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84
제 84화
시련의 탑.
아니 미궁을 만든 건 한 왕국의 왕자 때문이었다.
그 왕자는 본래 무척이나 효심이 크고 백성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였다.
국내에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 어질고 현명했고 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용맹했다.
모든 이들이 왕자가 왕이 되면 나라를 잘 다스려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이야기의 끝은 비극으로 끝이 나기 마련인지 왕자는 타락했다.
타락한 이유가 어떤 여인 때문이라는 소리도 있었고 권력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왕자의 타락 이유를 제대로 아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왕자는 타락했고 타락한 왕자 때문에 왕국은 멸망의 길에 들어설 뻔했다.
“호랑이 아버지 아래 호랑이 자식이 태어난다는 말이 있지.”
“그게 무슨 소리지?”
“그 왕자는 분명 대단한 인물이었어. 하지만 그 왕자의 아버지는 더 대단한 인간이었지.”
한태석은 엘리제와 함께 시련의 탑으로 걸어 들어가며 왕자의 이야기를 했다.
“왕자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에게 이 시련의 탑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왕은 알렉스 대왕이라는 자였다. 정말이지 대단한 인간이지. 가히 호랑이라고 불릴 만큼 말이야. 비록 나이가 들어 노쇠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했고 현명했지. 왕자의 반란군은 대왕의 군대에 패배했다.”
“보통 반대 아니었나? 왕은 왕자에게 죽고 왕자는 나라를 멸망시킨다.”
엘리제는 조금 뻔하지 않은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태석은 그런 엘리제의 반응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반란이 실제 얼마나 성공을 한다고 보는 건가? 열에 하나 성공을 할까 말까 하는 것이 반란이다. 더욱이 알렉스 대왕의 왕국은 당시 전성기나 다를 바 없을 만큼 강성했을 때다. 아무리 왕자라 할지라도 반란이 성공할 만큼 약하지 않았다.”
반란이란 생각보다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야 쉽게 반란이 성공을 하고 정의로운 자가 반란군에 쫓겨 도망을 친다지만 실제 백성들과 군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반란은 대부분 토벌이 될 뿐이었다.
“그래. 좋아. 그렇게 반란은 실패했고 그 대단한 왕이 왕자를 그냥 살려두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리 다음 대의 왕이 될 왕자라지만 타락해 반란까지 일으켰는데 살려둘 왕은 많지 않을 터였다.
“그래. 처음에는 살려주지 않으려고 했지. 타락이라는 것은 쉽게 되지 않지만 다시 참회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법이니까.”
한태석은 적막하니 자신과 엘리제의 목소리만 들리는 미궁 속을 나아가며 과거 자신이 보았던 왕자의 눈을 떠올렸다.
분노와 증오로 붉게 물들어 있던 왕자의 눈은 반란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누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원인은 저주받은 무기였다.”
“저주받은 무기?”
엘리제는 한태석이 말해 주는 왕자의 타락이 저주받은 무기 때문이었다는 말에 놀랐다.
저주받은 무기라는 것은 보통 주인을 죽이는 무기를 의미했다.
엄청난 힘을 주지만 종국에는 그 힘에 휘둘려 주인도 비참한 결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럼 그 무기를 빼앗으면 되지 않는가?”
“빼앗을 수 없었어. 이미 무기와 하나가 되어있었으니까.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지. 너무 늦어버렸어.”
한태석은 왕자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목을 베어라!”
“대왕이여! 제발! 마지막 자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고 만백성들이 존경했으며 온 신하들이 따르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제발! 죽음만은! 제발 죽음만은!”
왕비는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화려한 장신구와 옷들을 던져버리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맨발로 대왕의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모든 것이 이 어미의 잘못입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그 아이가 자신의 죄를 참회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왕비의 애처로운 외침은 대왕의 마음을 흔들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현명한 왕비였고 그런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의 결실이자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이었다.
“전하! 신 전하께 청원드리옵니다! 왕비 마마의 뜻이 진실로 합당하다고 여겨지옵니다!”
신하들도 왕비를 따라 왕자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그만큼 빛나던 왕자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무의미한 피를 흘렸다. 어찌 저 반역자를 살려둔단 말인가?”
대왕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자신마저도 왕자를 살려준다면 혼란스러운 왕국이 더욱더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한태석이 나섰다. 아니 정확하게는 게리인이 나선 것이다.
“전하. 신 게리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오! 게리인! 나의 친우여! 말을 해 보시오!”
대왕은 비록 귀족도 왕족도 아닌 고작 대장장이였지만 신들조차 인정하는 게리인이 자신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에 반색했다.
다른 이들보다 게리인의 말의 무게감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게리인은 그렇게 대왕의 허락 아래 왕자의 처분을 결정지을 말을 했다.
“미궁을 만드소서.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감옥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궁?”
“자신이 한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할 수 있도록 미궁 속을 영원히 헤매게 하는 것이옵니다.”
게리인의 말에 왕비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하였다.
게리인의 말은 죽음보다 어쩌면 더욱더 비참한 벌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왕조차도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 했으니 신하들 중 일부는 분노 어린 눈빛으로 게리인을 노려보았다.
적당히 이름 모를 섬에 유폐를 시켜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려던 생각이 고통스러운 감옥 속에 영원히 헤매도록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영원히 말인가?”
대왕조차 당황해하는 모습에 게리인은 고개를 들어 대왕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왕과 알고 지낸 삶이 길었으니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은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리인이여. 나의 게리인이여. 그것이 최선인가?’
‘내가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네. 죽음은 끝을 의미할 뿐. 살아서 기회를 주고자 하네.’
대왕은 자신의 왕자에게 죽음보다 더 큰 벌을 내렸다.
“반역자를 미궁에 유폐한다!”
최고의 대장장이가 만든 미궁 속에서 영원히 벌을 받는 형벌을 내린 것이다.
왕비는 결국 기절해 버렸고 기사들은 게리인이 만들어 준 칼을 뽑아 들어 분노했지만 대왕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반발하던 왕족들과 귀족들은 이내 잠잠해졌다.
백성들 사이에서만 왕자에 대한 처분이 크네 작네 하며 시끄러울 뿐 왕국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걱정 마십시오. 왕비 마마. 왕자님은 되돌아오실 것입니다. 미궁은 벌을 받기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제가 왕자님에게 어찌 그런 잔인한 벌을 받도록 놓아두겠습니까.”
“게리인. 나의 부군의 친우이며 왕자의 스승인 당신을 믿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왕비마저 마음을 돌리니 미궁을 만드는 것은 일사천리였다.
“모두 조심히 옮겨라! 상자를 쳐다보지도 말라!”
온 세상의 물건들이 옮겨졌다.
그 물건들은 미궁에 들어갈 물건이었다.
대왕은 온 힘을 다해 왕자가 가두어질 미궁 속에 넣을 물건들을 모았고 게리인은 수많은 석공들과 대장장이 그리고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아 미궁을 완성 시켰다.
“자네의 말대로 저주받은 물건들을 모았네. 정말 저 저주받은 것들이 가득한 곳에서 왕자가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인가?”
“왕자는 이미 저주받은 검과 한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저주를 풀 수 없습니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저주를 풀기 위해 저주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구조물들은 저주를 반사한다.”
“저주를 반사한다고?”
한태석은 과거의 회상을 끝내며 평범해 보이는 벽면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느낌의 금속인지 돌인지 모를 벽을 쓰다듬은 한태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궁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저주받은 물건들이 존재하지. 각자의 위치에서 그 저주를 뿜어내고 있다.”
“저주받은 무구들의 창고 같은 건가? 시련의 탑이니 절망의 탑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감옥 같은 거잖아.”
엘리제는 시련의 탑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서는 인상을 찡그렸다.
시련의 탑이 언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 수많은 모험가들이 이 시련의 탑에 들어갔다.
그 결과 시련의 탑은 절망의 탑으로 불렸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빠져나오지 못했고 빠져나온 아주 일부의 모험가들은 이상한 소리를 하며 미쳐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저주받은 미궁을 한태석이 만들었다고 하니 엘리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맞아. 감옥이지. 지금도 왕자는 이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을 거야.”
“뭐? 자…… 잠시만! 그런 위험한 곳에 나보고 같이 들어오자고 한 거야?”
엘리제는 자신이 너무나도 위험한 곳에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한태석이 자신이 만든 곳이라고 해서 전혀 걱정 없이 들어온 것이었다.
“응? 나는 같이 들어가자고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한태석은 엘리제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기 멋대로 한태석 자신을 따라 들어온 것은 엘리제였지 엘리제보고 같이 들어가자는 말은 한 적이 없는 것이다.
“뭐? 야! 너…… 너!”
엘리제는 몸을 부르르 떨며 한태석을 향해 고함을 지르려고 했지만 확실히 한태석이 따라오라고 말을 한 적이 없음을 깨닫고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 나갈 수는 있는 거지? 응? 나 다음 드라마 봐야 한다고.”
목숨보다 드라마가 더 중요한지 울먹이는 엘리제에 한태석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걱정 마. 이곳은 누구나 들어오고 누구나 나갈 수 있는 곳이니까.”
“뭐?”
한태석은 자신의 말에 놀라는 엘리제를 놔두고서는 미궁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미궁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이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주는 곳이다. 저주에 저주를 더하고 그 위에 저주를 더한 곳. 얼핏 보면 저주받은 곳이지만 저주는 상쇄되고 기적이 이루어지는 곳이지.”
한태석은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뭐야? 너는!”
엘리제도 뒤늦게 알아차렸는지 미궁 속에서 처음 만난 정체불명의 존재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30.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미궁 속에서 맞닥뜨린 정체불명의 존재에 엘리제는 입술을 깨물며 제 검의 손잡이를 꾸욱 움켜쥐었다.
마왕의 군대를 물리치는데 자신의 무기가 아닌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엘리제의 무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제는 자신의 피부를 따끔거리게 만드는 존재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강하다. 쉽지 않겠어.’
믿을 만한 동료도 없었다.
한태석이 전설의 대장장이라고 불리지만 대장장이는 전투형 직업이 아닌 철저히 보조적인 직업이었다.
어느 정도의 무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컸다.
결국 엘리제는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 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며 미궁의 그림자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