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Blacksmith RAW novel - Chapter 89
제 89화
불완전한 것이라지만 신기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망치였다.
한태석은 그런 엘리제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남겨진 짐이 있었지만 차라리 잘 된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래. 살아있는 순간까지 후회를 할 일이었으니 이번에야말로 만들어 보자.’
후회하지 않을 만한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는 한태석이었다.
남들이 자신에게 하는 찬사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족해할 만한 것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그렇게 한태석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미소가 지어지자 엘리제는 두 눈빛을 반짝였다.
“자! 이제 복수하러 가자.”
“복수?”
한태석은 두 눈에 가득 분노를 머금은 엘리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복수를 하러 가자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네 제자 놈이 배신을 했어! 배신을!”
“배신? 헥토가?”
한태석은 그러고 보니 헥토 왕자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모래시계의 방 안으로 들어간 뒤로 아무래도 어떤 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 자식이 좋은 의미로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것이 아니었어. 스승인 너를 영원에 가두어 두려는 속셈이었지. 네 모래시계의 모래가 멈추어지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거든.”
엘리제는 자신이 가슴 졸여야 했던 이유를 한태석에게 하소연했다.
다행히 한태석이 무사히 나왔기에 망정이지 자칫 자신까지 모래시계의 방 안으로 들어갈 뻔했다.
천 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엘프였기에 모래시계의 방 안으로 들어선다면 정말이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엘리제는 한태석이 모래시계의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보다 자신이 모래시계의 방 안으로 들어갈 뻔한 것에 대한 복수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을 내며 헥토 왕자가 배신했다고 말하는 엘리제에 한태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직 저주가 완전히 빠지진 않은 모양이군. 하긴 그 저주가 지독하긴 지독했지.”
“뭐? 저주? 아니야! 그건 그놈의 인성 문제야.”
엘리제는 한태석의 반응에 답답했지만 헥토 왕자를 혼자서는 당해내기 어렵다는 것에 한태석을 끼워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한태석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 녀석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군. 그러고 보니 이곳에…….”
한태석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는데? 복수 정말 안 할 거야?”
복수를 하자는 엘리제의 모습에 한태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로 엘리제의 이마를 살짝 때렸다.
퍽!
“이런 미안하군. 힘이 조금 많이 들어갔네.”
힘이 조금 많이 들어갔는지 엘리제의 머리가 뒤로 휘청였다.
엘리제는 정말이지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무겁던 머리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궁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아. 저주가 머릿속에 파고들어 왔어. 그러니 진정을 하라고.”
“저주에 걸렸던 건가?”
“걸린 것은 아니지만 영향을 받기 시작했어. 워낙에 지독한 곳이라 방심을 하면 안 되는 곳이거든.”
한태석은 자신의 머리도 망치로 살짝 때렸다.
퍼억!
“…….”
엘리제는 자기 딴에는 살짝 친 것으로 생각한 듯한데 스스로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서는 기절해 버린 한태석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엘리제 자신이야 워낙에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버틴 것이지만 한태석은 조금 몸이 튼튼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이거 성능 하나는 죽이네. 힘껏 휘두르면 어지간한 마족이나 마물들은 한 방에 박살을 내 버리겠는데.”
엘리제는 용사가 사용하던 성검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는 위력의 망치를 보며 한태석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한태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를 빤히 바라보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내가 사용하기에는 무리인 놈인가 보군.”
“그런 것 같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일단 가자고.”
“어디로 갈 건데?”
계속 가자는 한태석의 말에 엘리제는 의아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태석이 가자고 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업장이네.”
한태석과 엘리제가 도착한 곳은 미궁 안 대장장이의 작업장이었다.
“이 작업장은 한 저주받은 대장장이의 작업장이었다.”
다크 스미스의 작업장이라는 설명을 하며 한태석은 다크 스미스의 작업장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들어가도 되는 거야?”
“그래. 그리 위험하지는 않아.”
한태석이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은 했지만 엘리제는 작업장 안의 모든 물건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것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었다.
“이 미궁 안의 물건들은 대부분 대장장이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모래시계도?”
“그래. 헥토 왕자의 손에 들린 마검 또한 어둠에 물든 대장장이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한태석은 다크 스미스들에 대한 이야기를 엘리제에게 했다.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저주받은 물건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만들어지고 난 뒤에 저주에 물들 수도 있지. 모래시계 같은 것은 시간을 되돌리고자 한 어떤 대장장이가 만들었고 그로 인해 신의 분노를 받아 저주가 내린 것이니 처음 의도와는 달리 저주를 받은 것이지.”
하나하나 그 사연을 이야기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다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태석은 한 다크 스미스가 사용했던 미궁 속 대장간의 화로에 불을 붙이고 풀무질을 했다.
이내 꺼졌던 화로의 불이 검은 불길을 뿜어내며 이글거렸다.
검은 불길은 자신을 깨운 이를 불태워 버리려 그 사나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깡!
한태석은 검은 불길을 붙잡아 검붉은 얼룩이 져 있는 모루 위에 놓고서는 망치로 후려갈겼다.
“내 능력으로는 무리이다. 하지만 이놈이라면 이 녀석들을 얌전하게 만들 수 있지.”
한태석은 자신의 손에 쥐여 있는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망치를 휘두르며 말했다.
저주가 분명 지독하기는 했지만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최전성기의 힘을 가졌던 한태석의 필생의 역작이었던 망치에 미칠 것은 아니었다.
한태석의 망치질이 계속될 때마다 저주는 두려운 듯이 흩어지고 도망치며 쫓기다가 이내 눈치를 보며 잠잠해졌다.
오싹하던 검은 불길은 따뜻한 느낌의 붉은 불꽃으로 변해 있었다.
“그…… 그 망치로 저주를 없앨 수 있는 거야?”
“아니. 저주를 없앨 수는 없다. 이 녀석들의 저주는 원념의 덩어리다. 결코 사라질 성질의 것들이 아니야.”
한태석은 저주가 누그러진 것뿐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하며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뭘 만드는 건데?”
“의자.”
“의자?”
한태석은 의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주에 물든 철광석들이었지만 한태석의 망치에 그 저주들은 쫓겨나갔다.
저주가 깃든 물건들은 아니었기에 광물들에 달라붙어 있던 저주의 기운은 쫓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대장장이의 일을 하게 된 한태석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이 미궁은 오랜 시간 동안 저주가 머물러 아무리 성스러운 물건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힘을 잃고 저주에 동조가 된다.”
그 때문에 미궁을 만들고 난 뒤에 그 어떤 성물도 배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물이 저주에 물들어 더욱더 지독한 저주를 내뿜을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럼 그 의자도 여기에 계속 있으면 저주받은 의자가 된다는 거잖아.”
엘리제의 질문에 한태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망치질을 했다.
“그래.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 의자도 저주받은 물건이 되어 버릴 거야.”
“그럼 그걸 왜 만들어?”
엘리제는 의자를 만드는 한태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궁을 헤매는 자들에게 작은 휴식을 주기 위해서.”
한태석은 헥토 왕자뿐만 아니라 미궁 속에서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한 의자를 만들기로 했다.
“과거였다면 쓸모도 없는 것이겠지만 지금이라면 헥토도 휴식을 취할 수 있겠지.”
“저주받게 된다며. 그 의자도.”
“그래. 그냥 놔둔다면 저주를 받겠지. 하지만 처음부터 저주를 받은 물건이라면 다른 저주에 영향을 받지는 않아.”
한태석은 자신이 만든 의자에 스스로 저주를 내릴 생각이었다.
“뭐 저주받은 물건을 만든다고? 그게 가능해?”
“나는 그랜드 블랙 스미스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다크 스미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도구의 힘과 다른 다크 스미스의 저주를 이용해야만 했지만 한태석은 저주받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태석은 평범해 보이는 의자를 만들었다.
“여기에 저주를 부여한다.”
한태석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저주를 깃들인다는 것에 엘리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의자를 바라보았다.
성스러운 기운이 뿜어지는 한태석의 망치는 더욱더 밝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 빛이 더욱 강해지자 어둠이 찾아왔다.
“극단은 또 다른 극단과 이어지는 법.”
독이 때로는 약이 되고 약이 때로는 독이 되는 법처럼 축복도 과하면 저주가 되는 법이었다.
한태석은 그렇게 저주를 만들어 자신이 만든 의자에 부여했다.
“이것이 저주받은 의자?”
엘리제는 빛인지 어둠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뿌려대는 의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저주가 깃든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스스로 저주받은 물건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 표정이 어두워진 한태석에 엘리제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미궁에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였다.
미궁을 배회하던 이들은 저주받은 의자에 이끌려 의자에 앉았다.
정신없이 미궁을 배회하던 이들은 의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나 의자를 만나면 앉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저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누구나 한태석이 만든 의자에 앉아 강제적이지만 잠시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미궁의 관리자인 헥토 왕자조차 미궁을 배회하던 중에 만난 의자에 앉아 잠시의 휴식과 함께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이건 더 이상 필요 없겠군.”
헥토 왕자는 한태석이 만든 저주받은 의자에 앉아 자신이 과거 철없던 시절 화로 속에 녹여버렸던 한태석의 망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에게 줄 선물을 찾았지만 스승인 한태석은 이미 더 좋은 망치를 구한 것을 본 것이다.
오히려 한태석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헥토 왕자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서는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를 바라보다 좋은 생각이 났는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주가 깃들어 누구나 의자 앞에서 멈추어 의자에 앉게 되었지만 그 저주는 그리 강하진 않았다.
더욱이 헥토 왕자가 그런 저주에 휘둘릴 존재도 아니었으니 일어서고 싶으면 언제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미궁에서는 전과는 달리 망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미궁 안에 대장간이 문을 연 것이다.
“마침내. 마침내 완성이다. 마침내 완성이야!”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반투명한 구슬이 만들어졌다.
보석같이 아름다웠지만 보석은 아니었다.
본래는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뭉쳐진 요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슬로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버렸다.
“만득아.”
“아리! 마침내! 마침내! 내가 너의 여우 구슬을 만들었어! 하하하하! 마침내 해냈다고!”