서 여겨지는 절대적 창조주나 파괴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율자나 선지자와 같은 일반 인간보다 우월하지만 인간처럼 약점은 존재하는 그런 생명체였다.
어떻게 본다면 엘리제 또한 일반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신과 같은 존재일지도 몰랐다.
완전한 힘을 가지고 있던 한태석 또한 인간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알고 있다. 신은 조언자이며 지켜보는 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태석은 엘리제의 조언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더 큰 절망감에 빠질 수 있다.’
한태석은 엘리제의 신과의 만남이 확인 사살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길을 찾아야만 해.’
비틀거리며 엘리제를 따라 일어선 한태석은 식어버린 화로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대장간을 나섰다.
다시 대장간에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한태석의 몸의 불길을 되살려야만 했다.
깡! 깡! 깡!
한태석이 엘리제를 따라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로 잃어버린 힘을 되찾으러 떠났을 때. 오만득은 한태석의 힘이 깃든 망치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
그런 오만득을 아리는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기운이 만득이의 몸을 감싸고 있어. 나의 힘으로는 더 이상…….“
오만득을 감싸는 검고 불길한 기운을 아리는 자신의 요기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해 가고 있었다.
‘내가 여우 구슬을 잃지 않았다면.’
모든 일의 시작은 아리가 여우 구슬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이십 년 전, 아리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여우 구슬을 입에 물고서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악한 요마라고 불리는 구미호 족의 여우였지만 아리는 이제 막 꼬리 세 개를 단 어린 여우였다.
구미호가 되려면 천 년의 공덕을 쌓아야만 했고 대부분의 여우들은 구미호가 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기에 아리 또한 구미호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간들에게 장난이나 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던 아리는 여우 사냥꾼에게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살려 주세요.”
여우 사냥꾼에게 쫓기던 아리는 도망을 치다가 한 소년과 만났다.
그 소년이 오만득이었고 오만득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아리를 숨겨주었다.
오만득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아리는 처음으로 인간에게 감사했다.
물론 언니 오빠들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절대 인간에게 연정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우가 인간이 되는 이야기는 흔했지만 대부분은 비극으로 끝이 나는 것이었기에 여우들은 절대 인간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냥 토끼 몇 마리 물어다 주면 되지 뭐.’
그래도 은혜는 알기에 적당히 사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리는 여우 사냥꾼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발각된 아리를 향해 여우 사냥꾼이 쏜 화살이 날아들었고 그걸 막아준 것은 또다시 오만득이었다.
“괜찮아? 빨리 도망가. 꼬리 달린 친구야.”
“만득아?”
여우 사냥꾼은 어린 소년을 쐈다는 것을 알고서는 도망을 쳐버렸다.
아리는 변신을 했음에도 자신을 알아본 오만득에 놀랐지만, 화살이 몸에 박혀 점점 죽어가는 오만득에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렇게 아리는 자신의 여우 구슬을 사용해 버렸다.
정말이지 멍청한 행동이었지만 아리의 여우 구슬은 사라지고 오만득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우 구슬을 잃는다는 것은 구미호 족의 여우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큰 사건이었다.
더 이상 구미호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고 평범한 여우로 살다 길지 않은 삶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울지 마. 너는 내가 돌봐줄게. 울지 마.”
그렇게 아리는 오만득과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인지 여우 구슬을 잃었지만 아리는 요기와 꼬리를 아직도 간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리는 오만득을 떠나면 자신의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만득의 옆에 있을 때만 아리 자신의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의 구슬을 만들어 줄게.”
오만득은 자신 때문에 여우 구슬을 잃은 아리에게 구슬을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오만득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고개를 끄덕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리는 구미호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만득이가 죽으면 그때는 나도 죽는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야.’
여우 구슬을 잃으며 많은 요력도 사라져 버렸기에 더 이상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을 할 수 없는 아리였다.
아니 오만득의 주변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남은 요력으로 오만득이 만드는 물건을 강화해 주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던 중. 아리는 한태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오만득의 삶도 비틀어져 버렸다.
깡! 깡! 깡!
오만득은 온몸에 어두운 기운을 휘감은 채로 아리에게 줄 여우 구슬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이?”
지구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이 지구보다 중력이 조금 더 강한 듯했다.
한태석은 지구가 아닌 곳에 와 있었다.
엘리제와 함께 대장장이의 신이라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엘리제의 세상에 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왕래가 되는 거였나?”
“쉽지는 않아.”
한태석은 엘리제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차피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엘리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신전으로 가는 건가?”
“아니. 헤브레란 왕국의 수도. 그곳에 대장장이의 신이 있어. 가는데 며칠 걸릴 거야.”
지구였다면 금방 갈 거리였지만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는 이곳에서는 시간은 무척이나 느리게 갔다.
한태석에게 있어서 이런 여행은 익숙한 것이었기에 엘리제와 함께 말을 타고 느긋하게 여행길에 올랐다.
중간중간 들짐승들이 있었지만 서로를 소 보듯 닭 보듯 하며 무심히 지나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